표현력의 풍부함
오글거린다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민망함과 창피함을 느낀다는 이유로, 흔히 말해 오글거린다는 이유로 솔직한 감정 표현이 줄어들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친구 사이에서도 무언가를 도와주었을 때 정말 고마워~라는 진심을 담은 목소리에 민망해하며 우리 사이에 뭘 이런 걸로 그렇게 고마워해?! 오글거려!!라는 경험을 해본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성 관계에서도 오글거린다는 이유로 민망함을 감추고 진실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가족 사이에서도 부끄럼에 맞서기보다는 창피하다는 이유로 감정 표현에 점점 서툴어지고 있다. 가끔 진짜 진지하게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할 때, 진심을 담아 미안한 마음을 전할 때, 감사함을 내비치고 싶을 때 “분위기를 잡고 한껏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 “아이 오글거려~ 왜 이래 ~“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진 것.
과히 통탄스럽다.
감정 표현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간접적으로 혹은 행동으로라도 서로 마음을 확인할 수 있으니 상관없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나는 반대한다.
뭐든 자주 해야 늘 듯이, 감정 표현도 솔직함도 창피함을 이겨내고서라도 할 수 있는 용기는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표현력들이 쌓여서 상대에게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사실 지금 이렇게 말하는 나 조차도 오글거린다는 이유로 친구 이름을 말할 때도 성을 무조건 붙여 불렀고,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 안 했다. 그러나 외국인과의 연애를 통해 이런 나의 모습들을 반성하게 되었다.
자기 전에 기타를 치면서 로맨틱하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외국인과의 연애는 어떤 사람에게는 꿈같은 로맨틱함일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왜 저렇게까지 하지 부담스러워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데, 나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윽 오글거려서 듣는 나 조차도 민망할 정도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솔직한 감정표현을 하는 외국사회에 적응하게 되었다. 오해가 없는 직설화법과 같이 오는 극적인 감정표현. 어찌 보면 한국인들보다 외국인들이 더 순수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아닌 척하면서 겉과 속이 다르다거나 행동으로 보여주는 츤데레의 이상한 줄타기가 아닌, 진실된 감정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프랑스어를 배우고 있노라면 하나의 말을 전달할 때도 동사가 여러 개 있는 시적인 감성이 가득한 언어의 풍부성이 발달한 배경은 바로 표현력이 기반이 되었던 것 같다.
유교사상이 바탕이 된 한국은 부모님과 대화할 수 있는 주제가 있고 친구들이랑 대화할 수 있는 주제가 있다. 회사생활에서도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하면 안 되는 말이 있다. 학교에서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어 싫으면서도 좋은 척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다소 고삐뿔린 망아지처럼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도 되고, 궁금한 것들은 예의를 차리는 선에서 질문해도 되며 부모님과의 대화 주제에 성관계를 포함시켜도 거리낌이 없는 투명하고 자유로운 분위기. 오히려 부모님이 지갑에 콘돔을 넣어주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직장에서도 회의를 통해 프로젝트 마감 기한을 1주일로 정했는데, 정작 일하는 사람이 2주일이 필요할 거 같다고 느끼면 야근을 하기보다는 마감기한을 늘려주는, 의견을 반영해 주는 사회. 같이 밥 먹으러 갈래? 할 때 친구끼리 혹은 동료끼리의 사이가 틀어질 것을 고려하여 혼자만의 시간을 원하는 대도 그래 같이 밥 먹으러 가자가 아닌, 오늘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혼자 먹을 게를 솔직하게 말해도 분위기가 이상해 지지 않는 편안함.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교체되면서 사회 분위기가 바뀌고는 있다고 하지만,
한국에서도 하루빨리 감정표현의 솔직함이 되살아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