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점심을
여가시간에는 서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둘 다 동시에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된 콘텐츠를 소비해야 하기 때문에 90%는 영어로 된 쇼, 뉴스, 시리즈물, 영화를 보곤 한다. 어쩔 수 없이 한국의 소식보다는 국제뉴스에 대한 소식을 더 먼저 접하게 되고, 한국 사회보다 국제 사회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환경. 특히나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방인들이 많은 프랑스에 살면서, 전쟁/종교적 이념/이데올로기와 같은 다소 어렵고 난해한 주제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게 된다. 20년 가까이 맞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던 나의 가치관들이, 다른 게 혹은 잘못된 게 되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좀 더 면밀히 사고하게 되는 데,
그중 하나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가자지구)의 전쟁이다.
이제 뉴스에서나 보는 국제적 분쟁이라고 생각되었던 사건들이 친구들의 이웃나라가 되고, 프랑스도 각종 테러리스트의 위험으로 국가경보를 최상위 등급으로 올리게 되면서 이 분쟁의 시발점은 어디인지, 과연 무엇이 옳고 그른 건지에 대한 논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세계사에 중요성을 크게 깨닫고 있는 요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의 시발점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이중 계약이 아니었을까. 물론 기원전 모세의 기적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전쟁의 이중계약을 통해 전쟁의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영국이, 전쟁이 끝나고 다른 방도를 찾지 못해 유엔총회에 두 나라, 민족의 분쟁을 떠 넘긴 것. 즉 서양열강의 “이중계약”이 분쟁의 또 다른 시발점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에 대해 이스라엘 국가를 설립한 유대인들은, 나라의 발전에 이바지하여 팔레스타인보다 “잘 사는 나라” “힘 있는 나라”가 되었고, 그 시간 동안 팔레스타인은 테러리스트 조직을 결성하여 자폭테러를 벌이면서 이스라엘에 끊임없이 저항해 왔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몇십 년 동안 테러를 당하고 전쟁을 하고 갈등이 있으면서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음이 당연했고,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영토와 삶의 터전을 빼앗기어 자폭을 해서라도 타격을 입히고 싶은 절실함은 당연했다.
한국적 자본주의 개인주의의 사고를 가진 나는, 힘 있는 나라가 더 우월한 지위를 갖는 건 어쩔 수 없는 힘의 논리고, 그 우위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국가력을 키우는 것은 불가피한 거라고. 한국의 자살률, 알코올 의존도, 우울증이 타 국가에 비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대신 작은 섬 같은 나라가 세계 반열에 올라갔다는 것은, 빛과 그림자임을. 노력과 희생은 응당 따라오는 개념일 뿐. 한국도 35년의 식민지배를 받은 이후 아픈 역사들 속에서도 교육의 힘, 국민성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거고, 나라가 발전하고 싶으면 그 나라 정부, 정치, 국민들이 힘을 썼어야 되는 거 아니야?라는 나의 사상에 반기를 들듯,
아프리카 나라는 가난하고 싶어서 가난한 게 아니야. 한국은 어쩌면 지리적인 이점 덕분에 1차 산업혁명의 물살이 먼저 일어나서 신식 총기를 소유할 수 있었던 유럽인들에게 먹히지 않았겠지만, 아프리카는 엄청난 착취와 멸시를 당했어. 본인들의 나라에서 노예로 부려지면서 1세대가 아닌 백몇년을 착취당했는 데, 어떻게 그 나라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있겠어? 아직도 아프리카의 어떤 지역은 불평등 조약의 빌미로 프랑스에 세금을 내고 있는 데, 이제 와서 21세기라고 평등을 외치고 이제 와서 국가력을 운운하면서 각 개인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서, 혹은 민족성으로 일반화를 시킬 수 있을 까?라는 반론을 듣고,
공평함과 불공평함,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 나라 간의 문제. 이러한 문제가 야기하는 국제사회의 모습까지. 약자와 강자 중 어떤 편에 서는 것이 맞는지. 애초에 인간 자체가 악해서 발현된 사회악인 것인지. 책에서만 보는,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내용들을 너머 추구해야 하는 사상이 무엇일지 고민해 보게 된다. 암암리에 각 나라에서 교육받는 아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스며드는 사고방식. 이게 맞고 저게 틀리고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드는 주입식 교육.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게 되는 사회. 나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추천되는 알고리즘까지.
프랑스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가치관은 내가 이제껏 알던 사고, 사상들과는 조금은 달랐고 신선했고 충격적이었다. 다만 무엇이 되었든,
세상의 아픈 것들에, 차별받는 것들에, 가녀린 것들에 동정심을 갖고 연민과 공감을 잊지 않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