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마음을 가지면 어떤 방향으로든 이끌려 갈 거야.
평온한 마음을 가지면 어떻게든 다 흘러가게 되어있어.
나무에게도 개미에게도 배울 점이 있으니, 겸손함을 잊지 말고 사는 것이 중요해.
최근에 친해진 이란 친구가 늘 나에게 해주는 삶의 조언이다. 이란 친구의 가족들은 현재 독일에서 사는 중인데, 본인의 남동생 이야기를 자주 해주곤 한다.
이란인의 국적으로 독일에서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주어진다는 것이, 그것도 정부를 지원하는 기관에서 일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엄청난 디플로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경력이 좋은 것도 아닌데도 뽑힐 수 있는 이유는 “평정심”에 있다. 친구가 말해주는 본인의 남동생은 어떤 상황에서도 조급해하지 않고 마음의 여유를 갖는 “마음의 안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여유로움이 주는 가치, 경쟁력은 어떤 것일까?
외국인 친구들이 늘 나한테 해주는 조언은 “돈을 좇기 전에 자신의 가치를 쫓으면 돈을 따라오게 되어있어. 무언가가 나를 지배하게 놔두지 마.”
프랑스에 살면서 가만히 보는 친구들의 삶은 전혀 호화스럽지 않다. 외식비가 비싸기 때문에 마트에서 레디메이드 음식이나 혹은 간단한 랩을 때우는 경우가 많고, 대개 재료를 사서 집에서 다 같이 요리를 해 먹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민자의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주변에 부르주아 프랑스인 보다는 이민자인 친구들이 대부분이라, 삶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는 있으나 왜인지 모르게 한국보다 마음 한편이 편안하다. 싫어도 좋은 척을 하지 않아도 되고, 여행을 가느라 지출을 많이 한 달은 돈이 없다고 말해도 부끄럽지 않다. 있는 척을 하지 않아도 되고 조금 더 사람 그 자체를 많이 봐주는 느낌. 취미생활을 해도 이것저것 찔끔씩 하지 않고 깊게 파고드는 수준. 가령 원데이클래스를 들어도 데이트코스로 하는 한국과는 다르게 하나를 배워도 전문적으로 배우는 대신 까르보나라는 그냥 치즈랑 면으로 대충 만드는 삶.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하고 싶은 것을 겁내지 않고 뛰어들 수 있는 삶.
최근에 나는 프랑스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 이 사회에 녹아들기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1순위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으로만 생각한다면 사실 한국회사 혹은 외국계 회사와 계약을 하여 프리랜서로 영어를 사용하는 일을 해도 충분하다. 핵심 가치가 “돈”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나는 요즘 ”불어 스피킹 실력향상“에 가치를 두었고, 남들이 생각했을 때는 왜 고작 아르바이트를 해?라고 생각할 수 있어도, 내 기준에서는 이것이 가장 빠른 스피킹 실력 향상의 지름길이라고 판단하였다. 한국어 혹은 영어로 면접을 볼 때와는 색다르게 고작 카페나 음식점 서빙에 대한 질문인데도 불어로 질문을 알아듣고 답변을 해야 했기에 10배로 긴장했다. 불어에 대한 자신감이 없구나를 방증하는 신체의 너무나도 정직한 반응이겠지. 처음으로 학교가 아닌, 친구들이 아닌, 빵집이나 음식점에서 주문하는 것이 아닌 ”인터뷰“를 불어로 보게 된 경험은 정말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덜덜 떨렸고 식은땀이 났다. 별거 아닌 질문에도 머릿속에서 답을 알고 있음에도 과거시제, 미래시제, 문장의 어순을 계산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언어는 이렇게 배우는 게 아닌데 “ 실전에서 부딪히자라는 나의 작은 다짐이 쏘아 올린 공. 한국에서의 사고방식이었다면, 이 나이에 아르바이트를 지원하는 게 창피해서 혹은 몸이 편하고 시급이 센 일들을 할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많은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만 이민자의 신분으로 프랑스라는 (영어가 많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내가 밑바닥부터 길 각오를 하는 수밖에. 나의 이런 다짐을 들은 외국 친구들은 ”네가 점점 한국자아가 없어지는구나, 희석되어 가는 과정을 보는 것만 같아. 모든 일이든 다 잘 될 거야. “
좋은 인복인지 모르겠지만, 나의 international 친구들은 가끔은 한국 친구들보다 선하고 배려심이 깊고 따듯함을 느낄 때가 있다. 물론 사바사(사람바이사람)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