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인공 May 07. 2024

조금 더 많이 씹을 뿐인데

식문화의 여유로움


프랑스의 점심식사 시간은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유로운 식사문화는 비단 직장뿐만 아니라 레스토랑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음식을 서빙하는 태도에서 보이는 성급하지 않은 느린 템포, 한 상차림으로 먹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식전빵, 식전 샐러드부터 메인 디시와 디저트까지 느리게 나오는 메뉴. 기본적으로 앙트레, 메인디쉬, 디저트 이렇게 3번 나눠서 나오는 프랑스의 문화가 처음에는 나에게 맞지 않았다. 한 번에 푸짐하게 나와서 복스럽게 먹고 싶은데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찔끔씩 간격을 두고 나오니까 시간도 지체되고 배도 괜히 더 부른 거 같고, 먹었는데도 뭔가 헛헛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음식을 앞에 두고 3 ~ 4시간은 기본으로 수다를 떠는 말 많은 프랑스인들의 수다력 덕분에 기본적으로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파는 경우가 많아서 저녁 레스토랑 오픈 시간이 되면 주변 카페들은 모두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24시간 카페가 상시대기 하고 있고 밥을 먹은 뒤 카페를 가서 수다를 떠는 우리나라 문화와는 사뭇 다른 광경.



나는 식탐이 많은 편이고 성격이 급해서 밥도 빨리 먹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1시간 안에 밥도 먹고 카페도 갈려면, 밥은 일단 10분 안에 먹는 것이 국룰이었다. 이렇게 뭐든 빠르고 성급하게 하다 보면 실제로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내가 먹은 것들의 “맛 그 자체”를 음미했다기보다는 그냥 한 끼를 때웠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겠다. 오물오물 하나씩 천천히 씹으면서 음식의 재료를 하나씩 느끼기보다는, 밥과 반찬을 같이 입에 넣고 우걱우걱 먹었다는 비유가 맞을 듯하다. 프랑스에 와서,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 항상 너무 빠르게 먹는다는 지적을 받곤 했다. 덜 씹고 삼키는데 맛을 느낄 수 있어?라고 진심으로 묻는 그들의 말에 나는 괜스레 부끄러웠다. 미식의 나라답게 이 나라는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약간은 다른 듯하다. 먹기 전에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고, 음식의 조합을 생각하며,


하나씩 천천히 음미하는 태도 그 자체가


굳이 미슐랭 음식을 맛보는 게 아니더라도 몸에 배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불어의 단어 중에는 manger (먹다)라는 단순히 먹는 행위를 말하는 동사 말고도 Goûter (맛보다) Déguster (시식하다)로 맛을 진정으로 음미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동사표현이 더 있다. 문화 그 자체가 언어적인 표현에서도 녹여져 있듯이, 음식 자체를 섭취하는 것에 끼니를 때운다 혹은 영양소를 섭취한다를 넘어서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음식을 섭취할 때 하나의 생명였음을 생각한다. 채소를 먹든 고기를 먹든,


내 식탁에 올려지기까지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이었기에,


음식을 먹을 때 각각의 재료의 풍미를 느끼기 위해 조금 더 천천히 씹으면서 맛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돋보인다.


프랑스에 살면서 식문화에서도 쫓기듯 해결하는 끼니가 아닌, 반강제적으로 라도 여유로움을 느끼면서 평소보다 더 씹고 더 느끼는 중이다. 먹는 즐거움이 단순히 초콜릿, 케이크와 같은 과다 당류 혹은 몸에 안 좋은 군것질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영양소가 고루 잡힌 건강한 탄단지를 통해서도 혹은 야채, 과일을 통해서도 충분히 맛볼 수 있다.


이전 11화 불편함을 직접 감수해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