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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Oct 10. 2023

햄키와 두팔이

아이와 함께 반려동물의 죽음을 추모하는 방법

  햄키는 우리의 첫 햄스터였다. 단돈 3000원, 이마트의 애완동물 코너에서 데려온 찹쌀떡같이 작고 하얀 햄스터. 어린 시절 남동생과 함께 작은 생명들을 숱하게 하늘로 보냈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제대로 공부해서 잘 키우고 싶었다. 야생에서는 깊은 굴을 파고 밤새 몇 킬로미터를 내달린다는 햄스터를, 좁은 철장에 가두어 놓고 쳇바퀴만 돌리게 하는 게 미안했다. 당장 넓은 집으로 바꾸고 톱밥을 듬뿍 깔아주었다. 개, 고양이용품만큼이나 햄스터용품의 세계도 무궁무진했다. 저소음 쳇바퀴부터 시작하여 은신처, 이갈이, 햄스터용 유산균, 비타민까지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사들였다.     


  우리는 여러 과일을 햄키와 나누어 먹었다. 딸기의 단맛이 가장 농축되어 있다는 뾰족한 끝부분을 햄키에게 주었다. 이게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달콤한 샤인머스캣의 맛을 함께 느끼고 싶어서 제일 크고 잘생긴 한 알을 골라 햄키에게 주었다. 샤인머스캣 먹는 햄스터는 아마 햄키 밖에 없을 거라며 아이와 함께 깔깔거렸다. 햄키는 암컷이라 그런지 굉장히 순했다. 사람 손을 무서워하지 않아서 종종 올라타기도 했다. 그 따뜻하고 보드라운 작은 생명체가 내 손에 웅크리고 앉아 먹이를 먹는 모습을 보면, 마치 내 새끼가 오물거리며 밥 먹는 것처럼 마음이 뿌듯했다. 나는 스스로를 ‘엄마’라고 지칭했고 아이는 햄키에게 “오빠 학교 갔다 올게” 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어느샌가 우리는 가족이 되어 있었다. 아이는 햄키를 소재로 노래를 지었고, 그림도 그렸다. 그 그림을 가져다가 남편이 티셔츠를 제작했다.      




  행복한 날들이 계속될 것 같았지만, 어느새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햄스터의 평균수명은 2년. 햄키가 우리 집에 온 지 2년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갑자기 움직임이 둔해지고 먹이를 잘 먹지 않았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게 눈으로 보였다. 병원에 가보려고 했지만 이미 닫을 시간이었다. 내일 아침 진료 예약만 겨우 해두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햄키를 지켜보았다.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아이는 먼저 잠이 들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햄키가 힘없이 눈을 감았다. 헐떡이던 숨이 고요해지고, 방금 전까지 따뜻하고 보드라운 ‘생명’이었던 것이 그저 차갑고 뻣뻣한 ‘털 뭉치’가 되어 버렸다.      


  대강 수명을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날 줄은 몰랐다. 인간에게도 동물에게도 공평한 죽음 앞에 허무한 마음만 들었다. 내일 아침이면 아이에게 햄키가 떠난 것을 알려야 할 텐데, 처음 느껴보는 상실과 죽음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일지 막막하고 무서웠다. 아이는 눈이 빨개지도록 울었다. 하지만 햄키의 죽음이 아이에게 상처가 될까 봐 숨기거나 애써 잊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시간을 두고 충분히 슬퍼했다. 눈물이 나면 그냥 울었다. 한 사람이 울면 따라 울고, 추억을 얘기하며 웃다가 또 울었다.


 우리는 그동안의 사진을 모아 추모 앨범을 만들고, 생전에 좋아했던 먹이와 함께 햄키를 땅에 묻어주었다. 요리를 하다 자투리 채소가 나오면 햄키에게 주곤 했는데, 평소처럼 자투리를 모아놨다가 이제는 햄키가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가장 마음 아팠다. 죽음이 언제 우릴 갈라놓을지 모르니 곁에 있을 때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햄키를 통해 다시 한번 깊이 새기게 되었다.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아이가 결심했다는 듯이 다시 햄스터를 키우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내심 반가웠다. 소중한 존재를 잃었을 때의 슬픔이 여전히 두렵긴 하지만, 햄키가 우리에게 주었던 행복이 그 이상으로 컸기 때문이다. 우리는 햄키를 꼭 닮은, 작고 새하얀 햄스터를 데려왔다.      


햄키는 호기심이 많고 경계심이 적어서 손으로 만져도 잘 물지 않았는데, 새로 데려온 햄스터는 달랐다. 좋아하는 먹이를 들고 유인해봐도 먹이만 홱 가져갈 뿐 손을 싫어했다. 공포심인지 분노인지 모르겠지만 손만 보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래도 친해져 보려고 조심스레 손을 들이밀면 인정사정없이 콱 물었다. 먹이는 또 어찌나 잘 먹는지 나날이 등 근육이 튼실해졌다. 볼수록 카리스마 넘치고 강한 기운이 느껴져서 이름을 ‘곽두팔’이라고 지었다.      


  처음에는 자꾸만 햄키와 곽두팔을 비교하여 만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이 저마다 성격이 다르듯이 햄스터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햄키 2호로서가 아닌 고유한 존재 ‘곽두팔’이 보이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앞으로 곽두팔과 우리 가족이 어떤 추억을 쌓아나갈지 무척 기대가 된다.                       


햄키와 함께 했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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