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솔이 거친 환경 속에서 제 몸을 지키기 위해 뿌리털로 지면을 움켜쥔 것처럼, 엄마도 흔들리는 가정을 보살피기 위해 질긴 힘줄을 키웠다. 당신의 발목에는 양각으로 도드라져 불끈거리는 흉터가 있었다. 동생이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난로 위의 주전자가 넘어지며 입은 화상이다. 엄마가 막아서지 않았다면 뜨거운 물길은 근처에서 놀고 있던 우리를 덮쳤을지도 모른다.
조그맣게 운영하던 사업 실패 후 아버지는 오래 부재중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빚쟁이 탓에 덧난 상처는 쉽게 낫지 않았다.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발목에 사방으로 뻗은 흉터가 크게 남았다. 그때부터였을까, 잔뿌리처럼 여리기만 하던 엄마가 강인해진 것이.
가장노릇이 힘들어진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가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갚아도 자꾸만 늘어나는 부채에 몰려 약간의 세간살이를 이고서 야반도주하듯 살던 곳을 떠났다.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다. 가정을 보살피는 일에 흥미를 잃은 아버지는 술기운에 불콰해진 얼굴로 ‘이놈의 세상’을 안고 집에 들어오기 일쑤였다.
극야의 날들이 깊고 컴컴한 터널처럼 이어졌다. 차갑고 축축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집안을 엄마는 넓게 펼친 실핏줄로 야무지게 움켜쥐었다. 올망졸망 품을 파고드는 자식들을 데리고 봉제공장에서 일감을 받아와 인형의 솔기를 마감하기도 했고, 가내수공업 공장에 나가 날염도 했다. 리어카를 끌고 뙤약볕 아래서 냉차를 팔기도 했지만 곁뿌리는 팍팍한 현실에 자주 좌절했다.
삶이 덧정 없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으나 새카맣게 반짝이는 눈동자로 당신만을 바라보는 어린 자매가 발목에 매달렸다. 덮쳐오는 시련에 껍질이 닳아 벗겨지면서도 아이들의 눈빛은 근육을 키우는 동력이었다. 수분도 양분도 부족한 곳에서 강인하게 길을 개척해 가는 수평근이 되어 엄마는 가정을 건사했다. 집이 흔들리지 않도록, 바람에 넘어가지 않도록.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림은 늦은 저녁식사를 하는 초라한 농가의 모습을 담고 있다. 흐릿하게 어두운 석유램프와 제대로 된 가구라곤 하나도 없는 집이지만 구차해 보이지 않는다. 고단한 하루를 마친 후 가족이 함께 식탁에 앉아 추수한 감자와 차를 나눠 먹고 있다. 서로 음식을 권하는 얼굴에는 힘든 노동에서 오는 피로보다 삶에 대한 희망이 엿보인다. 그들의 손목에서, 표정에서 불거진 힘줄이 수평근처럼 서로를 끈끈하게 감싼다.
엄마 발목에 남은 흉터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단련된 흔적이다. 실팍한 혈관은 한 걸음 한 걸음 세상을 움켜쥐며 한 가족사를 지탱해 냈다. 오랜 무두질로 단련된 지면이 지금은 제법 단단해졌고, 썩어가던 주근은 조금씩 자리를 잡았다.
세찬 바람 속이었던 엄마의 시간을 듣는다. 짭조름한 갯내 머금은 둥치를 끌어안고 나무의 속삭임에 귀 기울인다. 한때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절박한 순간도 있었지만, 지나간 모든 일은 아름다움의 수피를 입는다. 이제 그 힘줄로 당신만을 위해 단단한 근육을 키우기를, 모래를 움켜쥔 수평근에 마음을 기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