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아르바이트하며, 아침에 108배 하는 29살
오늘은 기도문을 미리 정하지 않고, 먼저 절을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절을 하며 어떤 생각들이 떠오르는지 지켜본 후에 내게 필요한 기도문을 찾았다. 처음 외운 기도문은 ’나는 자유로운 사람입니다.‘이다. 그 기도문을 외우며 절을 하는데 나와 그 기도문 사이에 괴리감이 느껴지며 기도문이 와닿지 않았다. 내가 어떤 기준이나, 사상, 유형의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외우는 기도문인데, 속에서 ‘나는 아직 자유롭지 못한데.’라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래서 말을 조금 달리해서 기도문을 외웠다. ‘나는 집착하지 않습니다.‘ 희한하게 의미는 같은데 후자가 마음에 와닿았다. 이를 통해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됐는데, 첫째는 내게 ‘자유’라는 단어에 어떤 기준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는 이런 모습일 때 자유로운 거야 같은 생각. 둘째는 스스로에게 ’~하지 말아야 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익숙해서, ‘~하자.’, ‘~할 수 있어.’라는 말보다 ’~하면 안 된다.‘, ’~하지 말자.‘라는 말이 아직은 내게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섭식장애를 겪으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는데,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나 말은 그것을 더욱 하고 싶게 만들고, 자꾸 생각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먹으면 안 돼.‘는 사실 ‘~를 먹고 싶다.’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하지 말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하게 된다는 것이 내 경험에 바탕한 생각이다. 아직 그런 생각과 말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됐다. 그래서 다시금 기도문을 바꿔 ‘나는 자유로운 사람입니다.’를 진심으로 내게 반복해서 말해줬다. 그리고 그 기도문은 90배가 지나갈 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살아있음에 감사합니다.’로 바뀌었다. 왜냐하면 허벅지가 터질 것 같은데 그럼에도 끝까지 해내려면 ’살아있음에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니까‘라고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108배를 끝내고, 아침을 먹고, 스트레칭을 하고, 씻고, 책상 앞에 앉았다. 나의 오전 일과는 늘 똑같다. 디지털 노마드로 살기 위한 블로그 포스팅 그리고 매일의 기록을 위한 글쓰기. 블로그 포스팅을 빠르게 끝내면 오전에 글쓰기까지 할 수 있지만, 포스팅이 오래 걸리면 글쓰기는 오후에 하기도 한다. 오늘은 오전에 두 가지 모두 끝내고, 점심을 먹고, 오빠 지인들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남자친구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위해 요리 유튜브를 하고 있는데, 어제 꼬막무침을 만드는 영상을 찍고 SNS에 선착순 5명에게 꼬막무침을 배달하겠다는 게시물을 올렸다. 그리고 빠르게 5명에게서 연락이 왔고, 그중 2명이 같은 동네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남자친구와 함께 꼬막무침 배달을 갔다. 요 근래 비도 내리고 쌀쌀하더니 오랜만에 따뜻한 날이었다. 이제 바람마저 따뜻한 것을 보니 여름도 머지않아 올 것 같다.
친구 중 한 명은 가구점에서 일하고 있는데 잠시 나와 꼬막무침을 받아 갔고, 다른 한 명은 카페에서 일해서 그 카페에 가서 커피도 얻어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다가 도시락을 챙겨 아르바이트에 가야 해서 집에 돌아왔다.
오늘은 어제와 또 다른 매니저님과 일하는 날이었다. 내가 6시에 출근하면 매니저님이 저녁 식사를 하러 가고, 나는 그동안 손님도 맞이하고, 쓰레기통도 비우고, 우유 대이동 후에 물류가 와서 물류 정리도 했다. 오늘은 오전과 오후에 바빴는지 커피 찌꺼기가 많이 나와서 쓰레기통에서 쓰레기 봉지를 빼려고 하는데 평소보다 무거웠다. 하지만 나는 이제 혼자서도 무거운 것들을 척척 해결할 수 있다. 이곳에서 일한 후로 팔에 점점 근육이 붙고, 팔 힘이 세지는 것이 왠지 모르게 뿌듯해서 매일같이 남자친구에게 알통 자랑을 한다.
매니저님이 돌아오고 나에게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오늘 함께 일하는 매니저님은 늘 휴게 시간을 넉넉히 줘서 오늘도 50분이나 쉬고 왔다. 저녁도 천천히 먹을 수 있어서 좋았고, 후식으로 싸 온 요플레 복숭아 맛도 먹을 수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편의점에 가서 매니저님 줄 초코바 하나와 딸기우유 츄파츕스를 샀고, 편의점 구석에 앉아 츄파츕스를 핥으며 요새 틈틈이 읽고 있는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을 읽었다. 입 안은 달달하고, 공감이 되고 공감을 받는 글을 읽는 이 순간, 어느 것 하나 부럽지 않다.
휴식 시간이 끝나고 복귀해서 마감 업무를 했다. 날이 따뜻해질수록 늦은 저녁까지 시원한 음료, 아이스크림을 찾는 손님이 많다. 아이스크림을 사가는 손님들을 보며 여름을 기대했다. 나는 여름에 먹는 공산품 팥빙수를 정말 좋아한다. 편의점에서 팥빙수를 2+1에 6,000원 주고 사서, 집에 있는 두유를 부어 먹으면 더위 저리 가라다.
순조롭게 마감을 진행하고 있었고, 마감 2분 전이 됐을 때 달큼한 술 냄새와 맛있는 안주 냄새를 풍기는 중년 남성 두 분이 들어왔다. 사실 순간 좌절했다. ’마감을 해버린 기계를 사용해야 하는 메뉴라면 마감을 다시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직 마감하지 않은 커피머신을 이용한 메뉴인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아이스라떼를 주문했는데 두 분이서 나누는 대화를 듣고 덩달아 기쁜 마음이 됐다.
두 분이서 어떤 대화를 나눴냐면,
“지금 몇 시야?”
“9시 58분!”
“오! 완전 럭키다. 럭키야. 간발의 차로 먹을 수 있었네.“
“그러니까. 기분 좋다~”
사실 마감 시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지만, 예전에 회사생활 할 때 퇴근 시간에 목메던 내가 생각나면서 지금은 내 마음이 많이 여유로워졌구나 싶었다. 당연히 주문을 받고 메뉴를 만들어 주는게 맞는데, 내가 하는 그 일이 누군가에게 소소한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덩달아 기뻤다. 같은 일도 어떤 마음 가짐으로 대하는지 혹은 어느 쪽을 더 바라보는지에 따라 기분 좋은 일이 되기도 나쁜 일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