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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말해연 Apr 24. 2023

심부름 나가 놀다 오는 아이처럼

내가 나랑 노는 방법 1

#4월22일 토요일

주말이 시작되었는데도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창덕궁 현장예매를 하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고향에 소재한 지방 돌봄 센터에서 일을 하시는데, 올해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전국의 이곳저곳을 다닐 계획이라고 하셨고 그 첫 번째 현장학습 장소가 서울이다. 그렇다면 미리 온라인으로 예매를 하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아는 분들은 알겠지만 창덕궁 후원 온라인 예매는 치열했던 대학교 수강신청보다 엄청났다. 엄마, 엄마와 함께 일하는 2분, 나, 내 남자친구, 친언니, 총 6명이 온라인 예매에 투입됐는데  결과는 내 남자친구 혼자, 소인 10명 예매 성공. 추가로 대인 12명, 소인 6명을 예매해야 했다. 온라인 예매, 현장 예매 둘 다 1인당 10매 구매 제한이 있는데, 당일 현장예매에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엄마가 창덕궁 관리소에 전화를 하여 방법을 찾아 청소년 단체 관람을 신청했다. 그것은 단체관람을 하러 지방에서 올라온다는 증명만 할 뿐, 여하튼 내가 나머지 18매의 티켓 구매를 성공시켜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지게 된 것이다.


아침

목요일, 금요일 아르바이트가 몸도 마음도 힘들게 해서 나는 피곤하고 지쳐있었지만 108배는 건너뛸 수 없었다. 그래서 새벽 5시에 기상해서 108배를 하고, 씻고, 아침을 챙겨 먹고, 7시에 집을 나섰다. 머리가 복잡했다. 지난번에 엄마가 창덕궁 사전답사를 왔을 때도 나와 내 남자친구가 현장예매 오픈런을 해야 했는데, 그날 종로 부근에서 마라톤을 진행해서 가로질러 가면 빠를 것을 돌아 돌아 가느라 조금 늦게 도착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런 일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됐다. 그래서 A안, B안, C안을 만들었다. A안은 집에서 창덕궁까지 한 방에 가는 버스를 탄다. B안은 버스에 탔는데 우회 공지를 발견하면 근처 역까지만 버스를 타고 가서 전철로 갈아탄다. C안은 늦잠을 자거나 늦게 나왔을 때를 대비해서 택시를 타고 간다.


7시에 집을 나서서 A안을 실행했다. 운이 좋게도 내가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버스가 전 정류장에서 출발했고, 금방 탈 수 있었다. 타자마자 뒷문으로 가서 우회 공지가 있는지 살폈다. 있었다!!! 하지만 우회 시간은 오후 4시부터라고 적혀있었는데, 불안해서 확실히 하고 싶은 마음에 기사님께 한 번 더 여쭤봤다. “기사님 운전 중에 죄송합니다. 오전에는 우회하는 거 아니죠?”, “네~”라는 대답이 돌아왔고, 나는 안도하고 좌석에 앉아 숨을 좀 돌렸다.


몇 정거장 뒤에 중년의 여성 두 분이 탔는데, 서울역까지, 안국까지 가는 걸 보니 혹시 창덕궁 현장예매하러 가시는 건가 싶어 긴장했다. 한 팀이라도 제쳐야 했다. 창덕궁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 나는 일어나서 뒷문으로 갔는데, 중년의 여성분들도 하차 태그를 하시는 것이었다. ‘확실하다. 창덕궁 가시나보다. 먼저 내려야 해!’라는 생각이 지배했다. 그리고 버스가 정차했을 때 나는 쏜살같이 내렸는데, 중년의 여성분들은 나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셨다. 나 혼자 민망한 순간이었다. 민망함도 잠시 나는 깜빡거리는 초록불을 향해 돌진했다.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릴 시간도 없다는 생각으로. 무사히 횡단보도를 건너 창덕궁 매표소를 향해 달려가는데 매표소 앞에 다수의 사람이 보였다… ‘이럴 리가 없는데, 지금 나 매표소 오픈 1시간 반 전에나 왔는데…’


(좌) 돗자리 남성들 / (우) 8시 45분에 찍은 내 뒤에 생긴 줄, 후에 더 길어졌다.

매표소에 다가가니 남성 5분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었고, 그 뒤로 중년의 부부 한 쌍이 줄을 서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람.’ 혹시나 해서 표를 몇 장이나 구매하냐고 물어봤는데, 남성 분들은 총 24장을 구매할 것이라고 했고, 중년 부부는 2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슬아슬하게 표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남성분들은 11시, 중년 부부는 10시, 나는 오후 2시로 세 팀 모두 예매하고자 하는 시간이 달라서 상관이 없었고, 오늘부터 후원 자유관람 기간이라서 현장예매가 50매에서 100매로 티켓 판매를 늘렸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이제야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 앉았다가 섰다가 하며 1시간 동안 e-book을 읽고, 30분 동안은 노래를 들었다.


8시 58분에 매표소의 블라인드가 걷어졌고, 9시 정각에 매표소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오후 2시 대인 12명, 소인 6명 티켓을 추가로 구매하는 데에 성공했다!!!


현장학습 스케줄이 오전에 청와대를 관람하고, 오후에 창덕궁을 관람하는 것이어서 창덕궁 티켓을 엄마에게 전달하러 청와대에 가야 했다. 그런데 엄마와 선생님들, 아이들을 실은 버스는 청와대 정문 앞에 10시 20분에 도착하기 때문에 중간에 시간이 비었다. 그럼 이제 카페인을 수혈할 차례였다. 원래 아침을 먹으면 커피 한 잔을 마시는데 혹시 줄 서 있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어질까 봐 커피도 물도 일체 마시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커피를 마시고 엄마가 올 때쯤 청와대로 갈 수 있는 청와대 근처 카페를 찾아봤고, 힘들어서 택시를 타고 그 카페로 갔다.


50분 정도 카페에 머물며 커피도 마시고 읽던 책도 마저 읽었다. 무언가 자유롭고 충만한 느낌이 들었다. 카페에서 나가기 전에 화장실에 들르려고 했는데 화장실이 따로 없어서 근처 공원 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고 안내해 줘서 10시 5분쯤 카페에서 나와 공원 화장실에 들렀다가 청와대 정문 앞으로 갔다.


심부름으로 왔지만 경치 구경도 하고 참 좋았다. 다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하루가 조금 걱정됐다. 엄마도 거의 60이라서 체력이 예전만 하지 못하니까. 10시 20분이 채 되기도 전에 엄마가 보였다. 짧지만 얼굴도 보고, 인사도 나누고, 포옹도 하고, 티켓을 건네고 헤어졌다.


이제부터 심부름 나온 김에 놀다 들어가는 여정이 시작된다. 딱히 교통수단도 없거니와 카페인을 섭취했더니 피곤했던 몸이 좀비가 되어 걸을 힘이 생겼다. 그래서 오랜만에 광화문 교보문고에 책 구경을 하러 갈 겸 걸었다. 오전에는 조금 쌀쌀했는데 날이 점점 따뜻해졌다. 뭉게뭉게 구름도 예쁜 날이었다.


엄마가 데리고 온 아이들처럼 선생님을 따라 소규모, 대규모 현장 학습을 온 아이들이 많았다. 고사리 손으로 무언가 끄적이는 아이, 무릎에 얼굴을 대고 흙바닥을 바라보는 아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아이 모든 모습들이 예뻐 보였다.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 많았던 아이 때 내게 세상은 신기하고 자극적인 것들 투성이었다. 지금도 그럴 때가 있지만 타성에 젖어 살 때가 많다. 그런데 오늘은 하늘도, 사람들도, 풍경도 모두 처음 보듯이 생경하고 자극적이고 아름다웠다. 그냥 거니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걷고 또 걸어서 교보문고에 도착했고, 나는 그곳에서 책 두 권과 휴대폰 케이스 하나를 사서 집에 들어갔다. 며칠 전 친구가 나에게 책 고르는 기준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나는 추천사와 목차를 본다. 추천사를 쓴 사람이 그 책을 통해 느낀 감정과 떠오른 생각들이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일 때 그 책을 고른다. 그러고 나서 목차를 보고 목차에서도 어떤 끌림을 받을 때 그 책을 최종적으로 선택한다. 아리송할 때는 책의 아무 데나 펴서 읽어보고 잘 읽히면 산다. 이렇게 해서 고른 책이 내게 맞지 않을 때도 간혹 있지만, 많은 경우 마음에 든다.


그리고 나는 민무늬의 휴대폰 케이스나 애플 정품 케이스를 사서 주구장창 사용하는데, 지금 쓰고 있는 케이스가 바꿀 때도 되었고, 이번에 산 케이스에 적힌 문구가 마음에 들어 구매했다. ‘LIfe is going my way. And if you don’t like it, well too bad.’ ‘삶은 네 길로 가는 거야. 만약 네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참 안 됐네.’라는 의미인데, 늘 상기해야 하는 마음가짐이 아닌가 싶다. 나는 나로 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 삶을, 나를 미워하면 ‘그거 참 안 됐다.’ 그러니 주어진 나의 삶을 사랑해야지 별수 있겠는가?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고, 집에 오는 길에 맥주 두 캔을 사 와서 점심에 곁들여 마셨다. 알코올 도수 3도짜리 맥주로 즐기는 소소한 행복이랄까. 그리고 밥을 먹고 브런치 글을 썼는데 우리 집 고양이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아주 대놓고 쳐다보는데 너무 귀여웠다. 고양이는 제 멋대로인데 참 귀여운 생명체다.


나는 내가 내 삶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길 바란다. 그것을 위해 앞으로도 기회만 생기면 나와 놀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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