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춤, 나의 수업

꿈꾸던 나의 춤, 나의 수업

by 강승숙


어린이들은 두 팔을 모은채 천천히 몸을 웅크리며 앉았다가 일어섰다. 일어설 때에는 할 수 있는 대로, 끝까지 몸을 늘리며 팔을 뻗었다. 이어 둘씩 짝을 짓고 걸었다. 느리게 두어 걸음 걷다 멈추었다. 천천히 앉고 서기를 반복하며 팔을 움직였다. 상대편 둘레의 빈 공간을 찾아 기운을 보내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이게 춤이에요? 6학년 어린이들이 물었다. 큭큭, 웃기도 했지만 싫지 않은 얼굴이었다. 춤이라고 답해주었다. 어린이들은 잘 추고 못 추는 것이 구별되지 않는 몸짓을 은근히 즐겼다. 몸으로 표현하는 일을 영 어색해하는 어린이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졌다. 조금은 단단해진 얼굴로 몸을 움직여 나갔다.


오래전, 티브이에서 발레리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발레리나는 삶의 끝까지 춤을 추다가 무대에서 죽는 게 소원이었다. 그녀는 시간이 나면 어린 무용수에게 춤을 가르쳤다. 하루는 정원으로 나갔다. 바람이 불었고 나뭇잎은 여러 모양을 그리며 떨어졌다. 발레리나는 어린 춤꾼들에게 나뭇잎이 어떻게 선을 그리며 떨어지는지 보라고 했다. 그러더니 나뭇잎처럼 가볍게 움직이며 몸소 춤을 추었다. 어린 발레리나들도 자연 스게 춤을 추었다. 나뭇잎의 움직임을 따라 춤을 추었다.


쿵,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모든 기술을 다 익힌 노장, 나이 든 발레리나가 어린이들에게 춤을 가르치는 방식에 깊이 감탄했다. 바라던 대로 발레리나는 끝까지 무대에서 춤을 추었고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자연의 움직임, 일상에서 어린이들이 춤을 찾도록 이끈 장면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생생하다. 어린 무용수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춤을 추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발레리나가 되어 춤을 추기도 했고 춤선생님이 되어 어린이를 가르치기도 했다. 영화는 춤의 즐거움과 근본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춤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에 체육 교과에 춤이 나오면 빼놓지 않고 여러 시도를 했다. 조금은 자신감을 얻은 끝에 학년 대표 수업을 체육과, 춤 단원으로 결정했다. 진짜 고민이 시작되었다. 교사들 앞에서 긴밀한 짜임을 가지고 하는 공개 수업은 일상 수업과는 차원이 달랐다. 꼭 ‘춤 수업을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 하는 긍정적인 의견을 얻고 싶었다.


걷기와 앉고 서기 같은 단순한 움직임에서 파생된 몸짓을 표현한 뒤였다. 드디어 우리 춤을 가르쳐 보기로 했다.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기본 춤사위 서너 가지를 익혔다. 제자리에서 무릎 굴신을 하며 앉고 일어서기를 장단에 맞추어 반복했다. 어린이들을 갸우뚱거렸다.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데 뜻대로 안 되서다. 우리 춤은 뭔가 낯선 몸짓이었다. 어린이들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그걸 보며 서로 웃느라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얘들아, 잘할 수 있어, 5천 년 역사를 가진 우리 조상들은 늘 춤을 추었어. 그 유전자가 우리 몸 안에 있지. 연습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잘하게 될 거야.


그 말이 그럴듯했는지 어린이들은 자신감을 갖고 한 걸음씩 내디뎠다. 양팔을 벌릴 때면 손가락 끝이 거대한 원을 그리고 있는 상상을 하라고 했다. 우리 춤은 호흡이 중요하다는 말도 들려주었다. 모두 춤선생님에게 들은 말이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으면서 굴신을 해보라고 했다. 어린이들은 푸푸, 큰 소리로 숨을 토했다.


조금 익숙해지자 ‘아리랑’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나중에 해외여행 가거나 유학 갔을 때 파티에서 장기자랑 기회가 있을 거야. 그때 우리 춤추면서 민요 한 자락 부르렴, 얼마나 멋지겠니!’ 어린이들은 우리 춤을 좋아하는 눈빛이었다. 다만 어린이들은 빠른 노래나, 랩, 춤사위에 젖어 있기에 느린 춤이 어려웠던 것이다.


공개수업에서 춤을 다루기로 한 데에는 오랜 나의 로망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춤을 대하는 어린이들의 이중적 태도에 때문이었다. 한때 수학여행을 가면 마지막 날 캠프파이어가 있고 춤추는 시간이 있었다. 이 시간을 모두 기대하지만 막상 음악이 나오면 춤 잘 추는 몇몇 아이들만 중앙으로 나왔다. 많은 어린이들은 그저 쭈뼛거리며 손뼉만 치고 있었다.


어린이들 대부분은 춤은 배운 사람이나 전문가 그룹이 하는 걸로 생각한다. 소질이 있거나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노래와 달리 춤은 일상에서 즐길 기회가 더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즐기는 집을 상상해 본다. 결코 낯설지 않다. 여럿이 어울려 농사짓던 시절, 마을 축제가 돌아오면 우리 조상들은 거의가 춤을 추었다. 이 소중한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워크숍에 갔다가 수업 얘기를 하며 고민을 나누었다. 자연스레 지인들은 춤에 대한 기억을 풀어놓았다. 남쪽 어떤 마을에서 자란 지인의 경험담이 인상 깊었다.


지인이 살던 마을에서는 어느 날, 누군가 전을 지지면 알아서 음식을 챙겨가지고 모였다고 한다. 모이다 보면 소리가 나오고 춤이 나왔다. 마을 어른들은 저마다 색다른 춤을 추었다고 했다. 마을 어른들은 자신만의, 비장의 춤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한 번쯤 옛날로 돌아가 그런 자리에 끼어 춤을 춰보고 싶다.


2004년, 처음으로 춤 수업을 하게 되었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6학년과 춤을 추겠다고 했더니 동학년 선생님들은 꽤나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누가 보아도 말리고 싶을 만큼 무모한 도전이다. 걱정은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여러 몸짓을 가르치면서 차근히 수업을 준비했다. 가르친 춤이란 그저 놀이에 가까웠다. 틀 없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춤이 신선하고 재미있었는지 어린이들은 잘 따라왔다.


공개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지금도 그 긴장된 공기가 느끼지는 듯하다. 교실 책상은 모두 복도로 내놓았다. 어린이들은 넓어진 교실 가장자리에 얌전히 앉아있었다. 청바지에 검거나 어두운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막 무대에 오를 무용수로 보이기도 했다. 분위기는 그럴듯했다.


뒤에 자리 잡은 선생님들은 뭔가 보여줄 거 같은 분위기에 기대를 하는 얼굴을 했다. 몸 풀기로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우리 춤 기본 사위를 추었다. 쉬는 시간, 아침 시간에 춤을 익혀온 탓에 어린이들은 리듬감 있게 움직였다. 수업 시작부터 선생님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학습 목표는 ‘몸의 여러 부분을 자유롭게 써서 표현하기’였다. 춤은 단순했지만 그 단순한 움직임은 인원이 바뀌고 움직이는 방향과 힘의 세기, 속도가 변하면서 새로운 동작으로 자꾸 변주되었다. 움직일 때마다 장구, 북장단이 들어가기도 하고 징이 들어가기도 했다. 서정적인 음악을 넣기도 했다. 음악이 섞이면서 춤추는 어린이들도 보는 교사들도 정말 춤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는 듯했다.


마지막에는 이야기가 있는 춤을 추며 수업을 맺기로 했다. 그렇게 방점을 찍고 싶었다. 애니메이션 ‘스노우맨’ 음악을 골랐다. 어린이들은 음악에 맞추어 눈사람, 주인공 역을 맡아 마임 같은 움직임을 했다. 어린이들은 몸짓으로 눈사람과 어린 주인공의 우정을 표현했다. 음악이 풍부한 서정을 갖고 있어서 어린이들은 낭만에 젖은 듯 춤에 몰입했다.



평가회 때 선생님들은 어린이들 모두 춤을 추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했다. 이후로도 춤은 나의 여러 수업 속에서 숨 쉬고 움직였다. 시에도 그림책 읽기에도 춤이 들어가곤 했다. 어린이들도 전에 없던 움직임을 경험하면서 춤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된 듯하다.


언제부터 춤을 좋아했는지 생각해 본다. 어린 시절, 어머니, 아버지는 라디오에서 음악이 나오면 어울려 춤을 추곤 했다. 부모가 사이좋게 춤을 추는 모습은 어린 마음에도 멋있어 보였다. 어머니는 혼자서도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곤 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춤을 추었다. ‘울밑에 선 봉선화야’에 맞추어 춤을 추기도 하고 찬송가를 부르며 춤을 추기도 했다. 어머니를 보며 자연스럽게 춤을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다가 춤에 대한 갈증을, 열망을 강렬하게 느낀 일이 있다. 1984년 개봉한 ‘플래시댄스’ 다. 주인공 ‘제니퍼 빌즈’는 단단한 근육을 지닌, 밝고 씩씩한 용접공이었다. 18세 소녀는 밤에는 나이트클럽에서 댄서를 하며 무용수를 꿈꾸고 있었다.


지금 보면 제니퍼 빌즈의 춤은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당시 영화 속 오디션 장면은, 음악은 가슴을 뛰게 했다. 제니퍼 빌즈가 마루에서 춤을 출 때 심사위원들은 구두로 박자를 맞추었다. 어깨춤을 추었다. 태어나 한번쯤 저런 춤을 출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 든 장면이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영화 <플래시댄스> 오디션 장면


영화를 보면서 다시 태어나면 무용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감동을 잘하는 나이라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이 든 지금도 종종 그 오디션 장면을 찾아보곤 한다. 여전히 같은 장면에서 코끝이 시큰해진다. 그런 파워풀한 힘을 가졌던 스무 살이 떠올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춤을 좋아하다 보니 연극처럼 몸짓과 관련한 예술에도 관심이 커졌다. 그림책을 읽을 때에도 몸짓, 춤이 나오면 떠서 얼른 그 책을 구해 내 책장에 꽂아놓곤 했다. ‘아드리앵 파를랑주’의 <리본>은 표지에 반해 구입했다. 표지에는 리본테이프로 춤추는 무용수가 등장한다. 춤추는 무희의 등장은 이 장면뿐이다. 그래도 좋았다.



마음으로만 춤을 그리던 내가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춤을 가까이한 것은 풍물강습을 받게 된 뒤부터다. 설장구를 치면서 우리 춤 맛을 보게 되었는데 훅 끌렸다. 장구를 치다 슬쩍 팔을 들어 올리고 버선발을 내딛을 때에는 설레기도 했다.


춤 공연부터 보러 다녔다. 그중 ‘김숙자’ 명인의 ‘경기도살풀이’는 잊히지 않는다. 춤을 추는 예인은 나이가 들어 이마에 굵은 주름이 드러났다. 몸 전체에서 어떤 기운이 뿜어 나왔다. 좀처럼 숨을 쉴 수도 눈을 뗄 수도 없었다. 마고할미가 현신한 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머리를 빗어 올려 비녀를 꽂은 머리와 하얀 한복은 어두운 무대에서 빛났다. 명인은 기다란 무명천을 들고 느리게 걷다 공중으로 휙 뿌리며 멈췄다. 순간, 객석은 얼음장처럼 고요했다.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주술에 걸려 정신을 잃고 깨어난 듯 공연이 끝나고도 사람들은 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했다. 모두 말없이 조용한 걸음을 했다. 얼굴 하얀 외국인은 아예 그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보고 싶은, 유일한 공연이다.


명인의 춤을 보는 내내 무엇이 이토록 마음을 끄는지 생각했다. 외모는 이미 볼품없어진 늙은 춤꾼이었다. 그런데도 할매의 춤은 마디마디가 감동이었다. 젊은 춤꾼이 따라갈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아픔이 진하게 배어났다. 미룰 수 없었다. 어디든 달려가 춤을 배우고 싶었다. 참을 수 없는 뭔가가 밑바닥에서 꿈틀거렸다.


김숙자 공연을 본 뒤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울 만한 데를 수소문했다. 유명인에게 제대로 배우고 싶었지만 수강료가 부담이 되었다. 수강료가 저렴한 문화센터에는 직장인을 위한 저녁 강의가 없었다. 결국 입시생을 가르치는 무용학원에서 춤을 시작했다. 나 같은 초보가 들어갈 프로그램이 없어서 얻어 배우듯 여러 그룹을 전전하며 춤을 익혔다.


중고생이 춤출 때에는 맨 뒤에 서서 배웠다. 토요일 오후에는 할머니, 아주머니 반에 들어가 배웠다. 춤사위를 제대로 배운 게 아니라 앞사람을 보고 대강 따라 하는 식이었다. 그런 형편에서 춤을 제대로 배우기는 어려웠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몇 년을 그 학원에서 보냈고 어느 날 강사선생님에게 춤 테가 난다는 소리를 들었다.


학원에서는 바라는 춤 수업, 춤의 역사나 춤에 얽힌 이야기, 춤 이론은 듣기 어려웠다. 그냥 하나아, 두울, 세엣, 넷 박자에 맞추어 동작만 배웠다. 우리 춤은 이런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 학원을 그만두고 시립무용단 무용수들에게 삼 년간 배우기도 했다. 여기도 문제가 있었다. 공연 연습에 치중하다 보니 정확한 동작을 배우는 시간이 부족했다. 춤이 도무지 늘지 않아 역시 그만두었다.


춤에 대한 갈증을 해결해 보려고 사람을 모으고 강사를 찾기도 했다.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공간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강습료도 부담이 되었다. 지쳐서 그만둬야지 할 무렵, 마지막으로 좋은 춤선생님을 만났다. 강원도로 넘어오기 전까지 열심히 춤을 배웠다. 마지막 춤선생님은 찬찬하게, 진심으로 잘 가르쳤다. 춤 원리나 얽힌 이야기도 종종 들려주었다. 드디어 춤이 늘기 시작했다.



인천에서 강원도로 전근을 오면서 더 이상 춤을 출 수 없게 되었다. 마음먹으면 학원에 가서 배울 수 있다. 다만 좋아하는 춤 선생님과 좋아하는 친구들이 가까이 없어 섭섭했다. 교대 평생교육원 무용실에서 거울을 보며 입춤이나 태평무를 추는 일이 어렵게 되었다.


우리 춤을 배운 데에는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마음도 컸다.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단소, 민요, 풍물은 어린이들에게 제법 익숙한 프로그램이 되었다. 여전히 한국무용만 낯선 영역이다.


춤을 배우다 보니 자연스레 내가 하는 수업에 춤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교육과정에 나오지 않더라도 스트레칭이나 몸풀기로 우리 춤사위를 때때로 가르쳤다. 교육과정에 춤이나 리듬, 몸짓이 학습 주제로 나올 때면 놓치지 않았다.


한국무용을 가르쳐 주던 춤 선생님은 그림책을 보면 춤으로 표현하고 싶은 장면이 절로 보인다고 한다. 춤을 추는 사람이라 사물을 보거나 글을 읽으면 춤이 그려지는 것 같다. 나도 조금은 그런 마음이 생긴 듯하다. 산책을 할 때 나뭇잎이 흔들리면 그 흔들림을 몸으로 슬쩍 표현해 본다.


이제 퇴직을 했으니 쉬었던 춤을 다시 해보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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