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된 장수풍뎅이, 함께한 시간들
장수풍뎅이를 기르게 된 것은 동학년 배선생님 설득 때문이다. 다른 반은 햄스터나 금붕어를 기른다고 했다는데 내내 결정을 못하고 있었다. 동물 기르는 일은 아무래도 고민이 되었다. 길러본 경험이 없는 데다 주말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걱정이었다. 더군다나 곤충이었다. 결국 어린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거라는 말에 흔들려 배선생님에게 물어가며 길러보기로 했다.
우리 반 어린이들은 장수풍뎅이 부부를 성대하게 맞이했다. 환영 인사를 담은 글과 그림 그린 쪽지를 사육 상자 주변에 여럿 붙였다. 이름도 지었다. 아직 부부는 아니지만 둘이 잘 사귀기를 바라며 수컷은 장풍이, 암컷은 풍순이로 지었다.
둘은 사귀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풍순이는 한동안 장풍이를 밀어내며 자꾸 톱밥 속으로 숨어들었다. 어린이들은 취재 기자처럼 둘의 연애 상황을 실시간으로 내게 보고 했다. 장풍이가 불쌍해요, 속상해하기도 했다. 풍순이한테 장풍이 좀 봐주라 하며 장난 어린 표정으로 애원하는 어린이들도 있었다.
어느 날,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둘이 다정하게 젤리를 먹는 것이었다. 어린이들은 환호하며 풍순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이렇게 된 마당이니 전담 사육사가 필요했다. 풍뎅이 부부 관리 부장을 뽑기로 했다. 곤충 지식, 이왕이면 풍뎅이 관련 지식이 많은 어린이를 임명하겠다고 했다. 뽑는 방식은 풍뎅이의 습성과 관리방법을 칠판 앞에 나와 설명하는 것이었다. 반장 선거도 아닌데 어린이들이 꽤나 관심을 보였다. 여러 명이 오디션에 참여했다. 후보들의 발표가 끝나자 자연스레 우열이 가려졌다. 압도적으로 설명을 잘 한 정우가 관리부장이 되었다. 동물에 관심 많은 친구들이 여럿 있어서 다른 친구들은 기간을 나누어 차장 역할을 맡기로 했다.
풍뎅이 관리부는 사육 일지를 써야 했다. 벌레가 끼지 않도록, 또 톱밥이 촉촉하도록 관리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알을 낳았는지도 수시로 살펴야 한다. 여기에 풍뎅이에게 관심이 적은 친구들이 친근감을 갖도록 관찰하게 하고 풍뎅이와 놀게 하는 일도 덤으로 있었다.
풍뎅이 관리부는 곤충생물학 교실을 차린 듯 열심히 활동했다. 지환이는 공부시간에도 사육상자를 눈여겨보기도 했다. 혹여 풍뎅이 몸이 뒤집혀 있으면 바로 관리부장 정우에게 수업 중 눈짓을 했다. 정우는 얼른 원래대로 바르게 해 놓고는 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쉬는 시간이면 여러 어린이들이 사육통 주변에 모여 관찰도 하고 젤리를 갈아주거나 톱밥에 물을 뿌렸다. 징그럽다며 눈살을 모으던 여자 어린이들도 시간을 두고 변화를 보였다. 풍뎅이를 손등에 올려놓고 놀기까지 한 것이다.
풍순이, 장풍이는 꽤 건강했다. 어린이들의 손길을 느끼는 듯했다. 주인 냄새와 손길을 기억하는 고양이나 강아지처럼, 풍뎅이 부부도 어린이들이 하는 말을 듣고, 우리 반 냄새를 느끼며, 등을 쓰다듬어주고 걱정해 주는 것을 알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나무 숲에 비할 수 없지만 사육통이 아주 큰 것도 풍뎅이 부부가 살기에 좋은 조건이 된 듯했다.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사육상자를 집에서 가져온 원형이 덕이었다.
그런 어린이들을 보면서 나도 조금씩 풍뎅이에게 다가갔다. 출근할 때면 장풍아! 풍순아! 안녕? 하며 인사를 했고 톱밥에 물을 뿌려주기도 했다. 주말에는 당직 주문관님께 한 번만 들여다봐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그런 걱정을 내비친 탓인지 주말 운동장에 놀러 온 어린이들도 관심을 갖고 살폈다. 퇴근할 때는 바람을 쐬라고 창문을 조금씩 열어두기도 했다. 밤새 풍뎅이 부부가 신선한 바람을 맛보기 바라는 마음에서다.
장풍이와 풍순이는 이십 여개의 알을 낳았다. 알은 원하는 어린이들에게 고루 분양을 했다.
분양을 하다 말고 풍뎅이 관리부장이 천천히 말했다.
"풍순이가, 알 낳으면, 장풍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거예요......"
장풍이가 떠나기 며칠 전 어린이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린이들 스스로 주의 안내문을 칠판에 붙이기도 했다.
‘장풍이가 기운이 없는 거 같아요, 장풍이 등껍질이 벌어졌어요, 장풍이가 잘 움직이지 않아요.’ 하며
쉬는 시간마다 장풍이에게 모여들어 걱정했다. 마지막 추억을 만들기 위해 등을 쓰다듬고 손등이나 팔에 장풍이를 얹어보는 어린이도 있었다.
7월 4일 화요일 아침,
어린이들은 장풍이가 이 날을 넘기지 못할 거 같다고 했다. 관리부장 정우는 교실에 두면 안 될 거 같다며 집에 데려가 영양제를 주며 돌보겠다고 했다. 작은 통에 톱밥을 깔고 장풍이를 넣은 뒤 호일로 통 입구를 막고 숨구멍을 뚫었다. 그런 뒤 정우에게 장풍이를 옮겨 담은 통을 주고 회의에 갔다.
장풍이가 정우네 집에서 하루 잘 쉬고 올 거라고 생각하며 학년 연구실로 향했다. 회의 중, 꼰 다리가 까닥거릴 때면 장풍이 생각이 났다. 느리기는 하지만 조금씩 움직일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죽을 거라는 생각은 좀처럼 하기 어려웠다.
오후 5시 무렵 회의에서 돌아왔다. 이상하다. 분명 정우가 가져가야 할 작은 사육통이 원래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통 바로 앞에는 A4 종이가 놓여있었다. 이면지 흰 바탕에 쓰인 글씨가 확 눈에 들어왔다.
‘장풍이, 7월 4일 4시 14분, 사망하였습니다’
글을 읽고 글씨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어디에선가 우리에게 왔고 때가 되어 떠난 생명이었다. 단지 작을 뿐이었다. 이렇게 낯선 교실까지 와 살다가 떠났구나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나중에 들어보았다. 장풍이가 죽은 것을 알고 다시 교실로 가져왔다는 말이었다. 혼자 교실로 돌아왔을 관리부장을 생각해 보았다. 이면지 종이에 장풍이의 죽음을 알리는 글을 쓰면서 관리부장 정우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머니를 통해 관리부장 속내를 들은 건 며칠이 지나서였다. 이면지 종이에 글자를 쓰고 내 책상에 올려놓은 날, 집에 돌아온 관리부장 정우는 어머니를 꼭 끌어안고 울었다. 고양이도 강아지도 아니었다. 작고 딱딱한 풍뎅이였다.
장풍이가 죽은 날 아침이었다. 규연이가 내 팔뚝에 장풍이를 올려주었다. 이제는 기운이 떨어지고 힘이 없으니 괜찮을 거라고 했다. 친구들 팔을 따갑게 해 ‘아야야’ 소리 지르게 만들던 장풍이는 정말 기운이 없어 보였다. 다리로 꼬집지도 않고 가만히만 있었다. 팔을 기울이면 바닥으로 떨어질 듯 아무것도 쥐려 하지 않았다. 따갑지 않아서 좋을 줄 알았는데 그날따라 섭섭했다. 나도 '아야' 하며 깜짝 놀라고 싶었다.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지났다는 건 이면지 글씨가 알려주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등교한 어린이들은 돌아가며 장풍이 등과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종이 상자로 만든 작은 상자 안에 장풍이를 넣었다. 이를테면 관이었다. 추억 편지도 넣고 대추와 꽃잎도 넣었다. 장풍이는 교실 사육상자에서 우리 반 '꽃씨' 어린이 친구들과 놀아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숨이 멈추었다. 그 작은 곤충이 사랑을 하고 알을 낳고 열심히 살다 갔다.
장풍이는 죽어서도 인기가 많았다. 열 명도 더 되는 1학년 어린이들이 교실까지 방문해 안녕! 인사를 했다. 그 어린이들은 바로 전날 1학년 보결 수업에 들어갔던 어린이들이었다.
1학년 어린이들은 내가 담임으로 있는 5학년 어린이들보다 에너지가 넘쳤다. 그 기운을 잠시나마 누르려고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어주었다. 그리고 장풍이, 풍순이 이야기를 끄트막에 들려주었다. 어린이 몇이 보러 가도 되냐고 물었다. 그러렴! 말했지만 정말 찾아올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그런데 우리 반 어린이들이 영어 수업 하러 간 사이 찾아온 것이다. 처음에는 1학년 꼬마 한 명이 교실을 기웃거리다 고개를 내밀었다. 귀여워 웃음이 나오는 걸 겨우 참았다. 죽은 장풍이도 보게 했다.
어린이는 신기한 듯 장풍이를 보았다. 손가락으로 살살 장풍이를 만져보게 했다. 놀란 얼굴이 찐빵처럼 부풀어 오를 것 같았다. 그 어린이는 상기된 얼굴로 헐레벌떡 자기 교실로 가더니 친구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처음 세 명을 데려오더니 이어 네 명을 데려 왔다. 그리고 어린이들은 꼬리를 물고 찾아왔다. 다녀간 어린이들이 열다섯이나 되었다. 그렇게 장풍이 장례식에 많은 어린이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점심을 먹고 어린이 십여 명과 장풍이 담은 상자를 들고 목련나무 아래로 갔다. 진지한 눈빛으로 장풍이 묻는 과정을 보는 어린이도 있었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서 웃음보 터지게 만드는 어린이도 있었다. 누군가 장풍이 묻는 자리 옆에 풍순이 자리까지 만들자고 했다. 다른 쪽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반대자는 풍순이가 십 년 더 살 거라고, 우리보다 더 오래 살 거라고 했다. 그 말에 한바탕 웃었다. 슬프면서도 재미있는 장례식이 되었다.
장풍이, 아주 작은 동물이 우리에게 잊기 어려운 기억을 추억으로 남겨주었다. 풍뎅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징그러워만 했던 나였다. 어린이들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반짝거리는 풍뎅이 등을 쓰다듬으며 손가락 끝으로 전해져 온 그 느낌을 어린이와 나는 평생 간직하게 되었다.
우리는 함께 나눈 시간을 담아 쪽지 편지를 썼다.
장풍아, 우리 곁에 살아주어서 고마워. 장풍이, 풍순이 2세 잘 키울게. 처음 만난 날 풍순이와 장풍이가 서로 행복하던 날, 네가 내 머리에 올라왔던 날이 생생해, 너를 절대로 잊지 않을게. 사랑해.(정우가)
7월 6일 아침, 일찍 등교한 풍뎅이 관리부장이 장풍이를 보러 간다며 교실을 나섰다. 장풍이가 잠든 목련 나무 아래로 갈 것이다. 산책도 할 겸 뒤를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 거리를 두고 목련 나무가로 다가가는 정우를 물끄러미 보았다. 마침, 하늘이 푸르게 열리고 있었다. 그 틈으로 햇살이 운동장 가득 쏟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