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첫날, 어린이에게 주는 선물

by 강승숙

40년 가까이 어린이를 만났다. 그래도 3월, 새 학기가 되면 긴장이 된다. 젊은 날에는 새 학기가 좋기도 했다. 지우고 싶은 지난해 실수를 털어내고 진짜 잘, 새롭게 해 보겠다는 마음이 있어서였다. 노력 덕분에 세월이 흐르면서 어린이들을 만날 다양한, 전천후 아이템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생각지 않은 변화들이 생겼다. 심각한 문제들에 직면하게 되었다. 하나는 어린이들이 지난날과 달리 선생님을 어려워하지 않게 된 것이다. 학부모 역시 학교와 교사를 과거처럼 조심스럽게 대하지 않게 되었다. 여기에 나는 나이까지 들어버렸다.




어린이들은 나이 든 선생님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놀이나 게임 시간도 조금밖에 안 줄게 뻔하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게임도 선생님은 잘 모른다고 생각해서다. 무엇보다 같이 어울려 놀 수 없어서 별로라고 생각할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늙어서 멋지지 않은 것이다.



이 모든 변화는 씁쓸한 일이다. 스물둘 나이에 교단에 섰을 때 어린이들은 선생님 아닌 언니, 누나라고 불러놓고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했다.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어둑해지도록 집에 가지 않는 6학년도 있었고 선생님이 보고 싶어 집에 갔다가 다시 오는 2학년 어린이도 있었다. 우렁각시처럼 월요일 7시, 선생님도 당도하지 않은 어둑한 교실 프리지어를 화병에 꽂아두는 학부모님도 있었고 어린이들과 나눠먹으라고 하지 감자를 쪄서 머리에 이고는 뻘뻘 땀 흘리며 찾아오는 어머니도 있었다. 그런 낭만적인 날들은 지나갔다.




이런 변화를 두고 고민해야 했다. 비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어린이들과 더 가까이 만나고 부모님과 소통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했다. 3월 첫날 어린이와 부모님 마음을 똑똑 두드려보기로 했다. 부모님께는 손글씨로 첫인사 편지를 썼다. 손글씨는 복사를 했지만 얇은 크라프트지에 인쇄를 해서 빈티지 느낌이 나도록 했다. 잘 접어서 예쁜 마스팅테이프를 붙였다.




오랜 경험상 3월 첫날은 대단히 중요했다. 무엇보다 겨울 방학이 끝나서 너무나 아쉽고 새 학년 첫날에 학교에서 가장 나이 든 선생님을 만나 슬플 수도 있는 어린이에게 이 교실, 우리 선생님 괜찮은데 하는 마음을 갖게 해야 한다.


3월 2일 봄방학이 끝나고 개학이 되어 4학년 3반에 들어가려는데 걱정이 됐다. 번호도 모르고 자리도 모르고 선생님이 무서우면 어떻게 하지 너무 걱정이 됐다. (4학년 최*호)


지난해 가르쳤던 어린이들 중에는 진심반 놀림반으로 꽃씨반에 대한 흉흉한 소문을 내기도 했다. '꽃씨반 선생님은 죽도록 글 쓰게 하고 책 읽게 만든데' 같은 소문을 들은 어린이들은 올해는 틀렸구나 하며 덜덜 교실에 들어올 수도 있다. 그 어린이들에게 위안을 주는, 마음이 누그러드는 교실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했다.




교실은 이미 정갈하게 청소를 해놓았다. 사물함에 이름도 써 붙이고 책상 위에도 종이 이름표를 만들어 삼각대 모양으로 세워놓았다. 교실 앞 게시판에는 유서 깊은 꽃씨만 팻말과 학급약속을 붙였다. 교실 이사를 할 때마다 버리지 않고 십수 년간 지녀온 꽃씨 학급약속은 2007년도 2학년 어린이들이 썼다.




집에서 미리 만들어놓은 안내판 이름표도 적당한 곳에 붙여둔다. 인쇄한 게시판 배경지나 시간표가 더 깔끔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시대지만 어쩐지 난 골판지나 과자 상자 이면지에 손글씨로 쓴 이름표나 시간표가 더 정겹다.



마무리가 어느 정도 되면 닦아도 닦아도 얼룩이 지지 않는 이상한 칠판에 정성껏 환영 인사를 쓴다.


교실 곳곳에는 책꽂이가 있고 사이사이에는 인형이 있다. 선생님 자리에는 어린이들이 호기심과 경외감을 갖기 바라는, 선생님의 서사가 담긴 공간이 있다. '



어린이를 맞이할 준비를 거의 마치고 나면 서성이며 어린이들을 기다린다. 이원수 시에 붙인 노래 중 '겨울물오리'나 '개나리꽃'을 즐겨 튼다. 곧 우물쭈물 어린이들이 교실로 들어온다. 만물상 같은 교실을 두리번거리는 어린이도 있고, 앉자마자 책부터 읽는 어린이도 있다. 어린이 하나하나 호기심을 갖고 살펴본다.


어린이들은 나이 든 선생님 앞에서 제법 조심스럽다. 물론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엄격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어린이들은 선생님의 기질을 파악하는 순간 순식간에 교실을 무정부 상태로 만들기 때문이다.




인사를 나누고 이름을 부른 뒤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준다. 시 선물이다. 이미 외운 시를 어린이들 앞에서 암송해 보인다. 어린이들은 따라 한다.


곽해룡

너도 쑥

나도 쑥

너도 나도 쑥쑥


어린이들은 시가 끝났는데도 너무 짧아서 정말 끝난 건가 하는 얼굴을 한다. 너무 짧아서 풋, 웃음이 나오는 그런 시인 것이다.


-선생님이 왜 첫날 여러분에게 이 시를 선물했을까요?

-쑥쑥 자라라고요!


-마음도 자라고 올해 공부 잘해서 생각도 잘하라는 뜻 같아요.


이렇게 시 한 편을 선물로 준 뒤 매주 시를 주며 암송을 하고 낭송을 하게 한다. 첫날 그 신호탄으로 시를 선물한 것이다. 다른 선물을 없을까. 또 하나 있다. 목련 아린이다. 해마다 어린이들에게 목련 아린을 선물한 것은 아니다. 어떤 해는 새 연필을 선물하기도 하고 또 어떤 해는 몽당연필 깎은 것을 어린이들에게 주기도 했다.


목련 아린을 선물한 지는 몇 해 되지 않는다. 어린이들은 이게 뭔지도 모른다. 우리 학교에 목련이 있는지 또한 모른다. 우선 목련 아린이 무언지 간단히 설명해 주고 만져보라고 한다. 그림도 그려보고 느낌도 간단히 쓰라고 한다. 목련 아린이 앞으로 일 년 동안 목련나무와 사귀며 지내기 위한 첫인사 같은 선물이다.



친구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활동들은 첫날부터 서두르지 않는다. 주간 내내 천천히 한다. 첫날은 시 한 편 낭송하고 그림책 조금 읽고 목련 아린을 만져 본다. 그리고 글쓰기 활동을 한다. '5학년이 되어서'라는 제목으로 첫날 교실에 오면서, 교실에 들어와서, 교실에서 하루 보낸 일들에 대해 쓰는 것이다. 쓰고 싶은 만큼 쓴다. 쓴 글은 어린이들의 글쓰기 상태를 알아보는, 일종의 문진표 같은 자료가 되기도 한다.


-얘들아, 의사 선생님이 문진표로 환자에 대해 알아보잖아. 선생님도 오늘 여러분이 글쓰기 한 걸 보면 앞으로 어떻게 글쓰기를 가르칠지 계획이 나올 거 같아. 지금까지 국어와 글쓰기를 배웠을 테니 쓸 수 있는 만큼 쓰렴.


어린이들은 첫날이니 자못 진지하다. 이 또한 앞으로 글쓰기를 계속하게 될 거라는 무언의 신호다.



<4학년이 되어서> 구하*(남춘천초 4학년)

봄방학이 끝나고 4학년 3반에 들어가기 전 어젯밤 오빠가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초등학교 학년 중에는 4, 5학년이 무섭대.” 혹시 우리 반 선생님은 무서운 선생님일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 꽉 차있었습니다. 나는 긴장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교실 안은 시끄러웠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선생님은 친절하고 책 읽기를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로쿠베 조금만 기다려!>라는 책을 오늘까지 읽어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주문진 초등학교에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무섭기는커녕 친절하셨습니다. 저는 우리 반 선생님이 좋습니다.


<5학년이 되다> 김태*(남부초 5학년)

학교에 갈 생각에 심장이 벌렁거린다. 어떤 친구를 만날까 긴장이 되고 어떤 선생을 만날까 기대도 된다. 하지만 선생님을 보니. 우리 할머니가 생각나 편안해졌다. 가라사대 게임까지 하고 줄까지 서니 새롭고 활기찬 마음으로 배움 공책을 적어도 최소한 다섯 권까지는 쓸 수 있을 거 같은 자신 감이 생겼다.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도 만났고 여러모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5학년이라고 새로운 규칙도 생기고 하니 정말 5학년이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점심에는 뭐가 나올까 궁금증과 기대도 생긴다.

정말 여러모로 기분 좋은 날이다. 그리고 역시 5학년이 4학년보다 엄격하다. 다행히 선생님이 인자하셔서 긴장이 덜 되고 그래서 새로운 마음으로 새 학년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린이들은 솔직한 감정을 쓰면서도 선생님에게 힘주는 문장도 쓴다. 이렇게 시와 그림책과 글쓰기로 첫날을 보내고 나면 참 괜찮은 시작을 한 기분이 든다. 어린이들은 자연스럽게 이제 글도 쓰고, 책도 읽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일 년 뒤 학기를 마무리할 때 어린이들은 첫날을 인상 깊게 기억했다. 시 낭송이 정말 신선했다고 말하는 어린이들이 여럿이었다. 이전 학년에서도 시를 배웠을 텐데 5학년에 와서 처음 시를 배웠다고 한 어린이도 있었다. 교과서가 아닌, 국어시간도 아닌 새 학기 첫날, 선생님이 직접 외워가며 알려준 시라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첫날 어린이들에게 주려고 한 선생님의 인자함이라든가 시의 신선함, 그림책의 재미는 일 년이라는 시간을 통과하면서 수없이 흔들리곤 했다. 하지만 첫날 어린이들에게 주려 했던 그 마음을 수시로 떠올리면서 종업식, 마지막날까지 무사히 당도하게 되었다.

keyword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