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은 어린이의 자책골, 글을 통한 관계 회복-
체육시간이 어린이들만큼 즐거워졌다. 스포츠강사가 수업에 들어오면서 달라진 일이다. 이제 어린이들을 여유 있게 살필 수 있다. 과하게 움직이다 여기저기 부딪히는 어린이, 화를 못 참는 어린이, 늘 유쾌한 어린이, 뭐든지 심드렁한 어린이, 시종일관 에너지 파워 갑인 어린이를 보면 흥미진진했던 유년시절이 겹쳐진다. 그 시절 잘 달리던 친구, 콧물 줄줄 흘리던 친구, 사방치기 잘하던 친구들은 지금 뭐 하고 지낼까 생각해 본다. 짬이 나는 대로 수첩과 펜을 가지고 체육관 한쪽에서 어린이들의 움직임을, 변화를 기록한다. 어린이들은 둘레둘레 돌면서 무언가를 적는 내게 손을 흔든다. 뭘 쓰세요, 묻기도 한다.
스포츠강사의 지도 방식은 섬세하면서도 절제가 있다. 훨씬 커진 농구공을 어쩔 줄 몰라하던 어린이, 드리블을 쩔쩔매던 어린이들은 강사선생님의 지도로 어느덧 골대에 골을 넣는 즐거움을 경험한다. 매시간 달라지는 어린이들을 보는 즐거움이 크다. 물론 여전히 게임이 시작되면 공이 달려들까 봐 겁내는 어린이도 있다. 혜연이가 그렇다. 혜연이는 어쩐지 마음이 쓰여 한번 더 보게 되는 어린이다.
새 학기를 맞이하고 이삼일이면 외톨이가 눈에 들어온다. 누가 외톨이인지는 쉬는 시간이면 어렵지 않게 바로 알 수 있다. 삼삼오오 모여 보드게임을 하거나 수다를 떨 때 혼자 조용히 자리에 있는 아이, 그 어린이는 그림을 그리거나 책만 본다. 점심시간이 되면 친구들이 나갈 때까지 느리게 먹다 혼자 나간다. 그리고는 빈 교실에 혼자 남아 창 밖을 구경하거나 또 책을 본다. 외톨이 어린이를 만나면 저렇게 한 학기 또는 더 길게 혼자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 먹먹해진다.
혜연이는 그림책 <옆집 할머니>에 나오는 어린이랑 닮았다. 그림책 속 어린이는 늘 화가인 옆집 할머니를 훔쳐본다. 그러다 할머니네 화실에 들르게 되고 할머니 손에 이끌려 그림을 그리게 된다. 작은 일에도 상처받는 혜연이, 혜연이는 어떤 세계를 꿈꾸고 있을까. 나는 그림책 속 할머니가 되어 혜연이의 길잡이가 되고 꿈을 가져본다.
혜연이와 점심시간에 나들이를 한 적이 있다. 혜연이는 부모님과 언니들이 자신에게는 통 관심이 없다고 했다. 부모님과 이 문제로 상담을 한 적이 있는데 문제가 될 만큼 무관심하지 않다고, 그래도 더 신경을 쓰겠다고 했다. 혜연이의 외로움, 답답한 마음은 종종 아침 두 문장에 표현이 된다. 그 일이 무슨 일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래도 제 마음을 써서 다행이다.
학교 오면서 슬프고, 짜증 나고, 힘든 생각이 나서 울고 싶지만 마음을 가라앉혀야겠다.( 5.3)
혜연이 아버지는 주말 신문에 서너 번 답장을 썼다.
혜연이가 씨를 뿌려 놓았던 봉숭아가 많이 자랐답니다. 싹이 두 개 나왔는데 하나는 싱싱하지만 다른 하나는 시들해져서 물을 주었답니다. 내일이면 다시 싱싱해질 겁니다. (이혜연 아버지)
글을 보면 아버지의 정이 느껴진다. 아버지는 나름의 방식으로 혜연이를 아끼는 듯한데 혜연이는 모자라게 느낄 수도 있을 거 같다. 혜연이의 외로움은 친구관계에서 오는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4학년이면 또래 집단이 생기고 그룹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어린이가 늘어난다. 이런 시기, 원하는 그룹에 들어가지 못하는 건 꽤나 힘든 일이 될 수밖에 없다. 혜연이는 누가 오라고 하지도 않고 자신도 끼어들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혼자인 시간이 많다.
혜연이는 글쓰기와 책 읽기, 공책정리를 좋아한다. 자연 그런 일을 좋아하는 담임 선생님에 대해서도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내가 책을 읽어줄 때면 쉬지 않고 무언가를 적는다. 쉬는 시간이면 방금 읽어준 그림책을 보고 필사하는 어린이들이 종종 있는데 혜연이도 그 속에 들어있다. 오랜 경험에 따르면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어린이들은 시간이 걸리기는 해도 결국은 친구가 생기곤 했다. 11월이나 12월쯤 그랬다. 그러니 외톨이인 지금, 자기 세계를 만드는 일에 집중해도 좋을 거 같다.
......(앞줄임) 선생님이 읽어주는 것은 모두 재미있다. 재미없는 책을 읽어주셔도 재미있다. 선생님이 날마다 읽어주면 좋겠다. 선생님 덕분에 책을 가까이하게 됐다. 내용은 현수가 엄마가 생명 장난감인 엄마를 사게 되는데 엄마가 배달 올 때쯤 선생님이 읽어주는 게 딱! 끝났다. 너무 아쉽다. 너무 궁금하다. 잠도 못 잘 거 같다.
책에 대한 이런 열정을 가지 어린이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어서 혜연이의 매력을 반 친구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욕심이 자꾸 생긴다.
다행히 스포츠 강사는 한 어린이가 공을 차지하지 않도록 규칙을 만들어서 고루 드리블을 하거나 슛 할 기회를 주기도 했다. 도움이 되었는지 공이 오면 불에 덴 듯 서둘러 친구에게 공을 넘기던 혜연이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농구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무렵 모두가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다른 반과 농구경기를 하게 된 것이다. 들뜬 어린이들은 며칠 전부터 팀을 짜면서 준비를 했다. 상대팀 전력에 대한 정보도 주고받았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즐기는 마음으로 하자고, 져도 괜찮다고 몇 번이고 어린이들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자 나부터 가슴이 콩닥거렸다. 제발 이기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양 팀의 실력은 박빙이었다. 엎치락뒤치락 애를 태우면서 경기는 진행되었고 경기를 마칠 즈음에는 동점이 되었다. 결정적인 골 한방이 양쪽 모두에게 절실했다. 남자 어린이 못지않게 여자 어린이들도 과감하게 뛰며 패스를 하고 슛을 쏘았다. 슛을 시도할 때마다 와아, 소리가 터져 나왔다. 떨어진 공을 서로 넣으려 점프를 하고 공을 내려칠 때에는 아프리카 맹수처럼 눈에서 불빛이 쏟아졌다. 달리는 코뿔소처럼 입과 코에서 거친 숨을 뿜어 나왔다. 나도 어린이들과 한마음으로 제발 한 점만을 외치고 있었다.
경기 종료 시간이 얼마 남지 않는 시간, 골이 터졌다. 환호도 함께 터졌다. 월드컵 결승골 같은, 극적인 골이었다. 골을 넣은 어린이는 놀랍게도 수줍고 농구에 서툴던 혜연이다. 믿기지 않았다. 기쁜 마음으로 다가가는데 뭔가 싸한 기운이 돌았다.
가만히 보니 환호하는 어린이들은 우리 반이 아니었다. 분명 혜연이가 공을 넣었다. 그러면 우리 반이 좋아해야 한다. 그런데 다른 반 어린이들이 펄펄 뛰며 승리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혜연아, 고마워’하는 말도 들은 거 같았다. 맙소가, 의문이 풀렸다. 혜연이가 골을 넣은 곳은 우리 반 골대였다. 자책골이었다. 우리 반 어린이들은 맥이 빠져있었다. 몇몇 어린이는 씩씩거리거나 분통이 터지는지 발을 구르기도 했다.
혜연이는 갑자기 공을 받게 되자 놀란 나머지 눈에 보이는 골대에 서둘러 공을 던졌다. 근데 생전 들어가지 않던 공이 들어갔다. 우리 편 골대에 들어갔다. 운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연습할 때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으니 절대 들어갈 리 없는 공이었는데 결정적 순간에, 자책골로 들어간 것이다.
교실로 가는 우리 반 어린이들은 힘이 없었다. 풀이 죽은 혜연이는 친구들과 멀찌감치 떨어져 느릿느릿 걷고 있었다. 나는 우리 반 무리에 섞여 걷다가 속도를 줄여 혜연이 곁으로 갔다. 속삭이듯 말했다.
‘혜연아,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힘내.’
혜연이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한참 다독이다 다시 앞서 걸었다. 혜연이가 성공적으로 골을 넣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친구들 앞에서 빛날 수 있는 순간이 맥없이 사라져 버린 거 같아 생각할수록 속상했다.
혜연이는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이다. 혼자 책을 읽고 글 쓰는 시간이 많다 보니 표현력이 좋아졌는지도 모른다. 혜연이가 글을 쓰면 내용이 궁금하고 기대가 되어 먼저 읽곤 했다. 한 번은 일기장에 이런 글을 써왔다.
......(앞줄임) 달팽이를 손 위에 올려보았다. 그러자 달팽이가 겁을 먹었는지 집안으로 쏙 들어갔다. 조금 있다 두 마리를 손에 올렸다. 한 마리는 밖으로 나왔는데 눈이 나왔고 다른 한 마리는 아예 집에 있었다. 시간이 지나니까 모두 나왔다.
달팽이가 참 신기했다. 하나의 생명이라는 것. 동물들은 참 신기하다. 자세히 보면 동물들도 생김새가 다 다양하게 생겼다. 달팽이를 안전한 곳에 올려주었다. 사람들이 모르고 밟지 않게, 그리고 누가 잡아가지 않게 나뭇잎을 따서 달팽이를 가려주었다.
혜연이는 주변 사물과 잘 사귀는 어린이였다. 조용조용 마음과 생각을 가꾸어 가는 혜연이의 매력을 친구들이 더 알았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데 자책골 사건이 생겨 마음이 좋지 않았다. 걱정이 되어 뒤를 돌아보았다. 우진이가 혜연이에게 다가간다. 뭐라 뭐라 하며 위로해 주는 듯했다. 위로해 주는 친구가 있어 마음이 조금 놓였다.
다음 날 아침, 혜연이가 일기장을 내밀었다. 두 바닥 빼곡하게 쓴 일기였다. 글에는 농구 경기에서 실수한 일에 대한 후회와 미안함으로 가득했다. 토해내듯 쓴 글을 읽으면서 나만 읽어서는 안 될 거 같았다. 혜연을 불러 친구들이 이 일기를 읽으면 좋겠다고 했다. 혜연이 마음을 친구들이 안다면 밤새 속상했을 마음이 풀릴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혜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체육시간에 2반이랑 농구시합을 했다. 농구를 할 때 나는 너무나 골을 못 넣었다. 근데 나에게 공이 왔는데 내가 골을 넣었다. 기대했는데 자살골이라고 했다. 그때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체육 선생님은 농구시합에서 자살골은 난생처음 본다고 하였고 2반 아이들은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나에게 짜증을 냈다.
'이혜연, 자살골 왜 넣었냐?'
'아, 이혜연 진짜!'
'혜연아, 자살골 왜 넣어!'
체육선생님이 그만하라고 하니까 조용해졌지만 아이들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체육시간이 지나고 쉬는 시간이 오자 나는 우리 반 친구들에게 미안해서 어쩔 바를 몰랐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긴 뭐 어떡해? 나 때문에 진 건 사실이고 자살골을 넣은 것도 사실이잖아 뭐...... 근데 친구들에게 사과를 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사과...... 해야겠지...... 아, 해? 말아?......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아, 진짜 어떡해...... ’
나는 생각에 잠겼다. 나 때문에 진 건 사실이니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해야겠지...... 나 하나 때문에 이렇게 스물네 명이 속상할 텐데...... 사과 안 하면 나 없을 때 막 욕하겠지......
생각에 잠긴 그때 선생님과 우진이는 날 위로해 주었다. 그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툭 떨어졌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점심을 다 먹고 은정이를 기다릴 때 00은 '아, 자살골 때문에 졌어!'하고 바로 내 앞에서 말했다. 슬펐다. 난 ‘아냐, 아냐, 이 말은 사실이잖아.’하고 나에게 마음속으로 말했다. 다음에는 실수하지 말아야겠다.
복사한 혜연이 일기를 아침 독서 시간에 나누어주었다. 글을 읽는 내내 조용했다. 다 읽었는지 하나하나 답글 쓰는 자리에 조심조심 글을 썼다. 교실은 침묵 속에 있었다. 어린이들은 일기를 읽으면서 그 자리에서 친구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한 혜연이 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번에는 우리 반 어린이들 마음이 무거워진 듯했다.
답글을 거둔 뒤 누군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지호가 손을 들었다. 어제는 경기에 져서 속상한 바람에 위로하지 못했다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마음 여린 재현이는 눈시울이 빨개져서 혜연이 마음을 알고는 너무 미안했다고 말했다. 저마다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는 듯했다. 찬우도 울먹였다. 축구를 못해 친구들에게 실망감을 준 일이 있어서 혜연이 마음을 안다고 했다. 연우는 그새 편지를 썼는지 혜연이에게 전해주었다
혜연이 일기를 다 읽고 미안하다는 생각을 했다. 실수로 자살골을 넣었는데 화를 내서 미안하다. 이기고 싶었는데 결국 져서...... 난 그래도 괜찮아. 그리고 난 이기고 져도 상관이 없어. 나도 친구들이랑 축구를 할 때 상대편에게 지면 친구들에게 “너 때문이야!”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울고 싶을 정도로 친구가 화내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최민*)
‘자살골!’이라고 말하지 말고 위로해 주어야 했는데...... 이제부터 힘든 친구를 놀리지 말아야겠다. 나도 힘든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무도 놀리지 않았다. 그런데 혜연이는 친구들이 놀렸다. 얼마나 슬펐을까? 우진이와 선생님이 없었으면 혜연이는 밥도 안 먹었을 수도 있다. 내가 더 빨리 사과했다며 더 슬프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대체 왜 놀렸을까! 이제부터 놀리며 안 되겠다.(최**)
나도 혜연이에게 뭐라고 했는데 일기를 보니 많이 미안하다. 다음부터는 실수를 한 친구한테 화를 내지 않고 위로해 주어야겠다. 내가 혜연이이라면 어쩔 줄 몰라 그냥 쉬는 시간에 앉아있을 거 같다. 그리고 조금 억울해서 막 울었을 거 같다. 잘 알지도 못하고 뭐라고 한 내가 너무 바보 같고 미안하다.(구**)
일기를 읽고 답장을 쓰면서 마음을 표현 방식과 기다림에 대해 고루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혜연이가 일기를 써서 다행이고 우리 반 어린이들이 혜연이 마음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만약 내가 위로한답시고 교과서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면 반 어린이들은 진심으로 혜연이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혜연이 역시 그날의 무거운 마음을 오래 가지고 갔을 것이다.
혜연이의 일기와 친구들의 위로 글을 주말신문에 실었다.
그것도 모르고 혜연이에게 “그걸 왜 넣어. ‘아 짜증 나!’하고 말했다. 나도 효진이 같으면 아이들이 짜증 낼 때 사과를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짜증 나, 사과도 안 하네.’ 하고 생각했는데 이제 혜연이 마음을 이해했다. 늦었지만 사과해야겠다. (황**)
꽃씨 신문을 읽는 동안 처음으로 온 가족이 모여 진지하게 대화를 했습니다. 00 이는 농구에 져서 속상한 마음에 내뱉은 말이 혜연이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00 이는 혜연이가 근처에 있는 줄 몰랐던 것입니다. 00가 속상한 마음에 펑펑 운 것은 아마도 혜연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00에게도 용기가 필요한 일일 겁니다. (최* 어머니)
꽃씨 신문을 읽기 전에 00 이에게 혜연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과연 우리 00 이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했을까 궁금해하며 들으면서 속상한 마음과 친구를 이해하는 마음을 느꼈어요. 꽃씨 신문을 통해 선생님의 방법과 친구들의 답글을 보며 또다시 감동하여 뭉클했어요. 정말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꽃씨가 돼 가는 거 같아요. (최** 아버지)
주말 꽃씨 신문에 실린 글을 읽으면서 이야기를 나눈 가정이 여럿 있었다.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린이들은 혜연이 일이 자신의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모님은 우리 자녀의 일일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는 듯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외롭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 4학년이 끝나가는 12월 말, 한 해를 돌아보며 글 쓰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시간은 돌아올 수 없다. 그러니 이런 글을 쓸 때에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어린이들은 저마다 그리움과 아쉬움을 담아 글을 썼다. 혜연이는 더 특별한 4학년 이야기를 썼다.
이제 4학년이 날 떠나간다. 너무 아쉽다. 벌써 5학년이 날 반겨주고 있다니 기분이 이상하다. 4학년 때 원래 책을 싫어했는데 책이 좋아졌다. 시도 좋아졌다. 4학년의 추억은 선생님과 첫 만남이다. 선생님이 책 읽어 주실 때, 그리고 농구 자살골이다.
선생님과 첫 만남이 기억난다. 교실에 처음 왔을 때 책이 많았고 칠판에 글이 쓰여 있었다. 글씨에 칠판이 쓰여 있으니 글씨가 칠판 안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거 같았다. 글씨가 참 많이 쓰여 있었다. 다른 반과는 많이 달랐다.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내가 딴 반으로 잘 못 왔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책을 읽어주셨다. 그땐 ‘우리가 뭐 어린애도 아닌데 왜 책을 읽어주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어 유치하기도 했다. 지금은 정말 책을 읽어주는 게 좋다. 그리고 농구 자살 꼴 사건이 기억이 난다. 그땐 너무 슬프고 우울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웃기다. 그땐 마음이 쪼그라들었지만 지금은 너무 웃기다. 농구 자살 꼴을 넣었을 때 ‘역시 나야 내가 골을 넣을 리가 없지 어휴!’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4학년이 별로 남지 않았다. 벌써.....
혜연이는 책을 더 사랑하게 되었고 농구사건도 유머스럽게 바라보게 되었다. 또 혜연이는 늦가을 즈음 어울리는 친구가 하나 생겼다. 덕분에 혜연이는 더 많이 웃었다. 고루 단단해진 혜연이, 이제 5학년으로 올라가는 혜연이가 어떤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을 하며 글을 쓸지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