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고민 끝에 채송화를 심기로 했다. 실과 식물 기르기 활동에 굳이 채송화를 고른 까닭은 내 유년의 추억을 어린이들과 나누고 싶어서였다. 어릴 때 우리 집 담장 아래에는 제비꽃, 채송화가 피곤했다. 햇빛에 비친 꽃잎이 어린 마음에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친구네 집 마당에 난 풀이나 나무도 기억이 난다. 종숙이네집 마당 끝에는 댑싸리가 자라고 있었고 영은이네 마당에는 늙어서 속이 훤히 보이는 대추나무가 있었다. 명님이 언니네 돌담에는 돌나물이 많았다. 숙자네 집 담장은 가시 많은 탱자나무 담장이었다. 탁구공만 한 노란 탱자가 풍기던 강렬한 냄새는 지금도 나는 듯하다.
우리 어린이들도 나처럼 어른이 되면 공간에 대한 기억 속에 나무나 풀이 있으면 좋겠다. 다행히 퇴임지 마지막 학교에는 나무와 풀꽃이 많았다. 목련과 벚꽃, 모과와 무궁화, 대추나무까지 있었다. 5학년인 우리 반 어린이들에게 우리 학교에는 어떤 나무가 있는지 물었다. 거의 알지 못했다. 나무를 타고 놀 일도 없고 나뭇가지나 이파리, 꽃잎으로 소꿉놀이를 해본 적도 없으니 이들의 존재를 모르는 건 안타깝지만 당연한 듯 하다.
어린이들이 채송화꽃을 가꾸면서 교정 한구석이 남다른 공간으로 바뀌기를 바랐다. 어른이 되어 채송화를 한번 심어볼까 하는 마음을 갖거나 어디선가 채송화를 보면 채송화 가꾸던 5학년 시절을 떠올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유년기 추억은 참으로 강렬하다. 긴 머리 선생님의 풍금반주에 맞추어 ‘아빠하고 나하고’ 노래를 부르던 나의 유년 시절은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따스한 기억으로 생생히 남아있다. 주택가 화분이나 손바닥만 한 꽃밭에서 채송화, 봉숭아를 만나면 발길을 멈추고 들여다보는 것도 그 속에 유년의 시간이 들어있어서다.
드디어 어린이들 앞에서 채송화 씨가 들어있는 봉투를 열었다. 어린이들은 채송화를 처음 본다고 했다. 교정에 있는 무궁화도 알아보지 못하는 어린이가 수두룩하니 채송화를 알아볼 리 없다. 채송화를 심기로 한 뒤 원예용 흙, 개인화분, 물뿌리개, 대용량 채송화씨앗을 주문했다. 식물키트를 사서 쓰는 일이 대세인 시절이라 내가 하는 일은 꽤나 번거로운 일로 비칠 수 있다.
채송화는 씨는 작아도 너무 작았다. 씨앗을 본 어린이들은 도저히 뭐가 될 거 같지 않다는 얼굴을 했다. 덕분에 꽃이 피면 즐거움이 몇 배로 클 수밖에 없다. 채송화 가꾸기는 실패할 확률이 적은 편이다. 보통 다른 반은 바질이나 방울토마토를 심는다. 교실 창가에 들어오는 빛이 적어 이들은 자라다 시들곤 한다. 작은 종이 상자나 작은 플라스틱 컵에서 자라기 때문에 주말이 지나면 쉽게 시든다 화분이 적은 것도 문제다. 좀 자라면 화분을 바꾸어줘야 하는데 여의치 않다. 이래저래 결실을 맺는 일이 쉽지 않다. 다행히 채송화는 다육이처럼 잎이 도톰하다. 주말에 물을 먹지 않아도 그럭저럭 견딘다.
씨앗을 나누어 주면서 <리디아의 정원>에 나오는 주인공 리디아처럼 어린이들이 꽃을 가꾸는 즐거움과 소중함을 경험하기 바랐다. 리디아는 집을 떠나 삼촌네 빵집에서 일하며 옥상에 꽃밭을 가꾼다. 삭막한 공간, 옥상은 리다아로 인해 아름다운 정원으로 바뀌고 무뚝뚝한 삼촌의 마음을 말랑하게 만든다. 우리 교실과 학교 교정 한구석도 어린이들이 가꾸는 채송화 화분으로 말랑한 공간이 되면 좋겠다.
어린이들은 작은 씨앗이 어떻게 될까 봐 받은 씨앗을 조심조심 들고 갔다. 채송화를 심기 전 돋보기로 관찰도 하고 관찰수첩도 만들었다. 틈만 나면 운동장으로 뛰어나가 얼굴 벌게지도록 축구나 농구를 하던 남자 어린이들도 채송화 씨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며 비상한 결의를 하는 듯했다. 한*이는 씨앗을 심어놓고 ‘자신이 주인이 된 거’ 같다고 했다. 예*이는 작은 꽃씨가 걱정되는지 조심조심 화분에 물을 주기도 했다. 승*이는 영 걱정이 되는지 발아율이 60%라는 데에 얼마나 싹이 날지 신경을 썼다. 동물의 알이나 검정 송로버섯 같다며 너스레를 떠는 어린이도 있었다.
▪어떤 동물의 알처럼 생긴 이것이 채송화 씨다. 돋보기로 보면 철갑상어 알처럼 생기기도 했고 지우개똥처럼 생기기도 했다.(김동*)
▪오늘 채송화 씨앗을 보니 태어날지 안 태어날지 모르겠다. 확대경으로 채송화 씨를 보니 마치 하나의 점 같았다. 이 작은 게 꽃이 되다니 말이 안 된다.(김승*)
▪채송화가 여러 색이고 씨앗도 정말 작은 걸 알게 되었다. 확대경으로 보니 씨앗이 정말 작고 마치 초콜릿인 거 같아 군침이 돌았다. (조하*)
창가에 화분을 놓았다. 우린 아침마다 채송화 안녕, 하며 인사를 하기로 했다. 물은 각자 주기로 했지만 혹시 빠뜨리는 어린이가 있을까 봐 식물관리부장을 따로 뽑았다. 식물관리부장은 식물의 동태를 파악하여 친구들에게 알리기도 하고 물을 안 준 친구가 있으면 도와주는 일을 하기로 했다.
일주일도 안 되어 싹이 났다. 싹이 났어요, 감탄하는 어린이가 늘었다. 화분에 싹이 어느 정도 나오자 이사를 하기로 했다. 이사할 곳은 교실을 벗어나 햇볕 좋은 교문 앞이다. 교가가 새겨진 비석이 있는 이곳은 지난해 5학년 어린이들도 채송화를 가꾸던 곳이다.
드디어 채송화 싹이 났다. 현*이 화분에 싹이 많이 나서 싹 좀 떼어 말라고 말할 정도였는데 드디어 내 화분에도 한 개 났다. 높이는 약 0.7cm였고 초록색같이 보였다. 너무 귀엽다. 이 조그만 싹이 크면 예쁜 채송화가 핀다는 게 믿기지 않으면서도 기대가 된다.(용하* 4.19)
교가가 새겨진 비석 앞에 화분을 놓았다. 이 자리는 어린이들이 등교할 때, 체육시간에 운동장으로 나갈 때, 점심시간에 놀 때 지나가는 곳이다. 마침 근처가 수돗가라 물 주기에도 좋다. 어린이들은 누구 화분에서 꽃이 먼저 필지를 손꼽아 기다리며 날마다 채송화를 들여다보았다. 꽃색은 랜덤이다. 받은 씨앗이 분홍꽃으로 나올지 노랑으로 나올지 알 수 없다. 자신에게 다가올 꽃을 기다리며 어린이들은 변화가 있을 때마다 관찰일기를 썼다.
<이다*의 채송화 관찰 일기>
▪4.22-드디어 채송화 싹이 난다. 친구들보다 하루 늦게 심었지만 친구들과 같은 날에 싹이 나서 신기했다. 내심 뿌듯하기도 하다. 길이는 약 0.5cm 정도 된다. 꼭 먹는 풀 같이 생겼다. 시간의 힘!
▪4.25-채송화를 봤다. 싹의 키는 약 0.5cm 정도인 것 같다. 날씨가 흐려서 약간 시든 것 같다. 전체적으로 다른 친구들보다 싹이 덜 났다. 약간 씁쓸하기도 했다. 색깔은 약간 진한 연둣빛이다. 가늘었다. 습도가 높은지 화분 흙이 축축했다. 빨리 꽃이 피었으면 좋겠다.
채송화를 심은 뒤 동요 ‘아빠하고 나하고’를 불렀다. 어효선 작사, 권길상 작곡으로 1953년에 만든 노래다. 6.25 전쟁이 막 끝나고 어려운 시절, 아빠라는 이름이 낯설던 시절이다. 나는 이 노래를 부를 때만 아빠라는 단어를 읊조렸다. 실제로는 한 번도 아빠라는 말을 써보지 못했다. 내게는 여전히 아버지였다. 그래서일까, 이 노래를 부를 때면 묘한 향수와 낭만이 느껴진다. 아버지와 좋은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어린이들에게 노래를 소개한 뒤 한동안 날마다 불렀다. 서정적인 노래라 어린이들 반응이 괜찮다. 노래를 익힌 뒤에는 리코더 연주를 했다. 나도 나무 리코더를 꺼내어 어린이들과 연주했다. 내 어릴 때와 달리 지금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잊힌 노래를 부르고 연주하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다.
어린들이 어렸을 때 부르던 노래 대부분은 음악교과서에 거의 실리지 않는다. 교과서를 내는 출판사가 여럿이다 보니 음악교과서마다 수록하는 노래도 다르다. ‘고향의 봄’이 실리는 교과서도 있고 아닌 교과서도 있다. 고향의 봄은 교과서에 실리지 않더라도 해마다 어린이들과 익히고 연주하는 노래다. 민요는 과거와 달리 음악교과서에 많이 실려 있다.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가 어린 시절 부르던 노래는 잊히고 있다. 부모님 세대의 동요를 음악교과서에 더 실어서 지금 어린이들은 부르면 좋겠다.
어느덧 채송화는 화분 가득 덮을 만큼 자랐다. 우리는 하루 날을 잡아 채송화를 솎아주기로 했다. 솎아낸 싹은 본관 꽃밭에 심을 생각이다. 솎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어린이들은 무얼 뽑아야 할지 계속 망설였다. 솎을 때 여러 개가 딸려 나오는 것도 문제였다. 손가락 두 개로 지지를 해줘야 하는데 싹은 가늘가늘하고 손가락으로 두툼하니 영 작업이 어렵다. 솎아내는 방법을 영상으로 찍어서 보여주고 또 가까이서 시범을 보였지만 어린이들은 마냥 아리송해했다. 뽑은 싹은 한데 모아 싹이 적게 나온 어린이들에게 나눠주고 나머지는 본관 화단에 옮겨 심었다.
내 채송화는 다른 아이들보다 싹이 매우 많아 솎아줄 때 뭐가 크고 작은 것인지 고르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내 싹을 다른 친구들에게 조금 주어서 도움이 된 거 같아 매우 뿌듯하다. 난 아직도 궁금한 게 있다. 내가 물을 조금 줘서 걱정했는데 채송화 싹이 잘 자란 이유가 궁금하다. (강도*)
어린이들은 제 화분에만 마음을 쏟고 있어서 화단에 옮겨 심은 채송화까지 마음을 쓰지는 못한다. 이들은 내 몫이다. 아침에 출근하면 주인 없는 채송화에게 물을 준다. 자리를 잘 잡으라고 점심 먹고 나서도 한번 더 물을 준다. 한 번은 해가 너무 뜨거워서 수건을 뒤집어쓴 채 물을 주었다. 볼만한 풍경이었던 모양이다. 지나가던 선생님이 몰래 찍었다가 보내주었다.
출근해서, 점심을 먹고 하는 교정산책은 일과 중 하나다. 그렇게 거닐다 꽃이나 나무를 찍기도 하고 우리 반 어린이들이 노는 모습, 꽃에 물을 주는 모습도 찍는다. 어린이들은 종종 내가 뭘 하고 다니는지 궁금해하며 쫓아오기도 한다. 어린이들은 내가 밴드에 올린 사진을 보고 채송화 관찰과 돌봄에 더 열의를 갖는 듯하다. 그래서 나 혼자 산책은 나 혼자가 아닌 것이다. 어린이들은 보지 않는 거 같아도 멀리서 선생님을 보고 있었다.
어느 날 휴일, 학급 밴드에 소식이 하나 쑥 올라왔다. 사진과 글을 올린 어린이는 축구를 좋아하는 우리 반 승*이다.
‘채송화에 물 주고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 좀 하고 왔어요.’
축구하는 장면을 하나 찍어 올리면서 곁들인 문장, 한 문장인데 많은 게 느껴진다. 어린이의 마음을 상상하게 된다. 축구하기도 급한 마음일 텐데 승*이는 채송화에 물을 주었다. 친구들 화분 하나하나에 물을 주는 승*이 생각하니 절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월요일 학급 어린이들에게 사진과 문장을 보여주었다. 어린이들은 우와,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미담은 조용히 퍼지고 있었다. 6월 어느 일요일, 또 학급 메시지 방에 사진이 올라왔다. 우리 반 여자 어린이 둘이 주말에 학교에 갔다가 채송화 꽃핀 걸 발견했다. 처음 핀 꽃이었다. 어린이들은 그 기쁨을 선생님, 친구들과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어느덧 화분 가득 꽃이 피었다. 화분에 넘칠 정도로 줄기가 뻗고 꽃이 피었다. 점심 먹고 산책하던 선생님들도 발길을 멈추고 이 진귀한 풍경을 구경한다. 교장 선생님, 학교를 관리하는 보안관도 어쩌면 이렇게 잘 키웠냐며 우리 반 칭찬을 한다. 날마다 안녕, 인사를 하고 물을 준 어린이들의 손길이 꽃을 피우게 했다고 자랑을 했다.
채송화가 활짝 핀 날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에게 핑크색 채송화가 피었다. 채송화가 아름답다.(김다*)
-채송화가 꽃을 피웠다. 여러 색이 있는데 나는 하얀색, 노란색, 핑크색이다. 줄기는 빨갛고 잎은 연두색이지만 끝은 빨갛다. 그리고 길이는 약 15cm이다. 피려고 하는 꽃도 있.(유*)
-드디어 채송화가 활짝 피었다. 여섯 개나 오므라져 있는 게 너무나 신기하고 놀라웠다. 한 개는 연한 핑크색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진한 핑크색이다. 채송화 줄기와 잎도 두껍게 펴서 기분이 좋고 오므라진 보라색 꽃도 핀 모습을 보고 싶다, 열심히 채송화가 자라게 해야겠다.(강도*)
어린이들에게 종종 지난해 5학년과 채송화 가꾸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가끔 쉬는 시간이면 문을 열고 얼굴을 쓱 내밀던 6학년 형, 누나를 봐오던 우리 반 어린이들은 작년 형들 이야기를 들려주면 흥미롭게 듣곤 한다. 작년에 만든 채송화 그림책도 관찰일기도 열심히 본다.
채송화와 관련하여 들려준 이야기는 이렇다. 체육을 마치고 갑자스럽게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아직 어린싹이 견디기에는 빗방울이 너무 센 듯했다. 어린이 하나가 어린 채송화 싹이 다친다며 화분을 옮기자고 했다. 순식간에 여러 어린이들이 달려들어 화분을 나르기 시작했다. 어린이들은 순식간에 온몸이 젖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체육관 아래로 옮겼다.
이야기를 듣는 어린이들 눈빛은 감동에 젖은 듯했다. 몇몇 어린이는 기회가 있으면 자신도 그렇게 해보리란 마음을 갖는 거 같기도 했다. 한참 지난 어느 날이었다. 신기하게도 지난해 일과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운동장 체육을 마칠 즈음 빗방울이 떨어졌고 나는 조금 일찍 교실로 올라왔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몇몇 어린이들이 급하게 교실 문을 열었다. 비가 많이 와서 친구들이 화분을 옮기고 있다고, 그래서 조금 늦을 거라는 뉴스 속보 전하듯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웃음이 났다. 실은 채송화가 충분히 자라서 그 비를 견딜 수 있었다. 그런데도 어린이들은 화분을 옮겼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채송화 가꾸기가 거의 끝나면서 우리는 마무리 시간을 가졌다. 바빠서 채송화를 잊은 날도 많겠지 생각했는데 어린이들은 거르지 않고 날마다 채송화에게 인사를 했다고 고백했다. 꽃이 피기까지 어린이들이 들인 정성이 느껴졌다. 하*이는 싹이 트고 꽃이 피는 모든 순간이 흐뭇하고 뿌듯했다고 했다. 나도 아침마다 채송화꽃을 보는 즐거움이 컸는데 어린이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채송화
김태*
활짝 열린 정문 안에
활짝 핀 채송화들
덩달아 내 마음도
활짝 열린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채송화를 교정 화단에 옮겨 심었다. 어린이들은 제 자기를 알 수 있는 화분이름표를 꽂기도 했다. 옮겨 심은 채송화는 8월 지나 9월이 될 때까지 여전히 꽃을 피우고 있었다. 땅의 힘도 채송화의 힘도 대단했다.
이제 교정 화단에는 해마다 채송화 싹이 올라올 것이다. 그리고 갖가지 색깔의 꽃을 피울 것이다. 이미 지난에 심은 채송화에서 떨어진 씨가 새로 자라 채송화를 피웠다. 올해는 더 많은 채송화를 옮겨 심었으니 내년에는 더 많이 필 것이다. 나는 정년퇴임을 하여 교정을 떠났지만 언제까지나 채송화는 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