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산책길
아침 7시, 남편이 싸준 도시락을 들고 집을 나선다.
식물 주소를 따라 걷는다. 아파트 화단, 병꽃나무네가 나온다, 잠시 멈추어야 한다. 죽은 박새를 묻은 곳이다. 새는 상가 기둥에 부딪힌 거 같은데 상처 하나 없었다. 마침 가방에 종이가 있어 새를 고이 싸서 병꽃 나무 아래 묻었다. 아니 심었다. 꽃이 필 때 새소리도 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파트에서 나와 길을 건너면 교회 화단, 분홍 장미네가 나온다. 분홍 장미는 늦가을까지 피고 지고 또 피며 오랜 시간 나를 즐겁게 한다. 봄비 맞으며 꽃눈이 나올 때부터 꽃 피기를 기다렸다. 분홍 장미네 앞에서는 조금 더 머문다. 종종 고양이 밥 주는 여자를 보기도 한다. 여자는 자동차 모닝을 타고 와서는 익숙하고, 빠른 움직임으로 물과 사료를 준비해 놓고 사라진다. 겨울 날에는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우렁각시였다.
나이도 들고 경험도 풍부해져 사는 일에 제법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학부모의 예민한 전화를 받은 날은 여진이 며칠씩 간다. 동료 교사들이 마음 회복을 위해 휴직하는 걸 지켜보면서 치유 방법을 찾으려고 애썼다. 저녁이면 종이를 찢거나 바늘로 꿰매어 일기장을 만들고 글을 썼다. 일기장에는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천 조각을 붙이기도 했다. 다이어리 꾸미기 놀이는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 머리가 개운해진다. 다이어리 꾸미기와 함께 위안이 된 게 있으니 바로 출근길 식물 관찰이다. 걷다가 새로운 풀이 나오거나 마음에 드는 나무와 풀이 있으면 발길을 멈추었다. 어느덧 교회 마당 분홍장미는 반려식물처럼 가까워졌다. 무연히 분홍장미를 바라보고 있으면 복잡한 생각이 사라지곤 했다.
아파트에서 공지천 쪽으로 자목련이 있다. 자목련이 필 때에는 그 쪽 번지에도 들러본다. 자목련 잎이 무수히 떨어져 목련나무 발등을 붉게 덮는 날, 우리 반 어린이 숫자만큼 꽃잎을 주웠다. 학교에는 백목련만 있으니 자목련 구경을 시켜주려는 것이다.
학교까지는 걸어서 25분 걸린다. 부천에 살 때는 한 시간 넘게 지하철과 버스를 옮겨 타며 인천까지 출근을 했다. 삼십년 가까이 그랬다. 피로가 쌓이면서 걸어서 출근하기를 꿈꾸게 되었다. 퇴임 십 여년 앞두고 강원도로 넘어오면서 길고 긴 바람이 이루어졌다. 주문진에서는 2년간 바다를 보거나 항구에 들러서 학교에 갔다. 영화같은 시간이었다. 인생에서 그런 행운이 다시 있을까 생각해 본다. 춘천에서는 개천을 따라 걷거나 도심길을 지난다. 어느 쪽으로 가든 걸어서 학교에 간다.
대도시 인천과 달리 소도시 춘천의 아침은 호젓했다. 거리에는 사람이 드물어 혼자 도시를 누리는 기분이 들곤 한다. 춘천의 겨울 아침은 코가 매울 정도로 춥다. 7시, 하늘은 어둑하다. 이런 풍경은 꽤 낭만적인 기분에 젖게 한다. 가보지도 않은 동유럽의 쓸쓸한 도시를 생각하는 것이다. 걸으면서 하늘과 키 큰 나무, 풀꽃들을 섬세하게 감지한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느낀다. 어제 보이지 않던 것이 오늘 보이기도 한다. 나무도 풀도 세상도 어제와 다른 새 얼굴로 나타나는 것만 같다. 퇴임을 사오 년 앞두고는 얼마 남지 않은 출근길이란 생각이 들어 주변이 애틋하게 보였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 ‘칼테콧’ 상을 받은 미국작가 ‘신시아 라일런트’의 동화집이다. 이 책에 마음에 드는 동화가 두어 편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은퇴’이다. 퇴임 즈음이라 제목만 보고 이끌렸다. 은퇴한 여교사는 늙은 개를 데리고 날마다 산책을 한다. 어느 날, 자기도 모르게 학교 담장 앞에 선다.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뒤안길을 본 듯하여 가슴이 따가웠다. 다행히 은퇴 교사는 개를 좋아하는 어린이들과 친해진다. 할로윈 데이날 은퇴 교사가 어린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마음이 놓였다. 동화를 읽으면서 나는 퇴임을 하면 어디를 바라보고 있을까, 어린이들과 이어진다면 어떤 식으로 이어질까 생각하곤 했다.
분홍 장미네를 지나 풍물 시장 쪽으로 가다 보면 도로변에 이팝나무가 줄줄이 심어있다. 이팝나무 아래서 종종 폐지 줍는 할머니는 만난다. 할머니는 아흔을 바라본다. 허리는 굽었지만 짱짱하다. 가끔 할머니는 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출근길이라 마음이 급하지만 느긋한 척 듣는다. 할머니는 원래 모아 놓은 돈이 많았다. 그런데 자식이 사업한다고 다 써버려서 이제는 빈털터리다. 그게 속상했는지 자꾸 그 얘기를 했다. 폐지 할머니 때문에 과자 한 개씩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녔다.
남춘천역에 다다르면 멈칫하며 고가 옆을 피한다. 고가 천정에 사는 비둘기 때문이다. 숫자가 어마어마하다. 바로 아래 나무들은 하얀 똥을 뒤집어쓰고 있다. 시청에 전화해서 나무 샤워 좀 시켜달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비둘기 똥을 맞을까봐 정신 차리고 걷는다.
육교를 건너 맞은 편으로 간다. 도로변에는 시에서 만든 화단이 있다. 철철이 볼만하게 꾸며놓는데 대부분 수입종이다. ‘라넌큘러스’, ‘폭스글로브’, 이름을 외우려 해도 도무지 입에 붙지 않는다. 상가변 화단에는 봄부터 철쭉, 작약, 산딸나무가 시간차를 두고 피면서 눈호강을 시켜준다.
이 길에서 만나는 여자 둘이 있다. 자매처럼 꼭 붙어 다니는데 이들을 볼 때면 후배 한선생님이 그리워진다. 이사오기 전 같은 아파트에 살던 선생님인데 일 년 가까이 함께 출근했다. 자매같은 이들은 훤칠하고 옷맵시도 있다. 옷이 꽤 많은지 날마다 다른 옷을 입는다. 여자들의 옷장이 궁금하다. 기차역으로 가는 걸 보면 가평 어디쯤 학교 교사일지도 모르겠다. 나 혼자 상상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만나는데 인사는 결국 못했다. 두 분은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 내 존재를 모르는 듯 했다.
도로변을 지날 때면 떨어진 꽃잎을 줍는다. 바닥에서 뒹구는 지렁이를 풀숲에 놔주기도 한다. 역시 이 길에서도 기둥이나 자동차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걸로 짐작되는 새를 발견한다. 그럴 때는 종이에 싸서 학교 꽃밭이나 우리 반 목련 아래 묻어준다. 그렇게 묻어준 새가 다섯 마리쯤 된다. 도로변 화단을 정리하면서 뽑힌 꽃을 주워온 적도 있다. 투명 플라스틱컵에 담아 교실 창가에 두고 한참 보았다. 화분째로 내버린 패랭이꽃을 줍기도 했다. 학교 화단에 심고 날마다 물을 주었더니 한 달쯤 지나 꽃을 피웠다.
퇴계 막국수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꺾는다. 횡단보도를 건너 학교 근방 골목으로 들어선다. 도로변을 지날 때와는 다른 풍경이다. 골목 초입에는 ‘더 스타일’이라는 옷가게가 있다. 옷을 자주 사지는 않지만 옷 구경은 좋아한다. 이른 아침, 가게 문이 닫혀있는 시간이라 맘 놓고 구경한다. 진열장에는 마음에 드는 구두가 있다. 마음에는 들지만 이제는 신지 못할 거 같다.
골목 부근에 있던 옷가게 ‘모멘토’와 ‘작은 서랍’, ‘발레리나’는 2년 사이에 문을 닫았다. 티셔츠나 바지를 샀던 곳들이다. 모멘토는 내가 소화하기 어려운 옷들을 진열해 놓곤 했다. 그래도 환상적이고 동화적인 분위기가 있는 가게라 즐겨 찾았다. 학교 가는 길에서 조금 벗어난 곳인데도 부러 발걸음을 했던 것이다.
골목으로 들어간다. 옷 수선집과, 미용실 주인은 7시 전에 문을 연다. 미용실을 지날 때 유리창 사이로 보면 아주머니가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매만진다. 어떤 날은 그 자리에 머리 깎으러 온 남자가 앉았다. 또 다른 날은 파마를 하는 할머니가 보인다. 미용실에서는 삼 만원 주고 파마를 서너 번 했다. 수선가게에는 옷을 맡긴 적이 있다. 다른 집보다 값도 싸고 솜씨도 좋다. 나이가 들면서 수선 기술이나 미용 기술 있는 아주머니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은퇴 날을 스스로 정할 수 있어서다. 건강만하면 여든까지도 일 할 수 있다.
미용실이나 수선 집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어려울 거 같다. 둘 다 해보고 싶어서다. 가르치는 일은 어린이의 마음이 보이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 변화를 묵묵히 기다려야 한다. 이와 달리 미용이나 옷수선은 일의 결과가 빠른 시간에 나온다. 시간을 들인 만큼 달라진 결과물이 나온다. 이런 일을 한번쯤 해보고 싶었다.
수선집과 미용실을 지나 왼쪽으로 올라가면 학교가 보인다. 7시 30분, 후문에 들어선다. 급식실에서 일하는 분들이 출근하는 시간이다. 인사를 나누고 나면 분리수거장에 들른다. 쓸 만한 박스나 물건을 찾아본다. 엔틱한 나무 책꽂이도, ‘쇼팽의 음악’이라는 예술 그림책도 분리수거장에서 가져왔다.
마지막으로 본관 건물 앞, 운동장 쪽으로 간다. 느티나무 부근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는다. 우리 반 나무인 목련나무를 보러 간다. 목련 잎이 새로 떨어진 게 있으면 줍고 우리반 어린이들이 가꾸는 채송화 화분도 살펴본다.
한번은 CCTV를 보던 학교 당직 기사님이 나와서는 물었다.
-선생님은 뭘 그렇게 두리번거리세요. 학교에 관심이 많은 거 같아요.
두리번거리며 뭔가를 줍고 까치발로 나뭇가지에 달린 목련아린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뭘 하는지 궁금할 것도 같다.
산책같은 출근을 마치고 교실 문을 연다. 커피를 타기 전, 방금 주운 목련 아린을 작은 종이에 붙인다. 짙은 청색 머메이드지에 흰펜으로 한 문장 쓴다.
‘2022. 3. 4. 후문 꽃밭 목련나무 아래에서 주운 아린, 두 번째 벗은 털옷으로 보인다.’
종이 가장자리를 접어 종이액자를 만든 뒤 칠판 옆 게시판에 붙여놓았다. 탁상 달력을 잘라 붙인 식물 달력에도 출근하면서 본 식물의 변화를 적는다. 어린이들이 궁금해 하면서 무언가 물어오기 바라는 마음을 가져본다.
출근길은 25분에서 40분이 걸리기도 한다. 멈추는 순간이 많은 날, 이야기가 많은 날은 시간이 늦어진다. 출근 산책을 하고 식물일지를 쓰는 일, 주운 꽃잎을 종이 액자에 붙이는 일은 나를 위한 작은 위로다. 어린이들에게 교사의 삶 한 쪽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어린이들은 딴청 부리며 저희들끼리 놀 때가 많다. 그런데도 선생님이 무얼 했는지 잘 안다. 어린이들은 게시판에 붙여놓은 풍선덩굴과 등나무 까만 씨앗이 뭐냐고 묻는다. 기회가 생각하고 설명하면서 식물일기를 자랑하듯 보여준다. 선생님, 우리도 산책해요 하고 말하기를 은근히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