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 비비추, 그리고 땅에 떨어진 것들
7시 30분, 고요한 시간이다. 교문에서 두 번째 느티나무를 지나고 있었다. 무언가를 보았다.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나무를 빙 둘러가며 만든 의자에 시퍼런 풀이 놓여있다. 뭐지, 궁금하면서도 불길한 마음에 다가갔다.
비비추였다. 이제 막 보랏빛 꽃을 피우기 시작한 비비추. 열 개도 넘는 꽃을 피울 텐데 속절없이 뽑혀있었다. 사방을 둘러보지만 누가 있을 리 없다. 어제저녁 누군가의 소행이라 짐작해 본다.
급히 산책을 마무리하고 비비추를 들고는 교실로 올라왔다. 비비추를 어찌할까 생각하다 칠판에 자석으로 붙여두었다. 어린이들에게 비비추 사연을 들려주고 싶었다. 비비추 뿌리를 붙인 자리 아래 간단히 적었다.
-뿌리째 뽑힌 비비추, 느티나무 의자에서 아침 7시 32분 발견
* 느티나무 의자 위 뿌리 뽑힌 비비추
교실에 들어오는 어린이들마다 칠판 앞에 서서 비비추를 들여다본다.
-누가 이랬지! 너무했다!
- CCTV로 범인 찾으면 안 돼요?
한 마디씩 한다. 불만 섞인 울분을 토하기도 한다. 사흘쯤 지났다. 싱싱하던 비비추는 칠판에서 조금씩 시들어갔고 이파리 한쪽이 누레졌다. 어린이들에게 자유 노트를 나눠주었다. 자유노트를 주면 어린이들은 은근히 좋아한다. 자유노트에는 그리고 싶은 것, 쓰고 싶은 게 있을 때 쓰기로 했지만 대체로 노트는 책꽂이에서 잠자고 있다. 누군가 쓸거리가 될만한 무언가를 가져오면 자유노트를 펼치는데 주로 내 몫이었다.
비비추 이야기는 자유노트에 쓸만한 글감이었다. 멀쩡한 비비추가 뿌리째 뽑혔으니 어린이들은 사건이 될만하다고 느끼는 듯했다. 관찰일기를 써도 좋고 시를 써도 좋다고 했다. 저마다 제목을 짓고 글을 썼다. 자유노트니까 자유로운 형식으로 표현하면 되는 거다.
비비추를 보고 저마다 다른 글을 쓴다. 사람마다 보는 눈이, 느끼는 감정이 갖가지구나 하는 생각은 같은 글감을 두고 글을 쓸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다현이는 비비추의 시점에서 글을 썼다. 지우는 비비추 둥근 잎을 여러 사물에 비유했는데 연못 같다고 한 점이 흥미롭다. 어린이들은 대상에게 감정 이입을 잘한다. 그래서 글이 동화적일 때가 많다. 비비추는 어린이 마음으로 들어가 갖가지 이야기로 탄생하고 있었다.
*김다* 어린이 자유노트
점심을 먹은 뒤, 습관처럼 교정산책을 나섰다. 행정실 주무관님이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다. 느티나무 가지와 향나무, 주목나무 가지들이 운동장 한쪽에 수북하게 쌓여있다. 이럴 때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어린이들에게 보여줄 만한 뭔가를 얻을 기회이기 때문이다.
가까이 가서 쌓여있는 가지를 들춰보았다. 나무 냄새가 코에 끼쳐왔다. 아직도 나무에 붙어있는 듯 싱싱한 가지들을 보니 씁쓸해진다. 어떤 건 모체에 달려 남아있는데 어떤 건 느닷없이 잘린다. 순식간에 떨려 나온 가지들은 야단법석이었을 것이다. 이를 어쩌냐고 떠들며 몹시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무심히 지나쳤던 나뭇가지, 이파리들이 하나하나 아깝다.
가위로 하는 가지치기가 아니고 기계로 하는 일이라 엉뚱한 게 잘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저기 살펴보다 느티나무와 향나무, 주목 가지를 하나씩 골랐다. 회양목도 자잘한 가지도 몇 개 챙겼다. 문득 향나무 향이 궁금하여 코를 대고 맡아보았다 그러다 뾰족한 잎에 손가락을 찔리고 말았다. 같은 침엽수인데도 주목과 달리 향나무는 가시가 꽤 날카로웠다. 초록잎은 괜찮은데 낙엽처럼 누렇게 변한 잎이 바늘처럼 날카로웠다.
*운동장에 쌓여있는 느티나무 가지
느티나무는 푸른 잎이 보기 좋아 칠판에 자석을 거치대 삼아 걸어두었다. 누군가 천사 날개 같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천사 날개로 보였다. 나뭇가지를 교실에 가져올 때에는 관찰도 해보고 글쓰기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사정이 있어 시간 내는 게 쉽지 않았다. 역시 며칠이 지난 아침이 되어서야 자유노트에 글을 썼다.
* 느티나무 가지
<주목나무 가지> 용하*
얼핏 들었을 때 '주먹'이라기에 놀랐다. 알고 보니 ‘붉을 주’, ‘나무 목’ 이란 뜻을 가지 주목나무였다. 어, 어디서 많이 봤다. 익숙한데. 주목은 사계절 내내 잎이 푸른 상록 침엽 교목이다. 또 주옥의 주자가 붉은 주인 이유는 가을에 저 눈곱만 한 초록 열매가 빨갛게 익기 때문이다. 가지치기를 해서 좋은 점도 있고 안 좋은 점도 있다. 이렇게 예쁜 나무, 열매들을 보는 건 좋다. 하지만 식물들이 조금 더 자랐다면 좋을 것 같다.
<주목>
오늘 주목 나뭇가지 관찰을 했다. 주목잎이 가시 같아서 찔리면 아플 거 같았다. 그런데 만져보니 안 아팠다.(우서*7.10)
본관에서는 안 보이는, 건물을 꺾어 돌아야 나오는 공간이 있다. 상상놀이터라고 부른다. 부러 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공간에는 모과와 계수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다. 처음 이들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았다. 여러 학교에서 근무했지만 교정에 계수나무나 모과가 있는 곳은 없었다. 앵두나 벚나무, 대추나무가 있는 교정은 종종 보았지만 모과와 계수나무는 처음이었다. 덕분에 거리가 제법 있는 상상놀이터까지 산책을 나오곤 한다.
한 번은 점심을 먹고 상상놀이터에 갔다. 실은 이 날부터 어린이 한 명씩 데리고 나들이를 하려던 참이었다. 마침 늦게 밥을 먹고 있는 채*이가 보여서 나들이를 하자고 했다. 며칠 전 가지치기 한 걸 보면서 상상놀이터 쪽도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무 가지치기를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서다.
상상놀이터에 들어선 순간 놀라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는데 하려던 일을 순식간에 잊었다. 나무 아래 수두룩 떨어진 모과를 본 순간 정신이 혼미해진 것이다. 한두 개도 아닌 열 개, 스무 개가 넘는 모과가 떨어져 있었다.
상처 난 모과가 많았다. 분명 가지치기하는 과정에서 생긴 상처일 것이다. 채*이와 나는 약속이나 한 듯 두 손으로 모과를 담아들 었다. 그러는 사이 내 입은 끝도 없이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아이고, 아까워라. 올해 모과가 많이 달려서 잘됐다 했는데.....
그렇게 속상해하며 주운 모과를 교실로 가져왔다. 어린이들은 우르르 몰려들었고 한바탕 수선을 떨었다.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아침을 먹으려는데 식탁 위 모과가 눈에 들어왔다. 모과를 슬쩍 그려보았다. 모과는 작은 고구마처럼 보였다. 쥐어보니 한 손에 딱 들어온다. 문득 상상놀이터에 남아있는 모과를 마저 주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들과 모과관찰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가을까지 가면 크게 결실을 맺었을 모과가 영 안타까웠다.
출근하자마자 바로 상상놀이터 쪽으로 갔다.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방에서 헝겊 장바구니를 꺼내 남아있는 모과를 주워 담았다. 교실로 들어와 모과에 묻은 물기를 닦았다. 비가 와서 모래가 조금씩 묻어있었다. 단단하게 매끈한 모과, 짙은 초록이 이쁜 모과를 그대로 땅에서 썩게 두기에는 아쉬웠다.
월요일 아침은 어린이들에게 모과에 대해 쓰자고 했다. 재희는 검은 펜으로만 모과를 그리고 누구는 초록색으로 그린다. 모과는 충분히 시절을 보내지 못한 채 떨어지고 말았지만 우리 꽃씨 어린이들 손에서 이야기로 태어났다. 꽃씨신문에도 실렸다.
-<모과>
7월 9일 모과 관찰을 했다. 모과는 둥근 타원형에 여러 군데 상처가 나 있었다. 상처 난 곳은 갈색이다. 크기는 주목을 쥐었을 때 약 7센티 정도다. 모과는 익으면서 노랑이 된다. 향은 청사과향이나 과일향이 난다.(유*7.9)
-<모과 열매>
친구들이 후드득
다 떨어지네
마침내 나까지
떨어지네(황재*2024.7.9)
* 가지치기 작업 끝에 떨어진 모과
* 장바구니에 주워 담은 떨어진 모과들
모과 관찰 글이 실린 주말신문이 나간 뒤였다. 월요일에 부모님 한분이 정성스레 답글을 써주셨다.
꽃씨반 학생들은 단순히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깊이 있는 시선을 기르는 법을
배우는 것 같습니다. 특히 가지치기로 떨어진 모과를 아이들에게 관찰시킴으로써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작은 것들에도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싫증을 금방 느끼는 해*이도 선생님의 교육방식으로 인내심과 집중력을 기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삶의 작은 부분까지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아이들에 심어주는 훌륭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정해* 아버지)
교정 산책은 학교 공간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했다. 짧은 10분간 위안을 얻을 뿐 아니라 시와 이야기를 만났다. 교정 산책은 단지 나를 위한 시간만은 아니었다. 어린이들과 함께 하려고 발견하고 탐구하는 작은 여정이기도 했다.
오래전 근무한 학교에서는 교정 산책을 하지 못했다.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할 때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 학교들은 달랑 건물 말고는 별 기억이 없다. 어떤 나무가 있었는지 기억조차 없는 학교도 있다. 어린이들과 식물 산책을 하면서, 이른 아침 교정산책을 하면서 학교라는 공간은 시멘트 건물이 아니 이야기 공간으로 다가왔다.
어린이들에게 학교를 조금 추억의 공간으로 느끼게 하고 싶었다. 비비추를 관찰하고 모과를 만지고 나면 어린이들은 비비추 꽃잎을 주워오거나 모과나무에 달린 모과가 얼마나 자랐는지 이야기해 준다. 어린이들 스스로 운동장 곳곳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발견하는 것이다. 스쳐 지나가면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추억도 없다. 냄새 맡으면서 관심을 가지면 이야기가 되고 추억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