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할미는 진짜 있었다

손 없는 색시와 네 잎 클로버를 찾는 마고할미

by 강승숙

몇 년째 <손 없는 색시> 이야기를 어린이들에게 들려준다. 동화나 그림책을 읽어주는 사이 우리 이야기를 한두 권 다루는데 그때 꼭 <손 없는 색시>를 읽는다.



어린이들은 옛이야기나 신화 하나 변변히 아는 게 없다. 옛이야기뿐이랴. 어린이들은 지난해 배운 음악 교과서 노래도 외우는 게 없다. 대중가요에 비하면 교과서 노래는 시시해 보여서 그럴 수도 있다. '이야기 좀 해주세요' 하며 선생님을 조르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영화 보여 주세요' 같은 목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 역시 옛이야기를 지나간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거 같다. 옛이야기가 당대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나온다는 건 알고 있지만 어쩐지 먼 이야기로만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던 내게 머리를 쿵 얻어맞은 듯한 사건이 찾아왔다. 날마다 걷는 개천가에서다.


남편과 마트를 가며 걷는 개천가에는 볼거리가 많다. 덕분에 원시로 돌아가 수렵채취인이 된 기분이 들곤 한다. 걸을 때는 흙바닥과 풀숲, 물가와 나무 위를 고루 탐색한다. 은근 소득이 있다. 뽈뽈뽈 기어가는 땅강아지를 만나기도 하고 바람에 일렁이며 유려하게 춤추는 갈대숲을 보기도 한다. 금방 사라져 버린 자라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한다. 다시 쑤욱 나와서는 말이라도 걸어줄까 봐 한참 자라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이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자라가 있는 개천이니 마고할미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자라를 본 뒤로는 자라가 있을만한 구석자리에 가서 괜히 물속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자라야, 자라야 부르기도 했다. 어쩌면 그 소리를 마고할미가 들었을 수도 있다.


그날도 남편과 함께 개천길을 걷고 있는데 저만치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가 보였다. 할머니는 무언가를 뜯고 있었다. 이런 할머니를 보면 호기심에 지나치지 못했고 뭘 뜯느냐, 어떻게 해서 먹냐 하며 이것저것 묻는다. 그럴 요량으로 할머니에게 바삐 다가가는데 갑자기 곁에 있던 남편이 반색을 하며 인사를 한다. 할머니는 강한 햇볕 아래 모자도 안 쓰고 있었다. 얼굴엔 굵은 주름이 있었고 옛이야기에서 막 걸어 나온 듯 자그마한 몸집에 깡말랐다.


-안녕하세요, 저 모르시겠어요? 지난번에 네 잎 클로버 주셨잖아요!


남편은 인사를 하며 스마트폰 뒤 쪽에 끼워놓은 네 잎 클로버를 냉큼 내민다. 할머니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영 생각이 안 나는지 미안한 얼굴이다.


-내가요, 네 잎 클로버를 준 사람이 수백이 되어서 얼굴을 잘 기억 못 해요.


할머니는 남편이 얼마 전 내게 얘기했던 바로 그 할머니였다. 네 잎 클로버 할머니. 남편 이야기에 등장하던 할머니를 만나자 설레고 궁금한 게 많았다.


-할머니, 하루에 네 잎 클로버를 몇 개나 찾으셔요?


할머니는 하루 세 시간씩 돌아다니지만 네 잎 클로버가 귀해져서 겨우 한 개 찾을 때도 있다고 했다. 할머니는 이 일을 7년 넘게 해오고 있었다. 할머니 사연은 남편에게 들어 조금 알고 있다. 할머니는 암을 앓았는데 그때부터 운동삼아 걸으면서 네 잎 클로버를 찾아다니고 있다. 찾은 네 잎 클로버는 코팅을 해서 나눠 주거나 액자로 만들어 필요한데 기증하기도 한다. 길에서 만난 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은 늘 있는 일이다.



-지난번에는 요 위쪽 로데오 거리 있잖아요. 거기서 한 스물 된 청년이 의자에 앉아 울고 있는 거야. 그래서 너무 안 되어서 다가가 물었어. 왜 우느냐고. 그랬더니 시험에 세 번이나 떨어졌는데. 집에서 나가라고 했다며 자꾸 눈물을 흘리는 거야. 너무 안돼서 가지고 있는 네 잎 클로버 두 개를 줬어. 잘 될 거라고 하면서. 그러니까 그 청년이 몇 번이나 고맙다고 하면서 갔어.


이야기를 들으며 울던 스무 살 청년이 네 잎 클로버를 가슴에 품고 가서는 다음 시험에 붙는 장면이 떠올랐다. 청년은 자신에게 다가온 할머니가 예사로운 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행운이 올 거라는 믿음이 생겼을 것이다. 나도 하나 얻어서 할머니의 기운을 갖고 싶었다.


할머니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코팅한 네 잎 클로버를 주섬주섬 꺼내어 내밀었다. 나는 아픈 후배가 떠올라 조심스레 한 장 더 부탁을 했다.

-저, 아픈 후배가 있어요. 하나 더 얻을 수 있을까요...


할머니는 선뜻 한 장을 더 주셨다. 고마움을 전하고 헤어졌다. 몇 발자국 걸어가는데 불현듯 이 분이 바로 마고할미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깨달음이 온 것이다. 드디어 어린이들에게 읽어주던 옛이야기 속 마고할미를 현실에서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고할미는 주인공이 절박할때 등장한다. 옛이야기 <손 없는 색시>에서도 그랬다. 색시가 아기를 데리고 정처 없이 길을 가는데 마고 할미가 손을 내민다. 오갈 데 없는 색시는 할머니께 의탁하면서 새 삶을 꾸리게 된다.



네잎 클로버를 할머니를 본 뒤 그간 이야기로만 생각한 <손 없는 색시>의 마고할미는 실재하던 인물이리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 없이 어려움에 처한 색시를 도와준 마고할미 같은 분은 도처에 있었을 것이다. 현대에 와서 그 이름은 사라졌지만 마고할미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몫을 묵묵히 하고 있었다.


마고할미에 대해 찾아보았다. '나무 위키'에서는 과거 우리나라에서 ~할매(혹은 할미), ~할배는 노인을 가리키는 호칭이 아니라 일종의 권위를 주는 존칭으로 쓰였다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지금 쓰이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뜻하는 게 아니다. 어원적으로 한+아비(大父)와 한+어미(大母)였던 것이 오늘날에 변형된 것이다. 마고할미는 '마고 여신님'에 더 가깝다.


설명을 읽고 나니 네 잎 클로버를 찾아서 몸이나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나눠주는 할머니에게 마고할미 칭호를 붙여도 되겠다는 생각이 더 분명해진다. 다시 만나면 그 할머니를 마고할미라 불러보고 싶다. 지금은 속으로만 불러본다.


자료를 모아둔 상자를 하나 꺼냈다. 어린이들이 쓴 독서록이 들어있는 상자다. <손 없는 색시> 독서록을 몇 장 찾았다. 찬찬히 다시 읽어보았다.



<손 없는 색시>에 나온 인물 중에는 색시를 괴롭히는 새엄마나 무능한 아버지도 있지만 손이 잘린 채 쫓겨난 색시를 돕는 이들도 있다. 손이 없는 색시를 몰래 다락에 들여 얼굴을 닦아주고 밥을 먹여주는 도령이 있고 그걸 알고는 불쌍히 여겨 색시를 며느리로 받아들이는 시어머니도 있다. 이 장면은 다시 읽어도 놀랍다. 징그러워 피하거나 들이지 않을 텐데 함부로 하지 않는 도령과 도령의 어머니, 어린이들은 이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깊은 감동을 받기도 했다.


처음에는 전통문화를 공부하자는 마음으로 <손 없는 색시>를 읽어주었다. 색시가 베를 짜는 모습을 볼 때에는 베틀에 대해 알아보고 무명 한필이 어느 정도 길이인지, 여자가 베를 잘 짜는 일이 왜 중요한지 알아보았다.


색시가 결혼할 때 입은 혼례복을 보면서는 색동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색시가 손이 없지만 아기를 지키려고 애쓰며 스스로 베를 짜서 생계를 이어가려는 노력이 어떤 성장과 변화를 가져오는지도 알아보았다. 하지만 마고할미에 대한 공부는 조금 소홀했다. 그 점이 아쉽다.



그림책 <손 없는 색시>를 읽으면서 지금을 생각한다. 이제는 사려, 인정, 상냥함, 사랑 같은 말들이 낯설어진 시대에 도달한 듯하다. 관공서나 문화단체, 교육기관에서는 배려나 존중 같은 말을 구호처럼 걸고 온갖 사업을 하지만 어쩐지 이런 말들은 더 이상 살아있는 거 같지 않다. 사려 깊음, 공손함, 인정을 지닌 인물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이제 교단을 떠나서 다시 <손 없는 색시>를 어린이들에게 읽어 줄 수도, 길에서 만난 네 잎 클로버 따는 마고할미 얘기를 전해줄 수도 없다. 후배 교사가 옛이야기를 읽어주면서 이 시대 마고할미를 어린이와 찾아보기 바랄 뿐이다.


그래도 내가 할 일이 있다. 이제 마고할미가 되도록 애쓰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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