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어린이의 아침, 입체적으로 조명하다

아침 두 문장에 드러난 어린이 입체적 일상

by 강승숙

일기가 사라지면서 어린이 일상을 알 수 있는 통로 하나를 잃어버렸다. 어린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일기를 어린이와 나누는 대화로 여겼던 나로서는 아쉬움이 크다.


그 자리를 주제 글쓰기로 대체하며 애쓰는 교사들도 있지만 주 1회인 데다 글감이 주어지기에 어린이가 일상의 소소함을 자유롭게 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다행히 단비 같은 두 문장 쓰기가 있었다. 쓰는 일에 익숙해지기, 차분하게 아침 시작하기, 마음 추스리기를 의도하며 시작한 아침 두 문장 쓰기는 뜻밖에도 어린이를 이해하는 빅데이터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린이들은 어떻게 아침을 맞이하고 밥을 먹으며 어떤 기분으로 등교할까, 유년의 기억을 되돌아본다. 아침은 일어나는 일부터 버거웠다. 졸린 눈 비비며 밥 먹는 것도, 먼 길을 걷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도대체 학교는 누가 만들었을까, 10시까지 등교하면 좋을 텐데 왜 일찍 오라고 해서 힘들게 하지, 같은 생각을 줄곧 했던 거 같다. 그래도 학교 오가는 길에는 생각지 않는 즐거움과 재미도 있었다. 지금 어린이들은 지난 날 어린이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아침 두 문장에는 잠과 관련한 글이 자주 등장한다. 부모님의 터치로 놀이하듯 즐겁게 일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겨우겨우 잠을 깬다.


-우리가 일어나지 않자 아빠가 우리 위로 올라와서 우리를 눌렀다. (서홍*4.24)

-새벽에 깼는데 졸려서 다시 잤다. (노경*5. 8)

-푹 자지 못해 너무 졸리다.(황지*4.9)


예전에는 아침에 등교하는 어린이와 가볍게 인사만 나누었다. 몇 년 전부터는 조금 더 적극적인 방식을 시도했다. 인사를 한 뒤 아침 먹은 걸 간단히 말하고 감정을 숫자로 표현하는 것이다. 아침에 무얼 먹었는지 들으려 한 까닭은 아침을 거르거나 대충 먹는 어린이가 늘어서다. 게임과 스마트폰은 어린이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게 만들었다. 부모와 늦은 시간 야식을 하거나 영화를 보는 것도 늦잠의 원인이 되는 듯했다.


늦게 잠드니 당연 아침은 피곤한 날이 잦다. 밥맛도 없을 수밖에 없다. 부모의 의식도 과거와 달라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에 늦더라도 밥은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옅어졌다. 아침을 못 먹으면 등교하다가 간단히 뭘 사 먹을 수 있는 환경도 영향을 준 듯하다. 어린이의 아침 식사는 편차가 컸다. 날마다 한식 한 상차림을 먹는 어린이가 있는가 하면 빵 한 조각, 바나나 하나 먹거나 아예 안 먹는 어린이도 있었다.


-오늘도 엄마가 억지로 밥 네 숟가락을 먹여주었다. (백은*5. 8)

-아침에 어제 남긴 피자를 먹고 왔다. 어제 남긴 고구마 피자가 맛있었다.(전진*5.10)

-아침에 엄마가 사리곰탕 국물을 데워주셨다. 그런데 남겼다. (전진*5.28)

-늦잠을 잤다. 급하게 어니언수프를 먹고 요구르트를 먹었다. 누구에겐 내가 아무리 느리게 준비하는 듯 보여도 엄청 난 급하게 움직였다. (3.14/엄유*)


아침을 먹고 나면 학교 갈 채비를 한다. 꾸물거리다가 늦게 출발한 어린이, 늦어서 택시 탄 어린이, 자동차 키 때문에 주차장에서 다시 집으로 올라간 어린이...... 말 그대로 등교전쟁이다. 아침 두 문장을 읽으면서 어린이의 수고를 생각하곤 한다.


-오늘 학교에 오려는데 7시 50분이어서 겁났다.(최서*4.28)

-오늘 차 타고 가려는데 할아버지가 차 키를 두고 와서 다시 집에 올라갔다 내려왔다.(노경*4.17)

-아침에 늦을 뻔해서 택시를 타고 왔다. 발목이 아파서다.(전진*4. 17)


날씨 이야기도 단골손님처럼 등장한다. 갑자기 추웠던 날, 고생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추위는 계절이 봄이라 방심한 틈새로 느닷없이 나타나곤 했다. 집에 다시 갈 수도 없어 떨며 등교하던 날들이 어린이 글 속에서 생생한 감각으로 다가온다.


오래전 어떤 선생님은 비도 안 오는데 우비를 입고 출근했다. 반팔을 입고 나왔는데 예기치 못한 쌀쌀한 날씨에 참다못해 편의점에서 우비를 사 입었다고 했다. 뚜벅이 교사라 그럴 만도 한데, 그 모양이 재미있어 지금도 생각만 하면 웃음이 난다.


*추위

-아침 공기가 쌀쌀해서 손발이 떨렸다. (최은*4.17)

-오늘 학교 가는데 너무 춥다. 봄이 맞는지 모르겠다.(최민*4.9)

-오늘 너무 추울까 봐 핫팩을 갖고 왔다.(최서*4.9)

∙구하늘-오랜만에 반바지를 입고 왔는데 얘들이 추워 보인다고 했다. (4.17)


춥고 더운 날도 문제지만 느닷없는 오는 비 또한 당황스럽다. 이상하게 우산을 준비한 날은 비가 안 온다. 비가 안 올 것을 확신하고 나선 날은 기막히게 비가 온다. 우산이 없어도 문제지만 있어도 여전히 허방은 존재하는 게 비 오는 날이다. 물웅덩이나 빗물을 튀기며 지나가는 자동차 때문에 낭패를 본 일은 좀처럼 잊기 어려운 일이다. 비 오는 날 글감은 수두룩하다.


*더위

-날씨가 너무 더워서 몸이 녹아내릴 거 같다(구하*7.13)


*비

-학교 오는 길에 머리 정수리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최은*7.9)

-오늘 비가 와서 신발이 젖고 가방도 젖었다 (최서*)

-할머니가 우산 가져가지 말라고 해서 안 갖고 왔는데 비가 왔다(노경*5.18)


졸린 눈을 비비며 먹는 둥 마는 중 밥을 먹는 어린이지만 때로는 아침 일찍부터 의지를 발휘하여 뭔가를 하거나 그럴듯한 계획을 가지고 등교한다. 아침부터 피아노 연습을 하는 어린이도 있고 학교에서 뭔가를 하려고 책이나 공을 준비하는 어린이도 있다. 문구점이나 마트에서 바라는 물건을 살 멋진 계획도 한다.


*계획 의지

-아침에 1반 친한 친구 생일 선물을 사 줄 생각에 뿌듯했다.(최은*5.10)

-집에서 읽지 않은 책을 학교에 가져왔다.(황지*4.17)

-축구를 하려고 축구공을 가져왔다.(황준*4.17)

-아침에 준비물인 과자를 사러 마트로 갔다. 마트에서 과자를 사고 과자로 뭘 할지 생각하고 기대해 보았다. (고현*4.24)

-오늘 아침부터 피아노를 쳤다. 그런데 손이 덜 풀렸나 보다. 건반을 계속 잘못 눌렀다. (이희*5.3)


아침 두 문장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친구다. 친구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 게 좋을까. 보통 어린이들은 그냥 00를 만나서 반가웠다 정도로 쓴다. 이삼일 연속 누구를 만났다는 식으로만 쓰는 어린이도 있는데 그럴 때면 빨간등이 켜진다. 다시 써볼 것을 권한다. 그 친구의 표정이나 옷차림은 어땠는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생각해 보라고 한다. 한 문장을 써도 실감이 팍 오는 글이 있다. 그런 글을 읽어주기도 한다.


*친구

-지영이랑 같이 가려고 뛰어왔더니 숨이 차다. (최은*5. 15)

-아침에 오다가 신호등 근처에 현수 같은 아이가 있었는데 보니까 다른 애였다.(전진* 5.24)

-오늘 학교 앞을 지나가다가 나와 친한 친구 승준이를 만났다.(하버*4.9)


학교 오는 길은 과거만큼 풍부한 경험을 주지 않는다. 30분 이상 걸으면서 겪는 일이 지금 어린이들에게는 거의 없는 것이다. 학원 차나 부모님 차로 등하교 하는 어린이들은 조금 밋밋한 등교를 한다. 하지만 교문에서 교실까지 오는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새로운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쓸게 없다는 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하는 말이 있다.


-땅에 뭐가 떨어져 있는지 보렴.

-하늘 빛깔은 어떤지도 보고

-새들은 뭐하는지, 무슨 소리를 내는지도......


글을 쓴다는 것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차를 타고 오다 보면 놓치는 게 많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쓸거리도 부족하다. 하지만 걷다 보면 둘레둘레 무언가를 구경하게 되고 오토바이 소리에 놀라 멈추기도 한다. 빵가게에서 빵 굽는 냄새를 맡을 수도 있다. 폐지 끄는 할머니를 만나 자신도 모르게 밀차를 밀어줄 수도 있다. 그런 일들이 하나하나 쌓여 어린이 자신을 구성하는 경험과 정서가 된다.


*본 것

-학교 입구 옆 화단에 철쭉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최민*4.24)

-오늘 기다랗고 기다란 지렁이를 봤다. 비가 올려나 보다.(이효*6.8)

-자동차 밑에 주황색 공을 보고 학교에 왔는데 그 공은 민재 거였다. (최*4.9)

-학교 오는 길에 어떤 아줌마가 급하게 걸어서 바빠 보였다.(허유*5. 10)


단순히 무언가를 보고 느낀 것이 아니라 학교 오는 길에서 제법 사건이라 할만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런 경우에는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참지 못하고 말하기도 한다.


*사건

-집 문 앞에 포클레인이 공사를 해서 마음속으로 ‘여길 어떻게 나가!’ 하고 소리쳤다.(최*5월 8일) -포클레인이 나를 죽일 뻔했다. (최*5.9)

-중학생 오빠들이 자전거 타고 오다가 다칠 뻔했다.(백은*4.9)


드디어 교실에 들어오는 어린이들, 개개의 크고 작은 서사를 지닌 어린이들이 교실에 들어온다. 그 어린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교실까지 왔는지 조금이라도 들어주려는 시도가 생겼다. 바로 감정판이다. 교사들 사이에 어린이들의 감정을 읽으려는 다양한 노력이 있었고 그중 많이 활용된 도구가 감정판인 것이다. 감정판에는 어린이가 자신의 감정에 맞는 자리에 자석이름표를 붙이는 것이다.


나도 해보았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감정판이 커서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게 불편했다. 이래저래 흐지부지되었다. 나는 면대면, 인사를 한 뒤 자신의 감정을 숫자로 표현하는 방법을 찾았다. 감정은 1에서 5까지다. 1은 아주 안 좋은 상태, 5는 상괘한 상태를 말했다. 물론 늦게 오거나 어린이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면 들어주는데 약간의 문제가 있다. 그래도 최대한 어린이들의 감정을 들으려고 한다. 한 시간이 끝나고 나서도 감정 번호를 듣는다.


*감정

-안경을 쓰고 왔는데 친구들이 놀릴 거 같아서 걱정이다.(최한*)

-이제부터 4교시, 내 마음속은 맨날 생일이나 마찬가지다.(고현*7.9)

-학교 오려는데 숙제를 안 해서 엄마한테 혼났다. 나는 대들어서 마음이 편지 않다.(최서*5.24)


어린이들의 아침 두 문장을 모두 모아놓고 보면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오기까지 어린이들의 여정이 꽤나 다채롭다는 생각이 든다. 12살 어린이들의 일상이 입체적으로 드러나면서 어린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게 된다. 두 문장 쓰기는 주말마다 펴내는 꽃씨신문의 인기 꼭지. 어린이들도 좋아하지만 부모님이 더 좋아한다. 어떤 부모님은 두 문장 꼭지에 빠졌들었다고도 했다. 자녀에게 들을 수 없는 12살 어린이들의 비밀스러운 아침을, 그 속내를 두문장에서 얻게 되는 것이리라.


두 문장 쓰기는 어린이를 이해하는 창고가 되기도 하지만 글을 쓸 때 어떻게 조각조각 나누어 표현하면 좋을지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일어나기, 밥 먹는 일, 학교 오는 여정 곳곳에 수많이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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