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어린이들의 공책 쓰기, 도전과 여정
아침에 일어나면 일지를 펼친다. 오늘 할 일, 일어나서 방금 한 일을 적는다. 일지는 몇 달 사이 두툼해졌다. 써놓은 일지를 보면 지난 시간을 허투루 보낸 거 같지 않다. 공기 중에 흩어져 버릴 것만 같던 어제, 하루 사이에 희미해진 기억들이 공책에 적은 문장 속에서 의미 있는 일로 살아난다. 쓰는 순간 자잘한 일은 중요한 지위를 얻는다.
오래전 일이다. 정년 퇴임을 앞둔 노교사는 학교를 떠나면서 서운한 게 두 가지 있다고 했다. 하나는 맛난 급식이다. 이제 스스로 점심을 해 먹거나 사 먹어야 하니 급식이 그리울 수밖에 없다. 교단을 떠나면서 그리운 또 하나는 어린이들이 글 쓸 때 나는 소리라고 했다. 글 쓰는 걸 귀찮아하던 어린이들마저 글쓰기에 몰입하며 교실이 물속처럼 고요했던 순간, 어린이들의 눈빛이 그려졌다. 문득 쓸쓸했다. 나도 연필이 움직이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그리워할 것만 같아서다.
'연필'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시를 읽으면 마음이 맑게 지는 거 같다. 이오덕 선생님이 가르치던 어린이 시다. <시랑 먼저 놀 거야>(강승숙, 낮은산)에도 실려 있다. 시를 책에 실을 때 어떻게든 정성을 다해 시를 표현하고 싶었다. 고민 끝에 바늘과 실을 가지고 네 시간 넘게 홈질을 하며 시를 썼다.
시 한 편에 들어있는 추억을 곱씹으며 바느질을 했다. 시를 쓴 어린이는 연필이 친구였을지도 모른다. 이 시절 어린이들은 종일 연필을 붙잡고 공책에 필기를 하고 집에 돌아가면 일기를 썼을 것이다. 필통에 가지런히 연필을 깎아놓은 친구를 몹시 부러워했을 것이다.
이런 추억을 공유한 나는 운동장에 떨어진 연필을 보면 외면하지 못한다. 덕분에 교탁 한쪽 연필꽂이에는 연필이 가득했다. 지금 어린이들은 하찮아 보여 지나갈 수도 있는 연필이 내겐 정겨운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연필이 일을 하다가', 이 구절을 읽을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친구가 있다.
4학년 때 같은 반, 복심이다. 복심이는 반듯한 몸가짐으로 글씨를 쓰곤 했다. 일기장도 공책도 한결같이 가지런했다. 붓글씨에 한석봉이 있다면 공책 글씨에는 하복심이 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당시 문구류는 질이 많이 떨어졌다. 연필 심은 연해서 글씨를 쓰면 흐릿했다. 어린이들은 진하게 글씨를 쓰려고 수시로 침을 묻혀야 했는데 아차 하는 순간 공책에 구멍이 나거나 찢어지곤 했다. 복심이 공책은 달랐다. 흠없이 깔끔했다.
복심이처럼 그런 공책을 갖고 싶었다. 애를 썼지만 내가 쓴 글자는 고르지 않았고 이쁘지 않았다. 끈기가 부족하여 공책 한 바닥을 늘 채우지 못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름 잘해보려는 마음이 컸던 거 같다. 결국 마음에 차는 공책 한 권 없이 학창 시절을 마쳤다.
교사가 된 뒤에도 공책에 대한 관심은 여전했다. 글씨가 반듯한 어린이를 보면 감동하기 일쑤였다. 그럴 때는 참지 않고 공책을 들어 다른 어린이들에게 보여주었다. 글씨를 반듯하게 쓰는 어린이 대부분은 공책을 빼곡하게 채웠고 마지막 장까지 남기지 않고 썼다. 다른 어린이들도 그렇게 공책 정리를 하도록 돕고 싶었다. 공책에 대한 콤플렉스는 공책 정리에 대한 로망을 갖게 했고 공책 정리 하는 방법을 궁리하게 만들었다.
초임시절에는 칠판에 정자체를 인쇄한 듯 글씨를 잘 쓰는 교사가 많았다. 그런 교사가 담임하는 반 어린이들 공책은 대개가 정갈했다. 당시 성실하게 공책을 쓰는 건 미덕이었다. 이런 인식은 오랜 전통처럼 이어졌다. 하지만 1990년대 열린 교육이 쓰나미처럼 몰려오면서 교단은 순식간에 변했다. 칠판 글씨를 쓰는 교사는 보기 드물게 되었고 공책을 쓰는 어린이도 보기 어려워졌다. 교사가 칠판 글씨를 쓰며 수업을 하거나 어린이들이 분단으로 앉아하는 수업은 뒤쳐진 수업으로 치부되었다.
그런 흐름을 따르지 않으려고 했다. 여전히 칠판도 쓰는 일도 중요했다. 수업을 할 때 복사물을 적게 쓰고 이면지에 글을 쓰거나 공책을 조금이라도 썼다. 공부한 내용을 공책에 정리하는 데에는 공을 들이지 못했지만 어린이들이 다양한 글을 쓸 수 있게 했다. 시와 그림일기, 관찰일기와 주제 글쓰기를 주로 했다.
열린 교육 열풍은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급격했고 강제적이었으며 좋은 방식도 내다 버리는 오류를 낳았다. 공책이 놓였던 자리에는 하얀 프린트물이 대신했다. 수업시간에 프린트물이 있으면 뭔가 준비한 거 같았고 있어 보였다. 덕분에 어린이들은 연필로 쓸 일이 줄어들었다. 줄을 긋거나 문제를 쓰거나 지도를 그릴 일도 없어졌다. 낱장 학습지에 그려진 칸은 긴 답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학습지는 제한된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에 어린이들은 긴 글을 쓸 이유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린이들은 A4종이 한 장에 줄을 긋고 칸을 만드는 일이 낯설어졌다. 수평에 맞게, 간격이 일정하게 줄을 긋는 일, 줄이 없어도 수평을 유지하며 글을 쓰는 기능은 퇴화되고 있었다. 마트에서 김치와 햇반 포장 반찬을 사 먹다 보면 김치 담그는 능력, 밥 짓는 능력이 퇴화되는 것과 비슷했다. 이런 현실에 문제의식을 가진 교사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배움 공책이 등장했다. 배움 공책 쓰기가 조용히 퍼져가는 흐름 속에 나도 참여했다,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는 첫날, 어린이들에게 줄공책을 하나씩 나누어 준다. 제목 쓰는 자리에 배움 공책이라고 쓴다.
배움 공책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제자가 쓴 배움 공책을 먼저 보여준다. 어린이들은 감탄하면서 정말 5학년이 쓴 거냐고 묻는다. 마음 한쪽에서는 해보겠다는 강렬한 마음이 일어난다. 또 다른 쪽에서는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도 도사린다. 이때 설득을 한다. 그날 배우고 생각한 것을 기록하는 일은 중요하다. 중요한 것을 정리하고 더 알아보고 싶은 것을, 생각하고 느낀 것을 공책에 써야 진짜 공부라고 했다. 한두 번 하고 말 일이 아니다. 꾸준히 설득하면서 이끌어야 한다.
오래전 독일문화원에서 슈타이너 학교 어린이들의 공책을 보았다. 그 감동은 잊을 수 없었다. 전시한 공책은 교과공책이면서 동시에 예술 공책이었다. 나도 종종 예술공책을 쓰고 있다. 어린이들이 쓰는 공책과 달리 더 예술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 일기장을 어린이들에게 보여준다. 값을 매길 수 없는 백만 불짜리 선생님의 예술공책을 보여주겠다고 하면 어린이들은 몹시 궁금해한다. 살짝 공책을 보여주고 나면 그 백만 불짜리 한 번만 더 보여달라고 야단이다.
이때 한마디 덧붙인다.
-얘들아, 우리가 미술을 배우는 것은 옷도 어울리게 입고 자기 방도 감각 있게 꾸미려는 거야. 또 공책정리도 예술적으로 하기 위해서지. 그러니까 교과시간 공책을 정리할 때에도 멋지게 해 보자.
어릴 때 8절 도화지를 펼쳐놓고 그림을 그릴 때면 그렇게 망막할 수가 없었다. 도화지는 바다처럼 넓어 보였다. 잘못 손댔다가는 망칠 거 같아 주저하곤 했다. 공책을 펼치면 어떻게 써야 할지 쩔쩔매는 어린이가 있다. 서랍 안에 작은 상자를 넣고 양말이나 속옷을 정리하듯 공책도 칸을 나누어 쓰게 했다. 홈질하듯 점선을 그어 공책을 네 칸으로 나눈 뒤 글을 쓰게 했다.
네 칸을 나눈 뒤 왼쪽부터 한 칸씩 내용을 채워갔다. 연필, 연필색연필, 형광펜으로 줄을 긋고 색을 칠하면서 공책정리를 하게 했다. 걸음마하듯 천천히 했다. 남자 어린이들이 공책정리를 더 어려워했다. 연필 쥐는 것도 서툴고 글씨도 꼬부랑에 크기까지 들쑥날쑥했다. 제가 써놓고도 마음에 안 들고 그래서 더 쓰기 싫은 듯했다. 내가 먼저 시범을 보여야 했다. 칠판에 써야 할 내용을 먼저 쓰면서 따라 쓰게 했다. 그렇게 정리방법을 익히게 했다.
공책 정리의 즐거움을 더하기 위해 다른 재료도 썼다. 국어 시간, 윤동주 시를 배울 때에는 붓펜으로 윤동주 이름을 천천히 써보게 했다. 시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색종이로 선물을 만들어 공책에 붙이기도 했다. 공책은 단순히 배운 내용을 정리하고 요약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느낌이나 감상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
사회 시간, 난해한 위선과 경선을 배울 때에는 지구본을 공책에 직접 그리고 표시하게 했다. 교과서나 영상을 눈으로 보거나 읽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한번 읽은 내용을 공책에 다시 정리하게 했다. 공부시간이 끝날 즈음에는 공부한 소감도 썼다. 쉬는 시간에는 공책에 쓴 내용을 확인하고 도장을 쾅 찍어주었다.
보통은 공책을 네 칸으로 나누어 정리를 하지만 종종 다른 방식을 쓰기도 했다. 손바닥을 그려서 내용을 적기도 하고 나무와 뿌리 형태를 활용하여 중요한 개념을 정리해보기도 했다. 낙서와 그리기를 좋아하는 어린이들은 이런 활동에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배움 공책은 거의 모든 교과시간에 썼다. 공부가 시작되면 어린이들은 교과서와 배움 공책을 동시에 폈다. 연필과 형광펜, 연필색연필도 같이 준비했다. 공책에 배운 시를 쓰고 외웠고 창체시간에 전교 임원 선거가 있으면 후보연설을 들으면서 중요한 걸 적었다.
멍하니, 수동적으로 영상을 보지 않고 메모하면서 듣도록 했다. 활동 끝에는 수직선을 그려서 자신의 활동을 평가하는 시간도 가졌다. 어린이들은 빈 공책에 자신의 생각과 배운 내용을 정리하는 일에 조금씩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공책이 채워지는 걸 보며 차츰 보람을 느끼는 듯했다.
배움 공책을 쓰면서 칸을 나누고 글을 쓰고 표를 그리는 일에 익숙해진 어린이들은 관찰일기를 쓰거나 보고서 등 다른 형식의 글을 쓸 때에도 조금씩 힘을 발휘했다. 과학시간 관찰교과서에 청경채 관찰일지를 쓰는 활동이 있었다. 우리 반은 칸넓이가 좁은 실험관찰책 대신 자유노트에 관찰일기를 썼다. 직접 칸을 그리고 변화과정을 기록했다.
1학기에 배움 공책을 쓰면서 공부한 결과 2학기에는 훨씬 익숙해졌다. 무엇보다 어려운 역사를 배울 때 1학기에 부지런히 그려본 지도 공부가 도움이 되었다. 1학기 때에는 지도를 그리면서 우리나라 행정 지명과 주요 산맥과 강을 표시하고 외웠다. 시간마다 외우고 익혔다.
처음에는 고구마를 그리자고 할 정도로 그려놓은 지도는 말 그대로 고구마였다. 수없이 그린 끝에 드디어 2학기 역사공부를 할 때에는 모양 있는 지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1학기에 무수히 그리며 익힌 지도공부는 2학기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리나라 지도뿐 아니라 이제는 세계지도 그리기에도 도전했다. 국어교과의 문학작품을 묵독하며 읽는 시간이었다. 그간 공부하고 배운 실력을 발휘하여 묵독하면서, 모둠 친구와 번갈아 읽으면서 공책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린이들은 모르는 낱말의 뜻을 찾아 공책에 정리했다. 작품에 나오는 켈리선생님의 남부지방 억양을 이해하기 위해 아메리카지도를 그리고 지명을 찾아 표시했다. 어린이들은 무슨 흥이 났는지 그리지 않아도 되는 지명까지 그리고 표시했다.
공책정리에 익숙해지는데 여러 달이 걸린 어린이도 있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공책정리를 해나갔다. 종종 멈추기도 했지만 끈기를 다해 마무리한 날에는 자랑스러운 듯 결과물을 내밀었다. 마지막 주자가 되어 공책정리를 더디게 익힌 어린이가 어느 날 집에서 해온 과제를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기념사진을 찍어주었다. 물론 이날 이후로 여전히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열심히 해온 날의 실력은 종종 발휘되곤 했다.
보통은 지나치고 말 일도 기록했다. 모둠발표를 하는 경우, 자기 모둠이 발표하고 나면 딴 척하는 어린이가 있기 마련이다. 이때 시상대를 그려놓고 긍정 평가 활동을 하면 집중력이 높아진다. 체육대회 같은 즐거운 행사를 마치고도 기록을 남긴다. 역시 시상대 형식의 도형을 그리고 즐거움과 재미 정도를 평가해 본다. 수직선을 그려서 태도를 평가하고 마지막으로 소감을 쓴다. 그런 뒤 짝토의를 하고 발표를 하고 나면 경험한 행사는 더 뜻깊게 남는다.
두 문장 쓰기와 배움 공책 쓰기가 튼튼하게 바탕이 되면 수행평가보고서도 퀄리티 높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어린이들은 친구가 만든 결과물을 보고 자극을 받아 의욕을 불태우기도 했다. 나는 어린이들이 쓰고 만드는 과정 사이사이에 적극 개입을 했다. 더 좋은 결과물을 내도록 편집자가 되어 지도를 한 것이다. 공책정리에 어려움을 겪는 어린이는 친구들 동의를 얻어 보기 보기 작품을 보면서 도움을 얻었다. 함께 성장하도록 서로 돕게 했다.
어린이들의 작품과 공책은 결과물이 나오는 대로 서로 돌려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어 밴드에 올리기도 한다. 어린이들은 표현의 즐거움을 맛보기도 하고 서로의 결과물을 보며 자극을 받기도 한다.
나는 어린이들이 쓴 문장과 공책에 쓰고 그린 그림, 학습지의 표현된 것들을 사랑한다. 표현한 결과물을 보면서 어린이들이 얼마나 큰 에너지를 갖고 있는지 감탄하고 놀랄 때가 많다. 물론 여기에 이르기까지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낯선 영역에 익숙해지기까지 어린이들은 어렵다고 수시로 투정을 한다. 그러면 설득을 하면서 이끌어간다. 배운 것, 느낀 것을 기록하지 않을 때와 기록할 때 차이는 크다. 어린이들이 그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어린이들은 멈추라고 할 때까지 계속 쓰고 그리기도 한다.
한 해가 끝나고 나면 보통은 버리고 갈 공책이나 학습지를 달라고, 가져가겠다고 하는 어린이가 많다. 그런 어린이를 보면 기쁘다. 내게 공책 쓰기에 영감을 준 어린이들, 그 어린이들 덕분에 오늘도 나는 일지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