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으로 떠나는 두 달간의 여정(1)
드디어 175년 동안 바다를 품고 살았던 갈라파고스 거북 이야기, <해리엇>을 읽기 시작했다.
동화는 삼 년째 5학년 어린이들에게 읽어주고 있다. 매력적인 동화지만 삼 년을 잇달아 읽어주려 하니 조금 물린다.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했다. 고민 끝에 <해리엇>을 처음 읽는 마음으로, 천천히 다시 읽어보았다. 독서록도 썼다. 일종의 연구노트인 셈이다. 이미 여러 번 읽은 책이지만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기 전 다시 읽으면서 생각하고 고민한 것들을 적었다. 예술적인 표현이 필요한 것도 시범 삼아 해 보았다.
1학기에는 어린이들에게 보통 짧은 동화나 그림책을 읽어준다. 짝토의를 하고 독서록을 써가며 읽는다. 이렇게 하면서 듣기와 읽기, 쓰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는 2학기에 들어서면 제법 긴 동화를 읽는다.
장편을 읽어줄 때에는 고민이 많다. 한 달에서 석 달가량 시간을 들이는 활동이기에 당연 신중할 수밖에 없다. 책을 고르는 일부터 활동 내용까지 어떻게 어린이들과 잘 읽을 수 있을까 오래 생각하며 준비한다. <해리엇>은 그런 여정 끝에 준비한 작품이다.
책을 쓴 작가 '한윤섭'은 여러 권의 책을 냈는데 동화부터 소설, 희곡까지 쓰는, 각별한 이력을 가진 작가다. 동화는 16개의 소주제로 나누어져 있다. 한 차시에 소주제 한 편씩 읽어주기에 적당하다.
책은 흥미진진하면서도 어린이들과 탐구할 주제가 많다. 복선과 은유가 있으며 인류의 진화, 인간과 동물의 관계, 삶과 죽음의 문제, 갈등과 해결, 사랑과 희생 등 살아가면서 어린이들이 맞닥뜨릴 수 있는 얘깃거리가 풍부하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개성 있고 생동감 넘친다. 거북이 해리엇, 원숭이 찰리, 개코원숭이 스미스, 너구리 올드 등 인물의 성격과 이름이 잘 들어맞는다. 연극을 위한 희곡을 쓰는 작가가 쓴 동화라 그런지 이야기를 읽다 보면 연극이나 영화를 보는 듯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첫 장을 동학년 선생님들과 낭독한 적이 있다. 조금은 낯선 경험일 수도 있지만 우린 함께 두 문장씩 돌아가며 읽었다. 어릴 때 부모님이 이야기를 읽어준 경험은 없는 교사 중에는 어린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일을 낯설어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이런 경험은 뜻밖의 자극이 되기도 한다.
첫 장의 제목은 '삼 일 간'이다. 주인공으로 보이는 원숭이 찰리는 한 시간째 바닥만 보고 있다. 다른 동물들은 그를 주시한다. 정적을 깨고, 사육사가 순찰을 돈다. 사육사는 동물에게 손전등을 비추었지만 모두 꼼짝하지 않고 있으니 별일 없구나 생각한다. 175년 살아온 거북이 해리엇이 눈을 감고 있는 걸 보고 사육사는 일을 마쳤다는 듯 자리를 떠난다.
그 순간 미동도 않던 원숭이 찰리가 움직인다. 철창 안 땅을 파더니 두 개의 열쇠를 손에 쥔다. 문을 따고 너구리 올드를 꺼내준 뒤 해리엇에게로 간다. 수명이 얼마 남았는지 감지할 능력을 가진 올드는 거북이 해리엇의 냄새를 맡는다. 수명이 삼일 남았다고 한다.
첫 장을 함께 읽은 뒤 선생님들과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어 제안을 하나 했다.
-첫 장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 한번 찾아볼까요? 영화를 만든다면 첫 장 마지막 부분에 어떤 음악을 쓰면 좋을까요.....
선생님들은 부지런히 검색을 했다. 좀처럼 찾는 게 쉽지 않나 보다.
-베토벤의 운명!
젊은 남자 선생님 말을 듣더니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끄덕였다. 우리는 유튜브를 검색해서 운명교향곡을 감상했다.
-어, 정말 1장 분위기랑 잘 어울려요!
-수명이 삼일 남은 해리엇의 상황과 맞는 거 같네요.
첫 장면부터 연극적이기도 하고 영화 같기도 한 동화, 선생님들은 교실로 돌아가 이 동화를 더 열심히 읽어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여러 번 읽어서 데이터가 많은 나로서는, 나의 책 읽기 경험담을 젊은 후배교사와 공유하고 싶었다. 이미 지난해 만든 우리 반 독서록을 본 선생님들은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 <해리엇>을 읽고 독서록을 써나갈지, 활동을 펼칠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얘들아, 어제 선생님들하고 해리엇 첫 장을 읽었어. 아주 재미있게! 그런데 선생님들이 우리 반이 쓸 독서록에 대한 기대가 커. 우리 열심히 해서 다른 반 선생님하고 친구들에도 보여주자.
-네! 그런데 선생님들도 모여서 책 읽어요!
▪나도 <해리엇>을 읽고 있다. 내용이 궁금해서 도서관에서 <해리엇>을 빌려서 몇 페이지 읽었다. 선생님이 되면 그냥 공부만 가르쳐 주시는 줄 알았는데 선생님들도 연수를 하신다니! 공부는 끝이 없는 것 같다.
(임규연)
어린이들은 자부심에 찬 눈빛으로 결의를 다지는 듯했다. 우리는 먼저 앞으로 읽으면서 정리할 <해리엇> 독서록을 만들었다. 도화지를 아코디언 북처럼 만들어 쓸 예정이다. 이번에는 다른 해보다 더 멋지고 아름다운 독서록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독서록이 아닌 예술 독서록이다. 나는 때때로 미리 정성 들여 쓴 독서록을 어린이들에게 보여줄 것이다.
새벽 5시, 맞은편 아파트에도 불 켜진 곳이 한 군데 있다. 몇 호인지 모르지만 티브이 화면이 켜 있다. 보이지 않지만 맞은 쪽 누군가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는 듯하다. 문득 생각나서 태블릿을 열어 갈라파고스를 검색했다. 어린이들과 해리엇이 태어난 갈라파고스가 어떤 곳인지 알아볼 생각이다.
검색을 했더니 영상이 여러 개가 뜬다. 그중 하나를 클릭했다. 화면 하나를 클릭하자 시원한 바다가 드러난다. 돌비석같이 컴컴하게 생긴 이구아나도 나온다. 엄마 잃은 바다사자도 나온다. 모두들 희한하게 생겼다. 여기는 대한민국, 저쪽은 갈라파고스, 같은 지구에 사는데 어쩌면 이렇게 생긴 모양이 다른지 신기할 따름이다. 찰스 다윈은 이렇게 다른 모습에 궁금증을 느끼며 연구를 시작했을 것이다.
책 읽는 첫날, 이야기의 차례를 보며 어떤 이야기일지 짐작하는 활동을 했다. 마음에 드는 소제목 두세 가지를 고른 뒤 까닭을 생각하여 짝토의를 하고 발표도 했다. 스탬프로 찍어준 세계지도에 오스트레일리아와 갈라파고스, 영국을 찾아 표시하고 색도 칠했다. 이곳은 동화가 펼쳐지는,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곳이다.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은 상당히 넓다. 175세 된 거북이 해리엇이 등장하는 것까지 생각하면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의 규모가 큰 이야기다.
첫 장을 읽으며 간간이, 다 읽은 뒤에도 어린이들은 독서록을 썼다. 이야기에는 원숭이 찰리, 수의사, 늙은 거북 해리엇이 등장한다. 찰리는 수의사가 가지고 있어야 할 열쇠를 쥐고 있다. 어떻게 얻은 것일까, 궁금증이 일어난다.
▪선생님이 새벽 5시에 일어나셔서 갈라파고스 영상을 보신 게 대단하시다. (김원형)
▪<해리엇>1장을 읽었는데 엄청 재미있었다. 선생님께서 새벽까지 열심히 주말 신문에 실을 글을 쓰시는 것이 대단하시다. 오늘 집에서 하는 30분 공부는 <해리엇>이다. 김승찬의 <해리엇> 핵심어가 마음에 든다.
(김현민)
▪선생님이 꽃씨신문에 실을 글을 새벽에 적고 계시다니! 선생님이 새벽에 일어나셔서 우리가 지금 꽃씨신문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도 궁금해서 갈라파고스에 관한 영상 하나 보았는데 이구아나, 펠리컨 등 보기 힘든 동물이 많아서 한번 가보고 싶다. 김현민, 이승윤의 <해리엇> 소감이 마음에 든다. 일단 현민이는 죽음'에 관한 감정이 해리엇에게 없다고 했는데 승원이는 기력이 없는 것이지 마음으로 모든 것을 나타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둘 다 맞는 거 같다. (송규린)
수업을 마치고 전담시간에 어린이들이 쓴 독서록을 살펴보았다. 어린이들이 쓴 독서록을 볼 때면 두근거린다. 수업 중에 알 수 없었던 어린이들의 속내를, 그 발랄하고 창의적인 감각을 만나는 즐거움 때문이다. 늘 독서록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피드백을 해온 덕분에 이제는 남자 어린이들도 제법 독서록 정리를 잘한다. 글씨도 반듯해졌다. 나는 책을 읽어가며 어린이들에게 독서록을 꾸밀 재료를 나눠주거나 스탬프를 찍어줄 것이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어린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창의적인 표현을 할 것이다.
▪선생님이 독서록을 완성하면 독서록 전시회를 한다고 해서 더 열심히 정리해야겠다. 김태희의 <해리엇> 소감이 마음에 든다. 마지막으로 해리엇이 가는 길이 죽기 직전에 바다로 가는 것일 거 같다고 했는데 그럴 것 같기도 하다. (황윤아)
책은 작가 한윤섭이 썼지만 책을 읽는 어린이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느낌과 생각으로 읽고 정리할 것이다. 때로는 작가가 생각하지 못한 질문과 생각을 가지고 읽을 수도 있다. 독서록에는 자신이 생각한 것을 쓰고 자신이 고른 아름다운 문장도 쓸 것이다. 읽을 때마다 핵심어를 찾아 쓰고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 추론도 할 것이다. 생각한 장면을 그려도 볼 것이다. 어려움에 처한 인물에게 위로의 선물도 만들어주고 노래도 불러줄 생각이다.
▪해리엇의 갈라파고스제도는 나중에 버킷리스트 목록에 넣고 싶다. 가보고 싶다. 그리고 최대한 예술 독서록을 잘 만들고 싶다. (김태희)
장면에 어울리는 음악이나 시를 찾아 감상할 것이며 인상 깊은 장면은 연극으로 해볼 생각이다. 주말에 어린이들은 그간 읽은 이야기를 식구들에게 간추려 들려주고 식구들의 반응을 적어 독서록에 붙일 것이다. 그 모든 것은 독서록에 기록할 것이다.
11월 어느 날 작가 만남 행사를 마치고 나면 기념사진 찍은 것과 작가만남 소감까지 써서 독서록을 완성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독서록 전시회를 열려고 한다. 멋진 독서록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동화 <해리엇>은 하루면 충분히 읽을 수 있다. 반나절만에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두 달 동안 읽고 쓰고 연관 짓고 예술적인 표현을 하면서 천천히 이야기의 맛을 보려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