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 모모의 도시를 쓰다

풍경 묘사글 2021. 4. 21

by 강승숙

인천에서 6학년을 가르칠 때다. 대도시 한가운데 자리한 학교는 사방이 온통 회색 건물이었다. 마치 '모모'의 회색 도시 같았다. 볼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어린이들은 6학년이 되도록 교실 창 밖 풍경에 관심을 둔 적이 없는 듯 했다.

그림책 <창 너머>(찰스 키핑, 시공주니어)의 주인공 제이콥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늘 창 밖 거리를 구경한다. 창밖 거리는 제이콥이 아는 유일한 세상이다. 사연은 끝내 나오지 않지만 제이콥은 몸이 불편하거나 병약한 어린이로 보인다.



제이콥은 창에 매달려 건물 아래 풍경을 보며 지낸다. 덕분에 골목에 지나다니는 마을 사람들과 여러 가지 일에 대해 잘 안다.


-저기 과자가게는 제이콥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지요.

-'쭈그렁탱이' 할머니와 비쩍 마른 그녀의 개는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특히 노파와 말, 가난한 소년을 눈여겨본다. 그리곤 이들에 대해 궁금증을 갖기도 하고, 벌어진 일에 놀라기도 한다. 묘한 슬픔이나 안타까움을 느낀다. < 창 너머>는 여러겹 찍은 석판화를 통해 소년이 느끼는 감정이나 불안이 강렬하면서도 우울한 색감으로 표현되어 있다.



문득 우리 어린이들도 제이콥처럼 창 밖 풍경을 본다면 무엇을 발견하고 느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회색 도시지만 쓸쓸함 말고 희망, 또는 어떤 궁금증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1교시 국어시간이다. 칠판을 향해 있던 책상을 모두 창 쪽으로 위치를 바꾸게 했다. 책상을 바꾸자 저마다 와, 어! 하며 감탄한다. 같은 공간인데, 책상의 위치만 바꾸었을 뿐인데 새로운 다른 공간에 들어온 기분을 느끼는 듯했다. 이미 어린이들은 창 밖 풍경에, 낯선 글감에 마음이 끌린 듯 했다.


눈에 보이는 창밖 풍경은 주택, 빌딩, 교회뿐이었다. 언뜻 무미건조한 도시 풍경으로 보였지만 안개 낀 날이라 은근히 감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다.


-일단 전체적인 풍경을 살펴보고 그에 대한 인상을 써보자. 그리고 눈길이 가는 곳 두세 군데 골라서 건물의 특징이나 보이는 것, 색감에 대해 써보렴. 마지막에는 이렇게 지나치던 풍경을 천천히 보면서 ,글을 쓰면서 무엇을 느꼈는지도 쓰고......


시간이 흐르면서 교실은 물속처럼 조용해졌다. 좋은 글이 많이 나올 거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글을 쓴 뒤 느낌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남자 어린이 경주는 첫째 시간에 이렇게 즐겁게 공부한 것은 처음이라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교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

김한*(인천 주안초 6년)

친구들 머리 사이사이로 유리창 너머 풍경이 보인다. 약간 뿌연 하늘에 전깃줄 세 개가 보인다. 그리고 새 한 마리가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갔다. 새가 지나다니기에는 너무나도 집이 많고 어수선하게 늘어져 있었다. 창 가까이에 있는 파란 지붕, 빨간 지붕은 크고 작은 집, 그 뒤로도 보이는 우뚝 선 큰 건물, 창 너머에는 건물이 아주 많다. 그리고 저 멀리 서있는 나무들과 큰 전봇대들도 많다. 그리고 지붕색깔만큼 다양한 색의 물탱크도 보인다. 또 다른 물탱크보다 조금 더 큰 낡은 헝겊 같은 것으로 덮여있는 지저분한 물탱크도 있다. 이 주변에서는 자주 볼 수 없었던 식물도 심어져 있다.

이 많은 건물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 은 파란 지붕이다. 빨간 지붕도 되고 여러 색깔 지붕도 할 수 있는데 왜 파란 지붕이 더 많을까? 사람들은 다른 색보다 파란색 지붕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지금도 내 눈에 파란색 지붕만 보인다. 또 새도 계속 지나다니는데 새들이 집과 집 사이를 탐험하는 것처럼 집들 사이를 푸드덕거리며 날아다니고 있다. 나중에 한 번 새들처럼 우리 동네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2006. 4. 13)

<교실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

류이* 인천주안초 6년

우리 교실 창밖으로 물탱크가 보인다. 물탱크에는 헝겊 같은 것이 감아져 있다. 또 교회가 보인다. 그 교회를 보니 우리 교회보다 커서 우리 교회도 저렇게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창 밖을 다시 보니 나무가 별로 없다. 나무 대신 전봇대와 건물들 뿐이다. 제일 큰 건물은 교보생명이다. 그 옆으로는 아파트가 있다. 어느 집에서는 연기가 나온다. 하늘은 파랗고 저 먼 곳 하늘은 하얀색이다. 옥상에는 주로 물탱크들이 있다. 그 중 헝겊 같은 것이 감아져 있는 것은 한 개이고, 나머지는 다 그대로 놔두었다. 밖을 보니 할머니가 계신 시골과는 완전히 딴 판이다. 우리 교실은 3층이어서 다른 2층집 옥상이 훤히 보인다. 내 앞에 있는 조은이가 방금 잠자리가 지나갔다고 하는데 벌써 잠자리가 날아다니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어느 옥상에는 옥탑방 같은 것이 있다. (2006. 4. 13)


어린이들은 덤덤한 듯하면서도 꼼꼼하게 도시 풍경을 묘사했다. 어떤 부분은 아쉬움을, 또 어떤 부분은 신선한 호기심을 내비쳤다. 자신이 사는 공간에 어떤 바람을 갖기도 했다. 어린이들은 이 시간을 특별하고 흥미로운 시간으로 기억했다.

그 뒤로도 일 년에 한 두번 정도는 어린이들과 창 밖 풍경을 보면서 글 쓰는 시간을 가졌다. 2021년, 코로나로 등교를 격 주로 하던 때가 있었다. 학교에 나오지 않는 주간은 줌으로 수업을 하던 시기였다. 이 때는 교실이 아닌 집에서 아침 글쓰기 시간에 창 밖 풍경을 보며 글쓰기를 했다.


<밝고 어두운 풍경> 김리원

하늘은 밝기도 하면서 어둡다. 가운데는 밝지만 왼쪽과 오른쪽은 어둡다. 또 하늘에 바로 밑에는 산이 있다. 산에는 아직 꽃이 피지 않았다. 산에 있는 나무들은 연두색과 어두운 초록색이다. 여기서는 아파트, 건물이 많다. 엄마 회사도 보인다. 또 오른쪽에서 창 밖을 보면 왼쪽 밑에 타워를 만들고 있는 거 같다. 학교도 보이지 않는다. 구름들은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창밖 풍경> 김은우

오전 9시 3분, 안방 창 밖에 하늘은 맑고 푸른 하늘이다. 왠지 하늘이 바다처럼 보인다.


<구름> 박수아

창밖 하늘에 구름이 아주 빠르게 움직인다. 누군가를 찾으러 가는 걸까? 누구를 찾으러 가는 걸까? 같이 놀 구름을 찾으러 가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와 술래잡기를 하느라 도망치고 있는 걸까? 창밖 구름은 언제쯤 달리기를 멈출까?


<화가 난 구름> 이도율

오전 9시 4분, 창 밖을 보니 왼쪽에 산너머에 자이 아파트 위의 구름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구름이 화가 났는지 색깔이 거뭇하다. 산들이 어둡게 보인다. 구름이 어두워 산이 어둡게 보이나 보다. 창밖 바로 앞에 한주아파트가 있다. 그 위에도 구름들이 괴물처럼 모양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구름이 왜 이러는지 속마음을 알고 싶다. 구름이 거뭇하니 비가 올 것만 같다.


짧게 쓴 어린이들도 있고 조금 길게 쓴 어린이도 있다. 풍경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쓴 흔적이 느껴진다. 글마다 자연스레 스민 감성이 물씬 풍긴다. 어린이들은 구름을 보면서 블랙홀, 술래잡기, 바다, 괴물 같은 것들을 떠올렸다. 저마다 가진 개성이 묻어났다. 풍경을 보고 글을 쓰면 자기도 모르게 감성이 우러나온다. 번뜩이는 표현도 나온다. 풍경 쓰기의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비 오는 날은 놓치지 않고 묘사글 쓰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다. 이런 날 글쓰기에는 복도가 좋다.



아무도 없는 복도로 나가 우리 반 어린이들만 창가에 늘어선다. 고요한 복도, 침묵 속에서 어린이들은 비를 관찰한다. 살짝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 본다. 어린이들은 손에 떨어지는 비의 감각, 바람을 느끼면서 글을 쓴다.


비 오는 날

이예림(인천주안초 4년)

비가 온다. 바람과 함께 내린다. 소리는 바람과 함께 폭포처럼 요란스럽다. 빗줄기는 얇다. 잘 보이지 않는다. 건너편에 창문 사이로 아이들이 보인다. 아이들이 의논을 하는 것 같다. 무슨 시간일까? 멀리서 아이들 소리가 진동으로 퍼진다. 화단으로 지나가신 꽃무늬 우산을 쓰신 할아버지께서 하얀 고무신을 신고 지나가신다. 비가 고무신을 씻어 주었다. 화단에 풀은 비를 맞아 이슬이 맺히고 유난히 반짝거린다. 또 진해지면서 흔들거린다. 꼭 나를 부르는 것 같다. (2007.7.2.)


비 오는 날

안가영(인천주안초 4년)

처마 밑에서 “후드득” 소리가 난다. 비에 젖은 꽃잎은 아름답다. 바람이 쌩 불면 비는 옆으로 내려온다. 시간이 갈수록 비가 많이 온다. 글을 쓰는데 어떤 아저씨가 우산을 쓰고 하얀 보따리를 들고 지나간다. 건너편 1, 2학년 교실에서 말소리가 들린다. 옥상엔 비기 고이고 있다.

갑자기 작은 새들이 지나간다. 꼭 집을 찾으러 가는 것 같다. 친구들은 “아이 추워”하고 말한다. 그 앞에는 5학년 언니, 오빠들이 가꾸는 꽃밭이 있다. 그 꽃밭의 꽃들은 바람에 휩쓸려서 춤을 추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뒤 건물에서는 도우미 어머니께서 복도 청소를 하다가 수돗가에 가서 마포를 빤다. 이 글을 쓰고 교실에 들어가고 몇 분쯤 지나자 비가 멈추었다. (2007.7.2.)


비 오는 날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안온함 속에서 창 밖 풍경을 즐기게 된다. 건물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마음도 비슷하다. 그런 마음 때문에 비 오는 날은 더 감상적인 글을 쓰게 된다. 같은 공간, 같은 풍경이 시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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