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나무 하나, 마음에 품게 되었다.
열한 번째 학교에 부임했다. 춘천 남부초, 퇴임지 학교다. 교정은 제법 마음에 들었다. 등나무와 철쭉, 은행나무와 주목이 전부였던 예전 학교와 달리 나무의 수종도 많고 꽃도 다양했다. 느티나무, 수수꽃다리, 붉은 병꽃나무, 모란, 작약, 장미, 비비추, 자주달개비, 심지어 할미꽃도 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목련 나무가 있어 반가웠다.
교실 문을 열었다. 어제 흔적이 남아있는 교실, 새 학기 새 기분이어서 그런지 어린이들은 청소를 깨끗하게 해 놓는다. 커피를 타기 전, 목련 나무 아래에서 방금 주운 목련 아린을 작은 종이에 붙였다. 그리고는 짙은 청색 머메이드지에 흰 펜으로 한 문장 썼다.
목련나무 아래에서 주운 아린, 두 번째 벗은 털옷으로 보인다.(2022. 3. 4.)
종이액자를 만든 뒤 칠판 옆 게시판에 붙였다. 교정을 돌아보며 식물관찰을 하는데 드는 시간은 10분 남짓하다. 아침 시간은 금쪽같지만 가능한 이런 시간을 즐겨보기로 했다. 식물일지를 쓰거나 떨어진 잎을 종이액자에 붙이는 일은 나를 위한 작은 위로이면서 어린이들에게 교사의 삶 한쪽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미술 첫 단원 주제는 ‘시간의 변화’다. 목련 아린으로 시작해서 목련꽃, 목련잎, 목련 열매, 이런 식으로 관찰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무엇보다 어린이들에게 관찰을 계기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같은 나의 목련 나무를 하나씩 선물하고 싶었다.
교정으로 나가기 전 이상교 시인의 ‘목련’을 감상했다.
목련
이상교
봉오리 속에
흰 새 한 마리씩
감추고 있다가
호르륵 호르륵
다 놓아주었다.
몇 번을 읽게 되는 시다. 시를 읽으면 느린 영화처럼 꽃이 피면서 새가 날아가는 장면이 보이는 듯하다. 시인이 보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시다. 어린이들은 목련 꽃이 핀 뒤라야 이 시의 아름다움을 실감할 것이다. 3월 17일, 목련수첩을 하나씩 만들어서 어린이들과 교정에 있는 목련 나무 아래로 갔다. 어린이들은 밖에 나간다는 말에 그저 들떴다.
목련나무 앞에 둥글게 섰다. 멀리서 목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갔다. 저마다 목련나무에서 꽃눈 아린을 찾기로 했다. 그런 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5학년이 되어 새로 준비한 연필 색연필의 힘은 어린이들 그림 속에서 모양 있게 살아났다.
처음 목련 아린을 그리던 날, 꽃몽오리를 감싸고 있던 딱딱한 아린은 꿈쩍도 안 할 듯 단단해 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딱딱한 아린은 벌어졌고 겨우내 긴 잠을 자던 꽃몽오리는 두툼한 털옷 아린을 벗었다. 두툼한 구스다운이 떨어져 나가면 얇은 패딩 아린이 등장했다. 우리는 끈기 있게 꽃몽오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우리는 약속했다. 아침이면 목련 나무를 찾아가 ‘목련아, 안녕!’하고 인사하기로 했다. 어린이들이 등교하면 목련 보고 왔니? 하고 물었다. 아참, 얼른 보고 올게요, 하는 어린이도 있고 꾸준히 인사를 하고 교실에 올라오는 어린이도 있었다. 어떤 어린이는 목련나무에 출석번호를 붙여 우리 반 소속으로 넣기 주기도 했다.
목련이 우리들의 아침 이야깃거리가 되어서일까. 아침 두 문장 쓰기에 목련 이야기가 종종 등장했다.
학교 오는 길에 목련을 봤다. 우리 반 낭송 시 ‘목련 봉오리 속에 흰 새 한 마리씩 감추고 있다’는 문장이 떠올랐다.(5학년 박준우. 3.29)
학교 목련은 아직 겨울인데 거리의 목련은 벌써 아린 밖으로 우윳빛 꽃몽오리를 내민 것도 있었다. 준우는 하얀 몽오리를 보고 감탄했을 것이고 이 시가 떠올랐을 것이다. 효정이는 학교 앞 놀이터에서 목련 꽃몽오리가 조금 나온 가지를 주워왔다. 철없는 누군가 따버린 듯했다.
설이는 식구들과 어디를 가다 찍었다며 카톡으로 활짝 핀 목련 사진을 보내왔다. 도율이는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스마트폰을 열어 활짝 핀 목련 사진을 보여준다. 저마다 다투어 자랑하듯 목련 기자가 되어 기사를 전송해 왔다.
목련 관찰을 하면서 어린이들은 시인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었다. 시 쓰기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았는데 절로 시가 나오는 듯했다. 여태 학교에 있는지도 몰랐던 목련을 처음 만난 어린이들은 기다리는 마음, 감탄하는 마음으로 목련을 보았을 것이다. 그 마음에서 시가 몽글몽글 피어나고 있었다.
목련 아린에서 흰 꽃몽오리가 조금씩 얼굴을 내밀고 있는 날이었다. 국어시간에 목련을 보러 나갔다. 날이 좋아 소풍 나간 기분이었다.
-목련 몽오리가 모양이 뭘 닮았는지, 조금 내민 꽃봉오리 빛깔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생각하면서 글을 써보렴.
어린이들은 초승달처럼 얼굴 살짝 내민 목련 몽우리를 두고 사과 한 조각 같다고도 했고 치즈 빛깔을 닮았다고도 했다. 우유를 마시고 싶다는 어린이도 있었다.
- 저번에 볼 때보다 이삼 센티 정도 커진 거 같고 마늘같이 생겨서 신기했다. 선생님이 가져온 아린을 만져보았는데 느낌이 바람막이 잠바 같았다. (김설/4.4)
-목련이 아린을 벗었다. 꽃몽오리는 연한 치즈 빛깔이었다.(조하진/4.4)
목련 꽃잎이 떨어질 무렵, 목련을 보러 나갔다. 이 날은 시를 썼다.
떨어진 목련잎 / 민규리
목련잎이 떨어졌다
바람이 그랬다.
목련잎이 떨어졌다
툭 툭 툭 내린 비가 그랬다.
목련잎이 떨어졌다
빠르게 지난 시간이 그랬다.(4.13)
규리는 시간의 변화를 시 한 편에 담았다. 미술시간 첫날, 시간의 변화를 공부할 때에는 그 겨울나무에서 도무지 시간이 흐를 거 같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덧 꽃잎이 떨어졌다.
어린이들의 두 줄 쓰기와 시에 담긴 목련 이야기는 꽃씨 주말 신문을 타고 부모님 마음 문을 두드렸다. 가정에는 신문은 때로 싱싱한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했다. 목련은 나와 어린이, 부모님을 순하게 만들었다.
-살면서 목련을 이렇게 오래, 깊이 들여다보고 세심하게 표현한 날이 얼마나 될까요. 자가격리로 지친 저희 가족에게 포근한 봄소식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예* 어머니)
수요일 아침 6시, 금요일에 펴낼 꽃씨신문 2호 편집을 위해 거실 책상에 앉았다. 부모님이 쓴 답글을 워드로 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떤 문장에서 멈추었다.
...... 꽃씨 신문을 읽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유는 모릅니다. 제 마음 깊은 곳에 숨은 감성 때문이겠지요. 어린 친구들의 솔직한 글이 직장 생활을 하는 어른의 마음을 쿡 하고 건드린 느낌이었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치친 마음에 위로가 되었어요......
지친 마음에 위로...... 뭉클해져서 몇 번이나 읽었다. 어린 시절은 아득해지고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쁜 어른들, 코로나가 남긴 여진으로 힘겨워하는 부모님 마음을 그간 제대로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날 아침 어린이들에게 부모님이 쓴 답글을 읽어주었다. 교실은 차분해졌고 누군가는 아, 하며 탄식 어린 공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유명 작가가 쓴 동화나 시도 아닌데 어린이들이 쓴 문장은 어른들 마음을 순하게 만들곤 한다. 잊고 살았던, 돌볼 시간 없어 마음 아득한 곳에 묻어두었던 유년의 감성을 건드리곤 하는 것이다.
그렇게 목련은 서서히 우리들의 나무, 부모님들의 나무가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