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을 잘하는 방법

어른들이 서두르지 않으면 어린이들은 싸우는 방법을 제대로 익힐 수 있다

by 강승숙

1. 첫 번째 싸움 이야기


출장 가는 날은 어쩐지 불안하다. 아무 일 없어야 하는데 이런 날 어린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다치거나 싸운다. 다행히 그날은 모든 게 순조로운 듯했다. 별 일 없이 수업을 마쳤고 어린이들은 모두 하교했다. 교실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 마음 가볍게 동료 교사와 출장지를 향해 출발했다.


교문을 빠져나왔다. 차는 남춘천역 방향으로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백미러로 도로변에 선 어린이 둘이 보였다. 언뜻 봐도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자세히 보니 우리 반 어린이였다. 운전하던 선생님이 차를 멈추었다. 우린 관망하며 기다려보았다.


한두 차례 하다 밀치다 말겠지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아뿔싸, 본격적으로 싸움이 시작되는 듯했다. 서로 밀치고 을러댔다. 황급한 마음으로 차에서 내려 달려갔다. 나를 보았는지 어느새 경연(가명)이는 사라지고 인성(가명) 이만 남았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인성이는 당황한 기색으로 감추듯 별일 아니라고 했다. 내일 이야기하기로 하고 인성이를 보냈다.

출장 내내 편치 않았다. 경연이와 인성이가 몸을 부딪쳐가며 싸우던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이번 일을 바로잡지 않으면 습관으로 번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 두 분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내가 본 상황을 설명했다. 어머니께 어찌하여 다투게 되었는지 잘 들어보기를 부탁했다. 그리고 친한 친구이니 좋은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했다. 다툰 까닭을 공책에 적게 해 달라는 부탁도 덧붙였다.


다음 날, 일찍 등교한 경연이가 공책을 내밀었다. 우리 반에서 쓰고 있는 사건 일지 형식을 빌어 나름 열심히 썼다. 글을 읽은 뒤 상황을 잘 알 수 있게 보충할 곳을 몇군데알려주었다. 뒤늦게 온 인성이는 글을 써오지 않아서 사건 일지 양식을 주고 쓰게 했다.

두 어린이에게 의견을 구한 뒤 이 문제를 공론화했다. 학급에 알리고 두 친구의 싸움을 계기로 감정 조절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자고 했다. 친구와 노는 방법, 말 거는 태도 또한 돌아보면 좋겠다고 했다. 감정을 조절하는 일은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의 경중에 따라 부모님과 의논하거나 여러 날 남아서 선생님과 상담을 할 수 있다고도 했다. 모두 긴장하는 눈빛이었다.


수업을 마친 오후, 두 어린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저 도로변에서 다투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둘 다 잘 안다고 답했다. 우연히 건너편에서 둘을 본 우리 반 친구도 그 상황이 몹시 위험해 보였다고 했는데 그 말도 전했다.


전에 이렇게 몸을 치면서 싸운 적이 있냐고도 물었다. 둘 다 조심스럽게 처음이라고 했다. 무슨 일이든 처음 일어났을 때 바로잡지 않으면 되풀이될 거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자칫 심각한 일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둘은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부모님 허락을 받았으니 앞으로 여러 날 남도록 해. 선생님과 책 읽기, 글쓰기를 하게 될 거야.

둘 다 지켜야 할 원칙이 있어. 당분간 둘은 서로 존댓말을 써야 돼. 경연님, 인성님, 이렇게 부르도록. 반 친구들 있을 때도.

-네.


미리 골라둔 그림책 <파랑이와 노랑이>를 내밀었다. 두 친구가 서로 좋아해서 상대의 색으로 물들게 되는 이야기다. 서로 한 문장씩 번갈아 읽으라고 했다. 둘은 싸웠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정답게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누었다. 끝으로 서로 칭찬하는 시간을 가졌다.



두 번째 날은 ‘이너 보이스’ 카드 활동을 했다. 책상 위에 검정 동그라미가 다양하게 그려진 카드 여러 장을 늘어놓았다. 자신의 기분이나 상태를 가장 잘 나타내는 카드를 고르라고 했다.


-제가 먼저 카드를 고르겠습니다.


경연이는 동그라미가 반으로 나눠진 카드를 골랐다. 인성이와 싸워서 마음이 두조각 났다고 했다. 갈라진 마음이 잘 붙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친구랑 다투어 기분이 안 좋았는데 이렇게 활동하면서 기분이 풀려서 좋다고 했다. 인성이는 구름 모형을 나는 사람 모형을 경연이에게 선물했다. 인성이가 구름 모형을 경연이에게 주면서 구름에 올라간 듯 마음이 편해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는 사람 모형을 주면서 친구와 좋은 우정을 쌓기 바란다고 했다.


은성이도 고민하듯 카드를 골랐다. 큰 동그라미가 하나만 있는 카드였다. 둘 사이가 이렇게 둥글둥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성이는 아이스크림과 사람 모형을 선물로 받았다. 경연이는 아이스크림을 먹듯 기분이 좋아지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역시 사람 모형을 주면서 친구와 좋은 우정을 쌓으라고 했다.


활동을 하면서 조금 놀랐다. 즉흥으로 하는 활동인데 경연이와 인성이는 진지하게 카드를 고르고 자신의 속 마음을 이야기했다. 상대에게 필요한 선물 모형을 주면서 선물을 주는 까닭도 잘 말했고 상대가 들으면 기분이 좋을 이야기도 알맞게 표현했다.


활동을 마치고 또 서로 칭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는 포스트잇에 소감을 쓰면서 활동을 마무리했다.


-이너보이스 카드를 가지고 마음을 알아보니 좋았다.(경연)

-이런 활동을 하니까 행복했다.(인성)


게임을 많이 하는 인성이는 게임도 재미있지만 이런 활동도 좋다고 했다. 활동은 일주일 넘게 이어졌다. 우린 많은 그림책을 읽었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은 이전에 한 번도 나누지 못했던 속 마음을 책을 읽으면서, 이너보이스 카드를 활용하여 표현했다. 나 역시 인성이와 경연이가 카드놀이를 하거나 책 읽는 모습을 보면서 전에 보지 못한, 수업시간에 못 본 장점들을 발견했다.


둘은 자주 놀지만 서툰 방식으로 말하고 상처 주고 싸워왔다. 친구는 다정한 표현으로 우정을 쌓아야 진짜 친구가 될 수 있다. 연극 놀이 같지만 남아서 글 쓰고 이야기하는 과정을 통해 둘은 이전과 다른 경험을 했다. 그리고 전에 보여주지 못한 긍정적인 면들을 서로에게 보여주었다.


이 과정이 잘 이루어진 것은 부모님의 이해와 신뢰 덕분이다. 자칫 부모님이 자녀 말만 듣고 흥분해서 상황이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다. 두 분 부모님은 고맙게도 기다려주셨다. 급하게 판단하지 않고 선생님과 어린이가 잘 해결하도록 도와주셨다. 두 어린이의 싸움과 겪은 일은 주말 신문에 실렸다. 신문을 읽은 부모님이 답장을 써주셨다.


선생님 이야기에 매우 감동을 받았어요. 두 아이의 상황을 관심 있게 봐주시고 해결 방안을 하나하나 제시하며 차근차근 진행하시는 과정을 읽었어요. 아이들에 대한 무한한 선생님의 애정이 느껴지는 글에 부모로서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김채* 어머니)



2. 두 번째 싸움 이야기


무사히 수업을 마치고 어린이들이 교실을 빠져나간 뒤였다. 한시름 놓고 쉬려는데 난데없이 강민이가 속상한 얼굴로 다시 교실로 들어왔다.


-선생님, 제 스마트폰 액정 깨졌어요! 아까 건우랑 부딪혀 넘어졌는데 그때 깨졌나 봐요!


정말 스마트폰은 여러 군데 금이 나 있었다. 강민이 스마트폰은 장만한 지 얼마 안 된 새 폰이었다. 얼마 전 스마트폰을 샀다고 자랑스레 보여주던 생각이 났다. 마법을 부릴 수 있다면 쓱 문질러 깨진 금을 지워주고 싶었다. 난감했다. 일단 다음날 알아보자 하며 강민이를 돌려보냈다. 강민이 뒷모습을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민이 어머니께 문자가 왔다. 강민이는 교실을 나가자마자 어머니께 전화를 한 모양이다. 엄마와 통화하면서 겨우 참았던 분이 터진 듯했다. 강민이는 친구에게 보상받고 싶다는 심정을 어머니께 털어놓은 듯했다. 충분히 그런 마음이 들 수 있다. 다행히 강민이 어머니는 바로 판단하지 않고 어찌 된 일인지 듣고자 연락을 주셨다. 나도 자세한 형편을 모르는 터라 다음 날 건우와 강민이 이야기를 들어본 뒤 알려드리겠다고 했다.

혼자 상상했다. 교실에서 건우가 뛰다가 강민이랑 부딪혀서 강민이가 넘어지고 그때 폰이 깨지지 않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강민이가 원하는 보상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조금은 긴장한 마음으로 아침 독서를 하는 조용한 시간, 건우와 강민이를 복도로 불러냈다.


- 건우야, 강민이 폰이 깨졌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건우는 화가 난 일이 있어서 강민이를 좀 세게 밀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무슨 일로 화가 났는지 물었다. 강민이가 뭐라 뭐라 놀렸는데 그만하라고 해도 멈추지 않아서 화가 났다고 했다. 폰 액정이 깨져서 놀란 마음, 미안함 마음이 뒤섞인 듯 건우 눈은 촉촉해졌다.


아무리 화가 나도 밀치는 일은 대단히 위험할 뿐 아니라 생각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건우에게 말해주었다. 건우는 선생님 말을 듣고는 진심으로 끄덕였다. 이번에는 강민이에게 물었다.


-강민아, 건우를 먼저 놀렸니?


강민이 역시 순순하게 인정했다. 그리고는 몹시 미안한 얼굴을 했다. 둘 이야기를 다 듣고는 둘에게 자신이 몇 퍼센트 정도 잘못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뜻밖에 강민이는 자신이 99% 잘못했다고 했다. 건우 역시 자신이 많이 잘못했다고 했다. 둘이 이렇게 말하니 참 기특했다.

마지막으로 강민이에게 이 일을 어찌 해결하면 좋을지 물었다. 강민이는 건우가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폰은 서비스로 고칠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렇게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강민이 바람대로 건우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 말을 듣고 강민이도 놀려서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문제를 해결하는 두 어린이가 참 의젓해 보였다.


주말 신문을 읽고 쓴 답글이다.


▪선생님이 쓴 글을 읽으면 김강민과 이건우를 다시 본 듯했다. 장난치던 친구들이 자기 잘못을 알고 스스로 문제를 헤쳐나간 걸 보니 뿌듯했다.(최상*)

▪선생님께서 건우와 강민이에게 몇 퍼센트 잘못했는지 물었을 때 90%, 99%라고 답했다. 여기서 건우와 강민이가 솔직하다는 걸 느꼈다.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최은*)

▪건우와 강민이가 의젓하게 해결하는 모습이 대견하네요.(김서* 어머니)


스마트폰 사건 역시 강민 어머니의 대처가 큰 도움이 되었다. 강민이가 흥분해서 울 때 잘 다독여주신 것이다. 첫 번째 사건과 두 번째 사건은 부모님이 교사를 믿고 기다려주셔서 순조롭게 해결되었다.


어린이들은 성장과정에서 수없는 갈등과 싸움을 경험한다. 이 싸움과 갈등을 잘 해결할 때 다가오는 큰 문제도 잘 해결할 힘을 얻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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