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체험학습엔 없지만 학교 체험학습엔 있는 것
'소풍'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체험학습'이 들어섰다. 체험학습이라는 말은 '운동회'가 '체육대회'로 용어가 바뀐 것만큼이나 내게 쓸쓸한 마음을 갖게 했다. 유년기에 운동회나 소풍은 김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거나 사이다를 마시는 날이었다. 공부 안 하고 실컷 노는 날이었다. 그래서 유년기에 소풍과 운동회는 설렘과 동의여였다.
소풍이라고 해야 학교에서 두어 시간 떨어진 산까지 걸어가는 거였다. 다리는 아팠고 배도 고팠다. 고개를 넘고 넘어 도착한 곳은 그렇게 멀리 올만큼 특별한 곳도 아니었다. 그래도 도착할 때 그 기쁨은 말로 할 수 없었다.
우리는 반 별로 미리 준비한 장기 자랑을 했다.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곤봉도 돌리고, 수수께끼도 냈다. 발표가 끝나면 수건 돌리기를 했다. 모두 동그랗게 둘러앉아 술래가 언제 수건을 자신의 등 뒤에 놓을지 온몸에 안테나를 세우며 기다렸다. 술래가 놓고 간 수건을 잡아채서 달릴 때면 가슴이 쿵쿵 울렸다. 자칫 술래에게 잡히면 모든 게 허사였다. 친구들 함성이 커질수록 긴장감은 극에 달하곤 했다.
놀이가 1부 끝나면 옹기종기 모여 도시락을 먹었다. 아침부터 기다렸던 시간이다. 꿀맛 같은 도시락 파티가 끝나면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보물 찾기가 시작된다. 선생님들은 우리가 노는 사이에 귀신같이 보물쪽지를 숨겨놓곤 했다. 보물 쪽지는 풀숲이나 소나무 껍질 속, 나뭇가지 사이에 끼어 있었다. 남자 어린이들은 순식간에 두세 개씩 찾았다. 여기 있다, 하는 말을 나올 때마다 가슴은 얼굴이 확확 달아오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결국 찾지 못한 아이들은 애원하듯 나 좀 나 좀 하며 여러 개 보물쪽지를 찾은 친구에게 매달렸다. 보물쪽지는 한 개만 상품을 받을 수 있어서 어차피 누군가에게 주어야 한다. 다행히 너무 슬픈 얼굴을 한 탓인지 나는 3등짜리 쪽지를 얻을 수 있었다. 상품으로 연필을 받았던 거 같다.
소풍이 현장체험학습이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활동은 영 달라졌다. 선생님들은 이제 체험 장소로 어디를 가면 좋을지 학부모님에게 설문도 하고 어린이들 의견을 듣기도 했다. 교육과정, 거리와 장소, 점심 먹을 공간, 안전 등을 고려해서 체험 장소를 골랐다. 민속촌 같은 곳이 인기일 때도 있었지만 어린이들은 대체로 롯데월드 같은 데를 좋아했다.
교육적인 공간으로 수목원이나 박물관, 역사 관련 유적지에도 가지만 놀이공원은 여전히 어린이들에게 손꼽을 만큼 인기다. 어린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신나게 놀이기구 타는 것을, 무서운 바이킹 같은 기구를 타볼 수 있기를 간절하게 기다린다. 이제는 장기자랑을 하거나 보물 찾기를 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체험관을 두루 구경하고 간식을 먹고 사진을 찍는 게 활동 대부분이다.
5학년 어린이들과 레고랜드로 체험학습을 갈 때였다. 설문을 했는데 딱 한 명이 가지 않겠다고 답했다. 어린이를 불러 까닭을 물었다. 얼마 전 롯데월드를 다녀와서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체험학습을 안 가면 학교에 나와서 공부해야 한다고 은근히 압력을 넣었지만 그 어린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괜찮다고 했다. 그 어린이를 꼭 데려가고 싶었다.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 아, 네. 제가 아이한테 물어봤는데 아이가 가기 싫다고 해서 아이 뜻을 존중하기로 했어요
어머니 말씀을 듣고 답을 드렸다.
- 어머니가 설득을 좀 하면 좋겠습니다. 학교에서 가는 체험학습은 놀이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체험학습 가기 전에 활동 모둠을 어떻게 짜면 좋을지, 또 어떤 순서로 놀이기구를 타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지, 용돈은 얼마 정도 가져와야 좋을지 등을 의논합니다. 지켜야 할 약속도 정합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계획에 맞게 잘 수행하며 놀았는지 모둠별로 평가도 합니다. 가정에서 가는 놀이공원 체험과 달리 학교에서는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추억도 쌓을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진지하게 설명을 들으셨고 상당히 수긍을 하셨다. 자녀와 얘기해 보겠다고 했다. 다음 날 그 어린이는 설문 내용을 수정해서 참가로 바꾸었다. 괜히 안 가겠다고 한 어린이를 데려갔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낭패다, 그냥 두는 게 좋겠다고 하는 동료 선생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린이에게 학교와 배움에 대해 새롭게 인식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가족 체험 학습이 몇 년 사이에 크게 늘면서 고민이 생긴 것이다. 어린이들이 학교를 너무 쉽게 빠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체험학습을 가는 어린이가 많아서 수행평가에 어려움을 겪을 때도 종종 있다. 어떤 주, 어떤 시기에는 여러 명이 체험학습을 가는 경우가 있는데 교실이 휑할 정도다.
가족체험학습은 가족과 평일이 아니면 갈 수 없는, 가기 어려운 배움의 장소를 가도록 여지를 두는 제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녀의 체험을 중심에 둔 체험학습이라기보다 어떤 편의에 의해서 체험신청을 하는 경우가 많아진 듯하다. 결혼식이나 장례식, 병문안 등 먼 곳을 가야 하는 경우, 주말에는 너무 붐비거나 비용이 많이 들어서 이런 제도를 활용하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빈번한 가족체험학습은 어린이들에게 학교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인식을 갖게 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어린이가 가족과 체험학습을 다녀오면 교과 진도는 한참 나간 상태다. 그것도 한 과목이 아니다. 그걸 가정에서 보충해야 한다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게 못하다. 자연 부모도 어린이도 배운 지 않는 부분은 그냥 넘어가고 담임만 어떻게든 복습을 시키려고 애를 쓰는 상황이 펼쳐지곤 한다.
레고랜드 체험학습 준비는 다른 때보다 더 꼼꼼하게 진행이 되었다. 안 가겠다는 어린이를 설득한 상황이라 더 신경을 썼다. 모둠을 나누고 모둠 이름과 팀장, 부팀장을 정하는 등 체험학습 계획을 세웠다. 어린이들은 그 어떤 토의보다 진지했고 열정적이었다. 이미 레고랜드를 다녀온 어린이들은 몇 가지 주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서 '인형 뽑기'는 절대로 처음에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뽑기에 정신이 팔려 놀이기구를 몇 개 못 탄다는 것이다. 이렇게 경고를 했는데도 나중에 보니 이러한 우려는 어떤 모둠에게 현실이 되기도 했다.
흩어지지 않기는 어느 정도 지켜지겠지만 흥분하지 않기는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내용을 서로 합의했다는 게 흥미롭다. 즐거움의 반영이다.
레고랜드 체험학습은 무사히 끝났다. 체험을 마친 다음 날, 준비한 대로 짜임 있고 즐겁게 놀았는지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다. A4용지를 네 칸으로 나눈 뒤 각 칸마다 핵심어를 정해서 했다. 첫 칸은 '즐거움'이다. 두 번째 칸은 '나'의 역할 등 나에 대한 평가다. 세 번째 칸은 모둠 '친구들의 장점'이다. 마지막 칸은 내년에 5학년이 될 후배들에게 '레고랜드 100배 즐기기'다.
체험학습을 다녀온 뒤 글로 정리하고 짝과 토의하고 모둠과 의논한 뒤 앞에 나와서 발표를 했다. 이런 활동은 벌써 추억이 된 즐거운 시간을 돌아보는 재미가 있다. 다른 모둠이 어떻게 즐겼는지 알아보고 자신이 속한 모둠이 부족한 점을 생각해 보는 뜻깊은 시간이 되기도 한다. 마지막 레고랜드 100배 즐기기 비법에는 즐거움과 아쉬움이 녹아든 글을 쓴 어린이가 많다. 정말 중요한 팁이 많았다.
- <친구들의 장점>이지*은 리더십이 있고 착하다. 황윤*는 착하고 짐을 잘 확인하다.이다*은 없는 게 있는지 확인하고 판단력이 좋고 착하다. (김동*)
- <친구들의 장점> 조하*은 무서운 건 못 타지만 재미있으면 또 탄다. 오정*는 분위기 메이커다. 길을 못 찾으면 천천히 지도를 보면서 알려주고 중간중간 우리를 웃겨주었다. 김승*은 우리를 웃겨주고 재미있는 포즈를 취해서 우리를 재미있게 해 줬다.(김원*)
- <친구들의 장점> 송규*은 남자 친구들이 아무리 먼저 가도 긍정적으로 기다려주고 항상 재미있는 말로 분위기 사르르 녹게 함. 이승*은 재미왕! 계속 특이한 말투와 제스처로 친구들을 어이없게 하면서 재미를 줌. 나는 준비왕, 물안경, 비닐, 수건 등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함. 빈혜*은 계획왕, 하나하나 계획을 짜 주어서 고마웠음. 박한*은 부드러움이다. 평소에 날카로운 느낌이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만 그런 것이다. 실은 다정한 친구인 것 같다. 김현*은 잘 따라준다. 평소에 말이 적어서 어떤 친구인지 몰랐는데 잘 따라주고 의견에 부정하지 않는다.(김지*)
- <친구들의 장점> 김태*는 생각보다 웃긴 얘기를 많이 하고 운이 되게 좋은 거 같다. (웃음상), 최은*는 돈을 아껴 쓴다.(절약상), 나는 절약하고 리더십이 있다.(리더상), 박예*은 분위기 메이커다. 미션을 해결할 장소가 어디 있는지 알려줬다.(행복상)(박지*)
->어린이들이 팀별로 노는 상황을 다니면서 확인하고 사진도 찍어주었다. 하지만 세세하게 어떻게 놀았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특히 친구들의 장점을 새로운 공간과 활동에서 어떻게 느꼈는지 잘 알 수 없었다. 어린이들이 쓴 글을 보면서 내가 몰랐던 어린이들의 장점을 알게 되었다. 그 시간의 생생한 즐거움도 알게 되었다.
-<레고랜드 100배 즐기기> 뛰라! 뛰면 밥이랑 간식이 맛있게 느껴진다! 그리고 '레고랜드 앱'을 깔아라. 가장 짧은 놀이 기구를 많이 타라. 그리고 힘쓰는 운동을 많이 하자. 예시로 컵 돌리기, '몽키 클라임' 등을 즐겨라! 레고랜드 밥 먹으러 최대한 빨리 가라. 레고랜드에 온 사람이 몇 명인데! 밥 먹고 나면 미니랜드나 '드라이빙 스쿨'에서 소화하라! 그리고 '드레곤 코스터'는 시작할 때와 점심시간이 가장 짧으니, 꿀팁, 레고랜드 추로스는 소방차 쪽에! 슬러시는 그냥 문구점에서 사 가라! 해적의 바다와 레고랜드 시티에는 물놀이가 있으니 조심! 뽑기는 레고랜드 드래건 코스터 앞에서 뽑도록. 꽝이 없으니 아주 좋아! 마지막에는 얘기를 하면 전망대를 구경하도록! 마지막으로 단체 사진 찍을 때 힘들지 않게 브이!(박예*)
- <레고랜드 200백 배 즐기기 >절대 하면 안 될 것, 첫째는 인형을 많이 뽑지 않기야. 뽑아 봤자 돈만 소비하게 되고 짐이 되고 놀이기구를 타는데 지장이 생겨. 만약 뽑고 싶다면 놀이기구 다 타고 뽑길 추천해. 놀이기구 많이 타는 법은 가자마자 일단 사람이 제일 많이 몰리는 '드래건 코스터'부터 타야 해. 그다음 사람이 제일 많은 순서부터 타. 그러면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어. 돈은 많이 챙겨가지 않는 것이 좋아! 돈을 많이 챙겨가 봤자 더 소비하게 되고 물이나 챙겨 가면 돈 쓸 일이 별로 없어! 물총 놀이하는 배는 오후에 타야 해! 오전에 타면 춥거든! '미션'은 뒤로 미루고 일단 꼭 즐겨! 계획을 꼭 짜고 가. 레고랜드는 넓어서 막무가내로 돌아다니다 보면 다리가 아파. 계획을 짜고 가야 짜임 있게 잘 놀 수 있어! (이다*)
-후배들에게 전하는 레고랜드 100배 즐기기 비법은 꽤 흥미로웠다. 체험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비법들이 쏟아져 나왔다.
가족 여행이 늘면서, 또는 안전사고 등의 어려움으로 학교 체험 학습이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하는 체험학습은 분명 깊은 의미가 있다. 함께 일 년을 보내는 학급 친구들과 특별한 공간에서 추억을 쌓을 기회가 된다. 잘 어울리지 못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을 배려하면서 활동 팀을 구성한다면 교실에서 보지 못한 친구들의 리더십을 보게 되고 온정을 느낄 수도 있다. 체험학습을 마치고 돌아보기 시간을 제대로 갖는다면 함께 한 시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되새길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체험학습을 준비하고 체험하고 평가한다면 '체험학습 안 가도 될까요' 하는 어린이는 나오지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