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앱 놀이터에
잠은 대중 없이 깬다. 새벽 5시, 때로는 4시에도 눈을 뜬다. 눈꺼풀에 피곤이 남아있는 시간이다. 더 자야 하지만 할 일이 하나 있다. 마트 앱에 들어가는 일이다. 그 일을 하고 난 뒤 모자란 잠을 청하곤 한다.
폰을 열어 마트 앱을 누르고 상단 탭 '오늘의 미션'을 누른다. 출석 체크, 오늘의 APP상품 구경하기, 놀이터 방문하기, 금주의 전단지 보러 가기, 오늘은 운세 확인 하기를 하나하나 클릭한다.
클릭하면서 주어진 미션을 수행할 때마다 포인트가 1원씩 쌓인다. 특히 출석 체크 코너는 점수판이 돌아가다 멈추는데 1점부터 4점까지 받을 수 있다. 주로 1,2점을 받는데 어쩌다 3점이 나오면 몹시 기쁘다. 한 달에 한번은 최고 점인 4점을 맞추기도 한다. 이런 날은 로또를 맞은 양 기분이 올라간다.
이렇게 포인트를 쌓아가며 다섯 개의 관문을 통과하면 마지막 도달 지점이 나온다, 바로 선물상자다. 클릭하면 돈이 쏟아진다. 적게는 11원 많게는 29원이다. 어릴 때 문구점에서 뽑기 하던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받은 돈은 적립이 되어 현금으로 쓸 수 있다. 얼마 전에도 누적된 현금포인트 450원을 마트에 가서 썼다.
나의 일상이 마트앱과 이토록 긴밀하게 연결되어 즐거움을 얻게 될 줄은 몰랐다. 현금을 받는 코너와 다르게 글을 써서 포인트를 쌓는 코너도 있는데 바로 '놀이터'다. 나는 점수판보다 놀이터에 더 흥미를 느낀다. 여기는 글을 써야 한다. 몇 번을, 얼마나 길게 써야 쿠폰을 받는지는 잘 모른다. 묵묵히 글을 올리고 남이 올린 글에 답글을 쓰다 보면 어느 날 '슝', 배송쿠폰이 도착해 있다.
놀이터에는 하트 모양의 '좋아요' 버튼이 없다. 글을 쓰고 등록 버튼을 눌러야 한다. 처음 마트 '놀이터'에 들어갔을 때에는 거의 '출첵(출석체크)했어요'라든가 '오늘도 1점이네요', '오늘도 하루 시작합니다!' 같은 글이 올라오곤 했다. 무슨 말을 쓸까, 뭘 올릴까 생각하면서 '말머리 선택' 탭을 눌러보았다. 글을 쓸 수 있는 다양한 메뉴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춘천'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날마다 산책을 하면서 공지천의 식물이나 동물, 풍경을 찍고 있기에 여기서 골라 올리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5월 23일부터 올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빠진 날은 하루 이틀 빼고는 거의 없었다. 세어보니 아흔 번이나 올렸다. 대부분 식물사진이다. 곤충, 동물, 구름 사진, 때로는 음식 한 사진도 올린다. 댓글 반응은 생각 이상으로 좋다. 문장으로 감상을 써주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답을 쓰는 분들이 가깝게 느껴진다.
'달개비' 사진을 올린 날이었다. 본문에는 이렇게 썼다.
한여름에 피는 꽃, 달개비라고도 부르는 닭의장풀이 피고 있습니다.
초록 이파리에 별처럼 뜬 연파랑꽃, 진파랑꽃이 참 곱습니다
이런 빛깔로 옷 해 입으면 어떨까요. 원피스, 바지, 블라우스...... 골라보셔요.
댓글이 마흔 일곱이나 달렸다.
-참 예뻐요 그렇게 흔한 꽃이었는데 그땐 이쁜 줄 몰랐네요.
-어렸을 때 함께 자란 꽃이라 반갑네요.
-꽃이 작네요 주의 깊게 안 보면 그냥 지나칠 것 같아요 그래도 꽃이 예쁩니다
-좋은 곳에 자리 잡아 꽃을 피웠네요. 난 밭에 나와서 잡초로 뽑아버렸어요.
-원피스 어떨까요? 무더위 속에도 상큼한 기운을 불어줄 듯
댓글을 읽을 때마다 그 사람의 유년기를 상상해 본다. 이 사람은 밭을 하는구나, 무슨 밭일까 생각도 해본다. 원피스를 해 입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이 입으면 어울릴 원피스를 그려보기도 한다. 이런 댓글을 쓴 분이라면 나랑 취향이 맞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총각김치를 담근 뒤 찍어 올린 사진은 뜻밖에도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었다. 댓글이 53개 달렸다. 생각지 못했다.
-더워서 힘들 텐데 많이 담으셨네요. 입맛 없는 여름에 너무 맛있겠어요. 먹고 싶어요.
-솜씨가 대단하십니다
-저는 엄두도 못 내는데 살림꾼이시네요.
-우와! 많이 담으셨네요. 부러워요!
-와 많이 담그셨네요. 김치 종류는 담을 땐 힘들어도 만들어놓고 담가놓은 김치 보면 마음이 뿌듯하더라고요.
더운데 고생하셨네요.
총각김치를 좋아해서 땀 줄줄 흘리면서도 날 더운 줄 모르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했다. 허리가 조금 뻐근했지만 김치를 버무려 통에 넣을 때는 행복하기까지 했다. 댓글을 보니 뿌듯했다. 살림을 하는 분들이라 김치 담그는 일의 노고와 보람을 잘 아시는 듯했다.
나더러 살림꾼이라고 하는 데에서는 찔리기도 했다. 정년 퇴임을 하고 이제 조금씩 배워가며 음식을 하고 있어서다. 댓글을 써준 분들이 훨씬 고수라는 것을 글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김치 잘 익고 나면 이분들과 한데 어울려 보리밥에 총각김치를 오독오독, 맛나게 먹고 싶다.
그간 올린 사진의 80% 가까이가 식물 사진이다. 사진을 올릴 때마다 어디선가 본 듯도 한 꽃, 그런데 이름을 모르는 꽃 이름을 알게 되었다고 좋아하는 분들이 있다. 그 말에 기운을 얻어 골목골목, 공지천을 걸으며 내일은 어떤 사진을 올릴까 고민하며 사진을 찍곤 했다. 놀이터는 어느덧 일상이 작은 기쁨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진이미지 제공:남편
-오, 꽃은 가끔 봤는데 '엔젤 트럼펫'이라는 꽃이름은 놀이터 덕에 알게 되네요. 천사들이 트럼펫 불면서 내려온 상상이 되네요. 이름과 꽃 매칭해서 알수 있게 이 더위에 사진 찍고 올려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손도 안 대고 코 풀어서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조금이라도 아껴보려고 새벽마다 아침마다 마트 앱에 들어와 포인트를 쌓고 상품 정보를 알려고 애쓰는 사람들, 무미건조하게 클릭하고 출첵이라고 쓰고 앱을 나갈 수도 있는데 사진과 사연을 읽고 정감 어린 답글을 써준다. 댓글을 읽으며 사람 안에 있는 따스한 구석, 진솔한 마음을 날마다 만난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어린이가 강아지 인형을 안고 있었다. 너무 귀여워서 강아지 이름이 뭐니? 하고 물으니 멈추어 강아지를 소개한다. '레오'에요! 그러면서 자기도 웃기는지 깔깔깔 한참 웃는다. 그 상쾌한 웃음, 발랄함 기운에 덩달아 즐거워졌다. 이 사진은 인기가 꽤 있었다. 사진은 어른들이 간직한 그리움을 불러내고 있었다.
-우리 손주 애착인형 하고 똑같은 강아지네요. 잘 때 꼭 껴안고 자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네요.
-웃음꽃 만발했던 동심의 그 시절로 가보고 싶네요.
-글하고 사진을 보니 갑자기 행복해집니다.
-강아지는 인형 조차도 사랑스럽네요. 하늘나라 간 울강아지 생각에 울컥했네요.
-가다가 만나면 "레오 안녕~"하고 인사해야겠어요
-고등학생인 우리 아들도 애착 인형이 있어요
내일은 어떤 사진과 사연을 올릴까 저녁에 생각해 둔다. 마트앱 놀이터 코너는 점점 나의 놀이터가 되어가고 있다. 그 곳에서 소통하는 이들이 이웃처럼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