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기르는 사람들의 기쁨, 애환
출근하던 시절 아침마다 개를 산책시키는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느린 걸음으로 개와 아파트 둘레를 걷곤 했다. 개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개가 늙었구나 짐작했다. 여러 번 마주치면서 인사를 할까 생각도 했는데 우물쭈물하다 그렇게 못했다.
퇴직을 한 뒤 아침에 개와 산책하는 그 여자를 만날 일이 없었다. 아쉬운 마음이 들어 종종 아침이면 창밖으로 여자와 개가 나왔는지 찾아보곤 했다.
퇴직을 한 뒤로는 아침에 나가는 일이 거의 없다. 아침을 먹고 치운 뒤 남편과 천천히 산책을 나간다. 그러다 한 번은 개와 산책하던 여자를 만났다. 반가우면서도 궁금증이 일었다. 아침 산책을 낮으로 바꾸었나 생각했다. 그 뒤로도 자주 보았다. 어느 순간 먼저 인사를 꺼냈다. 여자는 부드럽게 인사를 받았고 묻는 대로 개 이야기를 차분히 들려주었다.
-전에 보니까 아침에 산책하던데 이제는 낮에 하나 봐요.
-아니에요, 아침에도 하고 낮에도 하고 하루에 몇 번 해요.
개를 사랑하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개가 밖에 나와야 오줌을 누는 습관이 있어서 자주 나온다고 했다.
-이름이 뭐예요?
-수호예요.
이름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 <수호의 하얀말>이 떠올랐다.
그림책에서 수호는 사람이다. 수호는 사랑하던 말을 잃게 되는데 원님이 쏜 화살 때문이다. 조랑말 수호는 억울하게 죽었다. 수호는 꿈에 나타난 조랑말의 말대로 슬픔을 달래며 가죽으로 악기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일을 마친 저녁이면 악기를 타며 노래를 불렀다. 저녁이면 초원에 퍼지는 그 노래를 들으며 목동들은 피로와 고단함을 달래곤 했다. 슬픔을 달래며 노래를 부르는 주인공, 슬프고 아련하고 많은 생각을 주는 그림책이다. 그림책의 주인공이 수호인데 개 이름이 수호라고 하니 괜히 친근했다.
한 번은 집에서 나오자마자 건물 입구에서 수호와 아주머니를 만났다. 전에도 기미는 있었는데 전보다 수호 걸음이 더 불편해 보였다. 다리를 절뚝거렸고 머리도 조금 숙어지는 듯했다.
-수호 어디 아픈가요.
-네, 관절염도 있고 아픈 데가 좀 많아요.
수호는 기운이 없어 보였다. 사람으로 따지면 노환으로 보였다. 남편은 얼른 나으라고 수호 머리를 한참 쓰다듬었다. 인사를 하려는 그때 아주머니가 들고 있던 작은 쇼핑백에서 주먹만 한 백설기를 꺼냈다.
- 참, 오늘 수호 생일이에요, 수호에게 잘해주는 사람들 주려고요.
주인아주머니의 수호에 대한 지극한 마음이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 수호의 건강을 빌면서 백설기를 먹었다. 열다섯 살 수호가 건강하게 조금 더 살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생겼다. 떡에 붙인 스티커는 잘 떼어 다이어리에 붙였다. 스티커에는 수호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식구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는 개라는 걸 한눈으로 알 수 있었다. 사진 속 수호 얼굴이 행복해 보인다.
남편은 개를 좋아한다. 그래서 길에서 만나는 개를 보면 종종 쓰다 듬는다. 자주 가는 산책길 약사 천변 주택에도 남편이 좋아하는 작은 개가 있다. 그 길로 갈 때면 종종 개는 대문 앞에 나와 있었다. 그러면 남편은 한참씩 앉아서 개를 쓰다듬어 준다. 개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쓰다듬는 손길을 즐기는 듯했다.
어떤 날은 대문 앞에 나와있지 않다. 그런 날은 남편이 개를 부른다. 그러면 쪼르르 나와서 쓰다듬어 주는 걸 즐긴다. 남편이 쓰다듬어 준 걸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개는 옆에 있는 나한테도 머리를 디민다. 나도 쓰다듬어 준다. 주인아주머니가 정갈하게 키워서 언제나 털도 매끈하고 눈곱도 없다. 코도 촉촉하다.
산책길에서 우연히 만나 아주머니와 개 때문에 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더운 날이었다. 아주머니는 약사천 다리 아래서 개와 쉬고 있었다. 개는 한눈에 봐도 건강이 문제가 있어 보였다.
-관절수술도 하고 인대도 늘어나고.... 돈이 많이 들어가요..... 수술은 여기서 안 돼서 서울까지 다녀왔는데 수술비가 많이 들었어요. 원래는 아들이 데려 왔는데 바빠서 내가 다 챙겨요.
아주머니는 힘든 사정을 얘기했다. 하지만 정이 많이 들었고 사랑스럽다고 했다. 개는 애교가 많았다. 아주머니 사랑을 듬뿍 받는 듯했다.
- 좀 적게 먹이고 운동을 더 하면 좋을 거 같아요.
- 그래야 하는데 내가 먹을 거 달라면 자꾸 그래서 이렇게 됐나 봐요.
아주머니는 이제 먹을 걸 조금씩 준다고 한다. 개가 안 움직이려고 하는데 그래도 이렇게 데리고 나오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개 걱정을 하면서도 연신 개를 쓰다듬는다.
개천에서 종종 만나는 아주머니 한 분은 털이 희고 아름다운 스피츠와 산책을 한다. 개 이름은 태식이다. 요즘은 개 이름에 사람 이름 비슷한 걸 많이 붙이는 거 같다. 스피츠 태식이는 원래 건강도 하고 아주머니가 관리도 잘해서 그런지 12살인데 아주 날씬하고 날렵하다. 조금도 꽤 부리지 않고 착착 착착 잘 걷는다. 눈이고 코고 입이고 다 반짝반짝하다.
개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쓰다듬고 하다 보면 개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하지만 꾹 누른다. 잘 키울 자신이 없다. 죽는 것도 감당하기 어렵다.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여러 마리 키웠다. 가장 슬픈 기억으로 남아있는 강아지가 있는데 이름이 재롱이다. 재롱 피우는 게 이뻐서 재롱이라고 지었다. 강아지는 데려온 지 이틀 만에 죽었다. 방에서 키우겠다는 걸 아버지가 굳이 부엌 부뚜막 옆에 두라고 했다. 다음날 아침에 보니 강아지는 연탄가스를 마시고 죽었다.
울면서 집 뒤 언덕에 묻었고 비석도 만들었다. 한바탕 장마가 지난 뒤 가보니 흔적도 없었다. 지금도 나무 비석에 새긴 재롱이 이름이 선하다. 길렀던 개들은 쥐약을 먹고 죽거나 개장수가 훔쳐가기도 했다. 늙어서 자연사 한 개는 한 마리뿐이었다. 그 개는 해가 따스한 봄 날 목련꽃이 하얗게 핀 나무 아래에서 조용히 조는 듯 죽었다. 아버지는 사흘동안 개 이름을 부르면서 우셨다.
앞으로도 개를 키우게 될 거 같지는 않다. 개에 대한 그리움은 산책하면서 만나는 이웃 개들 이름을 부르거나 쓰다듬는 것으로 대신할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