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과 생성
두 달에 한번 만나는 지인들이 있다. 밥을 먹고 좀 걸을 요량으로 약사천을 따라 걸었다. 약사촌은 넓은 공지천과 달리 구불구불하고 규모도 작아 호젓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여기가 이렇게 변했어요. 정말 예뻐요.
어릴 때부터 춘천에서 살아온 지인은 어린 시절 이후 이곳에 온 적이 없다고 했다. 약사천에서 지인이 사는 집까지는 도보로 30분 여분 걸린다. 그리 먼 곳이 아니다. 하지만 그 세월이 다 가도록 여기에 들르지 못했다. 생활반경과 움직이는 리듬이 달라진 것이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움직이는 반경은 꽤나 넓어졌다. 한두 시간 거리도 어렵잖게 다니게 되었으니 분명 움직이는 영역이 넓어진 건 틀림없다.
하지만 정말 누리는 영역이 넓어진 걸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정작 사는 동네도 늘 가는 마트 길 말고는 몇 년 동안 가 본 일이 없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렇게 따져본다면 우리가 누리는 영역은 넓어진 듯하면서도 좁아진 것 같기도 하다.
천변에는 오리가 자맥질을 하거나 바위에 앉아 천연덕스럽게 쉬고 있다. 더없이 평화로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지인은 너무 좋다고, 또 와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한참 세월이 흘러도 이곳에 오기는 좀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굳이 차를 타고 올 데도 아니고 여기까지 산책 올 일도 없어서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 내가 움직이던 활동 반경은 꽤나 넓었다는 생각이 든다. 30분이나 한 시간가량을 걸어서 놀러 가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누비는 곳도 수시로 바뀌었다. 어떤 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시내 쪽으로 가서 모르는 동네 팔각정까지 오르기도 했다.
구경거리가 없는 시절이라 팔각정이 꽤나 볼만하다고 여겼나 보다. 친구들이랑 모르는 할아버지들 옆에서 과자를 먹다 돌아온 기억이 있다.
40여분 거리에 있는 저수지에도 종종 갔다. 가는 길에 철교가 있었는데 그 곳을 통과할 때마다 공포에 떨곤 했다. 저수지에 가도 별건 없었다. 동생과 오빠들이 수영하는 걸 구경할 뿐이었다.
우리 동네는 괴안 2리라 산 넘어 괴안 1리 마을에도 가끔 갔다. 산고개를 넘으면 보이는 당산나무엔 흰 천, 붉은 천이 척척 걸려 있었다. 바람에 퍼드득 천이 날리는 모양이 무서우면서도 묘한 끌림이 있어 자꾸 쳐다보곤 했다.
생각해보면 동네 모든 집, 모든 공간을 훤히 알았던 거 같다. 발발거리며 날마다 여기저기 쏘다녔으니, 심심해서 가고 또 가 고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소 궁뎅이에 말라붙은 똥딱지 를 떼던 영운네 할머니 생각이 난다. 마당 한 쪽에서 소 궁뎅이가 얼마나 아플까 생각하며 구경하곤 했다.
남편과 나는 공치천이나 약사천을 지날 때마다 맨발로 걷곤 한다. 바로 옆이 물가라 언제라도 발을 씻을 수 있어 좋았다. 맨 발길을 걸은 뒤엔 개천 돌다리에 앉아 발을 씻는다. 뽀득뽀득 발을 씻으며 저 멀리 구름을 볼 땐 그냥 사는게 좋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못 본 척하기도 하고 나도 발 좀 담가볼까 하는 얼굴로 우릴 몇 번씩 보기도 한다. 그럴 때면 철철 흐르는 이 물에 사람들이 발 한번 씻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느 아주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사람들이 개천에 발을 담그지 않는 게 귀찮거나 낯설어서 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다른 날처럼 남편과 트레킹을 하는데 멀리서 돌다리를 건너오는 아주머니와 아이 둘을 보인다. 날은 무척 뜨거웠다. 우리는 모자에 양산까지 쓰고 있었는데 모녀로 보이는 그들은 모자도 우산도 없었다. 엄마는 조금 지쳤는지 손으로 해를 가리며 우리 쪽으로 왔다. 작은 딸이 막 징검다리를 건너 엄마한테 달려오는 순간이었다.
-엄마가 그 물 더럽다고 만지지 말랬지! 그 물 만졌으니까 이제 엄마 만지지 마!
그 말을 듣고 우리 부부는 움찔 놀랐다. 아주머니가 개천물을 더럽다고 생각하는 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쉬운 건 딸아이한테 한 말이다. 날은 덥고 물은 돌다리 바로 아래까지 찰랑이며 흐르니 얼마나 만지고 싶었을까. 엄마는 미리 단속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참지 못하고 물을 만진 듯하다.
사정이 있겠지만 그래도 집에 가서 손 씻자 하면 될 터인데 왜 그렇게 혼을 냈는지 모르겠다. 개천물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건지 모르지만 아이가 누릴 멋진 추억을 놓친 거 같아 영 속상하고 아쉽다.
공진천을 걷다 보면 드물기는 하지만 손주를 데리고 잠자리를 잡거나 낚시하는 할아버지를 볼 수 있다. 어쩌다 물에 발을 담그며 아이랑 노는 부모도 볼 수 있다. 그런 풍경을 보면 근방의 사람들이 자주 개천가로 와서 어린이들과 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공지천에 오면 어린이들은 무지막지하게 물 속을 훑으며 물고기 사냥을 하는 가마우지를 볼 수 있다. 빛나는 초록빛 등을 보이며 총알처럼 날아가는 물총새도 볼 수 있다. 신선 같은 중대백로도 볼 수 있고 한량 같은 왜가리도 볼 수 있다. 도무지 몸은 봐주지 않고 객객 울기만 하는 개개비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어린이들이 물에서 노는 모습을 보면 괜히 반갑다. 스마트폰을 치우고 이렇게 노는 모양이 다행스럽고 보기 좋다. 5학년인 사진 속 두 어린이는 물 속에서 한참을 놀았다. 처음 볼 때에는 바지를 걷고는 발목부터 무릎까지 물속에 담근 채 나란히 있었다. 그 모양이 어찌나 이쁘고 시원해 보이는지 나도 덩달아 신발을 벗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어린이들은 우리가 떠나고도 계속 놀고 있었다.
5학년 여자어린이들은 보통 친구들끼리 만나면 다이소에 가서 물건을 사거나 명동 시내에 가서 논다. 여름날이면 종종 분수가 나오는 데를 찾아가서 놀기도 한다. 여자아이들 놀이 목록에 개천에 나와 노는 일은 드문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사진 속 두 어린이는 익숙한 듯 개천에서 놀았다. 옛날 아이들처럼 말이다.
공지천은 어떤 어린이들에게는 있는 곳이고 어떤 어린이들한테는 잊힌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이제 멀리 가는 여행이 아니라면 틈이 있을 때마다 카페에 가는 듯하다. 운동을 해도 앞만 보고 달리거나 걷기만 한다.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하지 않고 천변으로 나와도 사람들은 그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움직임에만 골몰하는 듯하다.
나와 남편은 좀 다른 방식으로 걷고 있다. 한 시간 걸을 데를 그 이상 시간을 들여가며 걷는다. 걷기 놀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걸으면서 발을 붙잡는 모든 것들에 시간을 내어준다. 구름 구경을 하다 사진을 찍고 어제도 그제도 본 백로를, 처음 본 듯 그 우아함에 취해 사진을 찍고 찍는다. 어제보다 부푼 나무수국을 매번 들여다본다.
걷다가 물속에 발을 담그기도 하고 두리번거리며 뭐 없나 하고 찾아본다. '갈마곡 약속터'도 그렇게 하면서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뜬금없었다. 코 앞에 번듯한 도로, 그리고 아파트가 있는데 그 사이에 오래된 우물이 있는 것이다. 놀라웠다.
찾아보니 1980년대까지 사람들은 이곳에서 물을 마시기도 하고 빨래를 했다고 한다. 이제는 몇몇 노인들만 다녀가는 듯하다. 근처에서 텃밭 하는 어떤 노인이 자청해서 우물터를 관리한다. 몇 번 본 적이 있다. 늘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남편과 나는 이쪽 길로 지날 때면 꼭 우물터에 들러 찬물에 발을 담근다. 한 여름인데 20초 담그기가 힘들다. 안 쪽 둥그런 우물에는 어디서 나왔는지 물고기가 살랑이며 헤엄친다.
사람들이 더 많이 알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갈마 약수터 다녀온 일을 사진과 함께 아침이면 출석하는 지역 마트앱에 올렸다.
추억에 젖은, 정이 듬뿍 담긴 답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 춘천에 이런 곳이 있다니 처음 들어보네요.
- 집과 가까우니 함 가봐야겠어요.
- 이런 곳이 있었나요.
- 앗 어릴 때 빨래터가 있었는데 여기 같아요. 엄마랑 빨래할 때 장난하다 제가 빠져서 엄마가 건져줬어요
- 정겹습니다.
- 시간 내서 가봐야겠어요.
- 춘천에서 26년을 살았는데 처음 듣고 보는 명소네요. 가봐야 할 곳 추가합니다.
곧 갈마곡 빨래터는 새로운 이들을 맞이하게 될 듯하다.
춘천 중앙시장 골목에 '부녀식당'이라는 간판을 단 오래된 밥집이 있다. 우리는 이 곳에 올 때마다 문 닫은건 아닐까 염려한다.
20여 년 전부터 찾던 밥집인데 이젠 주인은 여든이 되었다. 우리는 이 밥집을 찾을 때마다 우리가 계속 올 수 있도록 오래오래 있어달라고, 주인장에게 떼를 쓴다. 이번엔 찾았을 때는 주인내외가 다정히 앉아 고구마순을 까고 있었다.
우린 동태탕을 시켰다. 큰 냄비 가득, 푸짐한 동태탕과 맛깔난 반찬이 나왔다. 어지간한 백반집이 무색할 정도로 찬은 늘 풍성하다. 여기를 찾는 까닭은 주인이 내는 맛과 인정 때문이다. 어느덧 단골 반열에 오른 우리는 종종 아주머니한테 고구마나 과일 같은 간식을 얻어먹기도 한다.
그곳에 드나들면서 아주머니를 그린 적이 있다. 그림을 그려 보니 서양 배우처럼 선이 굵고 우아하다. 아주머니는 음식점을 하면서도 멋내는 걸 잊지 않는다. 늘 목걸이와 귀걸이 반지를 하고 있다. 머리 위쪽은 탈모로 머리카락이 꽤 빠져있지만 틀어 올린 머리와 목걸이로 인해 매력 있게 보인다. 아주머니는 속이야기를 잘 털어놓는다. 이십여 년 드나들다 보니 아주머니가 처녀 시절 어디서 살았고 결혼해서 어찌 살았는지 훤히 알고 있다.
좀 있으니 주인내외랑 친한 분이 오셨다. 우리하고도 잘 알아서 정답게 인사를 받아준다. 오자마자 고구마순 까는 걸 돕는다. 늘 바지런하고 분별있는 분이다. 남편은 이분들이 주고받는 얘기를 즐긴다. 무슨 관객이 되어 연극 한 편을 보는 기분이라고 한다.
시내 식당에서는 있을 수 없는 정겨운 풍경이 부녀식당에서는 가능하다. 손님과 주인내외는 개 키우는 이야기, 농사짓는 이야기, 벌 치는 이야기 등 우리가 어디서 듣지 못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린 이 골목집 식당이 우리 세대의 마지막 식당이 될 거 같다는 예감이 들어갈 때마다 아쉬움을 느끼곤 한다.
끊임없이 아파트와 상가가 생기로 카페와 세련된 프랜차이즈 식당이 생긴다. 그쪽으로만 다니면 오래전 있었던, 이런 곳은 없는 건만 같다.
우리 부부는 걷는다. 날마다 마트를 오가며 걷는다. 어쩌다 카페를 가는 날도 시장 골목 식당도 간다. 대형 마트에 가기도 하지만 재래시장에도 간다. 이번에는 이 길로 가고 다음에는 저 쪽 길로 간다. 걸으면서 집 근방에 뭐가 있는지 꽤 알게 되었다. 근방의 새와 나무와 열매와 오래된 식당과 노숙자 할아버지......
이웃이 기르는 개도 좀 안다. 사진 속 진돗개는 '수호'다. 12살인데 관절염으로 고생한다. 병듡 개는 비틀비틀 겨우 걷는다. 주인 여자는 하루에 몇 번씩 수호를 데리고 나와 산책을 시킨다. 우연히 지나다가 수호 생일떡을 받은 적이 있다. 수호를 사랑하는 주인의 마음이 느껴져 볼 때마다 짠하다. 그리고 아름답다.
걷지 않으면, 멈추어 보지 않으면, 찾지 않으면 있는 것도 없는 것이 돼버리는 듯하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건 사라지고 잊힌다. 하지만 만지고 보고 들은 것은 오래오래 기억으로 남아 내 안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