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골목 보리밥집에 깃든 정
남편과 오랜만에 중앙 시장 안 골목 밥집, '부녀식당'을 찾았다. 시장 골목으로 들어가면서 조금은 불안했다. 혹시나 가게 문을 닫은 건 아닌가 해서다. 주인아주머니가 아픈데도 있고 여든이 다 되었으니 그런 걱정을 할 만도 했다. 골목에서 왼쪽으로 꺾어 돌자 다행히 빨간 글자로 새긴 간판이 보였다. 가게 창으로 하얀 형광 불빛과 함께 사람의 실루엣이 비쳤다. 반가운 마음에 문을 밀고 들어갔다.
-아이구, 오래만이야. 왜 이렇게 안 왔어!
아주머니 내외는 몹시 기다린 듯 반가워했다. 오후 2시, 손님이 없는 한가한 시간이라 주인 내외는 식탁 위에서 고구마순을 올려놓고 벗기고 있었다. 이 식당에 들를 때마다 보던 익숙한 풍경이다. 어떤 날은 마늘을 까고 있었고 어떤 날은 김치를 절이고 있었다. 만두를 만들고 있는 날도 있었다. 아저씨는 얌전한 색시처럼 식당일을 잘 도왔다.
자리를 잡고 제육볶음을 시켰다. 아주머니 음식 솜씨는 일품이다. 음씩 솜씨만 좋은 게 아니다. 손이 커서 주문한 음식도 넉넉하게 나오지만 딸려 나오는 반찬도 적지 않다. 하나하나 맛깔스럽다. 아주머니는 집에서 먹는 것처럼 재료를 쓰고 음식을 한다.
이제는 이렇게 음식 하는데 손 많이 가는 백반집이 줄고 있다. 하지만 아주머니네는 해오던 대로 한다. 우리는 주로 제육볶음을 시키는데 종종 동대탕, 보리밥을 먹기도 한다. 남편은 제육볶음이나 보리밥에 막걸리를 마시곤 한다. 인천에서 손님이 오면 모시고 오는 곳도 여기다.
부녀식당에 드나든 지 이십여 년이 흘렀다. 원래 부녀 식당은 복개하기 전 약사천 풍물시장에 있었다. 그러다 개천을 복개하면서 시장은 남춘천역 부근으로 옮겨갔고 부녀식당도 그리로 옮겼다. 그러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 소문도 없이 부녀식당은 풍물장에서 빠져나와 남춘천역 부근으로 옮겼다.
우리 내외는 풍물시장에서 갑자기 사라진 부녀 식당이 어디로 갔는지 궁금했다. 가게를 그만둔 건지, 아니면 이사를 간 건지 알 수가 없어 주변 식당에 수소문해 보았다. 꼭 찾고 싶었다. 하지만 소식을 제대로 아는 이가 없었다. 영 이대로 못 만나나 싶었는데 꿈결처럼 길에 서 있는 아주머니를 보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조금 외진 곳에서 규모를 줄여 식당을 하고 있었다. 옮긴 식당은 한눈에 봐도 한기가 느껴졌다. 아주머니는 장사가 되지 않아 곧 이사할 거라고 했다. 우리는 연락처를 받아놓고 옮기는 대로 찾아가겠다고 했다. 머지않아 아주머니는 지금 자리인 중앙시장으로 식당을 옮겼고 우리는 무사히 이사한 식당을 찾았다.
네 번이나 이사한 식당을 우리 부부는 엄마닭을 쫓는 병아리처럼 졸졸 따라다녔다. 평범치 않은 일이다. 무엇이 이토록 이 식당을 찾게 만드는 걸까. 음식 맛과 아주머니가 내는 인심도 있지만 이 식당에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여기에는 입담 좋은 아주머니가 빚어내는 이야기, 드나드는 단골들이 빚어내는 단막극 같은 애잔하고 유쾌한 인생의 풍경이 있었다. 시내에서는 찾기 어려운 모습이다.
밥을 먹는 동안 아주머니 단골들이 하나 둘 등장한다. 식구들처럼 둘러앉아 한 잔씩 한다. 식구처럼 고구마순을 벗기는 일을 돕던 퇴임 교장은 잠시 후 나가고 김 씨 아저씨가 들어온다. 주인아주머니를 누님처럼 여기는 김 씨는 한번 쓰러진 적이 있어 건강이 썩 좋지 않다.
김 씨는 이들과 어울리며 종종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그에겐 이곳이 안식처인 듯하다. 군 출신인 키 큰 지인도 합류한다. 근처에서 절을 하는 스님과 보살도 왔다. 아주머니는 찐 감자를 내놓는다. 간식으로 먹는다는 복분자도 내놓는데 우리도 한 대접 챙겨준다. 남편은 아주머니에게 맥주를 사드렸다.
남편이 막걸리를 하는 동안 나는 식당 안 풍경을 쓰고 그린다. 술을 안 먹는 사람이라 심심해서 글을 쓰기도 하지만 오고 가는 이야기도 재미있어서 기록하기도 한다. 공책 곳곳에 복분자즙을 묻혀본다. 염색된 종이 색깔이 곱다. 이 식당에 자주 드나들다 보니 내가 글을 쓰는 것도, 남편이 사진을 찍는 것도 이들은 자연스럽게 여긴다.
이들이 주고받는 이야기 중에는 흥미로운 이야기,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가 많다.
- 농사는 10평 농사가 질 힘들어. 대농은 다 기계로 하니까 힘이 덜 들지. 그리고 고추 심을 때 중간중간에 토마토를 심으면 벌레가 안 생겨.
- 난 내일 못 와. 담배꽁초 주으러 가야 해. 한 달에 10번 하는데 하루에 3시간씩 일해. 월 29만 원 받아.
-배추에 달팽이가 어마어마해. 호수가 근처라 습하니까 달팽이가 달려들어. 요즘 날마다 천마리를 잡아. 새벽 3시까지도 잡는다니까.
달팽이 이야기는 듣도보도 못한 이야기라 정말이냐고 물으니 스님이 사진까지 보여준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도 나온다.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이야기인데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너무 진지하다.
-고추밭에 절대 남 들이면 안 돼. 손님이 풋고추 먹고 싶다고 해서 몇 개 따가라 했는데 나중에 보니 손님 지나간 근처 고추가 다 초토화된 거야.
-맞아. 함부로 자기 밭에 손님들이면 안 돼. 나는 상갓집 다녀오면 일주일은 밭에 안 들어가. 빌고 들어가야 해.
시간이 흐르면서 받아 적을 이야기는 늘어난다. 가져온 종이를 풀로 붙여가며 공책을 늘려간다.
남편이 맥주를 마신다. 안주가 마땅치 않아 두리번거리자 아주머니가 땅콩 한 줌을 내준다. 슬슬 손님들이 하나하나 떠난다.
이렇게 손님들이 떠나고 아주머니와 우리 부부만 남을 때가 있다. 흥이 돋으면 아주머니는 화통하게 웃으며 맛깔난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종종 아주머니는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한다. 아주머니는 아주 슬픈 눈빛으로 지난해 병으로 떠난 큰 사위 이야기를 꺼냈다. 남편이 한동안 술을 끊는 바람에 식당에 들르지 않던 시기였다.
-사람이 죽으면 아무것도 아니야. 2천 원도 안 되는 잿봉다리야. 사위 보내고 엄청 술 먹었어. 내가 이제 다 잊고 가라, 내가 다 책임지마 이랬어. 그러니까 눈물 주르르 흘리면서 숨이 멎는 거야.
이야기를 듣고 남편도 나도 눈물이 난다. 아주머니가 더 이상 술을 못 마시겠다고, 이제 문을 닫아야겠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먹먹해진 마음으로 식당을 나섰다. 아주머니는 내일 아침 버스를 타고 7시 40분이면 식당에 도착할 것이다. 우루사를 먹고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또 그 오래된 밥집을 찾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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