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각김치에 대한 결핍과 그리움에 대해
총각김치를 맛있게 먹는 친구가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짝이다. 그 친구는 유난히 얼굴이 희고 복스러웠다. 말씨나 웃는 모양이 또래보다 귀여워 짝이지만 부러운 마음에 자주 훔쳐보곤 했다. 점심시간이면 그 친구는 언제나 총각김치가 든 유리병을 꺼냈다.
병 속에는 빨갛게 물든 총각김치가 가지런히 들어있었다. 그 친구는 흰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고 총각김치를 아삭, 베어 물었다. 오도독, 소리를 내면서 친구 입으로 들어가는 총각김치를 보면 침이 넘어가곤 했다. 친구가 총각김치를 먹는 내내 한 개만 달라하고 싶었다. 목 끝에 걸린 그 말은 끝내 나오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그 친구와 별로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그 친구도 말이 없는 편이었고 나 역시 말을 걸지 않았던 거 같다. 그 시절 나는 상당히 위축되어 있었다. 등록금을 밀리는 일이 잦으면서 자신감이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점심시간은 짝과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만도 한데 나는 점심시간마저 도시락을 자신 있게 펼쳐놓지 못했다. 보리가 섞인 밥은 그렇다 치고 반찬이 문제였다.
나도 총각김치를 싸갔다. 하지만 김치 빛깔이 푸르뎅뎅했다. 집안 살림이 곤궁해서 고춧가루마저 없을 때가 있었다. 엄마는 빨간 고춧가루가 없어서 밭에 남아있는 초록고추를 갈아 김치에 넣었다. 김치는 희한한 맛이 났다. 나는 우리 집 김치를 먹는 내내 친구 입에 들어가는 총각김치 생각을 했다.
결핍에 대한 기억은 짙게 남기 마련이다. 총감김치에 대한 씁쓸한 기억은 영원히 총각김치를 갈망하게 만들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지금까지 총각김치, 총각김치 노래를 부른다. 마트만 가면 총각무가 나왔나 살핀다. 냉장고에 총각김치가 있으면 괜히 기분 좋고 안정이 된다.
총각감치를 이렇게 좋아하게 된 것은 친구 입으로 들어가던 빨간 총각김치 때문만은 아니다.
열네 살이었을 것이다. 그 해 겨울, 어머니와 나는 다른 식구들이 알 수 없는 총각김치에 대한 남다른 서사를 만들고 있었다. 아버지의 계속된 사업 실패로 추운 겨울인데도 연탄과 쌀을 일주일에 한 번씩 사던 시절이었다. 나는 껌딱지처럼 엄마를 따라다니면서 연탄을 세숫대야에 담아 한 장씩 이고 다니기도 했다.
겨울을 앞두고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겨우내 쓸 연탄과 쌀을 사고 김장을 하는 일이었다. 우린 세 가지 모두 할 수 없었다. 연탄도 쌀도 한 번에 들여놓지 못했고 김장 역시 담그지 못했다. 다행히 돈이 생기면 연탄과 쌀은 동네 가게에서 살 수 있었다. 문제는 김장거리였다. 김장거리는그 겨울에 근처에서 사기 어려웠다. 있다해도 비쌌을 것이다. 엄마는 보름에 한 번씩 나를 데리고 영등포 청과시장으로 갔다. 겨울이 다 갈 때까지 엄마를 따라 청과시장에 갔다. 열 번 가까이 갔다.
엄마는 총각무를 일 곱단씩 샀다. 엄마가 머리에 이고 오기에 그만큼이었던 거 같다. 시장에서 버스정류장은 코앞이라 괜찮았다. 하지만 괴안동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는 한참 걸어야 했다. 찬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신발도 옷도 무얼 입고 신었는지 가물가물하다. 다만 추웠던 감각은 생생하다.
엄마는 걸을수록 머리에 인 총각무가 무거웠을 것이다. 돌덩이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어제 그런말 하나 없이 꾹 참고 걸었다. 엄마와 나는 봄이 올 때까지 씩씩하게 영등포 청과시장을 다녔다.
밥과 총각김치, 시래깃국 같은 걸 먹으며 우리 식구는 겨울을 났다. 총각김치는 너무 맛있었다. 덕분에 총각무 일곱 단으로 담은 총각김치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엄마와 나는 다시 영등포 청과시장으로 갔다. 이 일은 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총각김치에 대한 그리움으로 늘 떨어지지않게 총각김치를 담그곤 했다. 그러다 여름에 들어선 뒤로 한동안 담그지 못했다. 오이지와 배추김치, 부추김치가 있어서 남편은 총각김치를 천천히 담그자고 했다. 난 자꾸 총각김치 생각만 났다. 결국 내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남편은 총각무 한 상자를 주문했다. 넉 단이다, 생각보다 많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담그는 총각김치라 다듬는 일부터 신이 난다.
총각무가 싸게 나온 만큼 누런 무청이 꽤 있었다. 버릴 건 버리고 쓸만한 건 데칠 요량으로 따로 담아두었다. 총각무는 잘 다듬어서 씻은 뒤 소금옷을 입혔다. 몇 시간 뒤 잘 절여진 총각무를 씻어 김치를 담갔다. 양념조제는 남편이 잘한다. 나는 필요한 재료를 썰고 다졌다. 그렇게 준비한 재료를 총각무와 함께 큰 양푼에 넣어 버무렸다.
총각김치를 담글 때면 총각김치를 맛나게 먹던 친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지곤 한다. 어머니는 영등포 시장을 추운 겨울 오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불쑥 든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훨씬 젊었을 어머니, 마흔넷의 젊은 어머니 생각을 하면 멀쩡히 김치를 담그다가 눈씨울이 붉어지곤 한다. 김치 담글 때마다 매번 코끝이 시큰해진다.
총각김치에 대한 스토리를 알고 있는 남편은 김치를 담글 때면 고춧가루를 넉넉히 넣는다. 그렇게 추억을 더듬어가며 총각김치를 완성했다. 감치를 담그고 나니 누군가에게 총각김치 담근 일을 말하고 싶어졌다. 아침마다 출석체크하는 지역 마트앱이 생각났다. 이 앱에는 일상 이야기를 올리면 점수를 주는 코너가 있다. 나는 빠지지 않고 꽃사진과 간단한 글을 올리고 있는데 나름 댓글을 많이 받는다. 이번에는 총각김치 담근 이야기를 올렸다.
조회 191에 댓글이 52개나 붙었다. 깜짝 놀랐다. 그간 꽃사진을 올리면 댓글이 20에서 30개 정도 달리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고 응원해 주었다.
-먹음직스러워 보입니다
-더워서 힘들 텐데 많이 담그셨네요. 입맛 없는 여름에 너무 맛있겠어요. 먹고 싶어요.
-솜씨가 대단하십니다.
-저는 엄두도 못 내는데 살림꾼이시네요.
-우와! 많이 담그셨네요. 부러워요!
-익으면 완전히 밥도둑이죠. 먹고 싶네요.
-오, 너무 맛있을 거 같아요.
-와, 많이 담그셨네요. 고생하셨어요.
-총각김치, 엄청 맛있어 보여요.
-사진을 보니 저도 담그고 싶어요!
-더운 날 김치 하느라 고생하셨어요.
-한동안 김치 걱정 없으시겠어요. 보는 것만으로 든든합니다.
댓글을 하나하나 읽으며 답글을 달았다. 답글을 달면서 사람들은 총각김치 담근 이야기에 왜 이렇게 열심히 댓글을 달아주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살림하는 사람들은 김치를 담글 때 그 수고로움을 안다. 김치를 그득 담아놓았을 때 그 기분도 안다. 그걸 알기에 응원해 주고 격려해 주는 듯했다.
한두 문장이지만 문장 이면의 숨은 이야기를 상상해 본다. 저마다 김치에 얽힌 사연 하나쯤은 있을 텐데 어떤 사연들일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유년시절 서울 녹번동에 살던 사촌 오빠가 보쌈김치를 가져온 적이 있다. 그 오빠는 솜씨가 좋아서 뭐든 잘했는데 김치도 잘 담갔다. 시퍼런 김치를 열자 비밀의 문이 열리듯 빨간 김치와 그 위에 얹은 실고추, 잣이 모양을 드러냈다. 그 모양이 예뻐 어떻게 먹나 걱정했던 기억이 있다.
이제 나는 총각김치 하나쯤은 얼마든지. 온갖 재료를 넣어 담글 형편이 된다. 아주 맛있는 총각김치 만들기에도 도전할 수 있을 거 같다. 하지만 중학교시절 짝이 먹던 그 총각김치 맛은 도저히 낼 수 없을 것 같다. 먹어보지 못한 맛이지만 눈으로 코로 다 먹어본 듯 한, 가장 맛난 그 총각김치 맛은 낼 수 없을 거 같은 생각이 든다.
참지 못하고 김치냉장고에 넣어든 김치통을 열어 덜 익은 총각김치 하나를 먹어버렸다. 이제는 좀 참아야겠다. 맛깔나게 익은 총각김치를 먹기 위해 기다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