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비 지난 뒤, 지렁이와 남생이와 자전거와
하늘이 끝없는 물덩이를 토해내면서 사방을 휩쓸고 간 뒤였다. 남편과 개천으로 나갔다. 어제의 그 길인까 싶을 만큼 산책로 곳곳엔 웅덩이가 생기고, 무너졌으며, 모래가 쌓여있었다.
산책로까지 넘친 물 따라 흘러온 풀줄기와 스티로폼, 비닐이 나무 둥치를 목도리처럼 휘감고 있었다. 삼각주처럼 넓게 모래밭을 이룬 곳도 보였다. 물의 기세는 대단했다.
물거품을 세게 뿜으며 흐르는 여울에 중대백로와 왜가리가 서 있었다. 구만리 저 쪽에서 날아온 신선 같은 이들은 시간이 한참이나 흘렀는데 꼼짝 않고 물만 본다. 가마우지처럼 물속으로 머리를 넣었다 뺐다 하며 모든 걸 먹어치울 듯한 기세가 이들에게선 보이지 않는다. 분명 예리한 감각으로 쏜살같이 내려오는 물고기를 보고 있을 테지만 내 눈에는 그 몸짓이 무심하게만 보인다.
이들은 기다란 고개를 쭉 빼보기도 하고 물음표처럼 구부리기도 한다. 그러다 척후병처럼 비밀스럽게 움직인다. 어느 순간 부리를 물속에 넣었다 뺀다. 별 성과가 없는 듯 휘휘 날개를 저으며 저 쪽으로 날아간다. 거대하고 우아한 날갯짓, 초연한 몸짓을 그저 바라본다.
날마다 개천으로 날아드는 이들의 고독한 행보를 볼 때면 산다는 일이 얼마나 엄숙하고 애잔한 일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여전히 개천 물은 누런 빛깔로 급하게 흐른다. 며칠은 더 가야 순해질 듯하다. 진갈색 암꽃 이삭이 탐스러운 천변 부들은 맥없이 누워있다. 풀숲엔 은빛 물고기들이 언뜻언뜻 보였다. 죽은 물고기였다. 물 따라 올라왔다가 운없게 육지에 갇힌 것이다.
물고기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남편이 손짓을 한다. 신발바닥만 한 물웅덩이에 빙어처럼 작은 물고기가 겨우 숨쉬고 있었다. 웅덩이 물은 한줌도 되지 않았다. 그 물마저 땡볕 아래서 곧 말라버릴 것이다.
남편은 움직였다. 미끄러워 몇 번이나 놓치더니 겨우 두 손에 작은 물고기를 그러안았다. 그리고 잔잔한 물가로 갔다. 물고기를 천천히 물에 놔주었다. 놀랐는지 죽은 척하던 물고기는 이내 몸을 움직이더니 가뭇없이 사라졌다.
멸치를 볶거니 생선조림을 할 땐 별 생각 없다가도 이렇게 일상의 공간에서 개개의 생명체를 마주할 때면 생각이 많아진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들 존재를 바라보게 된다.
우린 야생동물 구조대라도 된 듯 둘레둘레 살피거나 바닥을 보며 걸었다. 지렁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말라죽은 지렁이를 지나 촉촉하게 살아있는 지렁이를 만났다. 이들은 곧 발에 밟히거나, 자전거에 치이거나, 말라죽을 것이다. 구조활동을 시작했다.
남편은 손에서 자꾸 빠져나가는 지렁이를 애써 잡아 풀숲에 놓아주었다. 나도 손을 보탰다. 풀잎을 뜯어 지렁이를 감싼 뒤 풀숲으로 보냈다. 지렁이를 대여섯 마리쯤 구조하고 나니 지렁이가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없기를 바라며 주의 깊게 걷고 있는데 자전거 탄 여자가 휙 지나가며 소리치듯 말한다.
-저기, 자라 있어요!
자전거는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귓전에 남은 여자의 음성에서 묘한 다급함이 느껴졌다. 그저 자라가 있으니 구경하란 말은 아닌 듯했다. 생각할 거 없이 전방을 주시하며 뛰었다. 저만치 돌멩이처럼 거무스레 보이던 물체는 곧 윤곽을 드러냈다. 남생이였다.
자전거 탄 여자는 자라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남생이였다. 개천에서 얼마 전 자라를 본 뒤 확인을 위해 검색하면서 남생이도 알게되었다.
산책로 위 남생이라니, 꿈인 듯했다. '남생아, 놀아라' 하며 불렀던 옛이야기 속 남생이, 춘천 풍물 장날에서 봤던 남생이를 자연 공간에서 실물로 영접하게 된 것이다.
우린 이 귀한 남생이 대접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몰라 우선 남생이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갔다. 하지만 남생이는 방향을 정하지 못한 채 두어 걸음 가다 멈추었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기웃거렸다. 남편은 자전거에 치일 수 있어서 위험하다고 했다. 우리는 이동 작전을 펼쳤다. 남편은 조심스레 남생이 양끝을 잡고 개천 쪽으로 갔다. 인간과 처음 만나는 남생이도 적잖이 당황스러울 테니 느릿느릿 움직이기로 했다.
물이 가까워지자 좋아서 그런 건지 남생이는 팔다리를 자꾸 움직였다. 어서 놔줘요, 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좀 아쉬웠다. 잠시 멈추고 기념사진을 찍은 뒤 안녕, 인사를 하고 물에 놓아주었다.
남생이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라진 쪽을 한참 보았다. 집에 데리고 와서 좀 지내다 보낼 걸 그랬나 생각도 들었다. 이제 개천가를 지날 때면 남생아, 하고 부를 생각이다. 그러면 남생이가 불쑥 머리를 디밀고 나올지도 모른다. 옛이야기에 나오는 말하는 남생이처럼 말을 걸어 줄지도 모른다.
개천(춘천 공지천) 트레킹을 할 때면 초록 파라솔 아래나 나무 그늘, 교각 아래 그늘에서 멈추곤 한다. 더위를 식히며 남편과 얼음커피를 마시려는 것이다.
6월에 들어선 뒤로는 초록 파라솔 아래서 더 자주 멈춘다. 파라솔 주변 나무 수국이 불러서다.
개천에서 피던 수많은 꽃들이 소강상태에 들어가는 7월에 나무 수국 하얀 꽃은 빛을 낸다. 멀리서 보면 뭉게 구름 같고 가까이 가면 작은 송이는 주먹밥, 큰 송이는 고봉밥 같다.
나무 수국 곁에 가면 시골 마당에 선 듯 편해진다. 할머니와 어머니를 만난 듯 편안해진다.
그 큰 비에도 지지않고나무수국은 조용히 꽃을 피우고 있었다. 우당탕 물이 산책로로 넘어오고 갈대와 부들이 우두두 넘어지고 하는 사이에도 나무수국은 고봉밥처럼 꽃송이를 부풀리고 있었다.
이 비에 쓰러진 모든 것들이 힘을 내어 작은 송이 하나씩 피워내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