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풀이춤을 배우는 사람들
5년 만에 춤을 시작하는 날이다. 소풍을 가는 사람처럼 자꾸 마음이 들뜬다. 아침을 준비하는 사이 배낭에 넣은 살풀이춤 수건과 미투리를 한번 더 확인하고 기차에서 먹을 두유를 넣었다. 그리고는 남편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거리에는 푸른 이팝나무가 가볍게 이파리를 흔든다. 갑자기 스무 살이 된 듯 발걸음에 힘이 들어갔다.
5년 만에 만난 춤 벗은 나까지 셋이다. 신입도 하나 합류했으니 모인 사람은 춤선생님 빼고 넷 인 셈이다. 십여 명이 함께 할 때도 있었지만 코로나로 쉬고, 그러다 보니 이래저래 흩어지고 말았다.
-선생님, 이렇게 모이는 거 쉽지 않았요. 이렇게 춤으로 맺어진 인연, 정말 소중하고 귀해요.
춤선생님은 여러 강습 모임이 있지만 우리 모임을 유달리 좋아하시는 듯 했다. 나는 그렇게 느낀다. 살풀이 수건을 꺼내 들고 거울 앞에 섰다. 내 몸의 움직임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이 시간이 그리웠다.
-수건을 펼쳐서 이렇게 쥐어 보세요.
살풀이춤 수건을 쥐고 선생님의 입장단에 맞추어 한나아, 두울, 세엣에서 수건을 허공에 뿌렸다. 네엣에선 굴신을 하는 동시에 팔을 당겨 천을 몸에 감았다. 굴신과 들숨, 날숨을 조율하며 아기 걸음마 하듯 춤을 배워나갔다. 춤선생님 몸짓을 보면 이상하게 위안이 된다. 그 부드럽고 깊은 움직임에 시름이 사라진다. 선생님의 춤은 그간 깊어졌다.
-힘들지요, 우리 조금 쉬어요!
의자게 둘러앉자마자 춘천에서 함께 간 신입 선생님 S가 뭔가에 감격한 듯 말을 꺼냈다.
-저, 이 춤이 마치 저를 위한 살풀이 같아요. 춤을 추는데 너무 좋아요.
S선생님 얼굴은 감동으로 젖어있는 듯했다. 보통은 살풀이춤을 처음 배우면 어려워요. 잘 모르겠어요 하기 마련인데 이 선생님은 춤을 즐기고 있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S선생님처럼 즐기기보다는 좀 더 잘 추려고 했던 거 같아서였다. 마음을 가다듬는다.
-춤출 때 자신한테 집중해요. 자꾸 남이 하는 거 보지 말구요.
자신한테 집중하라는 말을 되새긴다. 이어 선생님은 지금 우리가 추고 있는 춤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가 지금 하는 춤이 호남살풀춤이예요. 살풀이춤에는 이매방류, 한영숙류, 김숙자류 도살풀이춤이 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호남살풀이춤이 처음 춤을 하는 분들이 배우기 좋은거 같아요. 춤이 반듯반듯하거든요.
듣고 보니 그랬다. 전에 한영숙류 춤을 선생님에게 잠깐 배운 적이 있는데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호남살풀이는 그에 비해 할 만했다.춤이 그리워서 그랬을까. 춤사위 하나하나가 두근거리게 한다. 선생님은 8분 정도 걸리는 춤을 차근차근 배워보자고 했다. 쉬는 시간을 마치고 다시 춤을 시작했다.
동작은 앞 동작에 이어 하나씩 늘어갔다. 동작이 더해질수록 긴장도가 높아졌다. 순서를 잊지 않으려고 초몰입을 했다. 굴신을 해야 하는 대목이 있고 반듯하게 호흡으로만 팔을 올리고 내리는 동작이 있다. 굴신을 하면 무겁고 깊은 움직임이 나오고 반듯하게 서서 호흡만 하며 움직이면 산뜻한 움직임이 나오는 듯하다. 선생님은 자신에게만 집중하라고 했지만 못참고 은근히 주변을 스케치한다.
S선생님은 움직임이 다른 이들보다 덜 유연하다. 늦게 춤을 시작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눈빛은 더없이 진지했다. 오랜 우정을 나눠온 후배 H는 움직임에서 원숙함이 느껴진다.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고도 춤모임에 빠지지 않는 J는 젊은 기운에서 나오는 푸르름과 함께 단아함이 있다. 등줄기에 땀이 나는 순간 선생님이 쉬자고 했다. 이번 쉬는 시간에는 J선생님 이야기를 들었다.
-저는 한 달에 한번 이렇게 나오는 게 힐링이에요. 교대 평생 교육원은 매주 나가는 거라 참석하기 어렵거든요. 지금 남편과 시부모님이 두 아이를 봐주고 계셔요.
J선생님의 춤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다. 결혼식 바로 다음 날에도 춤모임에 참석을 했고 신혼여행 직전에도 춤연습에 참여했다. 남편은 J선생님을 근처에서 기다리면서까지 춤 연습을 응원해주고 있었다. 처녀시절 좋아하던 춤을 결혼 해서도 계속할 수 있게 도와주는 남편과 시댁, 그리고 J선생님 의지에 모두 박수를 보냈다.
조금 춤을 익히자 선생님은 살풀이 음악을 틀었다. 살풀이 음악에 몸을 실어 천천히 움직인다. 하얀 수건을 뿌리기도 하고 얌전히 되가져 오기도 한다. 발걸음 하나하나를 쫀득하게 딛고 당긴다. 팔동작은 무게 있게 움직여야 하지만 몸과 마음은 좀처럼 협응이 되지 않는다. 방금 전에 했던 동작을 순식간에 잊어버리고 허둥대기도 하고 박자를 놓치기도 한다. 그래도 선생님은 잘했다 잘했다 칭찬을 한다.
-와, 정말 모두 잘했어요. 열심히 했으니까 조금 쉴까요.
우리 춤이 좋아서 배운 시간이 어느덧 이십여 년이 된다. 무용학원에서, 평생교육원에서, 문화회관, 시립무용단 등 여러 강사들에게 춤을 배웠다. 여러 선생님을 거치다가 지쳐서 그만해야지 할 때 지금 춤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100세까지 함께 춤을 추고 싶을 만큼 다정하고 섬세한 분이다. 춘천으로 이사 오고 나서도 선생님과 인연을 이어가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한 달에 한 번 하는 춤 모임이 생겼다.
-ㅁ 초엔 다문화 어린이들이 80%나 돼요. 주로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어린이들이 많은데 말 통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다 보니 도무지 한국말이 늘지 않는 거예요. 할 수 없이 중요한 말은 한국말로 하게 해요. 예를 들어 '화장실에 가고 싶어요'는 꼭 한국말로 하게 했어요. 그렇게라도 해야 한국말을 하니까요.
인천지역에서 근무하는 H는 다문화 교육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사이사이 러시아말도 들려주는데 영화 속 러시아 배우처엄 분위기 있었다. H는 일주일에 한 번 줌으로 러시아어 공부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러시아말이 거의 들린다고 했다. 모두 감탄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러시아말을 들을 수 있다니! 내가 아는 후배인가 싶다.
어느덧 시간은 1시를 향해 가고 있었고 우리는 마지막 쉬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늘 춤 공부 하는 선생님이 요즘에는 무슨 춤을 연습하는지 궁금했다.
-저는 요즘 일주일에 이틀씩 승무 배우고 있어요.
-아, 역시! 선생님은 늘 배우고 공부하는 분이에요. 그런데 선생님, 저는 승무 공연을 몇 번 본 적 있는데 계속 동작이 되풀이되는 거 같고, 그래서 좀 지루했어요. 졸다가 북 칠 때나 정신 번쩍 들고......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춤은 보는 것보다 직접 추는 것이 훨씬 재미있어요, 춤을 추어보면 어디에 힘을 주어야 하고, 어디에 힘을 빼는지 알게되니까 보는 맛도 생겨요,
춤을 출때면 제 장삼은 곡선을 끝까지 그리지 못하고 힘없어 툭툭 떨어지는데,
승무 문화재보유자 선생님은 달라요. 80노인이 힘없이 그냥 던지는 거 같아도 장삼자락이 공중에 떠서 안내려와요. 선생님 내공을 따라갈 수가 없어요.
처용무와 궁중무용을 이수한 선생님은 이제 승무 이수를 준비하고 있다. 꾸준히 공연도 하고 춤을 배우는 선생님은 뭐가 되겠다는 생각보다 춤이 좋아서 계속 춘다고 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연습해요. 춤추는 거 영상으로 찍을게요.
코로나가 닥치면서 멈춘 춤은 코로나가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이어졌지만 나는 계속 참석하지 못했다. 춘천에서 청량리까지 가는 일이 아득하고 멀게 느껴졌다. 나이가 더 들어 그런지 열정이 사그라들어 그런지 모르지만 영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시 춤을 하니 의욕이 생긴다. 저 밑바닥 가라앉은 에너지가 올라오는 듯도 하다.
이제 한 달 뒤 춤추러 간다. 그리운 후배 H를, 춤벗을 보러간다. 그때까지 영상을 보면서 부지런히 살풀이춤을 연습할 생각이다. 벌써 여섯 번 연습했다.
100세가 되어, 머리가 허옇게 된 나의 춤 벗과 춤선생님이 어울려 춤추는 장면을 상상한다. 생각만 해도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