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는 소년들이 청년이 되는 날까지
얼마 전만 해도 개천 산책로에서 아기 안은 어른을, 아기를 태운 유모차 끄는 부부를 보기 어려웠다. 유모차에 아기가 있으면 놀랄 만큼 젊은이, 노인 할거 없이 강아지를 데리고 다녔던 것이다.
천변이 정비되면서 산책로를 즐기는 이들이 부쩍 늘어갔다. 나이 든 어른은 새벽부터 개천으로 출근하여 성경구절이나 유행가를 틀어놓고 걷기도 한다. 그 이른 시간에 누구한테 전화를 하는지 통화를 길게 하는 여자분도 있었다.
국민 건강을 생각하면 무조건 산책로를 걷는 이들에게 박수를 치고 싶다. 하지만 어떤 때는 물소리나 새소리가 아닌 통화음이나 크게 틀어놓은 음악이 거슬리기도 한다.
산책로엔 강아지를 데리고 걷거나 달리는 이들도 많다. 그런 풍경은 낭만 있게 보이지만 개똥을 볼 때면 의구심을 갖게 된다. 저 견주는 강아지똥을 잘 처리할까 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강아지 산책을 시키면서 손에 아무 준비물이 없는 걸 볼 때면 괜히 신경이 쓰인다. 그래도 귀여운 건 말릴 수 없어서 주인 허락을 얻어 머리를 쓰다듬거나 이름과 나이를 묻기도 한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세대가 늘고 아기가 아닌 강아지를 태운 유모차가 늘어나는 걸 보면 기묘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건 때로 불안감으로 바뀌기도 한다. 사람과 동물의 영역이 혼재된 시대, 사람과 사람사이의 간격이 더 벌어진 시대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대로 십 년쯤 지나면 어떤 풍경을 보게 될지, 독거노인 가득한 쓸쓸한 거리를 보게 되는 건 아닌지 우려하게 된다.
혼자 사는 이에게 강아지나 고양이가 위안이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애완동물을 통해 치유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나 역시 고양이나 강아지, 앵무새를 기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다만 이런저런 이유로 엄두를 내지 못할 뿐이다.
다행히 이런 걱정을 덜어줄 기미가 보이고 있다. 차츰 유모차에 아기를 태운 부부와 운동하는 젊은이들이 늘기 시작한 것이다.
딱 부러지게 이유를 댈 수는 없지만 개천 주변에 아파트가 생기고 젊은 부부가 많아진 것, 개천 가꾸는 일이 꾸준하게 진행되는 일, 마라톤대회가 있거나 러닝이나 맨발 걷기가 유행인 것과도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천변에는 한때 물 흐름을 방해한다는 어설픈 전문가의 주장에 현혹되어 베어버린 나무를 다시금 심고 있다. 때늦은 식수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나무는 자랐고 산책로 곳곳에는 초록색 파라솔과 의자가 생겼다. 깨끗한 화장실도 알맞은 가격으로 생겨났다.
맨발 걷기 황톳길도 생겼다. 발 씻을 시설도 개통을 앞두고 있다. 개천 축대는 능소화를 심어서 벽화처럼 축대 담벼락을 덮은 능소화가 여름 내내 붉은 꽂을 피우고 있다. 보랏빛 버들마편초는 뜨거운 여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견디며 피고 또 피었다. 나무수국도 폭염 속에도 희망처럼 내내 피고 또 피었다.
자전거 길과 도보구간도 구분해 놓았다. 산책로 곳곳 바닥에는 개를 산책할 때 주의할 점을 안내하고 있었다. 여전히 개똥은 보이지만 개똥을 주워 담는 사람도 자주 볼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친절함이 깃든 산뜻한 아이디어로 개천가는 곱게 단장해나가고 있었다.
천변의 변화는 입소문을 타는 듯했다. 방송과 유튜브를 통해 퍼지는 걸어야 산다는 절실한 구호도 곳곳에 닿은 듯했다 점심길에 산책로를 오가며 식사를 해결하는 회사원들이 늘고 있었다. 단정한 출근룩의 젊은 남녀가 여럿이 어울려 식사길에 걷는 걸 보면 부럽고 보기 좋다. 둘씩 셋씩, 연인과 친구와 부부가 짝을 지어 달리는 러닝족도 하루 중 아무 때나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반가운 가족산책자가 늘었다 유모차에 아가를 태우고 보드탄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 자주 눈에 띄는 것이다 엄마 아빠와 자녀가 장비를 잘 갖추고 자전거를 씽씽 달리는 모습을 보면 발길을 멈추고 뒷모습까지 보게 된다.
소년들의 행차도 늘고 있었다. 이들을 보면 나이 든 내 가슴이 파래지는 거 같다. 제비처럼 바람을 뿌리며 때로 무섭게 달리는 소년들은 개천의 정체된 공기에 파장을 내며 지나가곤 했다 소년들이 지나갈 때면 혹시 제자들인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본다 제자를 보는 일은 드물지만 소년들의 말갛고 모험심 가득한 얼굴을 보면 괜히 좋다.
이제 소년들은 달리기도 하고 물수제비를 뜨기도 한다 소녀들이 배드민턴을 치곤 하는 코트장 부근 다리밑은 더 자주 찾는 듯하다 굳이 그곳을 택해 노는 거처럼 보인다. 물살이 세서 물수제비가 잘 안 떠지지만 소년들은 지구력 있게 돌을 찾아 던졌다.
자주 보이는 소년 자전거 그룹이 있다. 네댓 명이 어울려 자전거 타는 걸 여러 번 보았다. 하루는 영화 같은 장면을 보았다. 물이 조금 찰랑이지만 자전거로 충분히 지날 수 있는 잠수교를 옆에 놔두고 소년들은 돌징검다리를 택했다.
조금 멀리 있어서 안타까웠지만 가까이 있었다면 박수라도 쳐주고 싶었다. 소년들은 긴장한 듯 느리면서 조심스럽게 서로의 간격을 유지하며 돌징검다리를 무사히 건넜다. 몸집이 자그마한 소년도 잘 건너왔다 미션을 완성한 이들은 호기롭게 페달을 세게 밟으며 내 곁을 지나갔다.
나는 개천가 걷는 걸 즐긴다. 남편과 이 길을 오래오래 걷고 싶다. 유모차 탄 어린이가 걷는 걸 보고 싶고 자전거 탄 소년들이 청년이 되어 출근룩 입는 걸 보고 싶다.
나무가 더 자라 무성해지는 걸 보고 싶고 나무수국과 숙근버베나도 오래오래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