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과학 1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현재 시간을 몰라서 곤란을 겪는 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손목 위에 차고 있는 시계로 혹은 휴대전화로 언제든지 시간을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옛사람들에게 시간은 오로지 해 그림자에 의지해서 읽어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대대로 농업이 국가를 지탱하는 주요 근간이었던 시대에 정확한 절기와 시간을 알아내야 하는 것은 생명과도 직결되는 문제였을 것입니다. 한 해 농사를 망치면 전 국민이 배를 곯아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러한 시대에 기계에 의한 시간을 측정하는 일은 매우 혁명적인 일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자격루는 물의 힘으로 시간을 측정했던 획기적인 기계였습니다. 자격루는 세종대왕 시절에 과학자였던 장영실이 만들었던 물시계입니다. 지난 2019년에 개봉했던 영화 <천문>을 보면, 장영실이 자격루를 만드는 모습이 나오죠.
자격루의 작동 원리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이 기계는 물의 흐름을 이용해 인형이 종, 징, 북을 쳐서 시간을 알려 주는데요. 하루를 2시간씩 나눈 12 지시(오후 11시인 자시, 오전 1시인 축시 등)마다 종을 울리고 밤 시간인 5경(오후 7시인 1경∼오전 3시인 5경)에는 북과 징을 울리도록 함으로써 혼동을 피할 수 있지요. 12 지시에는 각각의 시간에 해당하는 동물 인형(자시의 쥐, 축시의 소 등)이 마치 뻐꾸기시계처럼 시보 상자 구멍에서 튀어 오르게 돼있습니다. 물시계의 기본인 물의 흐름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다시 일정한 시차로 구슬과 인형을 건드리도록 설계한 완벽한 자동제어 시스템을 지니고 있지요.
물론 누구나 손목에 작은 시계 하나씩 차고 다니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자격루는 어마어마하게 커서 그다지 실용적이지 못하며 시간의 오차도 있어서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15세기였던 당시로서는 동아시아에서 매우 보기 드문 최첨단 시계였어요. 조선은 자격루로 조선의 표준시간을 만들어낸 것이니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발명품이었지요. 궁궐 대소사의 때와 시는 물론 백성들에게 일상생활의 때를 알려 주는 혁명적인 시계였으니까요.
동이 트면 파루를 울리고 사대문을 활짝 열어 사람이 들고 나고, 해가 지면 임정을 울려, 사대문 안으로 백성들이 들어오게 했습니다. 이처럼 자격루는 한국사는 물론 세계 시간 측정사와 과학사에 신기원을 이룬 일이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물시계와 달리 시간의 오차가 크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이후 자격루는 임진왜란을 거치며 소실되었다가 나중에는 부품만 남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전해져 왔습니다. 그러던 지난 2007년, 자동제어 전공자인 남문현 교수가 2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노력한 끝에 자격루를 원형 그대로 복원했습니다. 이렇게 복원된 자격루는 현재 대전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독창적인 과학 세계를 이룩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천문과학 분야에서 이룬 성취는 가히 혁명적이었지요. 천문과학 분야가 발달한 이유는, 농업 국가였던 조선에서는 늘 하늘을 보며, 해와 달과 별의 움직임을 살펴야 했거든요. 그래서 하늘의 뜻을 묻고(天問) 살피는 것은 임금의 의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파악하기 위해 매번 해와 달, 별의 움직임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했을까요. 그래서 세종대왕은 표준시간을 만드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것이지요. 그리고 장영실이라는 당대의 걸출한 과학자를 만나 자격루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한편 국립고궁박물관 과학문화실에 가면 또 다른 천문 기기를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 들어서면 초등학교 고학년 어린이의 키 정도 되는, 마치 비석처럼 생긴 유물을 볼 수 있습니다. 그저 길쭉한 비석에 뭔지 몰라도 동그란 빗금이 이리저리 그어져 있는 걸 볼 수 있는데요. 사실 이 유물은 매우 귀한 천문지도입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천문도로, 이름은 ‘천상열차분야지도’라고 합니다. 참 길고 독특한 이름이죠?
‘천상’이란 하늘의 모습이고, ‘열차’는 하늘의 별자리를 구획을 나누어 펼쳐놓았다는 뜻이며, ‘분야’란 하늘의 구획을 땅의 특정 지역과 대비시켰다는 뜻입니다. 이 천문도에는 295개 별자리와 1,467개의 별을 그려 넣었는데, 여기 새겨진 별자리는 크게 3원 28수로 나뉘어 있습니다. 3원은 북극 주변의 태미원, 자미원, 천시원을 말하지요. 재미있는 것은, 지상 세계의 모든 것이 별자리로 재현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태미원은 각종 정부 시설과 관료들을 상징하며, 자미원은 궁궐을, 천시원은 시장을 상징하는 식이지요.
조선 태조 4년에 만들어진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고구려 천문도를 근간으로 했다고 합니다. 조선 초기의 유학자 양촌 권근이 작성한 설명문에 따르면, 고구려 석각 천문도를 원본으로 삼아 조선 태조 4년 당시 하늘의 모습을 관측하고 참조하여 천문도를 일부 고쳐 새긴 것이라고 합니다.
고구려인들도 하늘을 살폈다니 놀랍죠? 그 증거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나 있는 별자리 그림에 있습니다. 현재 22기의 고구려 고분벽화에 별자리 그림이 그려져 있지요. 고구려의 수도 국내성이 있었던 중국 길림성과 북한의 대동강 유역에 주로 이 벽화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중국이야 우리가 얼마든지 가볼 수 있지만, 북한에는 마음대로 갈 수 없으니 정말 아쉬운데요. 아쉬운 마음을 달래줄 곳이 국내에도 있습니다. 경상도 안동의 서삼동 고분 천문벽화와 경기도 파주 고분 벽화에는 고려 시대의 별자리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고대부터 하늘을 경외시한 우리 조상들은 천체를 관측하는 행위를 의례 또는 예의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천체관측 기구를 ‘의기(儀器)’라고 불렀지요. 이러한 천문의기를 크게 구분하면, 시간 측정기와 천체 위치 측정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때 시간 측정기로는 해시계를 비롯하여, 물시계, 천문시계 등이 있으며, 천체 위치 측정기로는 혼상, 간의, 소간의 등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사용한 전통 천문의기들을 하나씩 살펴볼까요. 먼저, 조선 전기의 시간 측정기들을 중심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앞서 서술했듯이, 조선의 놀라운 과학혁명을 이룩한 분은 세종대왕인데 장영실이라는 걸출한 과학자를 만나 대왕의 꿈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세종대왕이 그처럼 수많은 천문 의기들을 발명해 낸 이유는 뭘까요. 바로, 애민 정신이었습니다. 정확한 과학지식을 토대로 백성의 삶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지요.
이제 어두컴컴한 박물관 전시실을 나와 햇빛 쏟아지는 광화문 광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세종대왕 동상이 어진 표정으로 21세기를 살아가는 백성들을 굽어보고 있네요. 동상 아래를 볼까요? 앙부일구라는 해시계가 있습니다. 전통 농경사회에서 날씨와 시간을 살피는 일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앙부일구는 그 모양이 마치 밥을 지어먹는 가마솥을 닮았습니다. ‘앙부’라는 이름은 ‘하늘을 우러르는 가마솥’이라는 뜻이죠.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 제작되어 사용한 해시계입니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앙부일구를 종로 거리 한복판에 설치했다고 합니다. 백성을 위한 공공 시계였기 때문이지요. 지금의 위치와 비슷하죠? 그렇다면 지금도 앙부일구를 이용해 시간을 읽는 것이 가능할까요? 네, 가능합니다.
현재의 시각과 30분 정도 차이는 나지만요. 그 이유는, 현재의 표준시를 서울의 경도인 127도 30분이 아니라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표준시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기준으로 하고 있지 않다니 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 또한 일제의 잔재라고 볼 수 있지요.
해시계는 앙부일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모양으로도 제작되었습니다. 그중 가장 복잡하고 정밀한 해시계는 정남일구인데요. 남쪽을 정해주는 해시계라는 뜻입니다. 정남일구는 다른 해시계와 달리 지남침을 쓰지 않고도 남북의 방향을 정확하게 잡을 수 있게 되어 있어요.
조선 후기에 이르면, 심지어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휴대용 해시계까지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놀랍죠? 그 당시에 휴대용 시계라니! 천평일구, 현주일구 등이 바로 그러한 휴대용 해시계입니다. 휴대용이라고 해서 지금의 손목시계 크기 정도는 아니고 현재 여러분의 손안에 들어가는 스마트폰 크기 정도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궁금해집니다. 인류는 언제부터 그리고 어떤 해시계를 이용했을까요?
인류가 가장 먼저 발명한 해시계는 규표입니다. 태양이 정남 쪽에 왔을 때 태양의 그림자를 재는 천문 관측기기죠. 해는 여름에 가장 높게 뜨고 겨울에 가장 낮게 뜨는데요. 해가 높이 뜰 때 규표의 그림자는 짧아지고, 해가 낮게 뜰 때 규표의 그림자는 길어집니다. 인류는 이처럼 규표를 이용해서 여름과 겨울을 알 수 있었고 그림자의 길이를 측정해 24 절기를 알 수 있었습니다. 24 절기를 알게 됨으로써 때에 맞춰 농사를 지을 수 있었고요. 현재 이 규표는 한국천문연구원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창경궁으로 가보겠습니다. 창경궁 드넓은 잔디밭에 나지막하게 돌로 쌓아 올린 어떤 구조물이 보이는데요. 관천대라고 하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천문대지요. 소간의대라고도 합니다. 세종대왕 시대, 이곳 관천대에 신기한 물건을 올려놓았었는데요.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용의 형상으로 되어있는 천문의기로 이름하여 ‘일성정시의’라고 합니다.
낮에는 해시계로, 밤에는 별시계로 변신하는 신기한 시간 측정기로, 이는 매일 변하는 별자리의 움직임을 보정하는 장치가 가미된 획기적인 복합 시계지요. 일성정시의는 태양이 자오선에 왔을 때 매일 12시 정각을 자격루에 알려, 물시계를 가동하게 했습니다. 해와 별들이 북극을 중심으로 일정하게 회전한다는 원리를 적용하고 있지요.
세종 19년에는 4개의 일성정시의를 제작해 각각 궁궐과 서운관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 개는 함길도와 평안도의 절제사 영에 나눠주고 경비 임무에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어떤가요.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조선시대에는 과학 특히 그중에서도 천문과학이 발달했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조선시대의 또 다른 천문과학의 역사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계속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