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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남 Nov 13. 2023

나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는 나를 웃게 하지요.

여기는 장애인 거주 시설입니다. 소원 씨는 이제 며칠만 있으면 서른이 되는 예쁜 아가씨입니다. 제가 소원 씨를 처음 본 것은 7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하얀 얼굴에 주끈깨가 양쪽 볼 가득히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기품이 있어 보이는 얼굴에 뼈만 앙상한 몸과 손발을 드러내고 웃음기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저의 한 손으로 그녀의 등 뒤를 받치고 한 손은 팔을 잡고 걷게 하는데 곧 쓰러질 것 같은 가냘픔이 내게로 전해와 안쓰러움과 한편으로는 다치게 할 것 같은 두려움에 마음에서 쿵쿵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만난 소원 씨는 아무 말도 없고, 아니 아무 말도 못 하고, 앙상한 발로 간신히 걸을 수 있는 수준의 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저귀 케어는 물론이고 식사 때마다 밥과 반찬을 믹서기에 갈아 죽을 만들어 약과 함께 떠먹여야 하는 중증이었습니다.


그 어떤 것에도 반응을 하지 않고 눈은 멍하니 한 곳을 응시하거나 지그시 감고 있고 그저 누워만 있거나, 의자에 앉아 있거나 하는 정도로 다른 어떤 누구와도 소통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샤워 지원을 하고 선임 선생님이 소원 씨에게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하면서 노래를 불러 주었습니다. 그 어떤 것에도 반응이 없던 소원 씨가 침대에 앉아 있다가 두 손을 조금씩 움직이고 배시시 웃는가 싶더니 이내 손뼉을 치는 것이 아니겠어요. 깜짝 놀라서 계속 노래를 불러 주었습니다. 노래는 12월까지 가사가 있어서 계속 불러 주었는데 어떻게 이 노래에 반응하는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선임 선생님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거실에서 소원 씨에게 걷기 운동을 시키다가 쉬게 해 주면서 다시 ‘달아 달아 밝은 달아’ 하면서 노래를 불러 주었습니다. 소원씨는 서 있다가 갑자기 무릎을 굽히면서 펄쩍 일어서는 시늉을 하면서 손뼉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깜짝 놀라서 

“소원이가 손뼉을 쳐요. 소원이가 웃고 있어요.” 

내친김에 이번에는 ‘아파트’ 노래를 불러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파트를 많이 들어왔던 것처럼 소리 내면서 웃는 것이었습니다. 모두 신기해했고 노래를 계속 불러 주었을 때 소원 씨는 한참을 웃으면서 손뼉을 쳤습니다. 소원 씨가 그렇게 행복해하는 얼굴은 일찍이 보지 못했습니다.


소원 씨가 왜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와 ‘아파트’를 처음 듣고 그렇게 격하게 반응을 하는지 몹시 궁금했습니다. 선임 선생님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소원 씨의 초기상담지를 보았습니다. 소원 씨는 엄마의 부재로 할머니가 오랜 시간 케어하시면서 공주님처럼 예쁜 옷을 입고 귀하게 자랐습니다. 소원 씨가 예쁘장한 아가씨가 된 만큼 연세가 드신 할머니는 힘에 부치기 시작하셨고, 그 후 시설로 옮겨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 할머니가 불러 주시던 노래였구나’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12월에 뜨는 달은 소원이 할머니가 생각나는 달” “1월에 뜨는 저 달은 소원이를 웃게 하는 달” 하면서 개사를 해서 불러 주면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방긋방긋 웃었습니다.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소원이 옷 사러 가자.” 했더니 혼자 거실을 걸어서 문까지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면서 “소원 씨도 옷 사는 것 좋아하는구나. 오늘은 안되고 다음에 가요.” 하면서 데리고 와서 의자에 앉혔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좋았던 기억을 가슴 깊이 묻어 두었다가 슬프거나 힘들거나 외롭고 지칠 때 그 기억을 꺼내어 스스로에게 위로를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소원 씨도 어릴 적 할머니가 불러 주시던 노래가 머릿속 깊이 잠자고 있다가 어느 날 문득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할머니의 노래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소원 씨에게 노래를 불러 주면서 주르륵 눈물이 나는 건 무슨 까닭일까요? 소원 씨의 상황이 투사될 일도, 저에게는 그런 기억도 없는데 심하게 감정이입을 하는 것일까요? 


지금도 소원 씨는 달아 달아 밝은 발아와 아파트 노래를 들으면 함박웃음을 웃고, 어깨를 들썩이거나 손뼉을 칩니다. 그러면 또 옆에 있던 이들은 “소원이 웃는다, 소원이 웃는다.” 하면서 함께 웃으며 하루 일과를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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