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섬 이야기(75)

쑥섬을 수영으로 건너다녔다

by 명재신

쑥섬을 수영으로 건너다녔다.


쑥섬은 아직도 섬입니다.


그래서 쑥섬을 건너기 위해서는 도선을 타야 합니다.


지금이야 근사한 '쑥섬호' 두 척이 시나브로 탐방객들을 태워서 5분이면 금방 건너가는 쑥섬입니다만 옛날에는 구식 엔진으로 돌려서 가노라면 20분은 넘게 걸리는 '머언' 거리였습니다.


노를 저어 건너 다닐 적에는 30분~40분은 걸렸을 거 같습니다. 그 고단한 거리를 쑥섬 사람들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나룻배를 기다려서 건너갔다가 건너와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한번 나룻배를 놓치면 건너가서 1시간, 건너와서 1시간을 기다려서야 쑥섬에 있는 집으로 건너올 수가 있었습니다.


마지막 나룻배를 놓치면 별 수 없이 나로도항에서 배를 빌려타고 오던지 하루를 묵고 그 다음 날 건너와야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다음의 두 가지 방법이었습니다.



첫번째는 걸어서 건너는 방법입니다.


저는 곧잘 고향 쑥섬을 이야기 할 때면 '쑥섬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걸어서 건너는 법을 배운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걸어서 건너갈 수 있느냐?'고 물어오면


'쑥섬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물 위를 걷는 법부터 배운다'고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말도 안된다'고 반신반의를 할라치면 그 방법은 '생각보다 쉽다'고 다음과 같이 물 위를 걷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오른발이 빠지기 전에 왼발을 딛고 왼발이 빠지기 전에 오른발을 딛으면 바다 위를 걸을 수가 있다'고 쑥섬을 걸어서 건너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설파를 했습니다.


'진짜냐? 그렇게 해서 걷는다는 게?' 고 상대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웃어 제끼면


'당연히 안되지'하고 농을 마무리합니다.


쑥섬을 걸어서는 건널 수는 없습니다.


친구 아버지가 술을 거나하게 드시고 나로도에서 쑥섬으로 노를 저어 건너오시다가 '영등사리에 배가 모래등에 얹혀 걸어서 건너오셨다'는 전설같은 이야기 이외에는 걸어서 건너온 사람은 아직까지 없습니다.


앞으로 나로도항과 쑥섬 사이에 다리가 생기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두번째는 수영을 해서 건너는 방법입니다.


'쑥섬 아이들은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수영해서 나로도에서 쑥섬으로 건너다녔다'


수영강사가 저의 그 말을 듣고서는 수영장 지하가 들썩이도록 웃어제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서울 집 근처에 있는 실내 수영장에 수영강습반 '최상급반'에 신청을 했었거든요.


집 근처에 근사한 실내수영장이 생겼다길레 퇴근길에 수영이나 해볼까 하고 '최상급반'을 신청을 했는데 강습 첫날 강사는 처음 보는 저에게 수영을 한번 해 보시라고 해서 자유형을 '폼나게' 한번 보여 주었더니 강사는 좀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조용히 불러서 그랬습니다.


'선생님, 수영을 어디서 배우셨는지요?'


'수영은 쑥섬에서 다섯 살 때부터 막내 누님에게서 배웠다'고 의기양양하게 그랬더니


'아니요, 정식으로 실내수영장에서 강습을 받으신 적이 있는가를 묻는 겁니다'


'실내 수영장에서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다'며 그게 무슨 대수냐며


'나는 '반공일/토요일'에는 나로도항에서 쑥섬으로 수영을 해서 건너 다녔다'고 하였더니 그 건장한 수영강사는 참던 웃음을 터트리며 그랬습니다.


'선생님, 팔은 자유형인데 발차기는 평영 발차기이고 배영도 팔은 배영인데 발은 또 평영 발치기이고'


그 수영강사는 그런 영법이 미 해군에 있기는 한데 그걸 두고 자기네들은 '데구말구형'이라고 그랬습니다.


'선생님 같으신 분들은 몇 년을 강습을 해도 잘 늘지 않습니다. 폼도 교정이 잘 안되시구요. 팔돌리기야 그렇다고 치더래도 자유형 발차기하고 배영 발차기는 아예 안되구 있어서 처음부터 다시 배우셔야 합니다.'


결론을 내려 주었습니다.


'초급반에서 발차기부터 배우세요'


그리고는 더 절망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물에 뜨지도 못하시는 저 분이 나중에는 더 잘하실 겁니다. 선생님은 삼년이 지나도 폼은 안 고쳐 질겁니다'


삼각팬티 수영복이 아슬아슬한 그 수영강사님께서 그러셨습니다.


'수영은 폼생폼사이거든요'


그리고서 거기 수영장에서 강습을 6개월을 넘도록 배웠는데 우리 초급반 강사님은 저를 중급반으로 승급을 시켜 주지를 않았습니다.


주된 이유는 발차기가 아직 안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발차기는 열심히 하는데 몸은 앞으로 나가지를 않는다고 '칼치기 발차기'라고 했습니다.


같이 시작한 젊은 여자분은 벌써 중급반으로 자리를 옮겼는데도 말입니다.



정말입니다.


정말 억울하였지만 저는 정말 쑥섬에서 알아주는 물개였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쑥섬과 나로도항의 그 물목을 수영을 해서 건너 다녔고 '우끄터리 방파제'에서는 여름마다 자맥질을 하여서 소라를 '한 다라'씩을 잡아나른 쑥섬에서도 알아주는 '쑥섬 해달'이었습니다.


'반공일/토요일'에 수업을 일찍 마치고 학교가 있던 신금마을에서 나로도항까지 오면 나룻배가 아직 쑥섬에서 건너오지 않아 많이 기다려야 할라치면 서슴없이 책보따리 하고 옷가지는 저학년 동생들에게 맡겨 두고 팬티만 입고 바닷물로 뛰어들어 쑥섬을 향하여 수영을 해서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혼자는 아니었고 '자장궂은/별난 아이들' 아이들 두세명이 어울려 함께 출발을 했습니다.


'쑥섬호'로 5분 밖에 안 걸리는 거리'라고 지금이야 그러지만 지리적인 거리보다는 심리적인 거리가 더 먼 물목이었습니다.


그게 쉬운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나로도항과 쑥섬 사이는 물목이어서 조류가 세게 흐르는 곳이어서 우리같이 '물개'들이 아니면 건널 수 없는 거리와 바다였습니다.


그것도 성인이 아닌 어린 아이들로서는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지나다니는 배들이 있었기 때문에 항상 신호가 될만한 것을 지니고 지나가야 했습니다. 저만치서 배가 오는 것이 보이면 같이 헤엄을 쳐서 건너는 무리 중에 한 명이 깃발이거나 무언가를 흔들어서 우리가 수영을 해서 건너는 중이라는 것을 알려 주어야 했습니다.


'이노무 자석들 니들이 죽을라고 환장을 했냐!'


배를 몰고 가시던 선장님들이 갑자기 손을 흔들어 대는 쑥섬 아이들을 발견을 하고는 급하게 피해가면서 호통을 치면서 '못 말리는 쑥섬 아이들'이라며 혀를 차고 지나가시거나 옆에 살짜기 와서는 태워서 건네 줄테니 어여 타라고 하시는 분들도 더러 계셨지만 '쑥섬 물개'인 우리는 그냥 쑥섬을 향해 그냥 건너갔더랬습니다.


가다가 누군가 힘들어 하면 함께 배영으로 쉬어가면서 건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면 당초에 도달하려고 했던 '안몰짝 선착장'이거나 '건몰짝 선착장'을 한참을 벗어난 곳에 당도하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억울합니다.


어릴적부터 그렇게 쑥섬을 건너다녔던 '쑥섬 해달'이 실내 수영장에서는 '초급반'으로 6개월을 발차기부터 배워야 했고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발차기는 여전히 안되어서 '중급반'으로 못 올라가고 결국 해외근무를 위해 바다건너 머언 이국 땅으로 건너갔다 오느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으니 말입니다.


해외 파견근무 13년을 마치고 돌아와 이제는 중급반에 올라가 보려고 열심히 발차기 연습을 하고 있어서 튀긴 물보라는 천정에 닿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칼치기 발차기라고들 합니다.


그래도 저는 마음만은 '최상급반'입니다.


정말입니다.



늘 거기 있으라


다행이다

아직도 배를 타고 건너야 하는 섬


얼마나 좋은가

배를 타야 건너가야 하는 섬


너와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있으니 그리움도 컷으리

평생을 두고

건너야 할 물목이 있어


어제도

오늘도


세찬 조류를

건너가는 꿈을 꾸는 것


늘 거기 있으라

늘 거기 남으라


2025. 7. 14

쑥섬 돌부처



나로도와 쑥섬은 위의 지도에서와 같이 조류가 세게 흐르는 물목입니다.


이 소년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나로도항과 쑥섬 사이의 물목을 수영으로 건너다닌 ‘쑥섬물개’였습니다.
쑥섬의 몬당에서 건네다 본 나로도항의 모습입니다. 초등학생에게는 수영으로 건너기에는 제법 먼 거리였을 겁니다.
나로도 항과 쑥섬 사이의 물목입니다. 이 거리는 지리적인 거리보다도 심리적인 거리가 더 먼 물목이었습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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