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섬이야기(76)

조선 기왓집

by 명재신

조선 기왓집


이번에는 쑥섬의 '조선 기왓집'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조선 기왓집'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큰 기왓집이 쑥섬에 있었다는 이야기이며 그 기왓집이 조선시대에 지어진 기왓집이라는 것인지 조선시대의 기왓집과 같은 형식으로 지어졌다는 것인지조차도 알려진 바가 없으나 그런 기왓집이 있었고 지금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쑥섬에는 '최고의 명당자리'가 있으며 그 자리에 묫자리를 쓰면 '남도 최고의 부자'가 된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습니다.


그 명당자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를 않습니다만 저는 그곳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남도 최고의 부자'가 되려고 했던 사람과 '와우도'와 그리고 '조선기왓집'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짧게 해 보겠습니다.


이야기는 쑥섬이 한 때는 '와우도(臥牛島)라는 이름을 갇고 있었다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목포 쪽에서 내려오는 배를 타고 '서바닥/서쪽바다'으로 접어들면 쑥섬의 뒷쪽에서 쑥섬을 바라다보면 영락없이 하마가 물 위에 떠있는 형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두고 옛날 사람들은 소가 바다에 누워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누울 와(臥)와 소 우(牛)'를 써서 쑥섬을 두고 '와우도'라는 이름을 붙여서 불렀던 듯 합니다.


그런데 이 섬을 가만히 '서바닥' 쪽에서 근접하면서 건네다 보면 지금의 '중빠진 굴'이라고 부르는 천애 절벽의 위쪽이 소의 머리에 해당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바다에 누워있는 소의 머리에 해당하는 부위가 소위 말하는 '쑥섬의 최고의 명당'이라고 하는 곳이라고 전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최고의 명당이라고 하는 '혈(穴)' 자리는 공교롭게도 저희 '뒷먼밭'의 바로 초입에 위치한 '미산네 밭' 자리 중간 즈음에 있었습니다.


돌밭이긴 했어도 흙이 섞인 밭 자리 중간 즈음에 청석(靑石)으로 된 바위가 길이 방향으로 1 미터 정도 드러나 있었는데 그 길이방향으로 홈이 파여 있었고 거기만 왠일인지 흙이 붉은 황토색을 띄고 있는 부위가 이름하여 '쑥섬의 최고의 명당' 혈자리라고 그랬습니다.


할머니가 말씀하셨고 아버지가 그러셨습니다.


'저기가 그 자리이니라'


문제는 쑥섬에는 '어떤 형태로든 무덤을 써서는 안된다'는 엄한 규율이 있었고 또한 그 자리에 묫자리를 쓰기라도 하면 그 집을 제외하고 남은 집들에는 흉한 일들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진짜로 있었는지, 아니면 그냥 재미삼아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이야기와 연계된 '조선 기왓집' 터와 주춧돌이 남아 있다는 것은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마을과 동떨어진 그 밭터에 그런 기왓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감쪽같이 시간의 뒤로 숨어버린 이야기들, 쑥섬 사람들 그 누구도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도 이야기 하려는 사람도 없는 그런 이야기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좀 더 들여다 보면 가까이 그것도 가까운 친척일 수도 있고 함께 사는 옆집일 수도 있었고 이래저래 혈연으로 이어진 가계의 한 줄기일 수도 있어서였을까요?


남도 최고의 부자가 되겠다는 욕심으로 어느 시대에 어느 누가 쑥섬마을 사람들 몰래 돌아가신 자신의 조상의 유골을 수습해 와서 그 자리에 몰래 묻은 투장(偸葬)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집에서 부리는 배들은 나가면 모두 만선으로 들어왔고 쑥섬 마을의 다른 배들은 이런저런 해난 사고를 겪거나 흉한 일들이 거듭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유지들이 중심이 되어서 용한 스님에게 어쩐 일로 이런 흉한 일들이 쑥섬에서 집집마다 일어나고 있는지를 여쭈니 누군가 쑥섬의 최고의 혈에 몰래 또 암장을 한 것일 수 있으니 조용히 확인을 해 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해서 쑥섬 사람들이 집집마다 들고 일어나 쑥섬의 최고의 명당이 될만한 자리를 뒤지니 쑥섬 '뒷먼'의 '중빠진 굴' 위에 있는 '미산이네 밭자리'에서 몰래 묘를 쓴 것을 확인을 하였다는 것이고 그 장본인이 누군지를 확인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집의 주인이 바로 그 시절에 '조선 기왓집'을 올려서 떵떵 거리며 잘 살고 있는 집의 주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쑥섬은 '김(金)', '박(朴), '명(明)', '고(高)'씨의 성씨들이 살고 있었는데 네개의 성씨 중에 한 집안이었기에 아마도 이야기의 주인공이 어느 성씨인지를 구체화하지 않고 '그런 일들이 있었다더라' 식으로 후손들에게는 그런 일들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되는 정도로 이야기를 마무리하였는지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전해지지도 전해오지도 않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 보면,


그래서 쑥섬의 유지들은 그 집안의 가장을 잡어다가 쑥섬 보리마당에서 '덕석/멍석'을 깔고 '덕석말이'를 하여서 징벌을 하고서는 쑥섬마을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게 추방을 해 버렸다는 것입이다.


같은 성씨라면 그 집안의 식솔들은 어쩌든지 친 인척지간이었을 것인데 아무도 그렇게 마을에서 결정한 덕석말이 체벌과 추방을 반대를 하지를 않았다는 것이니 당시에 얼마나 쑥섬마을에 흉한 일들이 심각하였고 그로인하여 인심이 흉흉해졌었는지 가늠이 가는 대목입니다.


어쩌든지 이야기의 마무리는 그렇게 해서 쑥섬에는 더 이상 흉한 일들은 생기지를 않았고 그 최고의 명당 자리는 이후에는 그 누구도 탐을 내거나 불경스런 일들을 시도 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조선 기왓집'을 짓고 떵떵거리며 살던 그 집은 어찌 되었고 그 집터는 어디에 있다는 것일까요.


그 집터는 실재하지만 그 '조선 기왓집'을 이루었던 기와의 파편들이나 어떤 유물들은 흔적도 없이 시간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고 '갱본/바닷가'에서 흔적을 찾아볼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집터는 우끄터리로 가는 길목의 왼쪽에 지금은 꽃밭자리로 가꾸고 있는 너른 밭자리가 있는데 거기에 바로 '조선 기왓집'이 있었던 집터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 밭의 입구에서 들어가는 구석에는 청석으로 깎어 만든 커다란 주춧돌이 서너개가 남어 있는 것으로 그 밭자리가 '조선 기왓집'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는데 근래에 들어서 그 주춧돌들을 누가 가져갔는지 아니면 그 집터 앞에 길을 넓히면서 그 자리에 넣어 버렸는지는 알수 없으되 분명한 것은 청석으로 된 커다란 주춧돌이 남어 있었고 그 주춧돌을 기초로 한 커다란 '조선 기왓집'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받쳐주는 유일한 근거였다는 것입니다.


쑥섬의 허무하고도 맹랑한 '조선 기왓집'의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가 됩니다.


남도 제일의 부자가 되고 싶으신가요?


한번 쑥섬에 들러 보시고 그 자리를 찾아가 합장이라도 해 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내려오시는 길에 허허로이 그 옛 영화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알 수 있는 빈 집터를 둘러 보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 자리가 궁금하신가요?

남도의 작은 섬이었음에도 쑥섬에는 '기왓집'들이 많았습니다.
여기가 바로 ‘조선 기왓집’이 있었다는 집터입니다
이곳이 바로 ‘소머리’에 해당하는 쑥섬 최고의 명당 자리입니다. 이곳에 묘를 쓰면 집안은 흥하나 마을은 흉한 일들이 생긴다는 쑥섬의 최고의 혈 자리입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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