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섬이야기(71)

풍선(風船)_한국전쟁_2/4

by 명재신

풍선(風船)_한국전쟁_2/4



"형님, 저기 상자 안에 총들이 들어 있습디다"


동생이 살짝 와서 귀속말로 그랬다.


"총?"


총이라니.


"이물에 있는 저 상자 속을 아까 전에 들여다 봤소."


"총들이 들어 있다니 그거시 뭔 소리여!"


"권총하고 소총들이 들어 있습디다"


힘들게 싣자 해서 싣긴 했었는데 그 상자가 무기들을 담은 상자였다니. 적어도 먹을 것이나 귀중한 서류들이겠거니 생각을 했었는데.


"육지와 너무 가까워!"


김소장이 고함을 다시 질러대고 있었다. 사량도가 눈앞에 다가오는데 그는 기를 쓰고 멀어지려고 했다.


"기선에 연락을 해서 '선수/뱃머리'를 먼바다 쪽으로 돌리라고 해!"


"곧 있으면 바람이 언제 터져 나올 것인디 배를 바깥으로 내 몬다니 정신이 있는 소리요?"


동생이 사납게 맞받아쳤다. 동생의 얼굴에는 심기가 잔뜩 틀려 있었다.


곡식을 나눠 준다고 할 때부터 동생은 의심을 했었다.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그랬는데 동생 말이 맞아 떨어진 것이었다.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해!"


먼바다라고 하면 욕지도 너머에 대마도였다. 김소장이 들고 있던 권총을 동생 머리에다 겨누었다.


"죽는수가 있어!"


당초에 기선이 향하는 곳이 여수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전쟁이 터졌는데 여수에 가자고 광주에서 고흥으로 내려오지는 않았을 터였다.


"물도 떨어지고 먹을 것도 떨어져 가고 있는디 이 판국에 어디로 간다고 그래쌓소"


동생이 더 큰 소리로 악을 써 댔다.


"저것들 좀 봇씨요 저 똥들도 좀 보라고라"


이미 어창 안에는 오줌이고 똥이고 싼 상자들에서 고약한 냄새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사람이 한 나절이면 몰라도 적어도 하루가 넘어가면서 1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싸대는 것에는 대책이 없었다. 사람의 생리였다.


아무리 부끄럽고 남새스러워도 나오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남자는 어찌 바깥으로 나와서 여기저기 싼다고 해도 여자들은 어쩌지를 못했다. 적어도 배는 여자들이 해결할 수 있는 마땅한 곳이 없었다.


"저래가지고 어디를 간다는 것이요 어디를"


동생은 자꾸 상자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 여차 하면 상자 뚜껑을 열어 젖힐 참이었다.


모르긴 해도 그들은 좀 더 안전한 곳으로 향하고 있을 거였다. 삼천포가 아니면 통영이겠거니 싶었다. 100여 명이나 되는 전남광주 지역의 군경 가족들이 안전지역이라면 멀리는 부산까지였지만 현재 남아 있는 식수와 식량을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어딘가에 들러서 보충을 해야 했다.


"먼바다로 나가면 다 죽어요 이 판국에 어디를 가겄다고 그래쌓소"


그들은 바다를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지금의 새마바람이 어떤 바람인지를. 샛바람이 터져 나오기 직전에 부는 새마바람이었다.


곧 샛바람이 터져 나오면서 파도가 높아질 거였다.


적어도 쑥섬에서 우리만큼 이쪽 바다를 아는 사람은 많지를 않았다. 쑥섬에서는 이런 풍선으로도 서해안의 연평도까지 오르내렸었고 동해안의 죽변까지도 다녀왔었다.


지난 가을 '이까스리/오징어잡이'에 우리배는 여수를 거쳐서 삼천포, 통영 그리고 부산을 돌아서 울진의 죽변항까지 올라갔다 왔었다. 여름 더위가 수그러지는 8월 중순부터 '이까스리'를 위해 동해안의 죽변항까지 올라갔다가 10월 찬 바람이 터져 나오기 직전까지 오징어떼가 남하를 해서 부산 앞바다까지 따라 내려왔다가 11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다시 뱃머리를 쑥섬으로 잡고 머언 뱃길에 나섰었다.


아버지 때는 울진의 죽변항을 넘어서 더 위로 묵호항까지 올라갔었다고 했었다. 머언 항해길이었다. 보름을 걸려서 다녀와야 하는 머언 뱃길이었다.


풍선으로 오르내리는 뱃길은 적어도 바람이 순풍이어야 했고 조류도 맞아야 했다. 바닷물을 거스르고 바람을 맞받으면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도 다다를 수가 없는 법이었다.


"하늘에서 언제 폭격을 당할지 어찌 알겠나"


그는 하늘이 걱정이었지만 우리는 바다가 걱정이었다. 바람이 새마로 돌고 있다는 것은 곳 샛바람이 터져 나올 거였다. 바람이 방향을 틀고 있다는 것은 곧 샛바람과 함께 파도가 오고 있다는 말이었다. 아무리 기선이 앞에서 끌고 있다고 해도 사량도에서 멀어지면 뒤에 끌려가고 있는 풍선은 속수무책으로 파도와 바람에 노출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창 안에 여자들하고 노인들이 못 견딜 것이요"


고흥의 해창만을 빠져나와 여수로 향하는 '봇도리바닥/벌교만 바깥쪽'에서 녹초가 되어 버렸을 것인데 그들은 그나마 운이 좋았다.


하늘바람이 뒤에서 밀어주었고 순류를 타고 여수까지 단숨에 내어달렸었다.


'봇도리바닥'은 악명이 높은 '난바다'였다.


대양의 파도가 바로 드리 닥치는 곳이었기에 파도에 익숙한 섬사람들조차도 거기를 지나칠 때는 날이 좋은 날을 골라 지나는 곳이어서 아무도 날이 험할 때는 나로도나 여수에서 배를 띄워서 거기를 지나는 법이 없었다.


아직까지 그들은 운이 정말 좋은 편이었다. 여수를 경유하지 않고 바로 통영으로 뱃길을 잡을 때까지 바다가 잔잔했기 때문이었다.


"대마도 쪽으로 선수를 돌리라고 해!"


"대마도라고라?"


미친 짓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리였다. 샛바람이 터져 나오면 맞바람이었고 파도가 문제였다. 거기다가 적어도 여수에 들러서 기선의 기름을 보충을 했어야 했었다. 아마도 기선 선장은 통영까지 갈 수 있는 기름은 채워서 나로도에서 떴을 것이었다. 그러니 통영은 반드시 들러야 했다.


식수와 식량도 여수에서 한 번은 채웠었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수는 우리보다도 그들이 더 잘 아는 곳이었을 것이다.


삼천포나 통영은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었다.


"그래, 대마도 쪽으로 간다"


김소장이 권총을 다시 뽑아 들어서는 '이물/배 앞'으로 가서는 고함을 질러 앞쪽의 기선쪽에 기별을 하라고 했다.



풍선(風船)


살면서 어디 순풍만 받았으랴


가고자 한다면

맞바람에도 돛은 펼 수 있으리

나아가고자 한다면

역류에도 배를 띄울 수 있으리


멀리 가자면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

오래가자면 쉬엄쉬엄 가야 쓴다


그래야 돛 하나만 가지고도

서해까지 연평도까지도

동해까지 묵호항까지도 다녀왔으리


거스르지 마라 거역하지 마라

되는 날이 있고 안 되는 날이 있으리


나아가고자 한다면

바다 물색도 잘 살피고

닿고자 하는 곳이 있거든

하늘 구름도 잘 살펴야 쓴다


그래야

다시 돌아올 수 있으리


출처 : 제2시집 '겨울사랑'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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