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5년 3월 25일)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을 바라면서 문인 414인이 한 줄 성명을 발표했답니다. 그중 노벨상 수상 작가인 한강 씨의 성명이 너무나 가슴 아팠습니다. 공감 때문에? 아뇨! ‘이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은 결국 모든 시민이 벌이고 있는 일’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한강 씨의 한 줄 성명은 이렇답니다.
"훼손되지 말아야 할 생명, 자유, 평화의 가치를 믿습니다. 파면은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일입니다.“
한강 씨 말 대로라면, ‘대통령의 계엄 포고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으며 대통령의 큰 잘못이라고 보지만, 그를 파면하는 것에도 반대’하는 저 같은 사람은 보편적 가치를 훼손하는 사람인가요?
만약 헌재 8인의 재판관 중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기각 혹은 각하 의견을 내는 재판관이 있다면 그 역시 보편적 가치를 훼손하는 사람인가요?
대통령 탄핵은 내란죄 등 ‘형사상 등에서 명확한 몇 가지 특정 조건’에서만 성립하는 것으로 압니다. 게다가 국회 측은 대통령 탄핵 사유에서 내란죄를 뺀 상태입니다. 법리상 그를 파면시켜야 마땅하다는 재판관도 있고, 그럼에도 파면까지 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재판관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선고가 지연되는 것이겠지요. 그 다른 의견 중 어느 하나만이 옳은 것은 아닐 겁니다. 8인의 재판관 모두 ‘최선을 다해서’ 법리에 따라 심판하려고 노력 중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강 씨의 한 줄 성명은 오만의 극치라고 봅니다. 그가 법리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알까요? 형사법전은커녕, 형사소송법전을 단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을까요?
서울대 법대를 나와서(헌재 재판관 8인 중 7인에 해당) 20대 초-전반에 사법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붙고, 한평생 법 연구와 집행 절차에 몰두한 이들 중에서도 우수한 사람들만 추린 헌재 재판관조차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때론 격하게 논쟁하면서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의견을 모으고 있을 겁니다. 한데, 한강 씨와 의견이 다르면 보편적 가치를 훼손하는 사람으로 바로 전락하는 건가요?
탄핵과 관련한 각종 소셜미디어나 기사에 딸린 댓글을 보면서 저는 절망합니다.
평소 합리적으로 보였던 이들조차 ‘파면만이 옳다’ ‘기각이나 각하만이 옳다’고 이야기합니다. 심지어 일부 법조인들조차 ‘일방적인 주장’을 합니다. 그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헌재 재판관은 모두 바보들입니다. 자명한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니까요.
심지어, 대통령 탄핵은 법이 아니라, 교양을 갖춘 시민 그 누구라도 판단할 수 있으므로, ‘법꾸라지 같은’ 헌재 재판관에게만 맡겨서는 안 되며 여론조사를 하자는 주장도 어제(25년 3월 24일) 한덕수 총리 탄핵 기각 이후 나오고 있습니다.
전문가를 무조건 인정하자는 게 아닙니다. ‘명확하게 증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진위 단언’을 함부로 하지 말자는 겁니다.
더 나아가, 근대 이후 국가에서 ‘모든 사안의 결정과 집행이 공동체 구성원의 직접 참여로 가능하지 않은 만큼, 공동체가 판단과 집행을 위임한 집단(그것이 정치인이 됐든 관료가 됐든, 사법부가 됐든)의 결정은 그것이 틀렸음이 명백하게 증명되지 않는 이상 일단은 따르자’는 겁니다. 물론 제도적으로 수정할 것은 수정해야겠지만요. 그게 근대 이후 모든 국가의 운영 원칙 아닌가요?
헌재 결정을 코앞에 두고 ”대통령 파면에 반대하는 이는 보편적 가치를 훼손하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뭘 어쩌자는 겁니까? 역으로 ”파면하면, 의회 독재를 인정하는 꼴“이라고 비판할 사람은 없을 것 같나요?
저는 계엄령 포고에도 반대하고 대통령 파면에도 반대하지만, 파면을 외치는 이들의 주장도 존중하고자 합니다. 그냥 저와는 다른 의견을 가진 분이니까! 제 의견이 맞다고 증명할 수 없으므로, 저는 저와 다른 이의 주장도 존중합니다. 대신, 상대방 역시 저를 존중했으면 합니다. 만약 ”제 의견이 틀렸다“고 생각하신다면 왜 틀렸는지 증명하셔야 합니다. 자신 있으신가요, 저처럼 생각하는 이를 틀렸다고 증명할?
그런 자신도 없으면서 왜 무조건 나만 옳다고, 나와 다른 남은 틀렸다고 이야기합니까?
이 사회에서 현금 벌어지는 ‘내전’이 과연 ‘정치인들 때문으로만’ 일어나고 있다고 보십니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내전은 우리 모두가 참여해서 벌이고 있는 중입니다.
아쉽습니다. 슬픕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50325097800005?input=119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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