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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선아 Jan 30. 2023

지금 순간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얘기하고 싶습니



#1. 40년 전 아빠의 일기(를 빙자한 연애편지)



1980년 0월 0일


찌는듯한 더위도 길가에 늘어선 코스모스 당신의 꽃망울에 눌려 서서히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안녕.          


며칠간의 안녕을 묻고 있습니다. 하얀 연기 속에 날려버린 몇 가치의 담배처럼 또 한밤을 이렇게 날려버리고 있습니다.


붕붕거리며 거리를 내지르던 기계의 고동마저 잠들어 버린 지금. 가끔씩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한층 더 밤을 깊게 만들고 있습니다. 혼자 있는 외로움이 더욱더 밤을 까맣게 색칠하고 있는 듯한 애처로운 마음이 떨어지는 빗물 소리에 까지 친밀감을 느끼게 합니다.     


착실히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지금쯤 포근한 밤이겠지요. 어렸을 때 꿈꾸던 여름밤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생명의 다함을 말이나 하려듯이 자신을 태워 날아다니며 오늘 하루를 외쳐대는 반딧불을 쳐다보며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흰 담배연기를 ‘오늘 하루도...’라는 한숨 속에 깊게 내뿜길 바랐는데...     


꿈이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이군요.     


"희. 지금 순간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일기(편지) 원본





#1-1. 40년이 지난 아빠의 일기를 읽고. 과거와 현재의 아빠 모두에게 보내는 편지 


2023년 1월 30일


아빠.


지금은 코스모스의 계절은 아니고 눈과 미세먼지의 계절 사이 어딘가입니다. 요새는 코스모스가 가을에만 피지는 않아요. 시도 때도 없이 날아다니는 잠자리처럼, 겨울에도 극성을 부리는 모기처럼 코스모스도 난데없이 종종 모습을 드러내곤 합니다. 지난 40년간 기후 온난화 때문이 지구가 많이 뜨거워진 탓입니다. 단순히 그냥 뜨거워진 건 아니고 오르락내리락 불같이 더웠다가 얼음같이 차가웠다 하길 반복하며 그야말로 좀 이상해졌어요. 날씨에 한해서라면 현재는 그야말로 대혼돈의 시대입니다. 덕분에 동, 식물들의 생태계가 자주 붕괴되고 있답니다.      


코스모스 당신이란 무슨 의미였나요? 하늘하늘하고 앙증맞은 모습이 당시 엄마의 긴 머리카락과 닮았었나요? 가을 하면 코스모스지! 꽃 같은 희에게 더위 대신 가을을 선물하고 싶어서였나요? 만약 후자였다면 이제 가을만의 코스모스는 사라지고 말았어요. 코스모스가 피었다고 가을이 오진 않으니까요. 그래도 아빠 마음속의 코스모스 당신은 여전히 그대로 인가요? 아빠의 마음에도 이상 기후가 자주 감지되어 가을 코스모스를 닮은 희의 꽃망울도 오르락내리락하다 이내 터지거나 사라져 버리진 않았을지요.     


며칠간의 안녕을 묻고 있다는 아빠의 글씨를 보며 ‘묻다’의 뜻을 몇 가지 떠올렸습니다. 도통 안녕하지 못하여 안녕은 어디 있는지 누구에게라도 묻고 싶은 심정이었을까요. 혹은 사치 같은 안녕은 깊이 묻어두고 향 대신 담배 연기를 가득 피워놓은 장송 행위였을까요. 왜인지 저는 담배를 피우며 하루를 날려버리는 아빠의 모습이 장례식장 한편에서 멍하니 천장만 쳐다보는 사내처럼 보입니다. 애처롭고 파리한 모습이 퍽 아름답다고 느껴질 만큼이요.     


저도 오늘은 몇 번이나 안녕을 묻고 여러 번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아 향은 없고요, 제례주 대신 습진에 좋다는 쌀눈차를 마셨어요. 커피를 무척 좋아하는데 비염이 안녕하지 않은 바람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아빠의 시절보다 훨씬 윤택하고 많은 것이 주어진 시절이잖아요. 대강의 일상은 대게 안녕하지요. 하지만 어쩐지 꿈이란 시절의 안녕이 이뤄주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나라는 사람이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것은 영영 이룰 수 없는 꿈일까요? 현실의 무게는 생각보다 너무 무겁고 포기해야 할 것들은 지독히도 많습니다. 내가 바라는 안녕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는 느낌이에요. 아빠도 그랬어요? 삶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시시로 포기하며 걸어왔나요? 영혼이 이탈된 채 너무 과도한 책임감을 이고서 이 날까지 와버린 것은 아닌지. 가끔 보이는 아빠의 텅 빈 모습이 늘 송구스러웠는데. 딸로서 지켜본 바 그 여정에 자식인 제가 이래저래 걸림돌이었으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 안녕을 한 차례 더 묻고 제를 올려야겠습니다. 다행히 옆에 쌀눈차가 있거든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빗소리에마저 다가가고 싶을 만큼 외롭고 까만 밤에 떠올릴 수 있는 엄마가 있었잖아요. 노트 한 장 절절하게 묻은 허허로움 끝에 결국 사랑으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던 건 역시 사랑이 가진 위력입니다. 그럼 아빠의 딸인 저도 이제 사랑의 위력을 발휘해야 할 때가 온 거겠죠.


가족을 향한 사랑으로 마침표를 찍으며 희망을 낳으리라는 이상적인 태도를 보이면 참 좋겠지만 아쉽게도 아빠를 닮은 저는 꽤 나르시시트라서요. 아빠가 일어설 수 있었던 원천이 엄마에 대한 사랑이었다면 저는 저를 좀 더 사랑하겠다고 선언하겠습니다. 영영 이루어지지 않을지언정 그럼에도 꿈은 끝끝내 좀비처럼 일어서 뒤를, (아빠의 뒤도) 쫓을 예정이라 그렇습니다. 안녕하지 않은 그 모든 상황에서 안녕하지 않아 괴로운 저를 좀 더 사랑해 보려고요. 스스로를 믿고 가능한 안녕할 수 있도록 힘을 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마치도록 할게요. 아빠와 나눌 편지가 아직 많이 남아 있어서 진심으로 설레요. 또 편지할게요.        



ps. 그런데 사실 꿈만의 이야기는 아니에요. 반딧불이와 삶의 의미를 떠올리기에는 대출 이자가 너무 비싸서 말이죠. 갑작스러운 빚밍아웃에 감동이 파괴되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현실에 있어 가장 큰 무게는 돈이니까요. 아무튼 이래저래 어떻게든 힘내보겠습니다. 아빠도 엄마도 무일푼으로 시작해 말 만한 자식을 둘이나 키워내셨잖아요. 아, 역시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위력으로 삼아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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