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로 북적이는 시부야의 한 이자카야. 반은 얼추 알아듣겠지만, 반은 못 알아듣겠는 말들이 왔다 갔다 귀를 맴돈다. 시끄러운 와중에, 내가 주문한 하이볼과 야키토리의 조합이 아주 잘 맞는다고 속으로 생각하던 중이었다. 술을 잘 못하는 친구가 기분이 좋은지 맥주 한잔을 더 시켜달라고 부탁한다.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중 한 명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에게 물어봤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하다가 일본에 취업하게 된 거야?"
그렇다. 어쩌면 남들이 봤을 때 나는 갑자기 일본으로 취업한 것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나는 친구들에게 어디서부터 이야기하면 좋을지 잠깐 고민했다. 일본 문화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말해야 되나, 이 기업에 관심이 갔던 이유를 말해야 되나. 교환학생 때 재밌었던 이야기?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될까... 수많은 이유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지나갔다.
나는 지금 일본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다. 일본에서 학교를 나왔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한국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일본으로 취직을 했다. 원래는 박사를 가고 싶어 했다. 주변에 하도 박사 간다고 미리 말해놨다가 일본에 일하러 간다고 말하니 모두 놀랐던 만큼.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박사를 마치고도 하고 싶었던 일은 일본에 취직하는 것이었음을. 그러다 박사 이전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그것을 놓치면 미래에 후회할 것 같아 잡은 것뿐이었다.
이 회사를 고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크게는 디자인 가이드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디자인도 여러 스타일이 있는데, 내가 추구하는 심플하고 콤팩트한 디자인을 다루고 있었다. 그게 다른 회사들과의 큰 차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이 입사한 회사였다. 회사는 결국 집단의 움직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집단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나에게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20대 초반부터 일본살이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가깝고도 먼 나라. 비슷하다면서도 다른 문화. 서로 여행 많이 가는 나라 1위. 그만큼 관심이 크면서도 어떻게 보면 대중적이지는 않은, 그런 관계의 나라다. 하지만 그 나라에서 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회사에 취직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고 들었다. 아니면 언어를 매우 잘하거나, 또는 불안정한 고용관계로 내가 원하지 않는 직종으로 취업하거나... 다 내가 갖고 있지 않거나 바라지 않는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그때는 내가 갈 수 없는 이유들을 나열했던 것 같다. 한국 또는 미국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라고 스스로 타협하고 있을 때쯤. 우연히 지원하고 싶었던 회사의 광고를 인스타그램에서 봤다.
처음에는 '난 안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단순한 호기심에, 내 포트폴리오 피드백이라도 받아보자는 마음에 연락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과정에 있어 좋은 귀인들을 만나 정식 절차를 거쳐 그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이 긴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하지...' 잠깐 고민하다가 원래는 박사 가려다가 좋은 기회로 공채에 지원해서 오게 되었어라고 짧게 설명했다. 친구들은 끄덕이며 혼자 해외 생활하는 게 그래도 대단하다고 말해주었다. 사실 나는 그 자체를 대단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냥 이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느끼는 좌절감이 날 아프게 했기 때문에, 그걸 못 견딜 것 같아서 노력했다고 말하고 싶다.
꿈에는 언제나 양극의 감정이 있다. 이뤄내면 느낄 '기분 좋음', '짜릿함', '뿌듯함'이라는 맑은 원동력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이뤄내지 못했을 때 되새겨버리는 정신승리 구절이나 탁한 좌절감도 있다. 그것을 느끼지 않기 위해 정신 차리자고 다짐하는 것도 분명히 있다. 그러니 자신만의 우선순위를 잘 세워서, 무엇을 하지 않았을 때 더 힘들 것 같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나에게 있어 그것은 평범한 일본 회사원이 돼 보는 것이었고, 지금까지는 그 선택에 후회함이 없다. 대단한 결과를 바라고 온 것도 아니고, 그저 노력으로 가능한 것일지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사람 사는 곳 다 똑같지.'라는 말을 공감한다. 어디서든 고충은 있고, 여행과 달리 일상은 어쩔 수 없이 금전적/정신적인 요소가 따라오기 때문에 감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마다 시기에 따라 필요한 경험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익숙했던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살아보는 것에 의의를 두며, 오늘도 일단 최선을 다해 살아보는 것에 집중한다.
도쿄 회사원의 일상 @ kei___pr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