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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와 사랑 Jun 22. 2024

연등 사건, 사동 열쇠 징계 사건

해마다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오면 절뿐만 아니라 거리 곳곳에 연등을 다는데 교도소에도 입구에서부터 정문 앞 그리고 교도소 안 주복도 양쪽으로 연등을 단다.

그해에도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연등을 달았는데 어느 날 아침 정문 앞에 달아놓은 연등이 없어져 정문 근무자에게 물어봐도 모른다고 하고 불심회에서는 연등을 철거한 사실이 없으며 누군가가 고의로 떼어낸 것 같다는 말을 하였다.

  정문 앞을 지나는 직원들은 남근석 사건을 떠올리며 유력한 용의자가 두 명의 이름을 말하고 있었다. 당시 직원들과 마주치면 거수경례를 하지 않고 오른손을 들며 "할렐루야"라고 외치는 신우회 직원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중에서 유력한 사람으로 두명중 한 사람이라 추측한 것이었다. 한 명은 K과장이었고 다른 한 명은 당시 정문 근무자로 나보다 후배 직원 J였다. 두 명 다 나와 친한 사이였는데 직원들은 정문근무자인 J가 모른 체하므로 과장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있었으나 불심회에서는 크게 문제 삼지 않고 연등을 다시 갖다 달며 더 이상 크게 번지지 않았다.

  나는 K과장이 누군가를 시켜 떼어낸 것이고 정문근무자 J가 묵인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다음날 정문을 지나가며 평소 친하게 지내던 J에게 "네가 떼어낸 거 아니냐?"라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웃으며 말을 건네자 J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그날 저녁 문자폭탄이 오기 시작했다. J가 보낸 문자로 "사탄과 같은 놈! 하나님이 용서치 않으리라. 지옥불에 빠지리라~~~" 이런 문자들이 계속 왔다.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나와 친하게 지내던 J가 아니었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J에게 전화를 걸었다. J가 직원들 앞에서 자신을 연등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한 것을 따지기에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더 이상 문자를 보내지 말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2년 전 사동열쇠 사건이 떠올랐다.

  

  사동팀장 K가 사동근무 중이던 J에게 사동열쇠를 사동팀실로 가져오라고 하자 J가 사동청소부(수용자)에게 열쇠를 주며 팀장에게 갔다 주라고 하였는데 팀장이 중요한 열쇠꾸러미를 직접 가져오지 않고 수용자에게 주었다며 J에 대해 징계를 해달라고 한 사건이었다.

  조사팀에서는 조사에 착수하여 소장에게 J를 징계해야 한다고 보고하였고 감독자들이 똘똘 뭉쳐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하였다. 사동열쇠 꾸러미는 중요한 거라 모두들 당연히 징계사안이라 생각하였고 징계요구서가 발부되어 징계위원회 개최를 앞둔 상황에서 J가 팀장에게 용서를 빌었고 고참 직원들이 소장과 사동팀장을 찾아가 선처를 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팀장과 J가 단순히 열쇠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쌓였던 감정싸움이 누적되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된 것 같았다.

  조사를 맡은 내 직속상관이 조사서류를 작성한 것을 보니 징계를 벗어나지 못할 만큼 똘똘 말아 놓아 J는 징계를 피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J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 오던 나는 J에게 어쩌다 일을 이 지경까지 만들었냐? 고 물어보았고 J는 사동청소부에게 형광등 박스 열쇠를 보낸 게 문제가 될 줄 몰랐다는 얘기를 하여 내가 사동열쇠 꾸러미가 아니냐? 고 물어보자 형광등 박스 열쇠 2개 묶여있는 거라고 대답하였다. J의 말이 사실이었고 그리 중요한 열쇠가 아니었음에도 징계로 몰고 간 것이었다.


  나는 고민 끝에 조사를 담당한 우리 팀장에게는 미안했지만 J가 징계를 받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소장님께 메일을 보냈다. 감정싸움으로 인한 보복성 징계는 징계를 요구한 팀장에게도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게 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는데 소장이 내 메일을 사동팀장에게 보여주며 설득하자 그토록 강경하던 사동팀장의 마음이 한풀 꺾였고 J는 징계를 받지 않게 되었다. 그런 J가 사라진 연등과 관련된 농담을 하였다는 이유로 내게 보낸 섬뜩한 문자들을 보며 그때 사동팀장이 왜 그토록 강경하게 J를 징계하려고 했는지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J는 내가 자신을 징계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한 사실을 몰랐고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징계를 받지 않게 되었다며 감사의 기도를 올렸을 것 같다. 어쩌면 그가 옳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J를 징계받지 않도록 도와주었다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거수경례대신 "할렐루야"라고 외치던 직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이 "할렐루야"라고 외치며 인사하면 나도 그들에게 "할렐루야"라고 답하곤 했다. 때론 내가 먼저 그들에게 "할렐루야"라고 외치면 좋아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 속에 J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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