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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와 사랑 May 14. 2024

사람을 살리는 징계

  2010년 4월 기관 인사, 징계 등 업무를 담당하면서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던 것은 징계자가 발생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2007년부터 2010년 3월까지 3년여 동안 소년수 폭행사건. 도주사건, 복지과 비리사건 등 여러 가지 사유로 인하여 30여 명의 동료들이 징계를 받았고 그들의 아픔을 곁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도주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소장은 당시 근무했던 직원들을 불러 자신의 앞길을 막았으니 최대한 무거운 징계를 주겠다고 말하였으며 중국인 수용자 도주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교정본부장이 장관에게 도주사고가 다시 발생하면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했는데 4개월 후 우리 소에서 담장을 넘어 도주하려다 체포된 사건이 발생하여 격노해 재임기관동안 우리 소에 불이익을 주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법무부에 주기적으로 최근 3년간 징계현황을 보고하는데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떻게 1개 기관에서 30여 명의 직원이 징계를 받을 수 있냐? 제대로 보고한 것 맞냐? 고 물어보기도 할 정도로 타기관에 비해 징계가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인사, 징계 담당으로 근무한 지 2년여 동안 한건도 발생하지 않아 잘 마무리하나 싶었는데 친한 동료가 찾아와 잠깐 보자고 해서 나가보니 음주운전에 걸렸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식사하다 반주로 한잔하고 있는데 식당 앞에 주차된 차를 빼달라고 해서 시동을 걸고 몇 미터 움직였는데 의경이 음주운전으로 적발해 항의했으나 인정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2년여 만에 징계 건이 하나 발생했는데 하필이면 이 친구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미안하다는 말을 하였다.


   두 번째 징계건은 인사업무에서 나오기 두 달 전에 발생했다. 성추행건이었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며 여자 옆을 지나다 부딪혀 시비가 붙었는데 성추행 건으로 신고가 된 것이다. 직원은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을 못 하고 비틀거리다 부딪힌 것 같다고 진술하는데 여자는 지나가다 갑자기 껴안았다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봐서 엮인 감이 있었다. 당사자 간 합의로 사건은 종결되었는데 징계가 남아 있었다. 당시 그 직원은 가정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였다. 아이 건강이 좋지 않았고 부부관계도 매우 안 좋은 상태였다. 더군다나 다음 달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징계를 받으면 최소한 2년 이상 승진이 늦어지는 상황이었다. 부인과 함께 합의금 500만 원을 여자에게 전달하자 여자가 웃으며 "오빠 고마워"라는 말을 하여 당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지만 징계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징계위원회 자료를 준비하며 성추행 징계양정을 보니 무조건 징계였다. 감경도 없고 최하 견책에서부터 시작했다. 징계위원회는 무조건 개최해야 하는 상황이라 기초자료를 작성하면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끝에 당시 행정안전부(현 인사혁신처) 징계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해 주며 징계양정에 보면 성추행 건은 무조건 견책에서부터 시작하던데 이 경우 엮인 감이 있는데 억울한 상황에서도 무조건 징계를 주어야 하느냐? 고 물어보았다. 행정안전부 징계 담당은 그건 징계위원들의 몫이라고 대답했다. 억울한 상황도 발생할 수 있고 그 경우에도 무조건 징계를 주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징계위원이 억울하다고 판단하면 불문경고로 의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인사담당자가 문책받지 않겠느냐? 고 물어보자 징계위원들이 결정한 것을 왜 인사담당자가 책임지느냐? 고 대답했다.


  나는 행정안전부 징계담당의 이름을 물어본 후 전언통신문으로 정리하여 징계위원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자료로 올렸다. 그리고 본부 징계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전화통화 내역을 말하며 의견을 물었다. 본부 징계담당은 한숨을 쉬며 주임님이 하는 걸 누가 말리겠냐? 며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다. 징계를 줘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행정안전부 징계담당에게 질의한 내용을 전달해 주니 자기 생각을 말 못 하는 비아냥거리는 듯했다.

  청인사팀에 전화를 했더니 인사교위가 무조건 징계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행안부 질의내용을 설명해 줘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징계 방향은 내가 준비하는 대로 흘러가게 되어있으니 만약 징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3, 4일간 고민했다. 그러던 중 청 인사교위가 징계 어떻게 됐냐? 며 징계를 안 줄 경우 각오하라는 협박성 발언을 했다. 나는 교위 12년 차였고 승진을 앞두고 있어 경고라도 하나 받게 되면 승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더욱 고민에 빠졌다. 징계 쪽으로 방향을 정하면 깔끔한데 해당직원의 인생이 망가질 것 같았다. 밤새 잠을 설치며 고민한 끝에 그에게는 인생이 달려있지만 나는 경고 한번 먹고 조금 늦게 가면 된다는 생각에 불문경고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내 양심이 징계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을 굳히고 소장님과 징계위원들에게 자료를 준비해서 보고 드렸는데 소장님도 한참을 고심하신 끝에 “그래 사람하나 살려주자”라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이 친구가 자살사고를 예방한 공로로 장관표창도 있었으나 성추행건에는 징계감경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내용과 이런저런 자료를 세부적으로 준비하여 징계위원회에 올렸다. 징계위원들이 자료를 검토한 후 회의 끝에 투표를 했는데 투표결과를 조심스럽게 펼쳐보니 불문경고 의견이 많았다.


   그 후 나는 2년 동안 각종 감사에서 시달려야 했다. 법무부감사, 본부감사, 청감사 때마다 와서 나를 불렀고 인사교위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며 문책을 하려 했지만 아무런 처분도 하지 않았다. 특히 일주일간의 청순회점검에서는 청 인사교위가 감사관들에게 부탁했는지 징계 건을 세부적으로 보고 구체적으로 따져 물었다. 한참을 그렇게 계속 물고 늘어지는 청감사관에게 행정안전부에서도 징계를 안 줄 수 있다고 하고 본부에서도 문제 삼지 않았는데 왜 청에서만 난리냐? 왜 청은 직원들 징계 못줘서 안달이냐? 며 따졌더니 문책하는 것이 아니라 한번 짚어보는 것이라고 말하며 감사를 종료하였다.

   불문경고를 받은 친구는 불문경고를 받은 다음 달에 교위로 승진하였고 가정도 안정을 되찾아 무난하게 생활하고 있다. 12년이 지난 지금 직장에서도 모범적으로 근무하고 있다.


   당시 당직계장님의 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 같은 부 직원들로부터 탄원서를 받아 징계위원들과 소장님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셨던 멋진 분이셨다. 몇 년 전 퇴직해서 고향에 내려가 잘 살고 계신다.


   나는 법이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엄정함 속에 따뜻함이 들어 있어야 사람을 위한 법이 되는 것이다. 징계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을 죽이기 위한 징계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기 위한 징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징계가 필요할 땐 반드시 징계를 주어 경종을 울려야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규정에 얽매여 억울한 사람이 발생하게 해서는 안 된다. 내가 편하기 위해 쉬운 길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내가 후배들에게 잘하는 말이 있다. 정해진 틀에 의해 근무하는 것은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에게 시켜도 잘한다. 공무원이 공무원이기 위해서는 꽉 짜여진 틀에서 벗어나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행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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