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5.18. 광주 얘기를 처음 들은 건 고등학생 때였다. 당시 성당 학생회의실에서 몇몇 학생들이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광주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선배 한 명이 들어와 지금 광주는 군인들이 총을 쏴서 사람들이 죽고 난리 났다며 외부로 나가는 길도 군인들이 막고 있어서 겨우 빠져나왔다는 얘기를 하였다. 자신의 대학친구들도 죽었다는 얘기를 하는데 나는 선배에게 "친구들이 총 맞아 죽는데 혼자만 도망쳐 왔냐? 죽더라도 같이 싸우다 죽어야지"라고 선배의 말을 무시하자 선배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사람이 많이 죽는데 왜 뉴스에는 하나도 안 나오냐? 광주에서 폭동 일어났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선배 말처럼 사람이 죽었다는 얘긴 선배한테 처음 듣는다."는 말도 했는데 그 일이 있은 후 몇 년이 지나도 언론에서는 5.18. 광주에 대해 시민들이 많이 사망했다는 보도는 없었다.
명동성당에서 수차례 사진을 전시하며 5.18. 당시 참상을 알릴 때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4년 후 군입대하여 신병교육을 받을 때 조교 한 명이 교육 중 담담하게 광주사태 때 자신의 친구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TV나 신문에는 안 나왔다는 얘기를 했을 때에도 크게 와닿지 않았다. 단지 조교의 무표정한 얼굴이 무덤덤하게 와닿았다.
교도관 임용 후 5년쯤 지났을 때 5.18. 때 광주교도소에 근무했던 직원 중 한 명이 당시 많은 관공서가 시민군에 넘어갔는데 가장 중요한 광주교도소는 아무 일 없이 잘 넘어가 전두환이 칭찬하며 상을 주었다는 얘기를 하여 내가 "시민군이 광주교도소를 공격했는데 방어를 잘한 거냐?"라고 물어보자 그건 아니고 시민군이 근처에도 안 왔다는 얘기를 하였다.
임용 8년쯤 되었을 때 분류직 7급 교도관 K가 임용된 지 몇 년 되지 않아 사표를 쓰고 나간다고 하여 무슨 일이 있나? 알아봤더니 5.18. 광주 트라우마 때문에 퇴직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다른 일하려고 퇴직하는 것도 아니고 교도소에 근무하면서 자꾸 그때의 일이 떠올라 견딜 수 없어 집에서 쉬고 싶다는 얘기를 들었다. 같은 사무실 동료로부터 J가 정신적으로 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는 말을 들었으며 퇴직 후 K는 집에서 쉬다가 형님가게 일을 도와주며 산다는 얘기를 들었다.
8년여 전 대전교도소에서 휴일 주간 부당직 근무 중 술 취한 민원인이 외정문에서 행패를 부려 제지하고 달래도 듣지 않아 도움이 필요하다며 지원 요청을 하여 외정문으로 갔더니 50대 후반의 술 취한 남자가 외정문 근무자에게 횡설수설 얘기를 하고 있었다.
외정문 안쪽 오른편에 교도소 소유의 축구장이 있는데 잔디 관리가 잘 되어 있어 인근 축구 동호회에서 자주 이용하고 있었고 교도소 측에서도 이를 허용하고 있었는데 지역사회 동호회원들이 축구시합을 하는 가운데로 술 취한 사람이 들어와 방해를 해서 축구하는 사람들이 밖으로 끌어냈는데 집에 가지 않고 외정문 근무자에게 주정을 부리고 있었다.
내가 술 취한 사람에게 인사를 하며 어디에 사시냐? 고 물어보니 인근 주민이었다. 이 사람의 말을 들어주던 중 흐느끼면서 "내가 하고 싶어서 했냐고 국가의 명령으로 했는데 지금 와서 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나쁜 놈 취급받으니 미칠 것 같다."는 말을 하여 무슨 말씀을 하시냐? 고 물어보니 5.18. 광주사태 때 투입된 공수특전단원이었다. 그 일로 인해 괴로워하며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얘기를 다 들어주자 한참을 얘기하다 집으로 돌아갔는데 5.18. 광주는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짙은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80년 광주에서 친구들의 죽음을 보며 탈출한 선배에게 친구들이 총에 맞아 죽었는데 왜 혼자 도망쳤냐? 고 말한 게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으로 남아 있다. 나와 친한 교도관 선배 한분이 5.18 당시 광주에 있었다고 하여 "형님은 그 당시 뭐 했냐?"라고 묻자 "교련복 입고 친구들하고 총 들고 다녔지. 그때 젊은 사람들은 모두 시민군에서 총 들고 다녔어. 그때 죽은 친구들도 있고 난 중간에 집으로 돌아와서 살았지"라고 말하며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며 더 이상의 말은 회피하는 듯했다.
나는 5.18로 인해 우리나라 언론을 믿지 않는다. 언론의 행태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불쌍한 건 나를 포함하여 언론에 놀아나는 국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