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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버스앤러버스 Aug 22. 2022

주방은 카모메 식당처럼 (feat. 미드센추리 모던)

에디터 먼지

  영화 속 카모메 식당은 따뜻하면서도 아늑하다. 그렇다고 마냥 귀엽고 아기자기하지는 않다. 적절히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매력을 지닌 이 공간은 사치에의 무던하면서도 사려 깊은 성격을 닮았다. 

  공간의 분위기는 인테리어가 크게 좌우한다. 특히 부엌의 인테리어는 더 섬세함을 요한다. 부엌은 일을 하는 공간인만큼, 마음이 내키지 않거나 사용하기 불편한 부엌이라면 들어갈 때마다 두배로 피로가 쌓이는 기분일 테다. 하지만 카모메 식당의 주방은 바라보기만 해도 즐겁다. 기꺼이 요리가 하고 싶어지는 곳이다. 주방을 새로 디자인한다면, 이런 주방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침 가을부터 살게 될 집의 리모델링을 맡게 되었다. '들어가고 싶은 주방'을 만들기 위해 카모메 식당의 무드를 참고했다. 안 보면 보고 싶고, 덕분에 집에 일찍 들어가고 싶은. 그런 주방을 만들어보겠다.




알바 알토의 철학이 담긴 카모메 식당

 

 카모메 식당의 사진을 보면 우드 하부장, 스테인리스 조명, 하늘색의 루바 패널, 그릇이 보이는 오픈장, 중간중간 원색의 포인트가 돋보인다. 우드와 화이트, 스테인리스의 조합에 눈에 띄는 색상을 포인트로 잡아줌으로써 아늑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 인테리어는 크게 보면 북유럽 인테리어에 속한다. 북유럽 사람들은 추운 날씨 탓에 실내에 많이 머무르므로, 무엇보다 편안함이 중요하다. 그래서 실용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을 선호한다. 우드톤에 화이트나 베이지를 바탕으로 부드러운 파스텔 톤을 포인트로 사용하는 것도 특징이다. 카모메 식당에서도 나오듯 북유럽은 숲이 많아 가구에 목재를 특히 더 많이 사용하고, 해가 짧아 자연광을 받을 시간이 적기에 최대한 밝고 부드러운 색상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케아 쇼룸. 밝은 색의 목재와 파스텔톤의 색감이 전형적인 북유럽 인테리어다.

  카모메 식당의 인테리어에서는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유독 ‘알바 알토’의 ‘아르텍’ 가구를 많이 사용했다는 점이다. 알바 알토는 핀란드 국민 디자이너이자,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1940~60년대의 디자인 운동인 ‘미드센추리 모던’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꼽히기도 하는데, 그 가운데서도 스칸디나비안 모더니즘을 개척했다고 평가된다. 알바 알토는 화려함을 지양하고, 사람과 자연에 잘 어울리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했다. 목재를 다양하게 구부려 만든 그의 가구는 특유의 유려한 곡선과 심플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좌: 알바 알토의 시그니처 체어 Stool 60, 우: TRDST 홈페이지

  단순하고 편안한 가구를 만든 알바 알토의 철학에서, 카모메 식당이 왜 보고만 있어도 편안할 수밖에 없는지 그 답을 찾아낸 것만 같다. 그런 알바 알토에 착안해서 그가 새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미드 센추리 모던' 컨셉을 더 탐구해보기로 했다. 레퍼런스를 파악하기 위해 20세기 디자인 가구를 전시한, DDP의 ‘우리를 매혹시킨 20세기 디자인 전’에 다녀왔다. 




미드센추리 모던 한 스푼 추가 


  DDP의 ‘우리를 매혹시킨 20세기 디자인 전’은 미국과 유럽, 브라질의 미드센추리 모던을 비롯해 프렌치모던, 바우하우스를 아우르는 20세기 디자인 가구 전시였다. 넓지 않은 공간에서 1시간 30분 가까이 전시를 관람할 정도로 매력적인 가구를 많이 만났다. 

  전체 파트 중 2가지를 주로 소개하려 한다. 하나는 카모메 식당의 아르텍 테이블을 전시한 유러피안 미드센추리 파트, 나머지 하나는 내 마음에 쏙 든 아메리칸 미드센추리 파트다. 


아르텍의 유러피안 미드센추리 모던

  유러피안 미드센추리 파트에서는 쇼룸 ‘알코브'의 빈티지 가구를 전시했다. 둥그런 조형미의 소파나, 독특한 문양을 가진 의자를 많이 소개했는데, 그중 하나가 카모메 식당의 아르텍 테이블이었다. 아르텍 테이블과 체어는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곡선을 가지고 있다. 해당 제품은 제작이 50년이 넘은 빈티지 가구였는데, 제작 당시엔 흰색에 가까웠던 자작나무의 색이 시간이 오래 흐르면 아래 사진처럼 황금빛을 띤다. 오래 사용한 빈티지 가구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다. 

아르텍의 시그니처 테이블


다양한 소재와 색감의 아메리칸 미드센추리 모던

  다음으로 소개할 파트는 쇼룸 ‘앤더슨 씨'의 아메리칸 미드센추리 컬렉션이다. 개인적으로 전시 중 가장 마음에 든 가구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우리 집 부엌 인테리어에 적용할만한 포인트를 가져왔다. 


  첫 번째로 아메리칸 미드센추리 모던은 가죽과 철제, 목재 소재를 다양하게 활용한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가죽과 철제의 조합이지만, 당시엔 산업용으로만 사용되던 금속을 가구에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발상이었다. 7-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미국 영화나 드라마의 오피스에서 쉽게 볼법한 가구들이 눈에 띈다. 철제 모듈형 캐비닛에 나무로 된 도어를 접목한 것도 매우 인상적이다. 요즘 인기 있는 usm 할러의 모듈형 캐비닛의 형태가 엿보이기도 한다! 

좌: 전시의 캐비닛 우: USM 할러의 캐비닛


  두 번째로, 포인트로 원색을 많이 사용한다. 첫 번째 사진의 소파는 ‘비싸고 좋은 의자’로 유명한 허먼 밀러의 찰스와 레이 임스 부부 작품이다. 노란 스툴 역시 허먼 밀러 제품이다. 곡선의 조형미에 더불어 다홍색과 노란색의 포인트가 돋보인다. 두 번째 사진의 데이베드 역시 허먼밀러 디자이너가 실제로 디자인해서 사용하던 베드인데, 연두색이 굉장히 강렬하다. 


  마지막으로, 목재의 색감이다. 자작나무 같은 밝은 목재를 많이 사용했던 북유럽 인테리어와 달리, 아메리칸 미드센추리 모던에서 주로 사용하는 목재는 그보다 더 어두운 월넛과 티크다. 월넛의 경우 워낙 묵직해서 무게감을 잘 잡아주고, 티크 역시 철재나 가죽과 같은 이질적인 소재와 어우러지면서 조화를 이룬다. 

이 세개가 나의 최애 가구였다.

  미드센추리 모던 스타일을 더 탐험해보니, 아메리칸 미드센추리 모던의 무게감 있으면서도 이질적인 소재들로 기능을 잘 살린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단순함과 자연스러움이라는 알바 알토의 철학이 살아있으면서, 좀 더 모던함의 진수라고 (내가) 생각하는 아메리칸 미드센추리 모던을 적용해보려 한다. 두 가지 요소가 모두 살아있는 주방을 이제 정말 디자인해보자!  




디자인 완성하기: 진짜 진짜 최종


  카모메 식당에서는 전반적인 무드를 가져왔다. 우드와 화이트, 스테인리스, 약간의 컬러 포인트가 있는 컨셉에 상부장을 없애 개방감도 줄 예정이다. 알바 알토의 단순함과 미니멀함이라는 철학에 목재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함께 가져가려 한다. 

  여기에 더해 아메리칸 미드센추리 모던에서 철재와 가죽을 많이 활용하는 점, 그리고 월넛이나 티크 나무를 많이 사용하는 점을 접목하려 한다. 그래서 철제 포인트를 더 많이 집어넣고, 나무라는 소재는 가져오되 더 어두운 월넛 색을 베이스 색으로 선정했다. 

건축가 Jeppe Dueholm의 집

  원하는 느낌의 여러 주방 사진을 찾아본 결과, 코펜하겐의 한 건축가의 집을 최종 레퍼런스로 삼았다. 위 사진의 전반적인 무드에 따라 아래와 같이 주방의 컨셉을 기획했다. 세부적인 가구의 디테일은 모두 반영하기 어렵지만 여러 제품으로 콜라주를 해 무드보드를 만들었다. 월넛 컬러의 하부장에 일부 개방감을 위해 상부장을 제거하고, 주방 가전은 모두 화이트나 스테인리스로 통일감을 줬다. 

  이제 남은 것은 해당 디자인으로의 인테리어 의뢰뿐이다! 지금 해당 컨셉을 바탕으로 리모델링 업체와 조율 중이다. 아마도 다다음 호쯤 간단한 후기로 돌아올 수 있겠다! 






  이번 여름은 인테리어를 보는 눈이 높아진 시간이었다. 리모델링 컨셉을 스케치해보며 정말 온갖 가구와 주방을 다 찾아보았는데, 맘에 쏙 든다 하는 예쁜 주방은 그야말로 돈을 많이 들인 주방이었다. 온갖 주문 제작에, 고급 제품에... ‘비싸고 안 좋은 것은 있어도 싸고 좋은 것은 없다’는 인테리어 업계의 명제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좋은 가구와 좋은 디자인에는 사람에 대한 고민과, 그에 대한 답으로써 디자이너의 철학이 담겨있다. 전시에서 보았던 미드센추리 모던 가구들은 가격을 떠나 소장가치가 있는 예술품이었다. 디자이너의 세월을 담은 디자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높은 가격 역시 납득이 갔다. 몇몇 가구는 지금부터 돈을 모아 언젠가 반드시 장만하고 말겠다는 다짐을 하게 될 정도였다.

  주방을 디자인하는 것은 내가 직접 사용할 주방을 만드는 것이다. 단순히 예쁘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결정할 수는 없다. 실용성을 중요히 여긴 알바 알토의 철학처럼, 결국 나와 가족이 편안함을 느끼는 디자인이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탐색하는 과정에서 나의 취향을 발견하고 가족의 성향을 알아간다. 지금 당장 값비싼 주문 제작 가구나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우리 주방과 집을 꾸미진 못할 테다. 하지만 이번 기회로 나와 우리 가족의 삶이 어떤 모양인지 돌아보고 그에 알맞은 인테리어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충분할지 모른다. 

                    




참고 자료

북유럽 인테리어. https://www.opini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206


사진 출처

영화 <카모메 식당>의 한 장면.

이케아 쇼룸. https://www.ikea.com/kr/ko/rooms/kitchen/gallery/a-modern-kitchen-for-a-classical-apartment-pubfe469c70

TRDST의 아르텍 카테고리. https://trdst.com/goods/goods_list.php?brandCd=459015

USM 할러. https://www.trdst.com/goods/goods_list.php?brandCd=435001

코펜하겐 건축가의 집. https://www.designsetter.de/a-nordic-kitchen-for-the-architects-townhouse-in-copenhagen/


무드보드 사진 출처:

- 상부장 http://item.gmarket.co.kr/Item?goodscode=2509895801https://www.lge.co.kr/dishwashers/dubj4el 

- 하부장 http://www.guud.com/shop/goodsView?itemId=80926

- 식기세척기  https://www.lge.co.kr/dishwashers/dubj4el

- 수전 https://www.vittz.co.kr/shop/shopdetail.html?branduid=2089893&gclid=Cj0KCQjwgO2XBhCaARIsANrW2X2Njjb7NaaESWVLr-nAeHzENndqe4oUPbL0DPqUf8lxuarbX68EjrUaAnH7EALw_wcB&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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