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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버스앤러버스 Aug 22. 2022

보통의 여성들을 위한 브랜드, 마리메꼬

에디터 일영


  공항에서 캐리어를 잃어버려 우울해했던 마사코는 어느 날 큼직한 무늬가 가득한 코트를 입고 등장한다. 그 옷의 브랜드가 바로 핀란드의 대표적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마리메꼬다. 흰색과 검정색, 노란색이 조합된 둥근 형태의 프린트는 마사코의 기분을 바꾸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 덕분인지 마사코는 옷이 너무 튀느냐고 물어보면서도 이전보다 훨씬 생기 있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한다. 

  1호에 실린 <강민경의 옷장>에서도 소개했듯이 옷은 입은 사람의 태도를 바꾸는 힘이 있다. 마사코가 옷으로 전환점을 맞이한 것도 마리메꼬의 옷이 가진 신비로운 생명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리메꼬라는 브랜드를 직접 체험하며 마사코의 변화를 더 깊이 이해해보려고 한다. 소지품을 모두 잃어버리고 타지에 남겨진 사람의 기분도 바꿔버리는 그 마법 같은 힘을 기대하며!





보통의 여성들을 위한 브랜드, 마리메꼬


  마리메꼬는 마사코라는 인물에게 중요한 전환점이기도 했지만, 브랜드의 성격 자체도 <카모메 식당>과 잘 들어맞는다. 브랜드 이름 ‘마리메꼬’는 핀란드에서 가장 친근한 여자 이름인 ‘마리’와 옷이라는 의미의 ‘메꼬’를 합쳐 만들어졌고, 마리메꼬의 드레스는 자신감 있게 자신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 여성의 상징이다. <카모메 식당>은 사치에, 미도리, 마사코라는 세 명의 평범한 여성이 친구가 되면서 새로운 연결을 경험하게 되는 영화이니, 마리메꼬와 꼭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마리메꼬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운 것은 여성 창업가인 아르미 라티아(Armi Ratia)였다. 보수적인 패션이 주를 이루었던 1950년대에 여성들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강렬한 컬러와 추상적인 패턴을 가진 드레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옷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판매한다.”는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르미 라티아는 1979년 세상을 떠났지만, 마리메꼬는 오랜 자산인 패턴을 활용하여 여전히 다양한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마리메꼬의 자연주의 패턴들


  수십 년의 역사가 있는 클래식 패턴들은 마리메꼬의 소중한 유산이다. 첫 인쇄 70주년을 기념하여 마리메꼬는 195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의 모든 패턴을 아카이빙한 온라인 백과사전, 마리피디아(Maripedia)를 오픈했다. 마리피디아에서는 모든 패턴의 이미지, 디자이너, 유래, 패턴이 적용된 제품들까지 확인할 수 있다. 역사를 이토록 중시하는 브랜드는 오랜 시간 사랑받을 수밖에 없다. 정성 들인 브랜드의 제품이라는 자부심은 소비자에게나 판매자에게나 이롭기 때문이다. 

  마리메꼬 디자인의 근원은 따뜻하고 유쾌한 아날로그 감성의 기능주의 디자인, 그리고 핀란드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투영된 자연주의 디자인이다. 마리피디아에 소개된 패턴들은 하나같이 자연을 소재로 하고 있고, 디자이너마다 이를 추상적으로 혹은 사실적으로 재해석하여 선보이고 있다. 패턴은 모두 다르지만 특유의 삐뚤빼뚤함과 색감 덕분에 누가 봐도 마리메꼬의 패턴임을 알아볼 수 있다.


  관심 있는 패턴을 누르면 그 패턴을 제작한 디자이너에 대한 소개도 만나볼 수 있다. 인간, 사회, 환경의 이상적 조화를 중시하는 핀란드 디자인의 정신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스타 디자이너를 제외하면 의류 제작에 참여한 디자이너의 소개글을 읽어본 적이 있던가. 작은 부분에서도 마리메꼬의 역사, 제품, 활동을 관통하는 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마리메꼬 입어볼게요


  브랜드의 명성에 비해 국내에서 마리메꼬 제품을 살 수 있는 곳은 적은 편이다. 아마 한국의 정서 상 이렇게 볼드한 프린트의 옷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다행히 온라인에서는 29CM에서 쉽게 구매가 가능했고, 가격대가 낮은 잡화류 위주로 구매해보기로 했다. (마리메꼬의 의류는 보통 10만 원대 후반에서 40만 원대 초반까지의 가격대이다…)

  가장 사고 싶었던 패턴은 마리메꼬를 대표하는 패턴인 우니꼬(Unikko) 패턴이다. 우니꼬 패턴은 어린아이가 그린 것처럼 단순하고 과장되게 표현된 양귀비 패턴으로, 디자이너 Maija Isola가 제작했다. 1964년에 탄생하여 지금까지 마리메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패턴으로 사랑받고 있다. 

 

  29CM에서도 우니꼬 패턴이 들어간 제품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는데, 우선 패턴 자체가 화려하기 때문에 색감 대비가 크지 않은 제품을 고르기로 했다. 더 과감한 색의 제품도 시도해보고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갖고 있는 옷들과 조화시킬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고른 제품이 바로 아이보리 컬러의 우니꼬 에코백이다. 가격은 45,000원. 

  가방을 상상하며 패키지를 열었을 때는 약간 당황스러웠다. 가방이 야무지게 압축되어 지퍼백에 담겨 있었다. 사용하지 않을 때 가방을 접어 안쪽 주머니에 보관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가방이라서 부피를 최소화해 배송된 것 같았다. 소재 또한 100% 재활용 폴리에스터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제품 하나로도 핀란드 기능주의의 정수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제품 라벨과 펼쳤을 때의 모습


  접혀서 배송되는 과정에서 구겨지기는 했지만 파삭한 소재라서 물건을 담고 다니면 금방 주름이 펴질 것 같다. 가방은 원핸들이고, 안쪽에 가방을 수납할 수 있는 작은 주머니가 달려 있다. 색감 대비가 미미해 우니꼬 패턴이 은은하게 보이는 것이 아름다웠다. 일반적인 통자 에코백과 달리 손잡이부터 가방 끝까지 안쪽으로 주름이 잡혀있어 독특한 실루엣이 연출된다. 


가방 앞면과 뒷면


가방 안쪽 주름 디테일



우니꼬 에코백 코디하기


  마리메꼬 가방의 가장 큰 장점은 너무 캐주얼하지도, 너무 포멀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중간 정도로 격식이 있는 옷을 매치하면 무난하게 어울린다. 함께 입을 옷의 색과 소재를 결정하는 것이 조금 어려웠는데, 아래 사진처럼 원색이면서 그래픽이나 레터링이 없는 옷과의 궁합이 좋았다. 아무리 가방의 색감이 약해도 무늬가 포인트가 되기 때문에 옷에서는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추가로, 나는 적당한 옷이 없어서 입어보지 못했지만 검은색 반팔 니트에 초록색 반바지 같은 조합도 귀엽게 어울릴 것 같다. 



 

  한참 브랜드의 철학에 대해 알아보고 난 후 제품을 사용해 보니, 창업가 아르미 라티아의 말처럼 제품 이상의 무언가를 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재, 패턴, 기능, 배송까지 마리메꼬가 추구하는 기능주의와 자연주의가 배어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동시에 마리메꼬의 옷을 입었던 마사코가 떠올랐다. 가방에 어울리는 옷을 찾으려고 옷장을 뒤적여 보니 이렇게 큰 무늬가 새겨진 옷은 단 한 벌도 없었다. 1950년대 여성들에게 개성을 부여하고자 했던 마리메꼬의 탄생 배경은 2022년을 살아가는 나에게도 유효하다. 마리메꼬가 낯선 분이라면 색감이 약한 옷/가방 또는 양말부터라도 이 브랜드를 체험해보시는 걸 추천드리고 싶다.    


마리메꼬의 라벨에 쓰여있는 글





사진 출처

영화 <카모메 식당>의 한 장면.

마리피디아 캡쳐. https://www.marimekko.com/com_en/maripedia/patterns

https://www.marimekko.com/com_en/maripedia/patterns/unik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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