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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버스앤러버스 Aug 22. 2022

마음 가득 시나몬롤

에디터 콜리

  카모메 식당 영화를 보기 전, 내가 영화에 대해 유일하게 알고 있는 것을 말하라고 했다면 바로 시나몬롤을 답했을 거다. 그 정도로 시나몬롤은 카모메 식당에서 핵심적인 요소다. 말하자면 킬링 포인트랄까?

  식당을 찾는 손님이 없어 커피를 내리는 것 말고는 요리할 일이 없던 사치에와 미도리에게 시나몬롤은 처음으로 함께 만드는 음식이다. 그리고 시나몬롤의 달콤한 냄새는 늘 식당 밖에서 구경만 하던 핀란드 할머니들을 식당 안으로 이끈다. 식당에서 커피와 시나몬롤의 맛에 감탄하며 자연스레 단골이 된다. 할머니들은 시나몬롤을 사치에와 미도리의 따뜻한 정성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을 연 게 아닐까. 할머니들이 단골이 되고 난 후에도 시나몬롤은 카모메 식당의 유일한 디저트로써 자리를 지키며 식당을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식당 직원들의 마음을 전한다.

  신상 카페라면 SNS를 통한 바이럴 홍보가 필수인 시대에서 카페들은 프랑스를 방불케 하는 가짓수와 화려한 비주얼을 갖추려고 애를 쓴다. 그렇지만 아직 어딘가에는 카모메 식당처럼 가짓수는 적어도 주인장의 정성을 가득 담은 음식을 파는 곳이 분명 있다. 원래 메뉴판에 단일 메뉴 한 줄 적힌 데가 맛집이라고, 그런 식당들은 최고의 맛까지 갖췄을지 모른다. 시나몬롤 냄새에 이끌린 핀란드 할머니들처럼 주인장의 마음을 담은 디저트에 홀려보기로 했다.




원앤온리 핀란드식 시나몬롤, 위딘커피

  시나몬롤에서 시작한 이야기인 만큼 자연스럽게 시나몬롤 맛집을 찾다가 발견한 곳으로, 무려 원앤온리 디저트 메뉴를 시나몬롤로 하시는 곳이다(디저트 메뉴판에는 생크림 스콘도 적혀있지만, 사실상 시나몬롤만 판매하시는 듯하다). 심지어 그 시나몬롤을 ‘핀란드식’ 시나몬롤, 꼬르바뿌스띠라고 소개하고 계시니 이 정도면 이 글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내가 한국의 카모메 식당을 찾아버린 건 아닐까 뿌듯해하며 한적한 월요일 점심에 방문했다.

  오픈 시간인 11시쯤에 맞춰 갔더니 시나몬롤이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았는데, 아이스 라떼를 마시며 할 일을 하고 있으니 달그락달그락, 시나몬롤을 만들기 시작하셨다. 오히려 시나몬롤이 완성된 상태로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덕에 사장님께서 직접 달걀을 깨고 밀가루를 섞어 베이킹을 하시는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어 좋았다. 너무 대놓고 쳐다보면 부담스러우실 테니 곁눈질로 간간이 볼 수밖에 없었지만.

  시나몬롤을 포장하며  ‘혹시 카모메 식당 보고 만드신 건가요?’하고 슬며시 여쭤봤는데 머뭇거리시더니 ‘사실 제가 핀란드에 살다 왔어요. 그래서 카모메 식당보다 제가 오리지널이라고 할 수 있죠.’라고 답하셨다. ‘네’ 라거나 ‘아니요, 카모메 식당 영화를 본 적은 없어요’ 같은 대답을 예상했던 터라 당황했다. 카모메 식당의 유명세에 편승하고 싶었다면 ‘카모메 식당에 나온 그’ 시나몬롤이라고 홍보하셨을 텐데 우직하게 ‘핀란드식 시나몬롤’이라고만 적어두신 걸 보고 내가 진작 알아차렸어야 했다. 나는 갑자기 원조의 진심을 오해한 사람이 되어 죄송한 마음으로 가게를 떠났다.

  포장해서 사무실까지 30분가량 가져오느라 따뜻함이 조금 덜하긴 했지만, 시나몬롤은 충분히 포근한 맛이었다. ‘나 수제예요’를 온몸으로 외치는 돌돌 말린 모양과 각기 조금씩 다른 사이즈. 왠지 겉은 바삭할 것 같다는 편견을 깨고 전체적으로 쫀득하고 부드러웠다. 설탕 조각이 올려져 있음에도 아주 달지 않고, 계피맛도 아주 강하지 않아서 오히려 커피보다 우유가 어울릴 것 같은 맛이었다. 아무래도 단 디저트다 보니 여러 개 끝도 없이 집어먹기에는 조금 물리지만, 두 개까지는 즐기며 먹을 수 있었다.

  솔직히 최고의 맛이니 반드시 가보라고 할 만큼 맛있지는 않지만 휘황찬란한 만찬보다 담백한 집밥이 그리울 때가 있지 않은가. 사치에가 식당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리운 일본의 맛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 것처럼, 왠지 시나몬롤을 먹는 동안 사장님의 핀란드 생활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카모메 식당처럼 깔끔한 인테리어의 핀란드 스타일 집에서 시나몬롤을 만드셨을 모습이. 그리고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골목에서 2년 동안 가게를 운영해오신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사장님만의 속도와 바이브로 카페를 지켜오셨다는 점에서도, 사장님이 시나몬롤의 원조인 것과 별개로 카모메 식당과 참 닮았다. 그냥 그 바이브 자체가 너무 좋아서 몇 번이고 혼자 여유를 만끽하러,  사장님의 핀란드 생활 이야기를 더 들으러 가고 싶은 곳이다.




담백한 진심이 담긴 우유식빵, 김진환제과점

  김진환제과점은 신촌의 주택가 골목 안에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빵을 사려면 오픈런해야 될 거라는 에디터 하레의 말과, 4시 반까지 영업이라고 되어있지만 3시에 방문하면 이미 준비한 빵을 다 팔고 문을 닫았을 확률이 90%라는 블로거의 말에, 아주 뜨거운 여름날 정오에 제과점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은 무척 울적했다. 햇빛에 10초만 서 있어도 땀이 절로 나는 날 힘들게 방문했는데 목표로 하는 빵이 품절이라면 좌절스러울 것 같아서 말이다. 제과점이 있는 골목으로 향하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동안 함께 길을 건너는 사람들이 김진환제과점을 향하는 경쟁자처럼 보여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예상은 적중, 함께 길을 건넌 한 사람은 나의 바로 앞 손님이 되었다.

  간판의 정직한 폰트와 상호명에서 느껴지는 전통, 연륜의 향기는 가게 안에서도 느낄 수 있다. 빵을 판매하는 공간과 제빵사의 공간이 완전히 분리된 형태의 요즘 빵집과 달리, 식빵을 만드는 제빵사님의 공간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그 거리도 가까워서 조금만 크게 말하면 대화도 가능할 듯싶었다. 다행히도 이곳을 찾은 목적, 우유식빵은 꽤 많이 남아 있었다. 김진환제과점은 8가지 종류의 빵을 팔지만 사실 다른 빵들은 모두 깍두기일 뿐 확실한 우유식빵 전문점이다. 앉아서 먹는 공간도 없어서 오로지 ‘우유식빵을 산다’는 목적 말고는 이곳을 방문할 이유가 없는데도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몇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었지만 빵을 사러 오토바이까지 타고 온 손님이 내 뒤에 도착하는 바람에 이번 방문은 빵맛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사 온 우유식빵과 밤식빵, 아몬드소보로빵을 펼쳐놓으니 왠지 오픈런에 성공한 사람처럼 기세등등해졌다. 사실 사들고 돌아오는 동안 이미 우유식빵의 향에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 나는 한 때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식빵을 꼽은 적이 있을 정도로 식빵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특히 식빵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을 꼽으라면 봉지를 열었을 때 풍기는 보들보들한 우유의 냄새다. 그런데 김진환제과점의 우유식빵 향을 맡은 순간, 지금껏 내가 프랜차이즈 식빵에서 맡았던 우유 향은 모두 인공 우유 향 정도의 수준이라는 걸 깨달았다. 가볍다 못해 어딘가 신 느낌까지 들었던 프랜차이즈 식빵의 우유 향과 달리, 이곳의 우유 향은 묵직하고 고소했다.
  빵을 먹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결대로 찢으면 휴지처럼 하늘거리던 프랜차이즈 식빵과 달리 이 식빵은 밀도가 높아 비교적 단단한 느낌으로 찢어졌다. 당연히 맛의 밀도 또한 높았다. 식빵은 단순 담백함의 극치라 화려한 맛을 내기 어려운데, 식빵이 가질 수 있는 맛과 매력의 범주에서 가장 알찬 수준이랄까. 미식이라고는 한참 모르는 나지만 제대로 전문점을 찾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12년 이상 우유식빵만 만들어 오셨다고 하던데, 이렇게 단순해 보이는 메뉴 하나로 그만큼의 세월을 지나오신 걸 보면 분명 대단한 내공을 지니셨을 터. 정사각 모양으로 빚어진 엄청난 내공을 맛볼 수 있어 감사했다.




동글동글 빛나는 존재감의 소금빵, 오파토


  대한민국 빵의 유행은 모카 번부터 시작해서 카스테라, 크로플 등을 거쳐 현재는 소금빵이 유행의 정점이라는 인터넷 글을 본 적이 있다. 오파토는 여러 명에게서 소금빵 맛집이라며 추천받은 곳이다. 소금빵을 태어나서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라 더 기대감을 품고 방문했다. 오파토의 오픈 시간은 아침 8시. 12시에 만나자는 친구를 설득해 일요일 11시에 도착했는데 이미 오늘의 웨이팅 리스트에는 수십 팀이 왔다간 흔적이 있었다. 소금빵에 이렇게까지 진심일 일인가. 웨이팅하는 동안 소금빵만 포장하기 위해 들른 분들도 여럿. 

  오파토는 사실 여러 브런치 메뉴를 파는 브런치 가게에 가깝다. 그렇지만 각기 다른 브런치 메뉴를 주문하는 손님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덧붙여 주문하는 건 소금빵. 내가 가게에 머무르는 한 시간 동안, 소금빵을 주문하지 않는 손님은 한 팀도 없었다. 가게 안쪽에 소금빵 수백 개가 담긴 트레이가 그 인기를 증명했다.

  소금빵과 오늘의 수프인 시금치 크림수프를 함께 시켰다. 소금빵 군단 트레이에서 접시 위에 앙증맞게 옮겨 나온 소금빵은 너무나 귀엽게 생겼다! 방문할 곳을 찾기 위해 소금빵 맛집을 여럿 검색해 보았을 때 크로아상을 닮은 기다란 모양의 소금빵을 파는 곳도 있었는데, 이곳의 소금빵은 전체적으로 적절히 둥글고 끝도 적절히 뾰족한 것이 딱 알맞게 귀여웠다.

  겉의 식감이 특이했는데, 바삭하게 생긴 모양과 달리 맨들 쫀득하달까. 버터맛은 부담스럽지 않게 진했다. 인생 첫 소금빵을 이곳에서 먹다니 이제 평생 다른 곳의 소금빵은 못 먹는 거 아니야? 싶게 맛있었다. 타 소금빵을 먹어본 적이 없으니 맛 비교는 하지 못했지만, 이보다 더 맛있긴 어려울 듯싶었다. 내가 웨이팅하는 동안 소금빵을 테이크아웃해간 손님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곳과 가까이 사니까 가게 안은 들르지 않고 소금빵만 쏙 사갔을 테고, 가까이 산다는 건 이 빵을 자주 먹을 수 있다는 거고…

  오파토는 여럿에게 추천 받아 간 가게인만큼, 장인의 숨겨진 맛집이라고 하긴 어려울 것 같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세 곳의 가게 중 가장 상업적인 분위기의, SNS에도 자랑할 만한 곳이다. 그런데 오히려 여러 메뉴를 팔고 트렌디한 분위기가 감도는 이곳에서 소금빵이라는 메뉴 하나가 가진 힘이 돋보였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 핫한 가게에서 각기 다른 입맛을 가진 모두에게 사랑받는 건 내 손바닥보다 조금 큰 소금빵 하나다. 카모메 식당도 연어 구이, 돼지고기 구이 등 여러 식사 메뉴를 팔지만 손님들로 하여금 처음 식당에 발걸음 하게 만드는 건 직접 구운 작은 시나몬롤인 것처럼.





  나도 카페에 가면 ‘갬성샷’을 남기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사실 이렇게 진심을 담은 몇 가지 메뉴만 판매하는 가게들은 노력해서 찾지 않으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혼자 방문하는 게 아니라면 함께 가는 사람이 해당 메뉴를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으니 더욱더 메뉴의 가짓수가 많은 가게를 찾게 된다.

  하지만 단일 메뉴 시나몬롤부터 내공의 우유식빵, 존재감 뚜렷한 소금빵 맛집을 방문해본 바 사장님의 정성과 약간의 고집까지 스며있는 메뉴를 파는 가게들은 참 매력적이었다. 같은 시나몬롤을 먹더라도 좌르륵 펼쳐진 30가지 디저트 중 하나인 시나몬롤과, 시나몬롤만 팔아왔고 지금도 메뉴판에 시나몬롤 한 줄만 적혀있고 앞으로도 시나몬롤 외길만 걸을 가게에서 먹는 시나몬롤은 당연히 다르다. 사장님께서 이렇게 한 가지 메뉴를 고집하시는 이유는 보통 따로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해당 메뉴에 정말 자신 있어서라거나, 얽힌 사연이 있어서라거나. 

  SNS에서 요즘 가장 핫한 곳을 꿰고 있는 사람도 멋지지만, 이렇게 깊이가 있는 집을 자신만의 리스트에 담아둔 사람도 참 매력적이다. 이 사람도 그 가게처럼 마음을 깊게 쓰는 사람이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마음이 깊은 사람이 되고 싶은 날, 혹은 카모메 식당을 방문한 할머니들처럼 마음을 열고 싶은 날, 사장님의 정성을 가득 담은 디저트를 한 입 해보자.

                     




사진 출처

영화 <카모메 식당>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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