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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버스앤러버스 Aug 22. 2022

"코-피 루왁!"의 마법, 핸드드립

에디터 하레


  "커피 주세요."


  <카모메 식당>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대사일 것이다. '커피 한 잔'은 첫 손님인 토미가 처음 시킨 메뉴이면서, 매일같이 와서 시키는 메뉴이다. 카모메 식당을 처음 방문하는 손님들은 대체로 커피 한 잔을 시작으로 낯선 식당에 대해 알아간다. 


  어렸을 때부터 커피는 왠지 어른의 음료였다. 술을 즐기는 것보다 커피를 즐기는 것이 어쩐지 '진정한 어른'의 모습 같았다. 물론 입시에 찌든 고등학생 시절 맥심 화이트골드를 하루에 세네 봉지씩 들이붓긴 했지만. 지금처럼 출근길, 등굣길에 뇌를 카페인으로 때려 주기 위해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내가 생각했던 어른의 커피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듯하다. 진정한 어른이 되려면 왠지 '진정한 커피'를 마셔야만 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핸드드립 커피는 아주 이상적인, '진정한 커피'처럼 느껴진다. 일단 번거롭다는 점이 그렇다. 드립 커피는 생각보다 귀찮다. 원두를 갈고, 필터에 옮겨 담고, 적당한 온도의 뜨거운 물을 적당한 속도로 내려야 한다. 둥글둥글 주전자를 돌려 가며 빵 모양으로 부풀어 오르도록 신중하게 물을 부어야 한다. 한 잔의 맛과 향을 위해 부리는 여유는 어쩐지 어른만의 특권처럼 느껴진다. 커피 한 잔과 그 안에 담긴 여유를 동경하며, '핸드드립', 그리고 '커피'에 대해 조금 더 그럴싸하게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핸드드립이란

 

 평소 우리가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는 주로 에스프레소 방식으로, 잘게 간 원두에 높은 압력으로 고온의 물을 부어 진하게 내리는 것이다. 콜드 브루는 말 그대로 차가운 물에 오랜 시간 우리는 방식이고, 이 외에도 모카포트나 프렌치 프레스를 이용하는 방식도 있다.

  그렇다면 핸드드립은 무엇일까. 핸드드립은 말 그대로 손으로 내려 마시는 커피이다. 커피콩을 잘게 분쇄하여 필터에 담고, 온수를 통과시켜 커피가 배도록 하는 것이다. 흔히 볼 수 있는, 물을 여러 번 나누어 추출하는 방식을 '정드립'이라고 하고, 한 번에 물을 부어 추출하는 방식을 '푸어 오버(pourover)'라고 한다. 영미권에서는 주로 푸어 오버 방식을, 일본에서는 정드립 방식을 사용한다고 한다. <카모메 식당>의 드립 방식은 당연히 정드립이다.


  핸드드립 커피를 즐기기 위해서는 준비물이 몇 가지 필요하다. 원두, 원두를 갈 그라인더, 필터, 드리퍼, 드립포트, 그리고 저울과 온도계까지. 


  그라인더는 전동 그라인더와 수동 그라인더(핸드밀)가 있는데, 전자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편리하지만 핸드밀 자체도 나름의 감성이 있다. 물론 가격 차이도 크다. 일반적으로 핸드밀로 입문해서 드립 커피를 자주 즐기는 단계가 되면 전동 그라인더로 갈아타는 듯하다. 하지만 원두를 구매할 때 갈아 달라고 요청하면 비싼 상업용 전동 그라인더로 예쁘게 갈아 주기 때문에, 반드시 그라인더를 살 필요는 없다! 

전동 그라인더와 수동 그라인더(핸드밀)


  필터는 드리퍼 모양에 따라 달라진다. 밑바닥이 평평한 드리퍼를 사용한다면 컵케이크 유산지 같은 모양의 필터를, 뾰족한 모양의 드리퍼라면 원뿔 모양의 필터를 사용한다. 드리퍼 종류마다 재질, 리브(내부의 홈과 돌기) 모양, 구멍 크기와 개수가 다른데, 이는 열전도율과 물빠짐, 유속 등에 차이를 만들고 이것이 곧 맛의 차이로 이어진다.

드리퍼와 필터


  의외로 가장 중요한 것은 저울과 온도계라고들 한다. 핸드드립에서는 원두와 물의 비율이 가장 중요한데, 원두의 로스팅 정도에 따라 부피나 밀도가 다르기 때문에 눈대중만으로는 절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물이 많아질수록 원두 본연의 맛과 향을 더 오래 우리기 때문에 뒷맛까지 담게 된다. 따라서 적정한 물 양을 위해서는 저울이 반드시 필요하다!


  핸드드립, 도구들만 간단히 알아보는데도 어쩐지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닌 듯하다. 드립 커피와 관련된 잡지식들로 어질러진 머릿속의 다락방을 정리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핸드드립 원데이 클래스


  취향 도둑질도 능력이 있어야 하는 법! 핸드드립을 좀 더 배워 보기 위해 클래스를 신청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커피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좋아하는 가수로 아이유, 박효신을 꼽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떤 산지, 어떤 맛의 원두가 좋다고 말하는 것은 개인의 커피 취향을 조금 더 확연히 드러낸다. 그런 의미에서, 내 취향의 커피는 무엇인지 이 기회에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여기저기 알아보면 핸드드립 클래스나 로스팅 클래스가 생각보다 자주 열린다. 내가 신청한 곳은 서울 DMC 근교의 <선휴 카페>이다. 원데이 클래스가 있는 수요일은 일찍 마감하고 클래스 신청 손님들만 받으시는 듯하다.

<선휴 카페> 내부와 계단.


  담당 바리스타 선생님의 핸드드립 시범으로 클래스가 시작한다. 원두의 테이스팅 노트를 읽는 방법과 실제 커피의 향과 맛을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서다. 원두 이름은 보통 나라 - 농장 - 품종 - 가공방식 순으로 정해지는데, 여기에 보통 로스팅한 곳에서 테이스팅 노트를 추가한다. 처음에는 맛을 설명하기 어렵다. 어휘와 표현력도 부족하고, 묘사하려고 집중하다 보면 그 맛은 이미 지나가 버리고 다른 맛이 입안에 맴돈다. 바리스타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여러 커피를 마셔 보며 계속해서 표현을 끄집어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때 마신 커피의 원두는 케냐 카루만디 워시드, 에티오피아 내추럴 블렌드였다. 평소 산미가 있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둘 다 산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느낌'인지에 집중해 음미하다 보니 색다르게 다가왔다. 산미에도 토마토 같은 맛과 베리류의 맛, 복숭아나 살구 같은 맛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오히려 다채로운 산미가 있는 커피가 좋아졌다. 테이스팅 노트를 보기 전후에 느낀 커피의 맛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이후 드립 실습이 이어졌는데, 실제 드립 실습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원두는 20g, 총 물의 양 320g, 온도는 88도에서 93도 사이, 원두 분쇄 정도는 21에서 28 정도. 드리퍼에 필터를 씌우고 뜨거운 물로 린싱을 한 후, 핸드밀로 간 원두를 담고 정해진 물 양에 맞추어 조금씩 드립 포트를 돌려 가며 물을 내렸다. 물의 양과 속도가 일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이 멋대로 움직이곤 했다. 


처음 내린 핸드드립.

  나름 물의 양은 잘 맞추어서 제법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신기했던 것은 분명히 같은 원두를 같은 크기로 갈았는데, 클래스를 함께한 사람들과 다른 맛이 난다는 점이었다. 내가 내린 커피는 가벼우면서도 강한 산미가 살아 있었는데, 다른 분이 내린 커피는 조금 더 무게감이 있고 진한 초콜릿 향이 났다. 바리스타의 실력, 즉 '누가 내리느냐'가 가장 중요한 커피 추출 방식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일명 '커피빵'이라고 부르는, 원두 가루가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귀여웠다. 커피빵은 로스팅 과정에서 생긴 가스가 물에 잠겨 빠져나오면서 생기는데, 흔히 커피빵이 잘 생길수록 신선하고 맛있다는 통념이 있다. 하지만 이는 로스팅 정도와 물의 온도, 원두가루의 크기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한다!

  경험과 입문, 그 사이 어딘가 발을 걸쳐 놓고 이런저런 것들도 여쭤 보았다. 예컨대 카페인 양은 일반적으로 원두가루와 물이 얼마나 오랜 시간 닿아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셨다. 그래서 콜드브루>드립커피>에스프레소 순으로 카페인 양이 많다고 한다! 비록 원데이 클래스였지만, 알차게 배우고 알차게 써먹은 시간이었다. 어디 가서 드립 커피에 대해 "좀 안다"고는 절대 못 하겠지만, "쪼끔 안다" 정도는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커피로부터 넓혀가는 취향, 카페 <펠른>


  본디 모르는 것을 갓 배웠을 때가 가장 용기가 넘치는 시기이다. 기세를 몰아, 보다 넓은 취향을 탐구해보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서울 연남동에 위치한 <펠른>이라는 브루잉 바를 발견했다. 펠른에서는 커피 페어링 코스, 일명 '커피 오마카세'를 경험할 수 있다. 총 3가지 음료와 3가지 디저트를 페어로 제공하는데, 시즌별로 테마를 달리하여 다양한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 

  방문한 날은 비가 많이 왔다. 덥고 습하고 일정이 많은 날이었는데, 우산을 접고 자리에 앉아 웰컴 디쉬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부터 그런 것들은 다 잊어버린 것 같다. 마치 진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바깥 도로보다 반 층이 낮은, 그래서 현실로부터도 그만큼의 거리를 둔 듯한 위치와 노란빛 조명으로 가득한 인테리어가 한몫하는 듯했다.


카페 <펠른>의 간판과 내부 사진.


  신청한 페어링 코스의 테마는 <다채로운 한국>이었다. 한국 고유의 다채로운 색감을 오마주한 한식 퓨전 디저트 코스로, 웰컴 디쉬인 오미자 캐비어 수단으로 시작한다. 다섯 가지 맛을 가졌다는 오미자로 시작하는 것이 매우 상징적이다. 이후 색동, 단청, 고명이라는 이름으로 세 가지 음료와 디저트가 제공된다.


색동 코스(좌)와 케멕스(우). 목도리를 두른 펭귄 같아 귀엽다.

  가장 먼저 제공된 '색동' 코스는 핸드드립 커피와 머랭 케이크 페어이다. 사용된 원두는 에티오피아산 내추럴 원두로, 깔끔하고 부드러운 목넘김에 자두나 복숭아 느낌의 산미가 있었다. 머랭 케이크는 색동저고리를 모티프로 하여 다양한 색을 구현했는데, 색깔별로 다른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그동안 막연히 디저트는 달달하니까 쓴 맛의 커피와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새콤한 디저트에는 오히려 가벼운 산미의 커피가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잔 정도의 양을 내려, 식지 않게 케맥스에 담아 주어 적당히 따뜻한 온도와 산미를 즐길 수 있었다.


단청(좌)와 고명(우) 코스

  뒤이어 나온 '단청' 코스는 논알코올 칵테일과 함께 캐모마일 아이스크림을 얹은 오렌지 모과 약과가, '고명' 코스는 위스키 더치에 도토리 크림 브륄레가 함께 나온다. 특히 위스키 더치커피는 다크 초콜릿 맛에 훈연한 계피 향이 더해져 스모키한 맛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다 마신 잔에는 달달한 향이 남아 계속 킁킁거리게 만든다.


  사실 커피 페어링 코스라고 해서 세 잔 다 드립 커피인 줄 알고 신청했는데, 보기 좋게 예상을 빗나갔다. 하지만 입이 행복했으니 나름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현재는 새로운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니 관심이 있다면 한 번 방문해 보자. 페어링 코스는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으나 상황에 따라 당일 예약도 가능하니 인스타그램 공지를 확인할 것. 코스가 아닌 일반 워크인도 가능하다.





  "코피 루왁!"


  어느 날, 카모메 식당에 찾아온 손님 마치는 사치에에게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 방법을 알려 준다. 커피 원두 가루에 손가락을 꽂고, 커피를 더 맛있어지게 하는 마법의 주문을 외치는 것이다. 이후 매번 원두 가루에 손가락을 꽂고 코피 루왁!을 외치는 사치에의 모습이 소소한 웃음 포인트였다. 마치가 그라인더를 훔쳐 가려다 사치에에게 업어치기를 당한 것도.

  <카모메 식당>을 보면서, 이 마법의 주문 "코피 루왁!"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몰랐는데, 핸드드립을 직접 경험하면 장면이 다시 보인다.  핸드드립의 매력은 다채롭다는 데 있다. 원두의 산지, 가공, 로스팅뿐만 아니라 원두의 분쇄 정도, 물의 온도와 유속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무엇보다도 '누가 내리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휙휙 바뀐다. 그래서 핸드드립은 원두 본연의 개성에 커피를 내리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더한 맛이다. '코피 루왁'은 어쩌면 원두에 거는 마법이 아니라, 사람에게 거는 마법일지도 모른다. 비싼 루왁 커피를 다루듯 더 깊이 원두를 이해하고, 개성을 살리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마음을 다잡는 주문. 


최근 마신 핸드드립 커피

  요즈음에는 카페에 핸드드립 메뉴가 있으면 꼭 한 번 주문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 새로운 카페에서의 첫 기억을 핸드드립 커피로 시작해 보는 것이다. 사치에가 내린 드립 커피 한 잔으로 '카모메 식당'을 알아가는 손님들처럼. 커피에 대해 잘 모르면 또 뭐 어떤가. 누군가가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 둥글둥글 내려 준 커피라는 점만을 생각해도 좋다.


                    



사진 출처

영화 <카모메 식당>의 한 장면.

Kalita, Hario, BARATZA 제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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