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버스앤러버스 Aug 01. 2023

은수와 상우, 그들은 어떤 사랑을 했을까

에디터 하레

  허진호 감독의 영화가 명작으로 꼽히는 가장 큰 이유는 ‘현실성’이다. 특히나 <봄날은 간다>는 서로 만나고 사랑하다 헤어지고 매달리고 다시 붙잡는 모든 장면이 시리도록 현실적이라, 보는 나까지도 그 구질구질함을 함께 경험하는 것 같다. 이별을 앞두고 있거나 최근에 이별한 사람이라면 보다가 눈물을 찔끔, 흘릴지도 모른다.


  그 만남과 헤어짐 사이 모든 순간에 은수와 상우는 서로를, 사랑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하다. 사람의 수만큼 사랑의 정의와 형태도 모두 다를 텐데, 현실의 우리는 은수와 상우 중 누구에게 더 이입하고 있을까. 우리가 경험해 온 사랑은 우리를 누구에게 더 이입하게 만들까?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지프: 안녕하세요, 스물다섯 살 지프입니다.


뚜비: 안녕하세요, 퇴사를 앞두고 있는 뚜비입니다.




먼저, <봄날은 간다>의 경우 굉장히 현실적으로 연애를 그려 내고 있다는 평이 많습니다. 평소 로맨스 장르를 볼 때 현실적인 것과 판타지스러운 것 중 어떤 걸 더 좋아하시나요?


지프: 현실적인 연애를 다루는 이야기를 더 좋아해요. 공감이 되어야 재미를 느끼는 타입이라. <킹더랜드>도 11화까지 보다 하차했어요.


뚜비: 감정선이 탄탄한 작품을 좋아해서, 개연성이 좋으면 딱히 가리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렇게 따지면 일반적으로는 현실적인 로맨스를 더 좋아하는 것 같네요.



영화를 보면서 누구에게 더 이입했는지, 특히 어떤 장면에서 이입했는지 궁금한데요.


지프: 상우요. 일단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말에 동의하는 사람으로서, 상우에게 크게 공감했습니다. 은수가 “우리 한 달만 떨어져 있을까?”라고 할 때 엄청난 분노를 느꼈어요. 아마 은수는 헤어지자는 말을 돌려 말한 걸 테고 그걸 상우가 못 알아들은 거겠지만, 그럼 그냥 헤어지자고 확실하게 말해 주면 되잖아요! 헤어지면 헤어지는 거지, 사람 마음 갖고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연락하고 찾아가면 이번엔 마음을 바꿀 수 있을까? 아니면 지겨워할까? 그렇다고 연락을 안 했다가 나를 잊으면 어떡하지? 하는 그 피 말리는 순간들에 너무 공감했어요.

또 화났던 장면은 한참 뒤에 은수가 종이에 손가락을 베어서 무의식적으로 높게 들고 흔들다가 상우가 생각나서 만나자고 연락한 거요. 말하고 보니 상우에게 이입했다기보다는 은수에게 화나는 게 더 많았네요.


뚜비: 너무나도 은수죠. 사실 이입이라기보다는 어디에도 묶이지 않고 쿨하고 솔직한 모습이 멋져 보이는 것 같아요. 물론 영화 속에서 시간의 흐름이 명시적이지 않고, 풍경 속 계절의 변화로만 나타나서 은수가 되게 왔다 갔다 변덕스럽고 제멋대로 보이는 건 맞아요. 그래도 은수는 좋으면 좋다, 아니면 아니다 확실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을 수 없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상우처럼 나한테 목매는 상대를 만나면 너무너무 피곤할 것 같고... 극 중에서야 유지태가 연기해서 나름 귀엽긴 했는데,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음, 네.




아무리 내가 이입했다지만 은수/상우라고 하더라도 이건 좀 실드 쳐주기 어렵다, 하는 장면이 있었나요?


지프: 뭐, 헤어지자고 할 때 붙잡고 술 먹고 찾아가고 하는 건 오케이… 근데 은수 자동차를 차키로 긁는 장면에서는 너무 찌질해 보여서 조금 정 떨어졌던 것 같아요. (만약 본인이 그 상황이었다면?) 저 같으면 일단 엄청 울었겠죠. 그러고 나서 어디 온라인 익명게시판 같은 데에 글 쓰고 싶은 마음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가, 남은 일말의 이성으로 마음을 누르고 제 쪽에서 먼저 헤어지자고 확실하게 말할 것 같아요. 그 일로 상대를 더 비난하거나 하지도 않고요.


뚜비: 실드 쳐주기 어렵다기보다는 그냥 제 안에서 소소하게 정 떨어진 장면이 있는데요. 방송국에서 은수가 상우랑 앉아서 소화기 사용법 아냐, 하면서 말을 붙이고 이어나가잖아요. 저는 그 장면에서 은수가 되게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다른 남자한테도 똑같이 써먹는 걸 보고 아, 그냥 자주 써먹는 플러팅이었구나 했어요. 귀엽다고 생각한 나 자신도 뭔가 속아 넘어간 느낌이랄까…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대사에 대한 본인의 생각이 궁금해요. 동의하시는지, 아니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지.


지프: 적어도 저는 여태까지 제 사랑이 변한 적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상대의 사랑도 변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죠. 지금은 솔로여서 그런 마음이 덜하긴 한데, 저는 사랑으로 어떤 고난과 역경이라도 다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근데 이거 은수 편인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랑을 했길래 은수 편을 들 수 있죠??


뚜비: 사랑을 비롯해서 사람의 감정은 언제나 변하는 거 아닐까요. 물론 0과 1로 나뉘는 건 아니지만, 그 사이 스펙트럼 안에서 주변 환경이나 내 상황에 따라 그 농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애초에 사랑 자체도 대상이나 형태나 표현이 다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변하지 않아야만 사랑이라는 걸 언제 누가 정한 건지도 잘 모르겠고요.




 은수와 상우는 사랑을 어떻게 정의/생각했을까요?


지프: 은수의 사랑은 현실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은수가 한 게 사랑일까?라는 생각도 드네요. 그냥 끓었다 식는 감정대로 행동하는 것 같기도 하고. 데이트라고 해도 밖에서 만나는 장면도 별로 없고, 방송국 사람들 앞에서 그냥 아는 동생이라고 한 것도 별로예요. 반면 상우의 사랑과 연애는 정말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몽글몽글하고, 진심이 가득하고, 그 자체가 내 모든 것 같고… 그래서 오히려 꿈같죠.


뚜비: 은수는 사실 사랑을 정의하고 살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은수의 이혼 경험이 ‘사랑의 덧없음’을 느끼게 한 매개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그때그때 마음 가는 대로 솔직하게 행동하는 게 오히려 진짜 감정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요. 상우는 뭔가 이상적인 사랑을 늘 꿈꿔 왔고, 만나는 사람마다 결혼까지 생각했을 것 같은… 이혼 경험이 있는 은수라면 당연히 부담스러워할 만한 그런 사랑을 생각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본인은 사랑, 또는 연애를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지프: 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걸 다 주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특히 연애할 때 더 감정적이고, 그게 삶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라 그냥 나의 모든 것이 곧 연애가 되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말에 공감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그런 모습을 고치고 싶은 것도 맞아요. ‘내 감정과 진심을 다 표현하는 게 뭐 어때?’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헤어지고 나면 왜 그렇게 감정적으로 다 쏟아냈는지 후회를 하니까요. 아, 그 사람과의 관계를 후회한다기보다는 그때의 나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죠.


뚜비: 앞에서 다 말한 거긴 한데, 사랑은 딱히 어떤 거다!라고 정의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연인이나 친구, 가족, 덕질하는 연예인한테 느끼는 감정과 드는 생각들이 다 사랑에 포함된 것 같기도 하고요. 음, 근데 연애는 서로에 대한 호감을 기반으로 한 역할놀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한국에서는요. 어느 정도 기대되는 역할과 행동을 수행해야 서로를 만족시킬 수 있는 거죠. 너무 냉정한가요…?




다시 영화의 앞부분으로 돌아와 볼까요. 은수와 상우가 서로 어떤 장면에서 호감을 가졌다고 생각하시나요?


지프: 상우는 처음 봤을 때부터, 은수가 너무 예뻐서 그때부터 약간의 호감을 갖고 눈여겨봤을 것 같아요. 은수는 대나무 숲에서 녹음한 내용을 들으면서 1번이 낫다, 2번이 낫다 고르면서 투닥거릴 때요. 그때 상우를 귀엽다고 생각했을 것 같네요.  


뚜비: 은수는 확실히 첫 만남은 아닐 듯. 첫 만남부터 CD로 이에 뭐 낀 거 있나 없나 확인하잖아요. 아무리 털털해도 호감 있는 사람 앞에서는 보통 못 하는 행동 아닌가 싶네요… 처음에는 그냥 순수하게 내 인생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어서 관심을 가지다가, 절에서 하룻밤 자고 난 다음날 꾸벅꾸벅 조는 상우를 바라보는 눈빛에서부터 감정이 변한 것 같아요. 상우는 대나무숲에서 바람 소리를 듣는 은수의 옆모습을 보고? 왜냐면 제가 거기서 반한 것 같거든요.



은수는 왜 상우를 떠났을까요?


지프: 아무래도 은수에게 상우는 가벼운 연애 대상이었을 테고, 본인은 한 번 이혼 경험이 있어서 결혼을 하고 싶은 생각도 당장 없었을 텐데 냅다 부모님을 만나자고 하는 게 부담스러웠겠죠. 근데 그렇다고 바로 헤어지자고 하는 건… 너무 별로인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뚜비: 너무 앞서가서 결혼을 생각하는 게 부담스럽고, 마침 그때 새로운 사람이 눈에 들어왔겠죠. 장거리 연애인 데다, 일 하는 겸 만나는 밍밍한 데이트도 질릴 때가 됐을 거고. 제 연애 상대였다면 당연히 화났겠지만, ‘왜’에 초점을 맞춰서 생각하면 그랬을 것 같아요.




그럼 상우는 어떻게 은수를 정리했을까요.


지프: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은수를 본 게 마음 정리에 한몫했을 것 같아요. 저는 모든 이별은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헤어졌을 때 한참 동안 사람이 감정적이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이성이 돌아오면서, 다시 만난다고 하더라도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잖아요? 상우도 은수를 안 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본인에 대해 깨달은 게 있지 않을까 싶네요. 제가 너무 이입해서 봤나요? (웃음)


뚜비: 상우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자기를 봤을 것 같아요. 바람피운 할아버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모시고 돌아와도 또 기다리고. 그런 할머니를 보면서 은수가 밀어내도 계속 찾아가는 자신을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기차역에서 할머니에게 윽박지르는 것도 사실은 자기에게 한 말이 아닐까 싶어요. 그, 거울 치료라고 하죠. (웃음)




은수와 상우가 진짜 마지막으로 헤어지면서 악수하는 장면에 대한 감상이 궁금한데요.


지프: 일단 다시 만나자고 한 은수는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상우는 정말 칭찬해 주고 싶었어요. 거기서 흔들리지 않고 마음을 다잡고 뒤돌아서잖아요. 깔끔하게 악수하고 헤어지는, 딱 이상적인 건강한 이별이었다고 생각해요.


뚜비: 은수는 정말 끝까지 관계를 주도하고 싶어 하는구나… 싶더라고요. 다시 만나자고 연락하고, 쫓아가서 팔짱 끼고, 무심해 보이는 상우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고. 사실 은수에게 더 이입해서 봤다고 하긴 했지만, 나중에 은수가 한 번쯤 더 후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살면서 상우만큼 순수한 사람이 한 번쯤은 더 생각나지 않을까요?



그럼 영화의 결말에서 상우가 마지막에 갈대밭에서 혼자 소리를 듣는 장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프: 개인적으로 그런 맹숭맹숭한 결말을 안 좋아해서, 저라면 차라리 벚꽃길에서 악수하고 헤어지는 순간으로 결말을 냈을 것 같아요. 만약 결말을 다시 쓴다면, 저는 오히려 혼자 소리를 듣는 사람이 은수이길 바라요. 그러면 상우는 완전히 깔끔하게 정리한 사람처럼 보이고 은수가 미련이 남은 것처럼 보이잖아요.


뚜비: 벚꽃 장면에서 상우가 뒤를 돌아보는 모습이 나오는데, 미련과 후회와 미움이 섞인 복합적인 감정이 그때까지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제 갈대밭에서 상우가 소리를 들으며 웃는 장면으로 마무리되잖아요. 그걸 보고 이제 상우도 이 사랑을 완전히 좋았던 추억으로 남기게 된 것 같아서 저도 후련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네요. 유지태 웃음이 청량해서 더 그랬던 건지도.



저희 잡지의 공통 질문인데요, 손민수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지프: 이성적인 사고방식이요. 주변 자극에도 감정적으로 마구 흔들리지 않고 먼저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손민수하고 싶어요. 저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


뚜비: 꼼꼼하게 계획하고 기록하는 사람? 제가 워낙 덤벙대고 이리저리 붕방거리는 타입이라 좀 차분하고 계획적인 삶을 살아보고 싶네요. 그리고 이건 그냥 사고 싶은 거긴 한데, 헤드셋이요! 무심하게 툭 걸쳐도 뭔가 패셔너블한 느낌이 나더라고요.





이전 06화 봄날을 떠나보낸 사람에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