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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버스앤러버스 Aug 01. 2023

봄날을 떠나보낸 사람에게

에디터 콜리

 세상엔 다양하고 멋진 장르의 영화가 많지만, 한 번이라도 사랑을 해 본 사람에게 로맨스 영화가 주는 찡한 울림은 따라잡을 수가 없다. 특히 한국 최고의 로맨스 영화로 손꼽히는 <봄날은 간다>는 많은 이들의 인생 영화가 되었다. 경험한 사랑의 깊이가 깊을수록 이 영화에도 깊이 빠질 수밖에 없다. 솔직한 사랑 이야기와 진솔한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터뷰이 시미를 만났다.



<봄날은 간다>는 처음 어떻게 보게 되셨나요? 오래 전 영화다보니 우연히 보기는 어려웠을 텐데요.

원래 로맨스 영화를 좋아해요. 로맨스 영화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영화들을 거의 다 봤어요. 특히 옛날에 나온 로맨스 영화의 클래식들을 다 봤어요. 클래식한 로맨스 영화들이 요즘 나오는 로맨스 영화보다 훨씬 좋아서 전 그것만 보게 되더라고요.


그 중에서도 <봄날은 간다>가 최애 영화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매력 포인트를 소개해 주세요.

 이동진 평론가님이 하신 말씀이었는지, 아니면 제가 혼자 한 생각인지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저한테 좋은 영화의 기준은 답을 제시해 주는 영화보다는 영화가 끝난 이후에 시작되는 영화가 진짜 좋은 영화거든요. <봄날은 간다>가 그렇게 느껴졌어요. 볼 때마다 해석이 달라지고 느껴지는 게 달라서, 매번 새로운 부분이 보이더라고요. 예를 들어, 처음 볼 때에는 은수가 너무 싫었는데 다시 봤을 땐 은수가 이해가 되거나 이런 거요. 

 그냥 영화 하나 보고 킬링타임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영화를 보면 생각거리도 많아지고요. 볼 때마다 감상이 다르니까 계속 더 보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최근 본 것까지 합하면 세 번 봤어요.


이번에 보니 또 감상이 달라지던가요?

 다르죠. 제가 일주일 전에 헤어졌거든요. 그러고 나서 나의 이별의 슬픔을 덜어내기 위해서라도 이 영화를 다시 한 번 봐야겠다고 결심을 했어요. 영화를 보고 너무 많이 위로를 받았어요. 제 기준에서 나름 되게 오래 만난 사람이었거든요. 오래 만나다 보니 그 사람과 함께 하는 게 제 일상 너무 깊숙히 들어와 있다 보니 떼어내는 게 쉽지 않았어요. 헤어진지 일주일이 넘었는데도 못 보내주겠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사랑이라는 게 정말 봄날처럼 가는 거라는 걸 느꼈어요. 보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고 해야 될까요.


특히 어떤 장면에서 위로를 받으셨나요?

상우랑 은수가 처음 헤어지고 나서 상우가 할머니한테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면서 소리 지르는 장면이 있잖아요. 정신 좀 차리라면서. 상우가 소리를 질렀던 이유는, 돌아오지 않는 사랑을 계속 기다리고 있는 할머니가 답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했겠죠. 자기도 그걸 계속 기다리고 있는 것 같으니까 자신한테 화가 났겠죠.

 그 후에 상우가 집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때 할머니가 와서 떠난 버스랑 여자는 잡는 게 아니라는 말씀하면서 상우를 위로해 주기도 하고요. 이런 장면들이 복합적으로 위로가 됐어요.



또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나요?

 마지막에 상우가 은수를 만났을 때 그냥 보내주잖아요. 은수는 상우를 다시 만나도 괜찮을 것처럼 대하는데 상우는 거절하죠. 그걸 보면서 봄날이 간다는 게 중의적으로 해석이 됐어요. 은수 입장에서는 봄날은 어차피 오고 가는 것들이라서 갔다가도 다시 올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고요, 상우한테는 은수를 열정적으로 좋아했던 계절이 봄이라서 새로운 인연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 봄날을 보내주어야 하는 거죠. 그 모습을 보면서 영원한 건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이 영화를 한 줄로 표현하자면 사랑의 민낯을 보여준다고 생각하거든요. 자극적이고 로맨틱한 모습보다는 사랑이 변하고 헤어지기도 하는 현실적인 사랑을 보여주니까요. 영원하지 않은 사랑의 민낯을 보면서 위로 받았어요. 누구나 이렇게 상우나 은수처럼 뜨겁게 사랑할 수 있지만, 그런 날들은 지나가고 변할 수 있다는 거죠. 저도 헤어지고 나서 아직 못 보내주고 있지만, 이런 마음도 언젠가 지나갈 거라는 걸 받아들였어요.


아까 처음 영화를 봤을 땐 은수가 싫었는데 다시 보니 은수가 이해된다고 말씀하셨어요. 어떤 부분에서 그런 건가요?

 은수는 이별을 하면서 어떻게든 상처를 받았을 거잖아요. 그러니 연애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겠죠. 저도 오랜 연애를 하고나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가 더 두렵거든요. 왜냐하면 그 전에 만났던 사람과의 습관이 몸에 다 배어있다 보니 그 다음을 상상하기가 어렵고, 연애를 다시 깊게 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거부감이 있어요.

 이게 은수의 상황이었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혼한 은수 입장에서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에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그냥 가볍게 연애하고 싶었다는 마음이 이해가 가요. 은수를 보면 마음을 열면서도 못 여는 것 같은 모습이 계속 보이더라고요. 맥주를 먹고 늦게 들어 온 은수가 갑자기 울어요. 그게 아마 분명히 좋긴 한데 마음의 여유도 없고 진실하게 사랑하기 무섭다는 고민을 하다보니까 힘들어서 운 것 같아요. 그래서 좋아하는데도 그 관계를 안 하고 싶었겠죠, 힘드니까.


보면 볼수록 디테일한 것들이 많이 보이는군요. 또 소개해주고 싶은 포인트가 있나요?

 예전에 <봄날은 간다>를 음식의 관점에서 해석한 걸 본 적이 있어요. 영화에서 라면이 중요한 소재잖아요. 은수는 상우랑 자꾸 라면만 먹어요. 딱 한 번 라면이 아닌 밥을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처음으로 같이 대나무숲으로 녹음하러 갔을 때 대숲 옆 할머니집에서 고봉밥을 먹을 때요. 이런 잘 차려진 가정식과 인스턴트 음식인 라면이 대조돼요.

 은수는 할머니가 차려주신 고봉밥을 말로는 다 먹을 수 있다고 하지만 좀 부담스러워 하죠. 상우는 그 밥상을 온전히 다 받아들이고, 오히려 은수의 밥까지 먹으려고 하고요. 진지한 관계를 이 음식에 비유를 했다는 게 느껴져요. 은수는 깊은 관계를 부담스러워 하지만 상우는 그걸 받아들여요. 은수는 인스턴트 라면만 상우랑 먹으려고 하죠. 나중엔 상우한테 빨리 와서 라면이나 끓이라고 말해서 상우한테 상처를 주고요.


은수의 대사 중에도 라면이 많이 등장하잖아요.

 맞아요. 이 관계는 처음 은수가 '라면 먹을래요?'라고 물으면서 시작되죠. 심지어 처음 먹은 라면은 끓여먹은 것도 아니고 그냥 뜨거운 물 부어 먹는 라면이에요. 은수가 먼저 마음을 연 것 같지만 사실 은수는 인스턴트 같은 관계를 원했던 거예요. 마음을 완전히 열지는 않았던 거죠. 처음엔 '라면 먹을래요?'했지만 다음엔 '라면 먹을래', 마지막엔 '라면이나 끓여'가 되고요. 은수와 상우가 지금 뭘 먹고 있는지만 보더라도 관계에 대한 서로의 입장이 좀 보였다고 할까요.



<봄날은 간다>를 추천한다면 어떤 사람한테 추천하고 싶으세요?

 모두가 봐도 재밌지만, 특히 사랑에 대해 좀 회의적인 사람들이 보면 좋겠다 싶어요. 그러니까 왜 사랑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상우 같은 입장인 사람들이 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상우가 사랑에 회의적인가요?) 헤어진 후의 상우요. 상우처럼 진심을 다해 사랑하면 헤어진 이후에 사랑이 너무 아프고 슬프고 그렇잖아요. 이별한 사람들이 보통 그렇죠. 그렇게 회의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이 본다면, 이 영화를 사랑을 포장해서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현실을 제대로 마주하면서 내가 회의적으로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하나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진심 어린 인터뷰 감사합니다. 마지막 질문은 공통 질문입니다. 시미님이 따라해보고 싶은 취향이 있나요?

 <봄날은 간다>에서는 상우처럼 자연의 소리를 들으러 가 보고 싶어요. 삶을 대하는 방식이나 관계를 대하는 방식은 속도와 중요한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상우가 관계 중심적일 수 있었던 이유도 자연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느끼고 관찰하는 일을 하다 보니 상우의 속도가 보다 여유롭게 맞춰질 수 있었던 것 같거든요. 저는 너무 빠르게 살고 있다 보니까 상우처럼 한 번쯤은 숲속의 소리를 들으러, 온전히 그 자연을 느끼러 가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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