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하레
겨울의 어느 밤, 눈 덮인 산사의 풍경 소리가 은수의 잠을 깨운다. 은수는 조용히 방을 나와 절간 마루에 상우와 나란히 앉아 풍경 소리를 녹음한다. 소복소복 쌓이는 눈과 함께 밤의 산사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주면서도, 대사 하나 없이 둘 사이 뭔지 모를 간지러운 느낌을 준다.
영화를 보며 템플스테이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자고 깨는 순간, 그리고 나 홀로 누구와도 엮이지 않고 존재하는 시간. 물론 외진 산사에 어쩔 수 없이 함께 하루를 묵게 된 주인공들과는 달리 자발적으로 홀로 시간을 보내고자 가는 것이지만.
예능과 드라마를 비롯한 방송에 여기저기 자주 등장하면서, 템플스테이는 이제 접하기 어려운 것, 생소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특히 관찰 예능에서 한 번쯤 등장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그런 미디어의 영향 탓인지 ‘템플스테이’ 하면 어쩐지 자연, 산, 육류 없는 절밥, 목탁 소리, 엄숙한 분위기 등을 떠올리게 된다.
사찰은 문화유적으로만 가본 사람으로서 템플스테이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최근 워낙 템플스테이가 유명하고, 운영하는 사찰도 많다 보니 나름 공식 홈페이지도 있다. 홈페이지에서 이것저것 들여다보니, 요즘 템플스테이는 당일형, 체험형, 휴식형으로 나눠져 있었다. 체험형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템플스테이의 루틴을 수행하는 프로그램이고, 휴식형은 말 그대로 사찰에서 휴식을 취하며 일정에 자유롭게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생각보다 사찰도 많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템플스테이는 처음이라, 선택을 위한 나름의 기준을 세워 보았다. 먼저 너무 도심과 가깝지 않으면서 교통이 나쁘지 않았으면 했다. 이왕 갈 거면 자연에 둘러싸여 유유자적하고 싶었으나, 뚜벅이로서 자가용이 필요한 곳은 힘들 것 같았다. 그리고 절밥이 맛있다는 곳을 찾아봤다. 염불보다 잿밥에만 관심 있어 보이지만 뭐 어떻단 말인가… 일단 사람은 태어난 이상 먹고살아야 하는 것을… 알아보던 도중 아래와 같은 짤도 봐 버려서 이왕이면 고양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찾아보던 도중 양평 용문사를 알게 되었다. 경기도에 위치한 데다가 절밥이 맛있다는 후기도 있고, 무엇보다도 고양이가 있다! 삼박자를 모두 갖춘 용문사를 선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녀오고 보니 저 사진이 용문사인 것 같다) 용문사는 주말은 체험형, 평일은 휴식형으로 운영하고 있다. 당시에는 평일만 가능했기에 자연스레 휴식형을 신청했다. 이튿날 기상이 4시, 새벽예불이 4시 20분인 것을 보고 정신이 다소 아득해졌다. 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냅다 신청하고 용문사로 향했다.
‘공양(발우공양)’은 식사를 의미하는데, 불교에서는 이 역시 수행의 일부로 보기 때문이다. 저녁 공양 이후 저녁 예불을 드린다. ‘예불(禮佛)’은 사찰에서 가장 큰 대웅전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불경을 읊으며 여러 번 절을 하는 불교 의식이다.
용문사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교통편이 나쁘지 않다지만 결코 좋은 것도 아니므로. 특히 마을버스를 타고 용문역에서 용문사로 가는 길이 제법 험해서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뒤에는 30분 이상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그래도 가는 길이 초록과 계곡물소리로 가득하고 바람도 시원해서 기분이 좋았다.
절 입구에 도착할 때부터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저녁즈음부터는 내내 거센 비가 내렸다. 물론 쾌청한 날도 좋지만, 비 오는 산사는 더 가라앉고 고요한 느낌이다. 사찰을 둘러싼 용문산의 산봉우리들도 안개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아 현실 감각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산사의 밤은 말 그대로 고래 뱃속처럼 깜깜하고, 감각적 자극이라고는 산안개와 빗소리뿐이어서 뭔가 생각을 할래도 금방 빗소리에 씻겨 내려가 버렸다.
자유 시간에는 빗소리와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빈백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무 생각도 안 든다는 건 거짓말이고, 어쩐지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고민이 많은 시기였는데, 그 고민들도 다 덧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와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친구끼리 온 일행이 꽤 있었는데, 친구랑 왔다면 또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다.
듣던 대로 용문사 절밥은 맛있었다. 다만 내가 상상한 발우공양의 이미지-한 그릇에 담아 고춧가루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단무지로 싹싹 닦아먹는-와는 달리 건강한 채식 뷔페의 느낌이었다. 공양 후에도 그냥 본인이 설거지를 하면 된다. 체험형으로 왔으면 ‘진짜’ 발우공양을 했을까 싶지만, 이렇게 템플스테이에 대한 장벽을 낮추는 시도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귀여운 고양이들도 한 마리가 아니라 자그마치 네 마리나 있었다. 애교 많은 치즈냥 하나와 카오스 셋. 추측건대 치즈냥이 이름은 ‘사랑이’로 추정되는데, 사람을 아주 좋아해서 한참을 쓰다듬어도 옆에 가만히 있어 주었다. 카오스 중 한 마리는 방까지 들어와서 내 옷에 몸을 비비는 탓에 검은 옷이 털범벅이 되기도 했다. 조용한 공간과 맛있는 밥과 고양이… 그야말로 극락이었다.
일정에 일절 제제가 없는 프로그램이라, 본인이 부지런히 참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하면서 누워 있다가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가능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하려고 했다. 새벽 네 시, 잔잔히 울리는 종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새벽예불에 참석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된 탓에 잠들기까지 자그마치 한 시간 반이나 고군분투했지만 귀 기울여야 겨우 들릴 만한 종소리에도 이상하게 눈이 떠졌다. 흐린 날씨 탓에 일출을 보는 것은 실패했지만, 아침 공양까지 마치고 사찰 이곳저곳을 산책하다 관세음보살 앞에서 남에게도, 나에게도 자비를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빌었다.
사찰 곳곳에서 기왓장, 연등, 소원 종이에 빼곡하게 적힌 누군가의 염원을 들여다보면 기분이 묘해진다. 절을 오르내리는 길목에도 돌탑이 가득하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소원을 빌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남을 위해 빌었을지 본인을 위해 빌었을지도 궁금하다. 불상 앞에 고요히 절하던 은수의 모습을 바라보던 상우가 뭐 빌었냐고 묻자 “까먹었다”며 배시시 웃는 은수가 생각났다. 은수는 그 순간 어떤 소망을 빌었을까. 까먹었다는 건 거짓말일 것이다. 까먹을 만한 소원은 빌지 않을 테니까.
약사여래 앞에서 스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나와 가족, 친구들뿐만 아니라 내가 싫어하는 사람, 나를 싫어하는 사람의 건강과 행복까지도 빌어 주라고 하셨다. 수많은 전생에서부터 현생까지 얽힌 연을 풀어 보낸다고 생각하라고. 절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조용히 합장하고 반쯤은 진심, 반쯤은 거짓으로 모두의 안녕을 빌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전체 인생에서는 특히나 더 찰나의 시간 동안 속세를 떠나 있었지만 그 잔잔함과 적막함을 늘 마음에 품고 있을 것 같다.
천 년이 넘었다는 거대한 은행나무를 보면, 그 압도적인 크기와 분위기에 절로 두 손을 모으게 된다. 별 의미 없이도 오랜 시간 그곳에 존재하는 것들을 생각하면 안정감이 든다. 자연 속에 몸을 맡기고 ‘자연스럽게’ 있자니 평소에 욕망하던 것들이 사실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남의 시선으로부터 비롯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한없이 덧없게 느껴졌다. 물론 나는 다시 속세로 돌아가야 하므로… 취직도 잘하고 싶고 돈도 많이 벌고 싶고 건강하고 싶다고 빌었지만, 여기 덧붙여 사실 그러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질투나 실망 없이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고도 빌었다.
“고독은 혼자 있는 자의 심정이 아니라 욕망하지 않는 것과의 연결을 끊은 자가 확보한 자유(김홍중)”라고 하던데, 사찰이라는 공간은 그러한 자유를 주는 공간인 것 같다. 내가 오롯이 나에게 귀 기울이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 마음속이 시끄럽고 왜인지 항상 쫓기는 기분이 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 가까운 절에서 하루만이라도 묵어 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