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콜리
오감 중 청각만이 주는 묘한 느낌이 있다. 눈으로 봐서는 별 감흥이 없는 장면이, 소리로 들었을 때는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오죽하면 ‘귀를 간지럽히다’라는 말이 있을까. 그래서 같은 소리를 공유하는 건 무척 특별하다. 은수와 상우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함께 수집한 것이 소리가 아니라 시각적인 장면들이었다면, 그래서 함께 앉아 헤드폰을 끼고 귀 기울인 순간들이 없었다면, 이들은 연인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혹은, 같이 보낸 시간들로 인해 결국 연인 관계가 되었더라도, 이만큼 애틋하고 아련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떠난 은수를 추억하는 상우는 함께 처음으로 수음했던 대나무숲만큼이나 시원한 소리가 불어오는 갈대밭에서 은수의 녹음된 콧노래를 듣는다. 함께 ‘들으며’ 시작된 은수와 상우의 사랑은, 상우가 혼자 ‘들으며’ 마무리된다. 과장 조금 보태자면 소리로 이어진 인연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이 인연의 시작점이자 종착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하루에도 수십수천 가지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듣는다는 건 그저 자연스러운 감각의 반응일 뿐 특별한 느낌을 주지 못하는 행위인데 말이다. 은수와 상우의 사랑을 곱씹다가, 시끌벅적한 세상 속에서 바래져버린 ‘듣는’ 것의 의미를 되찾아보려고 한다.
단순히 같은 소리를 듣는다고 다 통하는 건 아닐 거다. 콘서트장에서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는, 같은 가수를 좋아한다는 동질감을 느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애틋한 감정이 싹트기는 어렵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소리에 단둘만 집중할 때에 마음이 두근거릴 가능성이 높다. 은수와 상우처럼 둘이서 함께 같은 노래, 같은 소리를 듣는 순간을 포착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장면들이 있다.
영화 <라붐>
함께 같은 소리를 듣는 순간을 가장 상징적으로 묘사한 영화다. 시끄러운 댄스음악이 울리는 클럽에서, 주인공에게 헤드폰을 씌워주며 둘이서만 같은 노래를 듣는 장면은 영화계에서 손꼽히는 레전드 장면이 되었다. 이후 수많은 콘텐츠에서 이 장면이 오마주될 정도다. 헤드폰을 씌워준 순간, 두 주인공은 아예 둘만의 공간에 온 듯하다. 요란스런 음악에 몸을 흔드는 사람들 틈에서, 부드러운 노래로 자기에게만 집중하게 해주는 상대와 사랑에 빠지지 않기는 어려울 것 같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주인공 5인방이 수학여행 겸 다함께 놀러 간 바닷가에서 다들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는 와중에, 기자로서 그 모습을 담고 있는 남주인공 백이진 곁에 여주인공 나희도가 슬며시 앉는다. 백이진이 “소리 들어볼래?”하며 건네준 헤드폰을 통해 나희도는 파도 소리와 갈매기 소리에 귀 기울인다. 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함께 말 없이 앉아있는 모습이 왁자지껄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는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대비되는데, 시청자로서 무척 설렜다. 사랑은 함께 떠드는 순간보다, 같은 소리에 조용히 귀 기울일 때 시작된다.
예능 <하트시그널>
사랑이 보이는 순간을 포착할 때 음악적인 요소를 가장 잘 활용하는 예능이 하트시그널이다. 매 시즌마다 음악을 좋아해 LP를 모으는 사람이 출연하고, 같은 음악적 취향을 공유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출연자들의 두근거림을 극대화하는 기폭제로 BGM도 잘 활용해 ‘하트시그널 분위기의’ 플레이리스트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특히 현재 방영 중인 시즌4에서는 LP바에서 같은 노래를 듣던 두 출연자가 서로에게 반하는 장면이 핵심적으로 다뤄졌다. 최종 커플이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게 된 데에 분위기 좋은 바에서 함께 듣는 잔나비의 ‘주저하는연인들을위해’가 큰 역할을 했음은 명확해 보인다.
이제 내가 직접 들어볼 차례다. 둘이서 같은 소리에 집중하는 것이 얼마나 로맨틱한가에 대해 실컷 말했지만, 로맨틱한 상황을 연출하고 싶은 상대가 없으니 나는 나 혼자서 소리에 귀기울여 보려고 한다. 평소에 혼자 외출하는 일이 별로 없는 편이라, 어느 곳을 방문해도 동행자와 시끌벅적 수다를 떨기 바빴다. 현대인들은 가끔 혼자 외출할 때조차 바깥의 소리에 집중하기보다는 에어팟을 꽂고 귓속에 바로 전달되는 노래를 주구장창 듣지 않나. 혼자서, 말 없이 자연의 소리 그대로에 집중하는 생소한 경험을 해 보기로 했다.
은수와 상우가 같이 수집한 소리는 많지만, 아무래도 가장 상징적인 것은 처음 수음을 함께했던 대숲의 소리다. 서울 근교의 대나무숲을 뒤지고 뒤져… 이촌 한강공원의 대나무숲으로 출발했다.
길게 펼쳐진 이촌 한강공원 내에 이촌지구 1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바로 옆이 대나무숲이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지 않고 대나무숲의 길이도 꽤 길어서, 선선한 저녁에 산책 삼아 걷기 좋다. 다만 은수와 상우가 귀 기울였던, 대숲 옆에 사시는 할머니의 말씀을 빌려 ‘바람 불고 눈보라 칠 때가 좋지 솨 소리가 나면 이제 마음이 심란하던 게 기분이 확 풀리고 얼마나 좋노’ 소리가 절로 나는 대나무숲은 전혀 아니었다. 대나무숲을 가운데 두고 한쪽은 강변북로, 한쪽은 한강공원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찻길이다. 차 소리만 무지막지하게 들리고, 심지어 내가 대나무숲을 방문한 날은 바람 한 점 없는 여름밤이라 대나무가 시원하게 흔들리는 소리는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아쉬운대로 직접 대나무를 흔들어서라도 소리를 들어 보았다. 베이스로 깔리는 소리는 강변북로를 쌩 지나는 차의 소음이다. 역시 별로다.
1) 세찬 바람이 부는 것처럼 흔들리는 대나무 소리
2) 자연스러운 바람에 흔들리는 듯한 대나무 소리
그런데 기대했던 <봄날은 간다> 속의 대숲 소리를 듣지 못하자 오히려 은수와 상우의 감정을 더 이해하게 됐다. 서울 같은 도시에서는, 겨우겨우 대나무숲을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속 시원한 대숲 소리는 들을 수 없다. 겨우 잎 몇 개가 살짝 흔들린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의 떨림은 모두 인공적인 소음에 묻혀 버린다. 내 발목을 잡는 기억들이 가득한 현실에서 벗어나 울창하고 빽빽한 대나무숲 속에서 쉽게 만나기 힘든 소리를 듣는 생경한 경험이, 어색하지만 왠지 끌리는 상대와 어딘가 닮아 있었을 거다. 그래서 둘이서 함께 ‘솨’ 소리를 들을 때, 마음 속 응어리가 개운하게 씻겨나가고 내 눈 앞의 이 사람에게 마음이 더 열렸던 것 아닐까.
은수와 상우에게 과몰입하고 나자 대숲 소리를 더욱 갈망하게 됐다. 다행히 도시에 거주하는 현대인을 위해 준비된, 대나무숲 바람소리 ASMR 여러 개를 유튜브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 은수와 상우가 들었던 크고 시원한 대숲 소리는 아니지만 듣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은 ASMR을 골랐다. 하나의 ASMR을, 소리만 듣는 방식과 이촌 한강공원의 대나무숲에서 직접 찍은 영상에 입힌 버전으로 감상해 보았다.
1) 소리로만 듣는 대나무숲
눈을 감고 들으며 은수와 상우가 이 소리를 함께 들었다면 어땠을지를 떠올리려고 노력해 보았다. 영화 속에서처럼 속이 다 시원해지는 소리는 아니지만, 부드럽고 잔잔하게 흔들리는 대나무숲의 소리를 듣는 것 또한 나름의 로맨틱함이 있지 않았을까. 평생을 대나무숲 옆에서 살아오신 할머니는 근처에 안 계시지만, 함께 대나무숲에서의 아침을 맞으며 상쾌해 하지 않았을까. 눈에 보이는 장면이 없으니 내 마음대로 어울리는 장면을 상상하고 나름 대나무숲 소리에 집중할 수 있었다.
2) 직접 찍은 영상+대나무숲 ASMR 소리
한강공원 주차장으로 차가 들어가는 타이밍을 피해 직접 찍은 영상을 보고 있자니 아무리 대나무가 흔들리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혀도 한강공원 대나무숲 벤치에 앉아있는 은수와 상우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영상을 찍던 순간의 비하인드만 자꾸 생각이 나서, 실제로는 바람이 하나도 불지 않았던 상황과 귓가의 대나무숲 소리의 엉성한 조합에 오히려 웃음이 났다.
3) 대나무숲 ASMR 영상
아무래도 영상을 직접 찍었다는 점이 집중력을 흩뜨리는 것 같아, 대나무숲이 흔들리는 모습과 소리를 같이 재생해주는 ASMR 영상도 보기로 했다. 아름다운 대나무숲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니 눈과 귀가 모두 즐거울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영상을 재생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3가지 방식 중 가장 별로였다. 소리만 들을 때에는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니 오래 듣고 있어도 지겹지 않았는데, 눈으로 영상을 쫓고 있으니 몇십 분이 지나도 아무런 이벤트 없이 계속 비슷하게 흔들리고 있는 대나무들을 바라보는 게 무척 지루했다. 높게 뻗은 대나무들 사이로 새라도 한 마리 날아가고, 비행기라도 한 대 지나가야 할 것만 같았다. 하루종일 유튜브, 넷플릭스 등 영상 콘텐츠를 돌려보는 나에게 자극적인 이벤트가 전혀 발생하지 않는 평화로운 대나무숲을 가만히 바라보는 건 꽤나 힘든 일이었다.
평생 제대로 된 ASMR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고, 타고나길 수다쟁이로서 ‘오디오가 비는’ 순간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여는 나에게, 가만히 청각에만 집중하는 순간은 꽤 신선했다. 비록 ‘솨’ 소리가 나는 대나무숲은 만나보지 못한 채 유튜브로 대숲 소리를 들었지만, 이 경험만으로도 ASMR이 인기를 끄는 이유를 어느 정도 체감할 수 있었다.
눈앞에 놓인 현실을 잊고 싶을 때, 귓가에 흐르는 소리에 지난 기억도 함께 얹어 흘려 보내고 싶을 때 오로지 청각에만 집중하는 것 아닐까. 그리고 마침 그 순간을 함께하는 내 곁의 누군가가 있다면, 귀가 간지러운 만큼 마음도 간질간질해질 것 같다.